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44화
시몬과의 결전을 앞둔 상황에서.
쥴은 가만히 엘리사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시몬을 밀어붙여서 친위대를 쓰게 했다면, 작전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어. 그대로 도망쳐 버려.
그 말을 들은 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양하겠소. 시몬과의 승부야말로 내가 바라던바. 당당하게 싸워 이기고 돌아오겠소.
-어휴! 넌 너무 네크로맨서답지 않아서 문제야.
엘리사는 결국 시몬의 공략법을 알려주었다.
-대소환술사 전술은 사실 어딜 가든 다 비슷비슷하잖아? 최대한 소환수를 피하면서 술사 먼저 노리기. 하지만 시몬은 마투에도 능해서 그런 공략은 잘 먹히지 않아.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친위대가 된 스켈레톤을 노려.
엘리사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시몬과 친위대는 서로 연결되어 있대. 블러드골렘이 베이스라서 그렇다는데 자세한 원리는 나도 잘 모르고. 암튼! 술사인 시몬을 압박하면서 친위대를 파괴하면 시몬에게도 피해가 갈 거야.
친위대는 시몬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라고.
엘리사는 그렇게 말했었다.
"가라."
시몬의 지시에, 흩어져 있던 23갈래의 친위대들이 일제히 쥴에게 달려들었다.
"흠."
쥴이 침착하게 마검의 손잡이를 붙잡자, 마검의 능력이 발동했다.
붉은 검격이 쥴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펼쳐지며 친위대들의 돌진을 막았다. 세 기의 친위대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공격에 당해 몸이 갈라졌다.
"!"
그러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시몬이 고통을 숨기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자세히 보니 친위대가 당한 것과 같은 부위에 타격이 들어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엘리사의 분석이 맞았소.'
하지만 시몬도 그냥 당해주지는 않았다. 망토를 휘날리며 나타난 친위대 하나가 정면에서 검을 내질렀다.
쥴이 급히 고개를 꺾어 피했지만, 측면에서도 에메랄드빛 검격이 내려오며 그의 배리어를 강타했다.
'빠르군!'
도저히 스켈레톤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기 힘든 쾌검(快劍).
쥴이 급히 포위망에서 벗어나 달렸고, 그 뒤를 20기의 친위대들이 뒤쫓았다.
하나하나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다.
도망치던 쥴이 훌쩍 뛰어올라 근처의 벽돌집에 두 발을 붙이더니 튕겨 나가듯 쇄도했다.
목표는 정면의 친위대였다.
'우선 하나.'
쥴이 검집을 휘둘렀고 친위대도 검을 자신의 앞으로 세우는 방어자세를 취했다.
까아아앙!
그런데 막상 검이 부딪히는 순간, 저쪽의 검이 세 개로 늘었다. 좌우에서 다른 친위대들이 끼어들어 방어력을 높인 것이다
촤악!
촤악!
그와 동시에 뒤로 돌아온 친위대들의 일격. 배리어 게이지가 크게 깎여 나간다.
'연계가 극도로 훌륭하군.'
20기의 스켈레톤을 모두 시몬이 컨트롤하는 중이었고, 일제의 사각도 없었다.
스무 자루의 검은 하나가 되어 쥴의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에메랄드빛 검광이 허공을 화려하게 덧칠했다.
'포위당하는 순간이 곧 패배!'
쥴도 정면으로 친위대와 맞붙는 것을 포기하고 거리를 벌리는 스타일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면서 마검의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친위대가 바닥에 쓰러졌고, 시몬도 타격을 입었다.
'그대의 친위대는 틀림없이 막강하오. 한번 발동하기만 하면 어지간한 키젠의 실력자들도 손도 못 쓰고 나가떨어지겠지. 하오나!'
쥴이 마검의 손잡이를 붙잡은 채, 바닥에 내리찍었다.
'내게는 벨 수 있는 타깃이 더 늘어난 것과 다름없소!'
<금륜(金輪)>
바닥에 꽂은 검집을 중심으로 일곱 갈래의 참격이 지면을 타고 뻗어져 나갔다.
몇 기의 친위대가 또 쓰러지고, 이번에는 쿵! 하고 시몬의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이 마검을 다루기 위해, 나는 많은 것을 버렸소'
교복을 입고 있어서 드러나진 않지만, 쥴의 맨몸에는 무려 여섯 장의 영속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쥴은 마검을 쓰는 대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한쪽 눈을 잃었고, 미각을 잃었으며, 편안한 숙면을 포기했다. 날마다 고통에 신음하고, 악몽에 시달렸다.
거기에 네크로맨서로서도 저주, 소환, 혈류 등 다른 분야의 흑마법은 대부분 봉인된 거나 다름없었다. 쥴에게 남은 건 오로지 이 마검 한 자루뿐.
다른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무언가를 배울 때.
쥴은 무언가를 버렸다.
그리고 버릴수록 마검은 강해졌다.
버리는 것. 그것만이 쥴의 성장 방식이었다.
'나는 알고 싶소!'
마검의 검격에 다시 한번 친위대 한 기가 추가로 박살 나며 쓰러졌다. 시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렇게 나를 이루던 것들을 버리고 손에 넣은 이 마검으로,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쥴이 점점 친위대의 공세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시몬도 파격적인 변화를 주었다.
스륵. 스륵.
몇몇 친위대들의 몸에 청록빛이 빠져나가더니 그대로 뼛조각으로 변해 바닥에 어질러진다.
그 많던 친위대들이 순식간에 5기로 줄어들었다. 시몬이 스스로 힘을 꺼트려서 수를 줄인 것이다.
'명백한 실책!'
소환술사 최대의 장점인 머릿수를 스스로 포기하다니!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쥴이 술사인 시몬을 향해 똑바로 돌진했다.
하지만 시몬은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당연한 상식이지만."
돌진하는 쥴의 앞을 친위대 하나가 가로막았다.
"머릿수가 줄어들면."
하늘에서는 덤블링하듯 회전하며 날아온 친위대가 검을 내리그었다. 까앙! 소리와 함께 공격을 막은 쥴의 발이 움푹 들어갔다.
"컨트롤의 퀄리티는 높아져."
쥴이 옆으로 달리며 검집을 내질렀으나, 친위대는 간단히 고개를 꺾어 피하면서 역으로 돌진. 옆구리에 검을 찔러넣으며 지나쳐 갔다.
"흠!"
쥴이 즉시 마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촤아아아악!
마검의 직선이 대기를 절단하며 뻗어 나갔지만, 친위대들은 간단히 자세를 낮춰 피해 버렸다.
'이럴 수가!'
텅 빈 허공을 지나친 검격은 애꿎은 돌무더기를 강타하며 먼지구름을 피워 올렸다.
이내 먼지구름을 가르며 다섯 개의 에메랄드빛 검격이 쥴을 덮쳤다.
"크으윽!"
다섯 자루의 검과 한 자루의 마검이 치열하게 맞부딪힌다. 눈부신 검광이 번쩍번쩍 터져 나온다.
빙글빙글 팽이처럼 회전하며 검을 휘두르는 친위대, 공중을 뛰어다니며 낙하 공세를 하는 친위대, 정면에서 쥴의 공격을 쳐내는 친위대, 후위를 노리며 찌르기 위주의 공세를 퍼붓는 친위대까지.
쥴의 몸 곳곳에 검상이 생기며 배리어 게이지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뿐이오!'
쥴이 친위대를 상대하지 않고 시몬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고는 검집을 두 손으로 붙들고 자신의 얼굴 앞에 세웠다.
찰칵.
'!'
그 모습을 본 시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전부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쥴의 검집이 열렸다. 검집 안의 붉은 칼날이 선명하게 빛을 반사했다.
쥴의 몸은 앞을 향해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뒤따르는 친위대를 향하고 있었다.
'설마!'
시몬이 친위대 전체에 절대명령을 내렸다.
<사륜(四輪)>
촤아아아아아아악!
네 갈래의 검격이 뒤따르는 친위대들의 몸통을 지나갔다. 친위대의 몸통이 일제히 떨어져 버리고, 시몬의 눈에도 초점이 희미해지며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난적이었소."
마검을 살짝 뽑은 자세였던 쥴은, 마치 다음 책장을 넘긴 것처럼 완전히 마검을 검집에서 뽑은 채로 들고 있었다.
쿵!
검집을 떨어뜨린 그가 마검을 세우고 시몬에게 돌진했다. 검 끝이 시몬의 목덜미로 향했다.
"!"
그때 시몬의 눈에 빛이 확 돌아오더니 몸을 기울여 공격을 피해냈다. 역으로 파고든 그가 쥴의 복부에 손바닥을 댔다.
<시몬 오리지널 - 촉파>
투콰아아아아악!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파장이 쥴의 몸을 뒤로 날려 보냈다.
'어째서 멀쩡......!'
쥴의 눈동자가 뒤로 향했다.
아까 자신이 베었던 친위대 다섯 기 중, 네 기가 멀쩡하게 몸이 붙은 채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당연하지."
이내 격렬한 검광과 함께 친위대가 쥴의 몸을 교차해 지나갔다. 그들이 베기 자세로 움직임을 멈췄고, 공중에 뜬 쥴의 몸에서.
촤악! 촤악! 촤악! 촤악!
네 갈래의 검광이 번뜩이며 타격이 들어갔다. 쥴을 감싸고 있던 배리어가 한계까지 시뻘겋게 변했다.
"안 베였거든."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손가락을 위로 세워 들었다.
쿵!
쥴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침음을 흘리며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어떻게......!"
"넌 친위대를 벤 게 아니었어."
시몬은 쥴이 마지막 기술을 쓸 때, 그의 시선이 뒤로 향해 있는 걸 보고 친위대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검로를 예측한 다음, 절대명령으로 스켈레톤의 몸을 떨어뜨려 버렸다. 그 사이로 검격이 지나갔다.
그 설명을 들은 쥴은 경악했다.
"거, 검로를 예측하고 파츠를 떨어뜨렸단 말이오?"
"응. 너 아직 마검을 완전히 통제하는 게 아니지?"
마검은 검집에서 뽑히는 순간부터 쥴의 통제를 벗어나는 듯했다. 쥴은 마검의 방향만을 제시하고, 그 또한 현실 조작의 과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이미 몇 번의 실험으로 확인했다.
쥴은 비로소 수긍한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나의 완패요."
딸칵. 딸칵 딸칵.
시몬의 지휘에 공중에서 뼛조각으로 분해된 친위대의 몸이 '본 니들'로 변환되는 모습을 보며 쥴이 눈을 감았다.
"다음에는 더 완벽한 컨디션으로 도전하겠소."
'......그냥 안 받아주고 싶다.'
시몬의 입장에서도, 쥴은 정말 상대하기 꺼려지는 네크로맨서였다.
최근에 상대해 본 학생들 중에 제일 강했다.
"수고했어."
시몬이 팔을 내리긋는 것으로, 무수한 본 니들이 쥴의 마지막 배리어를 강타했다.
[쥴 빈체레 탈락.]
[수성팀 (12/15)]
[공성팀 (11/15)]
그의 몸이 완전히 전장에서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북문 앞.
"공격! 공격! 계속 들어가!"
공성팀의 총사령관인 엘리사는 직접 북분 공략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쥴 빈체레 탈락.]
"흐음."
공성팀의 핵심 전력이 쥴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크게 동요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수고했어 쥴. 네 희생이 헛되게 하진 않을게."
그녀가 손에 든 명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라크, 무사히 들어갔지? 부숴 버려."
* * *
시몬과 쥴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이, 공성전 양상은 팽팽하게 전개되는 중이었다.
외성을 지키던 아온 왕국의 모든 병력이 내성으로 후퇴했고, 이제 칸 왕국도 내성 공략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중, 희소식이 들어왔다.
특례 5번 쥴이 탈락했다는 이야기였다.
"와! 쥴이 여기서 잡히네!"
"좋다, 좋아!"
"다들 방심하지 마!"
모두가 떠들썩하게 웃고 있는데 메이린만은 잔뜩 집중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얼음으로 성벽을 뒤덮어서 올라오는 병사들을 미끄러뜨리고 있었다.
"남은 시간까지 여기서 완벽히 막아야 하니까!"
"알지, 알아."
"그래도 여긴 진짜 안정적이네."
외성에서는 적진에서 날아오는 화살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했다면, 내성은 성벽 자체가 높아서 상당히 안정감이 있었다.
성벽을 기어오르건 성문을 부수건 적의 입장에선 공략이 쉽지 않으리라. 핵심 방어 포인트도 많이 줄어들었기에 학생들도 칠흑을 아낄 수 있었다.
"좋아 좋아!"
딕이 손뼉을 치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얘들아! 이대로 버티기만 하......!"
[수호석이 붕괴되었습니다.]
[듀이 노먼 탈락.]
난데없는 메시지.
이내 내성 전체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마법막이 걷혀가기 시작했다.
"어?"
"뭐야? 내성에서 지키고 있는데 어느 틈에......!"
그때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커다란 날개를 양껏 펼친 검은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