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50화
돌연변이 동아리방.
"제군아, 이건 어때? 내 추천이야."
오랜만에 만난 벤야 바닐라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녀는 본인이 직접 엄선한 '리치 재료 리스트'를 들고 시몬 앞에서 열정적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음, 뼈대는 급하지 않으니까 바로 심장부터 보고 싶어요."
"그래?"
시몬의 리치 제작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리치의 뼈대는 저번 방과 후 BMAT에서 얻은 '크리스탈 스켈레톤'으로 구성할 생각이었고, 리치의 지팡이는 자율 행동 지팡이 '아렐델루'로 어떻게든 해볼 심산이었다.
문제는 '심장'이었다. 시몬은 벤야가 추천한 리스트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아데카의 심장」
-등록번호 : LSY-BA-55-70
-정전환 방식.
-칠흑 화염계 특화.
-중량 : 450g
-최대 칠흑 전환량 : 5,000PD
-최대출력 : 500Rcm.
-내구성 : 중.
-신선도 : 상.
.......
중량이니, 출력이니, 전환량이니, 볼 게 많았다. 하지만 시몬에게 중요한 건 가장 아래에 있었다.
-가격 : 8,000골드.
'팔천 골드라니.'
지금 시몬의 전 재산은 괴공의 신체 기관을 판 것까지 합쳐서 3,000골드 정도였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거금이었으나, 리치의 심장을 구매하려면 택도 없었다. 괜히 소환학이 돈 먹는 하마란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왜 그래?"
벤야의 물음에, 시몬이 쭈글해져서 대답했다.
"......제,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비싸서요."
"그래? 원래 이 정도 시장가가 보통인데."
부잣집 손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라이프베슬을 만들 심장이 비싼 이유. 당연히 아무 심장으로나 라이프베슬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려 네크로맨서의 '코어'에 해당되는 물건이니 심장에는 마법적인 효과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라이프베슬이 될 수 있는 심장은 '초호화 아티팩트'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다른 것도 한번 볼게요."
시몬은 벤야가 뽑아온 리스트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자세한 디테일은 잘 모르겠으니 일단은 딱 두 가지만 봤다. 이름과 가격.
「호블의 심장」
-가격 : 12,000골드.
「베리트의 심장」
-가격 : 14,000골드.
'가격이 계속 오르잖아?'
처음에 본 8천 골드짜리 심장이 사실상 최저가였고, 일반적으로는 1만 골드 초반대였다.
그리고 이 리스트 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헤르세바의 심장」
-등록번호 : LVT-CP-10-91
-역전환 방식.
-이능특화.
-중량 : 900g
-최대 칠흑 전환량 : 10,000PD
-최대출력 : 2,000Rcm.
-내구성 : 최상.
-신선도 : 최상.
'갖고 싶다.'
리스트의 샘플그림만 봐도 군침이 줄줄 흘렀다.
물론 네크로맨서로서.
그림을 보니 극도로 고급스러운 포장 위에, 선명한 푸른 광채를 머금고 있는 이 심장은 그냥 아무렇게나 때려 박아도 최강의 리치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지금 당장은 그림의 떡이다. 시몬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말했다.
"선배님. 혹시 단기간에 돈을 벌 방법은 없을까요?"
벤야가 검지를 세우며 즉답했다.
"임무평가!"
......아무리 생각해도 임무평가 의뢰비로는 택도 없을 것 같았다.
당장 가장 저렴한 심장을 사려고 해도 5천 골드는 필요한데, 과연 누가 5천 골드나 주고 학생에게 의뢰를 하려 할까?
몰리 공주의 부름으로 랭거스틴 왕실에 불려갔을 때 받은 금액도 2,000골드였다.
'딕에게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나. 아니면 대출?'
시몬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벤야가 무릎을 짝! 치며 외쳤다.
"좋은 방법이 있어!"
시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뭔데요?"
"지금 펜타모니엄 학술회 기간이잖아!"
펜타모니엄 학술회는 1년에 한 번 있는 거대한 행사다.
간단히 말해, 대륙의 내로라하는 네크로맨서들이 모여 연구성과나 논문을 발표하고,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시몬이 주시하고 있던 발터 교수도 이쪽 학술회에 참가하느라 잠시 로크섬 밖으로 나갔었다.
"네크로맨서로서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논문을 작성해 평가받고 펜타모니엄에 등록할 수 있어. 그리고 다른 네크로맨서들에게 로열티를 받거나 파는 게 가능하지! 안 그래도 이제 곧 키젠에서도 학생들을 보낼 거거든!"
"학술회에서 제 아이디어를 판다는 건가요?"
"그럼! 멋진 아이디어라면 학생이든 동네 꼬맹이든 상관 안 해."
시몬은 혹하는 기분을 느꼈다.
최근 리치를 연구하면서 이런저런 오리지널 기술들을 많이 떠올렸다. 물론 이 아이디어를 프로 네크로맨서들이 사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배님도 학술회에 가시나요?"
"당연하지! 난 매년 가고 있어."
그녀가 말했다.
"작년 1학년 때도 키젠 1학년 소환학 대표로 갔었는데, 스켈레톤 나이트의 간소화 수식으로 그 자리에서 4천 골드쯤 벌었어."
"와!"
4천 골드란 말에 시몬의 입이 딱 벌어졌다.
"지금도 쏠쏠하게 돈이 들어오고 있고. 다 합치면 6천 골드쯤 되려나. 어때?"
시몬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시몬이 현재 당면한 최대 목표는 리치 제작.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 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학술회에 참여할 수 있죠?"
* * *
다음 날 아침.
A반 학생들은 들뜬 표정으로 '초급 흑마법' 강의실에 모였다.
"오랜만에 제인 교수님을 뵙겠네!"
"그러게."
최근 제인이 이런저런 외부 출장에 불려가는 바람에, A반 학생들은 한 달 넘게 담당교수의 얼굴도 못 보고 있었다.
"교수님 오신다!"
A반 학생들이 빠릿빠릿하게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또각또각 복도를 청명하게 울리는 굽 소리와 함께, 단발의 여인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제인 교수님!'
시몬이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교수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왕국을 대신해서 감사드려요!"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꽃다발을 건넸다.
이들 모두가 칼로스 왕국 출신의 학생들이었는데, 최근 이슈였던 7급 초대형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는 '거신의 숲' 사태를 해결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다.
제인은 학생들의 꽃다발을 받고는 강단으로 돌아와 학생들의 앞에 섰다.
"A반."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이 얼굴을 활짝 펴며 '네!!'하고 대답했다.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어느새 제인은 손에 쥔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직도 BMAT 카드 5장을 확보하지 못한 학생들이 10명이나 있다니. 이런 결과는 실망스럽습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갑다는 소리는 없었다.
"맹독학 수행평가는 왜 이렇게 엉망입니까. 다들 B반에 밀리는 걸 수치로 알아야 합니다."
역시나 제인다운 폭풍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간 못다 한 잔소리를 퍼붓는 그녀를 보며, 학생들은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그렇게 한바탕 학생들의 멘탈을 탈탈 턴 후에야 제인은 새로운 공지사항을 발표했다.
"여러분도 최근 이슈인 펜타모니엄 학술회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겁니다."
물론. 하고 그녀가 운을 뗐다.
"올해도 키젠에서는 학생들을 논문 발표회에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주제는 자유, 1학년은 과목별로 두 명이 갈 겁니다. 혹시 지원자 있습니까?"
그 말에 강의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키젠 대표로 펜타모니엄에 가는 건 가문의 영광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본인이 쓴 논문을 관중과 권위자들 앞에서 발표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다.
물론 각종 수행평가 준비로 바쁘기도 했다.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는 그때.
처억!
기다렸다는 듯이 손 하나가 번쩍 올라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시몬 폴렌티아. 학술회에 참가할 건가요?"
"예!"
정말로 벤야의 말대로 됐기에, 시몬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수행평가, 기말고사, 졸업시험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면 학교는 굳이 참여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외부일정보다 학교에서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물론 학교일정 준비도 빠짐없이 해놓겠습니다!"
제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트는 소환학 관련 논문 발표면 될까요?"
"넵!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제인이 직접 깃펜에 체크를 한 뒤 조교에게 서류를 넘겼다.
"와! 진짜 거기 가려고?"
뒷자리의 딕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도 시몬을 돌아보았다.
"대단해요 시몬! 1학년인데 벌써 학술회에서 논문 발표라니!"
"학사일정도 바쁜데 괜찮은 거야?"
"괜찮아."
시몬이 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생각해 둔 아이디어가 있어서 그냥 쓰기만 하면 돼."
그냥 논문을 발표하고 돈을 받아오면 된다. 주말 포함 2박 3일 일정이니 부담도 없다.
잃을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더 많은 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정으로 심장까지 구하면 끝! 어떻게든 2학년 전까지 리치를 만들겠어!'
목표를 향해 쭉쭉 달려 나가는 느낌은 언제나 기분 좋았다.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시몬은 학술회에 발표할 논문 준비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이미 한번 써본 기술이었고, 완성도도 높았다.
그저 모든 걸 글로 옮겨 적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제 마지막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논문은 반드시 교과목 교수의 첨삭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교수에게 수준 미달판정을 받을 경우, 학술회에 가는 건 불가능해진다.
오전 수업을 마친 시몬은 아론의 연구실을 향해 걷고 있었다.
'참, 오늘 한 명이 더 오겠네.'
1학년 소환학 논문 발표자는 최소 두 명이다. 아마 2박 3일 학술회 내내 같이 다니게 될 것 같았다.
'토토와 피츠제럴드는 아니라고 했는데.'
과연 누가 올까. 그쪽도 첨삭을 받으러 올 테니 곧 만날 수 있으리라.
잠시 후, 시몬은 익숙해진 아론의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손등으로 가볍게 노크했다.
"아론 교수님.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문 너머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시몬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긴 머리에 스커트 차림인 걸 보니 여학생이었다.
"딱 맞춰 왔군. 들어와라."
시몬은 아론의 목소리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뒷짐을 진 채 아름다운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늘씬한 키의 소녀.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미소 지었다.
"어머, 여기서 만나네요~ 시몬!"
다름아닌 세르네 아인다르크였다.
시몬의 얼굴에 놀람과 의아가 뒤섞였다.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왜 여기 있긴요. 당연히-"
그녀가 본인 입으로 '짠!'하고 말하며 손에 든 논문을 들어 보였다.
"소.환.학 지망생으로서, 학술회에 논문을 발표하러 가는 거죠."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귀엽게 찡긋했다.
"우연이네요?"
아니,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이 아닌 것 같은데.
시몬은 애써 딱딱한 미소를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서로 아는 사이인가? 잘됐군."
아론이 그렇게 말하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한 명 더 올 예정이다."
"네? 세 명이나 같이 가는 거예요?"
"그래, 그렇게 됐다."
그렇게 대답하는 아론은 어쩐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때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마침 왔군. 들어와라."
달칵.
문이 열리며 세 번째 참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