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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48화 (34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48화

아온 성은 흑요석 광산과 산맥을 중심으로 쌓아 올려진 성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극도로 낡아 있었다.

성벽이야 전쟁을 통해 깨지고 보수하면서 강도를 유지하게 마련이나, 다른 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시몬은 처음 와서 아온 성을 둘러볼 때, 무게를 지탱해야 할 중요 기둥들이 심하게 낡아빠진 걸 보고 놀랐다.

처음엔 '적이 여길 무너뜨리면 어쩌지?' 하고 염려했다가, 그 생각은 곧 '차라리 내가 먼저 무너뜨리면 어떨까?'로 바뀌었다.

-걱정 마시오. 흑요석 광산은 외부의 충격에 극도로 튼튼해서 이 왕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요. 설령 성 전체가 무너진다고 해도 광산 내부만큼은 안전하지.

국왕도 그런 이유 때문에 민간인들을 광산 안으로 피난시킨 거였다.

그래서 시몬은 거대한 초대형 몬스터 괴공을 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최하단 지역에 박아놓은 다음, 스켈레톤 메이지의 도움까지 받아 시체폭발로 터뜨렸다.

그 결과는-

쿠르르르르르르르르!

참혹했다. 아래의 지반이 무너지면 위도 무너지게 마련.

산사태에 산이 벗겨져 민둥산이 되듯, 모든 건물과 계단 등이 일제히 쓸려 내려가기 시작한다.

칸 왕국 병사들의 비명은 무너지는 건물의 굉음에 묻혔으며, 수많은 병사들이 검은 비가 되어 건물들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

지형 전체가 뿌연 흙먼지로 가득 차올랐고 이내 국왕의 말대로 우뚝 솟은 산맥과 광산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광산의 꼭대기에 지어진 왕궁만 멀쩡했다. 지켜보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와하, 진짜."

딕이 왕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수성 측 스스로 성을 무너뜨린다는 발상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긴 해."

[루리 폴로렌스 탈락.]

[로자리아 리오델 탈락.]

[마크 챈들러 탈락.]

.......

.......

[수성팀 (9/15)]

[공성팀 (3/15)]

이 공격으로 무려 7명의 공성팀 플레이어가 아웃됐다.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 정도면 궤멸이네."

"헥토르도 당했나?"

"살았나 봐. 그래도 두세 명이서 어쩔 수 있는 수준의 피해가 아냐."

시몬과 학생들이 왕궁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그때.

"왕국을 구해줘서 고맙소. 찍찍."

등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아온 왕국의 국왕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칸 왕국을 막으려면 이 방법밖엔......."

"찌익. 아니오. 사과하지 마시오. 가디언이여."

국왕이 시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도시는 얼마든지 다시 세울 수 있소. 중요한 건-"

왕과 학생들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사람이지."

병사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광산에 숨어 있던 수인들이 뛰쳐나와 병사들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다짜고짜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수인들과, 무사한 아이들을 보며 함박미소를 머금은 병사들이 보였다.

"도시가 뭐가 대수겠소? 다시 한번 힘을 합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요."

국왕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국민들을 구해줘서 고맙소, 가디언이여."

* * *

몇 시간이 지나 뿌연 흙먼지가 걷히고, 아온 성 대신 깎아지른 듯한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과 주거지가 씻겨 내려가듯 사라지고 남아 있는 건 산맥과 드문드문 까만 부분이 드러난 흑요석 광산뿐이다.

이 공격으로, 칸 왕국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남은 네크로맨서는 세 명뿐이며, 군대도 더 이상 전투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부상자는 너무 많아 수습하는 게 불가능했다.

엘리사가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내성 밖에 있던 멀쩡한 병사들을 수습해 공격 명령을 내렸지만, 저 높은 산맥을 기어 올라가는 동안 아온 왕국 궁병들의 공세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결국 또 한 번 전멸을 맛보았다.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엘리사가 유령선에 병력을 태우고 상륙작전을 펼치려 했으나 수성 측의 네크로맨서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메이린을 필두로 칠흑화염계 마법이 불바다처럼 쏟아졌고 그녀는 유령선 한 척만 잃은 채 도주했다.

"망할!"

쾅!

헥토르가 엘리사의 멱살을 붙잡아 벽에 밀어붙였다.

그녀가 '윽' 소리를 내며 눈을 찌푸렸다.

"......아파. 명가 도련님이 레이디한테 손찌검해도 돼?"

"개소리 집어치워라. 엘리사 셀렌!!"

헥토르가 살벌하기 그지없는 도끼눈으로 노려보았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찢어발길 듯한 기세였다.

"전부 네가 하자는 대로 움직였다! 심지어 넌 내 뜻에 반하고, 쥴을 시몬에게 붙여서 소모하기까지 했지! 그 결과가 고작 이건가?"

"......할 말이 없네."

엘리사가 한숨을 쉬었다.

이미 이긴 승부라고 생각해서 너무 성급하게 움직였다. 바로 왕궁으로 병력을 올려보내는 게 아니라, 침착하게 주위를 정찰하고 상대의 수가 뭔지 파악한 뒤에 움직여야 했다.

외성과 내성의 북문을 꿰차고 수호석까지 파괴한 그녀의 '한 타이밍 빠른 전술'은 이번 전쟁 내내 유효했으나, 결국 마지막에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했다.

엘리사는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 지휘 실수는 인정이야. 폭력으로 분이 풀린다면, 마음대로 해도 좋아."

헥토르가 빠드득 뿌드득 이를 갈더니 다시 쾅! 하고 그녀를 벽으로 밀친 다음 등을 돌렸다. 엘리사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흐흐."

그녀의 입가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빚은 언젠가 꼭 갚아주겠어. 시몬 폴렌티아."

엘리사는 그 말만 남기고 유령선을 모두 철수시키더니, 스스로 카드를 만져서 게임을 포기했다.

승산이 전무하다면 빨리 게임에서 나가 다른 카드를 찾으러 다니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빌어 처먹을......!"

헥토르가 고개를 들어 산맥 꼭대기의 왕궁을 노려보았다.

* * *

공성전의 엔딩은 화려했다.

여명이 빛나는 지평선 너머로, 아온 왕국을 지원하러 온 동맹국의 기마병들이 칸 왕국 군대의 뒤를 쳤다.

원래라면 이 구원군의 등장이 조금 더 극적이었겠지만, 지금 아온 왕국의 병력들은 모두 왕궁에 들어가 있고, 칸 왕국은 잔당만 남은 상태라 싱겁게 끝났다.

그래도 충분히 멋있었다. 기마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적병을 휩쓰는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온 왕국이 승리했습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아온 왕국은 또 한 번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수성팀이 게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허공이 번쩍이며 살아남은 학생들의 얼굴 앞으로 카드가 생겨났다.

공성전의 보라색 카드였다.

"이겼다!"

비로소 승리를 자각한 모두가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며 카드를 집어 들었다.

"어?"

"왜 그래? 시몬."

보라색 카드에 입을 맞추는 세레머니를 하던 딕이 물었다.

"카드 뒤에 한 장 더 껴 있는 것 같아서......."

화아아아아아악!

시몬의 보라색 카드 뒤로 눈부신 빛이 일어났다. 시몬만 한 장이 더 있었다.

메이린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거 황금색 카드잖아!"

그 말대로였다. 아직 단 한 명도 얻은 적이 없던 황금색 카드가 시몬의 손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공성전에서도 나오는구나!"

"시몬 정도의 전공을 세워야 뜨나 보네."

가장 좋은 카드 조합이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에 황금색 카드까지 포함한 8장이었다.

이제 시몬은 두 장만 다른 색 카드를 모으면 최고 점수에 다다를 수 있게 됐다.

"축하한다, 시몬."

같은 돌연변이 동아리의 피츠제럴드가 다가와 말했다.

"고마워. 너도 엄청나게 활약했는데 나만 받아서 미안하네."

"너 정돈 아니지."

사실 이번 공성전에서는 피츠제럴드의 활약도 빛났다.

비록 시몬과는 겹치는 구간이 없어서 눈에 그렇게 띄지는 않았지만 외성 동문을 거의 혼자서 다 막아내다시피 했고, 북문이 뚫렸을 때 도망치는 아군을 지키며 수천 명의 칸 왕국 병사들을 막아내는 전과를 올렸다.

그 외에도 공성팀 키젠 학생들을 몇 명 쓰러트리는 등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1만 명 이상의 병사와 7명의 네크로맨서 학생을 아웃시킨 시몬의 전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흐흐흐. 일단 카드는 잘 받아 가고~"

딕이 보라색 카드를 품에 소중히 챙기며 고개를 들었다.

"이걸로 끝날 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또 있지 않아요? 엔돌란스 님!"

정말로 딕의 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허공에서 다시 한번 빛무리가 일어났다.

펑펑! 하고 싸구려 폭죽이 터지는 효과음과 함께, 모두의 머리 위에서 날개 달린 선물상자 하늘하늘 내려오고 있었다.

"역시!"

"엔돌란스의 상품이다!"

학생들은 신이 나서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선물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검고 빛나는 광석이 들어 있었다.

"이거 흑요석 광석이네."

"진짜 흑요석이야? 엄청 비싼 거잖아!"

"이걸 위해서 게임에 흑요석 광산이란 설정을 넣었구나!"

학생들은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내가 더 크니, 니 건 작니 하며 서로 흑요석 크기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와우!"

딕이 소리쳤다.

"대박이야! 내 건 진짜 커! 완전 대물!"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미친놈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메이린이 시뻘겋게 얼굴을 물들이며 소리쳤다.

다들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그때.

"......."

시몬만이 뻘쭘하게 빈손으로 서 있었다. 딕이 그에게 다가왔다.

"야, 시몬 넌 얼마나 크냐! 설마 내 것보다 커? 비교해 보자!"

"나, 나는 선물이 없는데?"

"응?"

뒤이어 메이린과 피츠제럴드도 다가왔다.

"왜 시몬만 안 주는 거지?"

"황금색 카드가 선물 대신인가."

"그럴 리가 없......!"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바로 그때, 하늘에 빛나는 여명이 학생들을 일직선으로 비추었다.

눈부신 섬광에 학생들이 팔로 눈을 가리며 물러났다.

"저기 봐!"

여명 속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큰 선물상자가 나타나 시몬의 앞에 다가왔다.

"그거다!"

딕이 흥분하며 날뛰었다.

"대강당에서 엔돌라스가 보여줬던 그 최고 상품이야!"

"맞네! 역시 공성전에 걸려 있었어!"

커다란 상자가 시몬의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은 시몬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의 뚜껑을 붙잡았다.

주위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시몬을 둘러쌌다.

"열어볼까?"

시몬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학생들이 떠나갈 듯한 환호를 내질렀다.

"열어라! 열어라!"

"끌지 말고 빨리 열어! 쫌!"

시몬이 못 이기는 척 웃으며 상자를 오픈했다.

-낄낄낄낄낄낄!!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지팡이 하나가 공중으로 휙 솟구쳤다. 그러고는 마구 왕궁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율 행동 지팡이 '아렐델루'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학 지망이니 내심 데스 피닉스를 원했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리치를 만들고 있는 시몬의 현 상황에서는 더 좋을지도 몰랐다.

-낄낄낄낄!

아렐델루는 왕궁을 쏘다니며 학생들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저주를 발사해서 머리 색을 바꿔 버리거나, 딕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치기도 했다.

"이게!"

딕이 아렐델루를 잡으러 뛰어올랐지만 가볍게 아래로 쏙 빠져나가서 뒤에서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버렸다.

"어우 씨!"

볼품없이 바닥을 구른 딕이 머리를 감쌌다.

"지팡이 따위가 뭐 이래?!"

"바보들아. 뭐 하는 거야?"

메이린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웃었다. 그때 아렐델루가 메이린의 앞으로 휙 다가오더니 그녀의 스커트를 펄럭하고 올렸다.

"@#$!#^#$!!!"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메이린이 격분하며 달려들었다.

"죽여 버리겠어!!"

그녀가 공중으로 마구 얼음을 발사했지만 아렐델루는 요리조리 얄밉게 피해 다녔다.

"흠-"

딕이 진지한 표정으로 턱에 손을 올렸다.

"저거 지팡이 아닐지도 몰라."

꽈드드드득!

바로 뒤통수에 메이린의 얼음을 뒤집어쓴 딕이 바닥에 픽 쓰러졌다.

시몬이 조용히 웃으며 손을 뻗었다.

"돌아와."

다행히 주인은 인식하는 건지, 아렐델루가 샥! 하고 시몬의 손안에 잡혔다. 그리고 메이린에게 두 동강 나기 전에 얼른 아공간에 돌려보냈다.

"포탈이다!"

마침 게임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열렸다. 모두가 유쾌하게 웃으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찌익! 정렬!"

그때 국왕과 병사들, 그리고 모든 주민들이 포탈로 나가려는 학생들 앞에 섰다.

"위대한 가디언들께 인사!"

"아이움 아온!"

모든 병사들이 학생들에게 경례자세를 취했다.

"찌익! 왕국을 구해줘서 고맙소!"

"안녕히 가세요 찍찍!"

함께 싸운 병사들과 주민들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학생들도 뭉클한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었다. 시몬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아렐델루가 있던 빈 상자를 들고 포탈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이 지팡이의 쓰임새도 떠오른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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