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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38화 (33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38화

성벽 위에서 늑대인간 카니스와 딕이 대치했다.

그녀가 딕을 노려보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상대는 나랑 같은 키젠이야. 그냥 물러나서 일반 병사들이나 학살할까?'

그런 생각도 잠시 했지만, 곧 카니스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이 전쟁의 승부는 칠흑을 다루는 네크로맨서 30명에 달려 있다. 어쭙잖은 잔챙이들 잡는 데 칠흑을 소모하는 것보단, 적장인 키젠 학생을 잡는 게 전세에 유리했다.

'뭣보다 저 헤실거리는 녀석은 내 정체를 알고 있어.'

이대로 그를 보내주면 블러핑을 포함한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가 수성 측에 알려질 것이다. 그녀는 싸우기로 했다.

'......근데 저건 뭐야?'

그렇다고 무작정 돌진하기에는, 딕의 좌우에는 놓여 있는 저 금속 케이스가 상당히 찜찜했다.

매끈한 금속 재질에, 성벽의 바닥에 균열이 생긴 걸 보니 무거워 보였다.

대체 저게 무슨 장비인지 카니스는 알 방도가 없었다. 저런 무기를 쓰는 네크로맨서는 본 적도 없다.

"그럼."

카니스가 망설이는 모습을 본 딕이 두 금속 케이스에 손바닥을 올렸다.

"이쪽에서 먼저 간다!"

<인챈트>

금속 케이스에 딕의 칠흑이 흘러 들어가자, 전원이 들어오듯 번쩍였다. 이내 엔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기기가 작동했다.

[!]

그녀가 급히 고개를 젖혔다. 뭔가 얼굴 쪽을 스쳐 지나가서 뒤를 돌아보니, 작은 불씨가 한줄기 섬광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오, 이걸 반응하네! 야생의 감각 같은 거야?"

딕이 그렇게 말하며 케이스에 칠흑을 더 불어넣었다. 그러자 케이스에 구멍이 덜컹덜컹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무수한 섬광 다발이 쏟아졌다.

[큭!]

카니스가 급히 몸을 돌려 성벽을 내달렸고, 그 뒤로 섬광 다발이 쫓아왔다.

'저게 뭐지? 저주?'

저 기술의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맞아서 좋을 건 없어 보인다.

늑대인간 특유의 유연성으로 잘 피해 다니던 그녀는, 자신의 손톱에 칠흑을 불어넣어 휘둘러 보았다.

쩡! 소리와 함께 손톱에 부딪힌 섬광이 튕겨 나갔다.

'다행히 칠흑으로 파훼도 가능해!'

"음."

딕이 살짝 힘겨운 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금속 케이스에서 더 많은 섬광을 꺼내 발사했다.

딕이 공세를 퍼붓고 카니스가 피하는 양상이 계속되었다. 두 네크로맨서들의 화려한 전투에, 수인군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좋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은 바뀌어 갔다. 카니스가 워낙 잘 피해내고 있었고, 이제는 오히려 공격자인 딕 쪽이 지치는 듯 숨을 헐떡였다.

이 정도 개수로 퍼부으면 당연히 칠흑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회피에 여유가 생긴 카니스는 손바닥에 저주 마법진을 그렸다.

'하울링을 걸고, 한 방에 끝내겠어.'

그녀는 빠르게 저주를 완성했다. 지금까지 쭉 회피 일관으로 대처하던 카니스가 딕 쪽으로 돌진하며, 손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입 가까이 댔다.

-아우우우우우우!

그리고 울부짖었다.

다시 한번 소리로 일어나는 광역저주, <울프 하울링>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흐읍!"

"큭!"

딕을 도와주려던 병사들도 그 울음소리를 듣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뒷걸음질 치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딕 또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완벽한 찬스.

빠른 움직임으로 딕의 등 뒤를 잡은 카니스가 일직선으로 쇄도했다.

'이겼어!'

그녀의 두 손톱이 딕의 등을 꿰뚫으려는 순간.

[!]

딕이 허리를 잽싸게 비틀어 피했다.

하울링 저주에 걸려 있어야 할 딕이 가뿐히 옆으로 물러나고, 오히려 몸의 균형이 극도로 앞으로 쏠린 카니스가 휘청거렸다.

키이잉!

키잉!

이내 두 팔에 달려 있던 검 모양의 손톱이 금속 케이스에 찰칵! 붙어버렸다.

[뭐, 뭐야 이게!]

그녀가 팔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속 케이스의 무게 때문에 힘을 줄수록 손톱이 떨어져 나갈 듯 아플 뿐이었다.

"휘유."

딕이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상당히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 어떻게 피한 거지? 분명 하울링에 걸렸을 텐데!]

"응? 뭐라고 하는 거야?"

딕이 그렇게 말하며 귀에서 귀마개 같은 물건을 뽑았다.

"아마도 왜 저주에 걸리지 않았냔 소리였겠지?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어느 틈에 그런 걸......! 분명 귀마개를 꽂는 동작 따위는!]

"아, 당근 처음부터 꽂고 있었지롱."

딕은 그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메타모포시스를 알고, 그 상태에서 쓸 수 있는 하울링이라는 기술도 안다.

"그런 내가 너한테 싸움을 걸면서, 하울링에 대한 대비를 안 하고 왔을 리 없잖아?"

[......망할!]

딕이 귀마개를 품 안에 넣었다.

"내가 전투에서 쓰는 물건들은 대부분 '인챈트'로 전원을 켜고 끄는 것들이야. 이 귀마개도 마찬가지. 귀에 꽂은 상태에서 그냥 칠흑만 흘려보내면 완벽한 방음효과가 일어나."

그녀가 분한 듯 으르렁거리며 두 팔을 빼내려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손톱은 금속 케이스에 철썩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카디스의 손톱은 신체의 일부 같은 것이었고, 늑대인간으로 변신한 상태에서는 이 형태가 유지된다. 손톱을 감췄다 꺼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딕은 당연히 이 사실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딕이 손가락을 척 세웠다.

"아까 막 저주처럼 날아가던 그거, 사실 아무 효과도 없던 거다?"

[......뭐?]

그냥 뻥이야 뻥. 이라고 딕이 말했다.

"다들 결투평가로 저주에 엄청 데여봤으니, 저주 비슷한 것만 봐도 치를 떨고 경계하잖아? 그런 심리를 이용할 겸 써봤어. 사실 이 금속 케이스는 칠흑으로 작동하는 자석 같은 거야."

거짓.

그리고 철저한 기만.

그게 바로 키젠에서 생존하기 위한 딕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뭐.]

그녀가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딕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렇게 해놓고 뭐 어쩔 건데?]

변신을 풀게 하는 것이 딕의 노림수.

팔을 못 쓰게 됐지만 그녀에겐 다리가 있었다. 이빨도 있고, 꼬리도 있다. 저 녀석이 손에 든 칼로 찌르려고 다가오면 어떻게든 해볼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두 다리에 근육이 불끈거렸다.

[올 테면 와봐!]

"들어가는 건 무섭지~ 난 겁쟁이라서."

딕이 아공간에서 포션 병을 꺼내 그녀에게 휙휙 던졌다. 그녀의 전신이 점성 있는 액체로 흥건해지게 됐다.

뭔가 달콤한 냄새가 났다. 아마도 중독포션이나 마비포션.

하지만 카니스도 별야 교수의 수업을 들어서 내성에는 자신 있었다.

무엇보다 손톱이 덜컥거린다. 슬슬 자기력이 약해지는 게 느껴진다.

아마도 지속시간은 1분 남짓. 방심한 탓에 당하는 건 너다.

투툭. 툭.

그리고 마지막으로 딕이 그녀의 발밑에 떨어뜨린 건 말벌집이었다.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벌집? 이딴 걸로 네크로맨서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딕은 등을 돌려 그녀를 떠나고 있었다.

"그 벌들은 몬스터 교배종이야. 칠흑으로 몸을 감싸도 독침이 뚫고 들어가지."

딕이 두 팔을 머리 뒤로 들어 올리더니, 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인챈트 해제>

"잘 가."

부우우우우웅!

소름 끼치는 소리는 소리와 함께 세 개의 말벌집에서 말벌 떼가 튀어나왔다. 거의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톱을 붙잡고 있는 금속 케이스의 붙잡는 힘이 약해지며 풀렸다.

'됐다!'

자유로워진 그녀가 칠흑을 밟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말벌들이 꿀을 바른 그녀의 전신에 달라붙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

미친 듯이 아팠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미세한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 카니스가 울부짖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말벌은 떨어지지 않았고, 칠흑으로 가죽을 감싸도 독침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꺄아아아아악―!]

고통에 미쳐 날뛰던 그녀가 성벽에서 떨어졌다. 이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엎어진 그녀의 배리어 게이지가 바닥나고 말았다.

[카니스 맥그로리 탈락.]

[수성팀 (15/15)]

[공성팀 (14/15)]

그녀의 몸이 전장에서 흩어지듯 사라졌다.

"흐하하! 첫 킬은 내 차지다!"

딕이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 * *

딕이 카니스를 잡아낸 이후, 꺼진 불이 진화되듯 성벽의 사태도 수습되고 있었다.

"자아, 갑시다!"

딕을 필두로 병사들이 집결하여 성벽에 올라온 칸 왕국 병사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딕이 병사들의 갑옷과 무기에 인챈트를 걸어주면, 그 누구든 정예병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우당탕탕탕!

전면의 병사들이 뭔가에 부딪혀 쓰러지고 있었다.

딕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쭉 빼보니, 공성 사다리 하나가 공중에서 병사들을 후드려 패고 있었다.

"응?"

이제는 성벽에 걸쳐 있던 공성 사다리들까지 공중에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쓰읍! 뭐야 갑자기!"

이제 사다리들은 다른 병사들을 내버려 두고 딕을 뒤쫓아왔다. 딕은 급히 검을 버리고 도망쳤다.

'여, 염력계? 이 정도 수준의 염력을 쓰는 애가 키젠에 있었던가?'

딕은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올라 날아오는 사다리를 피한 다음, 그 몸체에 손바닥을 올렸다.

'인챈트!'

인챈트를 걸어버리자, 사다리를 움직이는 힘이 거짓말처럼 풀리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이걸로 딕은 확신했다. 이건 염력 따위가 아니다.

저벅 저벅.

"사다리 셔틀만 하면 된다더니."

그때 딕 앞으로 한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눈 밑에 애교살이 많은 짧은 단발머리의 소녀. 그리고 키젠 교복을 입고 있다.

성벽 위는 적진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유롭게 성벽을 거닐고 있다.

사실 그녀가 조종하는 사다리들이 경호원처럼 주위를 돌아다니며 수인 병사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는 중이었다.

"신기하네. 너 같은 바보가 어떻게 카니스를 잡았니?"

"그, 그런 건 영업비밀이라~"

딕은 눈썹을 들썩이며 여유롭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까 그 늑대인간을 잡느라 칠흑을 너무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그리고 딕은 그녀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밀레나 하츠. 네가 직접 나설 때야?"

"한 번에 알아보네. 유명세도 좀 질린다니까~"

밀레나가 손가락을 세워 들었다. 그러자 주위의 공성 사다리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 대신 성벽의 타일이었던 돌들이 공중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망했다.'

칠흑이나 금속을 제외한 물질을, 다수의 원거리 투사체로 던지는 타입이 딕에게는 가장 최악의 상성이었다.

딕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쳤고, 벽돌들이 딕에게 휙휙 소리를 내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퍼억!

퍽!

몇 대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아팠다.

딕은 휘청거리면서도 전속력으로 달렸다.

"도망치는 건 빠르네."

바로 옆에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철렁한 딕이 얼른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딕의 속도를 따라잡은 밀레나가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부아아앙!

그녀의 발차기를 딕이 억지로 몸을 젖혀 피했다. 그 반동으로 중심을 잃은 딕에게 검은 연기가 짓쳐 들었다.

<이그저스트>

한 타이밍 빠르게 들어온 이그저스트였다. 딕의 몸이 즉시 무거워졌다.

'마, 망했다! 이거 빨리 안 풀면......!'

제2타, 3타가 온다.

딕이 재빨리 손바닥에 마법진을 펼치며 해제 저주인 '캔슬레이션'을 준비했지만.

후웅! 후웅!

밀레나의 손가락에서 한발 앞선 두 번째, 세 번째 이그저스트가 딕의 몸을 통과하며 지나갔다.

무려 3스택의 이그저스트.

딕이 견디려고 하듯 부르르 몸을 떨다가 결국 털썩 두 무릎을 꿇었다. 준비하던 캔슬레이션도 실패하고 무거워진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클리어~"

무력화된 딕을 확인한 밀레나가 손가락을 내렸다.

"흐, 진짜."

딕이 투덜거렸다.

"이래서 저주술사는 개극혐이야. 대인전 능력이 너무 사기 아냐?"

"미안하게 됐네~"

그녀가 전혀 안 미안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손짓했다. 주위의 성벽 벽돌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바이 바이."

벽돌들이 딕에게 날아갔다. 그가 체념한 듯 두 팔을 축 늘어뜨리는 순간.

촤아아아아악!

전면으로 얼음의 벽이 치솟고, 날아온 벽돌이 부딪쳐 떨어졌다.

"멍충아! 겨우 한 명 상대하고 빌빌대고 있냐?"

"!"

어느새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밀레나의 등 뒤를 잡고 있었다.

<프로스트 노바>

콰르르르르!

그녀의 손바닥에서 얼음의 꽃이 피어나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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