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43화
까앙! 챙! 채애앵!
청명한 쇳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드높은 성벽을 배경으로, 두 소년이 커다란 검을 어깨에 짊어지고 회전하면서 싸우는 모습은 마치 예술가들의 검무를 보는 것처럼 화려했다.
까아아앙!
상대의 무기를 받아낸 충격으로 시몬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손잡이를 붙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물집이라도 터졌는지 대검의 거친 마감에 닿아서 쓰리기까지 했다.
"훌륭하오."
상대인 쥴은 기탄없이 칭찬하며 장검을 세워 들었다.
여유 있는 표정. 그리고 검은 여전히 검집에서 꺼내지 않고 있었다.
'......진검을 안 쓰고 검집째로 휘두르는 이유가 뭐지? 봐주는 느낌은 아닌 것 같은데.'
"조심해 시몬!"
등 뒤에서 들린 딕의 외침에,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쥴은 마검 사용자야!"
마검(魔劍).
말 그대로 저주받은 검을 말한다. 사용자에게 강한 힘을 부여하는 대신 피와 죽음, 그리고 온갖 불행을 불러온다고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그 어떤 기사들도 다루기 꺼려 했지만, 대 네크로맨서 시대가 열린 이후로 저주에 익숙해진 네크로맨서들이 이런 무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마검 사용자라니, 진짜 별의별 네크로맨서가 다 있구나.'
딕의 설명을 들은 시몬이 혀를 내둘렀다.
착.
그때 쥴이 허리띠에 검집을 쑤셔 넣고, 손잡이를 앞으로 향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손잡이를 틀어쥐는 순간.
촤아아아아아악!
뒤편의 성벽에 일직선으로 거대한 검격이 그어졌다. 성벽이 무너질 듯 덜컹거리며 파편들이 후두둑 떨어져 주위에 먼지가 치밀었다.
허리를 젖혀 피한 시몬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쥴을 바라보았다.
'......발검술?'
하지만 검을 뽑는 모습조차 안 보였다.
저렇게 큰 검집에 있는 검을 뽑아 검격을 보내고, 다시 집어넣는 걸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구사하는 건가?
진짜 그 정도의 역량을 가졌다면, 굳이 발검을 고집할 필요도 없이 자신을 압도해야 했다.
"시몬! 저게 쥴이 가진 마검의 능력이야!"
딕의 설명에 따르면, 방금 쥴의 기술은 발검술의 일종이 맞다고 한다.
쥴은 분명히 검을 휘둘러 참격을 날리고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 일련의 동작을 취하지만, 다른 이가 보기에 그 장면은 스킵되어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다.
그냥 쥴이 제자리에서 가만히 손잡이만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착시나 환상 같은 얄궂은 힘이 아니다.
인과의 역전, 혹은 현실 조작에 가까운 힘.
상대는 쥴이 마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마검을 휘두르는 건 쥴뿐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고 '휘두른 결과'만이 남는다.
'......말도 안 되는 성능이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시몬이 숨을 고르며 대검을 세웠다.
'칠흑 소모도 많아 보이고, 한번 사용하면 다음 사용까지는 시간이 걸려.'
시몬의 예상대로인지 쥴이 허리띠에 낀 검집을 뽑아내어 돌진해 왔다. 시몬도 이를 악물고 대검을 휘둘렀다.
까앙!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정신없이 공방을 주고받았다. 인챈트가 발린 시몬의 새까만 대검과, 쥴의 붉은 검집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사방으로 불똥을 튀겼다.
"훌륭하오! 검술에도 이리 능하다니!"
쥴은 더없이 즐거워하는 표정이었지만 시몬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쥴의 등장으로 아군 병사들은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올라가는 걸 포기했다. 딕은 병사들을 내성의 남문으로 보내고 있었는데, 좋은 판단이다.
"딕! 너도 내성으로 가줘! 쥴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어어, 알았어! 조심해라!"
딕이 병사들을 데리고 움직이며 한마디 더 했다.
"참고로 마검에 직접 베이면 저주에 걸려! 한 대라도 맞으면 안 돼!"
'말은 쉽지만......!'
까앙!
검과 검집이 부딪치며 불똥이 크게 터졌다.
검집을 휘두르던 쥴의 오른발이 강하게 앞으로 나왔다. 동시에 검집으로 시몬의 대검을 밀어 올리고는 손잡이를 터업 붙잡는 모습이 보인다.
'!'
일련의 동작을 본 시몬이 즉시 대검을 손에서 놓고 몸을 던졌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일직선으로 일어난 참격이 시몬이 있던 자리를 베어버리며 나아가 성벽에 부딪혔다.
그러고도 힘이 남았는지, 참격은 성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마침내 성벽 끝에서 터지며 하늘에 커다란 불똥을 튀겼다.
'와.'
시몬이 식은땀을 흘렸다. 성벽에 큼지막한 금이 가 있었다.
'마, 마음만 먹으면 진짜 혼자서 성벽도 무너뜨리겠는데?'
특례 5번이지만, 컨디션만 좋다면 키젠 최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쥴이 시몬이 떨어뜨린 대검을 짓밟으며 말했다.
"급하게 피한 건 좋소만, 무기를 버린 뒤엔 어찌할 생각이오?"
쥴이 자신의 검집을 세워 들고는 일직선으로 돌진해 왔다.
시몬은 말없이 오른팔을 펼쳤다. 그 손바닥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저주!'
마법진에 시선이 빼앗겨 있던 쥴이 순간적으로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러곤 등 뒤에서 날아오고 있던 시몬의 대검을 깡 소리와 함께 쳐냈다.
'아깝다!'
나름 회심의 페이크였으나 쥴은 검사답게 감이 좋았다.
빙그르르 회전하던 대검이 공중에서 선회하다가 시몬의 손안으로 착! 들어왔다.
'피어의 파멸의 대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지.'
손잡이에서는 미리 붙여둔 스켈레톤의 뼈가 있었다.
시몬이 대검을 고쳐잡았고, 쥴이 돌진해 왔다. 두 소년이 다시 무기를 맞대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하아아!"
"크웁!"
채애애애애앵!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상대의 검로를 예측하기도 상당히 어렵다.
쩍!
처음으로 허리 쪽에 타격을 한 번 허용했다.
배리어 게이지가 뭉텅이로 깎여 나가며 시몬은 헛구역질했다. 검집으로 휘두른다고 해도 제대로 맞으면 갈비뼈가 박살 날 것이다.
시몬이 비틀거리자 쥴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손잡이를 앞으로 향하는 발검 자세를 취했다.
'회피!'
시몬은 즉시 옆으로 몸을 던졌다.
촤아아아아악!
예상대로 참격은 정면에서 나갔다. 하지만.
까아아아앙!
시몬이 본능적으로 대검을 앞세웠다. 붉은 검격이 시몬의 대검에 부딪혔다.
'발검술로 2연격까지?'
동작이 보이지 않는 마검의 힘은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시각과 청각 정보는 마검이 움직이는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로지 육감에 의존해서 피해야 했다.
만약 육감이 발동되지 않거나 미스가 난다면? 실전에선 바로 두 동강이다.
"키젠에서 와서 검을 맞대어 즐겁긴 하나, 소환학 지망인 그대가 왜 검으로 싸우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소"
쥴이 마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본 실력을 발휘하시오. 그대가 자랑하는 '친위대'를 꺼내지 않는 이상 승산은 없소."
'역시 그게 목적이었나.'
쥴은 처음부터 시몬을 노리고 왔다. 아마 엘리사의 지시였으리라.
쥴이 시몬을 처치하면 더할 나위 없고, 쥴이 패배한다고 해도 시몬도 다량의 칠흑과 피를 소모하는 친위대를 쓰고 퍼질러질 테니 그렇게 손해는 아니다.
'......굳이 엘리사의 뜻대로 놀아날 필요는 없어.'
여기서 더 칠흑을 소모하면 스켈레톤 메이지를 운용해 불길을 만드는 것도 힘들어진다.
'도망치자!'
결정했다.
시몬은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을 불러내 본 아머를 입었다.
이제야 제대로 싸워주리라 생각했는지 쥴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지만.
휘익!
시몬은 냅다 대검을 던졌다. 쥴이 그것을 막는 사이 등을 돌려 잽싸게 도망쳤다.
"아니!"
쥴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어, 어찌 결투 중에 등을 보일 수 있단 말이오! 멈추시오!"
시몬은 가볍게 무시하며 성벽 쪽으로 내달렸다. 쥴도 헐레벌떡 그를 뒤쫓아 왔다.
'돌아와!'
아까 쥴에게 날렸던 대검을 회수하고는, 그대로 두 발에 칠흑을 일으켜 성벽을 타고 올라갔다.
탓!
뒤쫓아오는 쥴도 성벽을 타고 올라왔다.
"멈추라고 했소! 검사가 등을 보이고 도망치다니 부끄럽지도 않소이까!"
'미안하지만, 난 네크로맨서야.'
그때 성벽 위의 병사들이 두 사람을 발견했다.
"찍찍! 총사령관님이다!"
"그 옆의 애꾸눈은 적이다! 쏴라!"
궁병들이 쥴에게만 화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쥴은 검집을 움직여 빗발치는 화살을 모조리 쳐내고는 기어이 시몬을 따라잡았다.
'여, 여기까지 따라오려고?'
시몬이 내성 성벽 위로 올라왔고, 뒤따라 올라온 쥴도 달리면서 검집을 휘둘렀다.
까앙! 챙! 채앵!
성벽을 달리는 두 소년의 무구가 연달아 부딪힌다.
"후웁!"
공격을 잠깐 멈춘 쥴이 마검의 손잡이를 붙잡았고, 시몬은 얼른 대검을 자신의 앞으로 세웠다.
까아아아아아앙!
쥴의 참격이 시몬의 대검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결국 대검이 깨져 버렸고, 그 충격에 떠밀린 시몬의 몸이 성벽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찌익!"
"초, 총사령관님!"
시몬은 떨어지면서도 재빨리 손가락을 뻗었다.
밧줄처럼 날아간 청록빛의 클라우드가 성벽 바닥에 달라붙었다. 클라우드가 팽팽해지며 시몬의 몸을 다시 성벽으로 끌어당겼다.
"방해꾼은 비키시오!"
쥴이 병사들을 제치며 달려왔다. 주위에서 내질러지는 무기들은 그냥 검집째로 휘둘러 부수고는 막 착지한 시몬과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끈질겨!'
시몬이 검지를 척 뻗었다.
<시크니스>
멀미의 저주가 섬광처럼 쏘아져 나갔지만 쥴은 가볍게 검집을 자신의 앞으로 들어서 막아냈다.
저주가 검집에 닿는 순간, 마치 캔슬레이션이 작동한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졌다.
"마검은 저주들의 왕! 그런 공격은 통하지 않소!"
돌진하는 쥴의 모습은 마치 광전사를 방불케 했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공격에 생채기가 나고, 배리어 게이지가 깎여 나갔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소박하고 이국적인 생김새와는 달리 전투에 집착하는 성향은 마검 사용자다웠다.
"웃차!"
결국 시몬이 성벽을 내려왔다. 이번에는 내성을 돌파한 뒤에 들어올 수 있는 심장부, 핵심 시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엘리사가 여기까지 쫓으라고는 안 할......!'
후웅!
그러나 쥴도 기어이 성벽을 내려왔다. 시몬은 헛웃음을 흘렸다.
'여기까지 쫓아온다면 어쩔 수 없지.'
시몬이 시가지의 경사진 계단을 내달렸고, 쥴이 뒤쫓아 왔다.
쩌어어어어엉!
쥴이 검집의 손잡이를 만지자 위쪽의 주거지에 금이 그어지더니,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며 벽돌과 집 따위가 내려와 시몬의 길을 막았다.
쿠쿠궁!
요리조리 파편을 피해 다니던 시몬의 몸이 자욱한 흙먼지에 가려졌다.
"후웁!"
검집을 휘둘러 흙먼지를 깨끗하게 걷어버린 쥴의 시야에, 바닥에 엎드려 있는 시몬의 모습이 보인다.
"잡았소!"
쥴이 즉각 시몬에게 돌진했으나, 갑자기 정면에서 튀어나온 에메랄드빛 검광이 그의 검집을 쳐냈다.
"!"
쥴이 움찔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지금부터는."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親衛隊)>
잔잔해진 흙먼지 속에서, 청록색 망토를 휘날리는 스켈레톤 검사부대들이 쥴을 포위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할게."
시몬이 에메랄드빛 관을 머리에 쓰며 말했다.
쥴이 비로소 미소를 보이며 마검 손잡이를 붙잡았다.
"특례 1번의 실력. 한 수 배우겠소!"
"그러기도 전에-"
시몬이 손을 펼치는 것을 신호로, 23갈래의 친위대들이 섬광처럼 돌진했다.
"단숨에 끝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