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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51화 (35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51화

"마침 왔군. 들어와라."

달칵!

문이 열리며 세 번째 참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이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잘 알다 못해 매일 보는 사람이었다.

회색 머리카락에 한쪽 눈에 흉터가 있는 이 남학생.

"카쟌!!"

시몬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분명히 학술회인데, 그것도 소환학 논문 발표회 참여 일정인데, 같이 가는 사람이 세르네와 카쟌이라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카쟌은 별 내색하지 않았다. 아론에게 가볍게 묵례한 다음, 시몬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옆에서 세르네가 반달 눈으로 웃으며 우아하게 손을 흔들었지만 그건 또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녀가 입술을 삐쭉이며 토라진 표정을 지었지만 한 번 더 무시했다.

"피차 아는 사이인 것 같으니 소개는 필요 없겠군. 앉아라."

세 학생이 소파에 나란히 앉자 아론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논문 첨삭을 시작하겠다."

여기서 아론이 논문을 보고 미달 판정을 내리면 학술회에 갈 수 없게 된다. 시몬은 갑자기 긴장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아론은 제일 먼저 세르네의 논문부터 살폈다.

팔락.

팔락.

서류가 한 장 한 장 빠른 속도로 넘어간다.

다른 누구도 아닌 키젠 교수가 논문을 검토하고 있으니 긴장할 만도 한데, 세르네는 태연하게 미소 짓고만 있었다.

확실히, 시몬은 지금까지 세르네가 누군가를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걸 못 봤다. 키젠 교수도 그렇고, 심지어 성녀가 눈앞에 있을 때도 그랬다.

그저 내려다보았다. 세상 만물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것처럼.

스으.

마침내 세르네의 논문을 다 읽은 아론이 그것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대체 무슨 소릴 써놨는지 모르겠군."

시몬이 입을 벌렸다. 소환학 교수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아론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학술회의 미치광이 괴짜 네크로맨서들에게는 먹힐 만한 내용이었다. 수고했다."

"이 정돈 기본이죠!"

세르네가 잘난 척하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흩날리게 했다.

이제 다음 차례. 아론은 카쟌의 논문을 확인했다.

시몬은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카쟌을 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카쟌!'

이 사람이 제일 미스테리였다. 그는 전형적인 마투 올인 스타일이고, 마투 외에 전 과목이 낙제 수준이다. 본인 입으로 소환학 중간고사 20점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그런 사람이 소환학 논문을 썼다고?

"......."

그리고 카쟌의 논문을 읽고 있던 아론은 첫 장부터 막히고 있었다. 그는 심각하게 표정을 굳힌 채 어떤 부분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카쟌 에드발트."

아론이 차가운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넌 대체 뭐 하는 놈이냐."

카쟌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개 유급생입니다."

분위기가 묘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부딪히는 가운데, 중간에 낀 시몬만 안절부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세르네는 벌써 심심해진 듯 턱을 괴고 손가락을 슥슥 다듬고 있었다.

아론은 다시 한번 논문 첫 페이지를 보았다. 내용은 형편없었으나, 첫 페이지 귀퉁이에 엉망진창인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얘는 그냥 통과시켜 줘!

- 네프티스 -

그 위에는 네프티스가 손수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꽃이나 나무, 구름 등의 유아틱한 낙서도 있었다.

아론은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문지르다가 이내 첫 페이지만 읽은 논문을 내려놓았다.

"합격이다."

'이게 합격?'

시몬이 입을 딱 벌리며 아론을 보았다. 그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마지막 시몬의 논문을 집었다.

'학술회에서 내 욕만 더럽게 먹겠군. 그나마 이 녀석이 내 썩은 눈을 치유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곤 논문의 첫 장을 펼쳤다.

'......!'

처음으로 아론의 표정에 놀라움이 일었다. 정신을 차리니 그는 순식간에 5페이지까지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시몬을 휙 바라보다가 논문을 읽고, 또 휙 바라보다가 읽기를 반복했다.

'왜, 왜 그러시지?'

시몬도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무릎 위에 공손하게 올려둔 두 손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논문에서 몇몇 걸리던 부분들이 바늘처럼 변해 가슴을 쿡쿡 찌르는 기분이었다.

'......하아, 지금이라도 몇 개 고치고 싶다. 처음 쓰는 논문이니까 그냥 무난하게 할걸.'

어떻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침내 아론은 시몬의 논문을 다 읽었다.

그가 조용히 논문을 내려놓고는 남아 있는 잔향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글이 달다.'

앞장에선 파격적인 전개로 시선을 잡아끌고, 뒷장에서는 그 파격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다. 네크로맨서의 왕성한 호기심을 듬뿍 채워주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아직 뇌가 굳어지지 않은 학생의 순수한 시각.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네크로맨서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짚어서 창의적으로 바꿔놓은 포인트가 절묘했다.

아론이 눈을 뜨고 시몬을 응시했다.

"시몬 폴렌티아."

"네, 넵. 교수님!"

"학술회와는 별개로."

그가 시몬의 논문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이 논문을 소환학의 마지막 수행평가에 제출해도 좋다."

"!"

그 말에 시몬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소환학의 마지막 수행평가는 무려 비율 40%짜리 '마법형 언데드 창작 및 논문'이다.

그 중요한 과제를 이 논문대로만 해도 넘어가 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아론은 만약 그렇게만 해도 시몬에게 A+를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논문의 내용은 우수했으니까.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시몬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까 잔뜩 긴장하는 소년의 모습은 어디 가고, 심지가 꽉 박힌 눈동자가 아론을 응시했다.

"제가 한 말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저는 마지막 수행평가로 반드시 리치를 제출할 겁니다."

"......."

저 터질 듯한 젊음과 열정.

몇 번을 봐도 시몬은 과거의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른이 된 아론은 어른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정말로 리치를 제작해서 제출한다고 한들, 리치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이 논문보다 점수가 떨어질 수도 있다."

시몬은 입을 닫고 그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것으로 대답은 충분했다.

"......좋다. 논문은 합격이다. 여러모로 이번 학술회는 떠들썩해지겠군."

뒤이어 아론은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었다.

워낙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이기에, 세 사람은 반드시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당부. 그리고 다른 네크로맨서들에게 책잡힐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이야기 등이었다.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학술회는 너희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다. 많은 걸 배워와라. 이상."

* * *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시몬은 세르네, 카쟌과 함께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학술회가 열리는 펜타모니엄에 도착했다.

"와아아아......!"

처음 이 도시를 본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유리의 도시'였다.

특히 유리처럼 내부가 비치는 광석으로 가공된, 수십 층 높이의 초대형 건축물들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솟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이 건물을 상아탑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유리탑'이라 부르는데, 하나의 탑이 각각 하나의 흑마법 분야를 담당한다. 이 건물은 총 7개가 있다.

'사람들도 엄청 많다.'

길가에 멋들어진 정장을 차려입은 네크로맨서들이 보였다.

코어를 개방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많았는데, 이 학술회 기간 동안 일반인과 네크로맨서 비율이 3:7 정도다.

학술회 기간 동안은 일반인들에게 핵심 구역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영역을 개방한다.

꼭 본인이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도, 현대 산업은 칠흑과 흑마법 위주로 돌아간다. 트렌드를 파악하고 돈 냄새를 맡기 위해서라도 이 학술회는 도움이 됐다.

"오랜만에 깝깝한 로크섬 밖에 나와서 기분 좋네요."

세르네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이마 위로 올리며 미소 지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이 자연히 세르네에게로 향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세르네 쪽을 힐긋거렸다. 곳곳에서 예쁘다느니 키젠 교복이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그냥 키젠 교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이 엄청나게 끌리는 게 느껴진다. 그만큼 외부에서 키젠이란 브랜드 네이밍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세르네는 대수롭지 않게 콧방귀를 뀌고는 거울을 꺼냈다. 카쟌은 시간을 한번 확인한 후 말했다.

"내가 통솔자 역할을 맡기로 했으니 안내하겠다."

"잠깐만요."

시몬이 말 잘했다는 듯 카쟌을 보았다.

"카쟌은 여기 왜 온 거예요? 저한테 한 마디도 안 해주셨잖아요."

"임무다."

카쟌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가 자주 쓰는 마법의 단어인 '임무'. 더 물어보면 다친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무슨 임무요?"

이제 카쟌과 친해진 시몬은 별생각 없었다. 카쟌이 한숨을 한번 쉬고는 대답했다.

"경호 임무다."

그러곤 슬쩍 세르네 쪽으로도 시선을 한번 던졌다.

"그리고 감시 임무도."

"?"

세르네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지만, 카쟌은 무시했다.

"이렇게 폐쇄적이고 사람도 많은 곳에서 경호가 필요할까요?"

시몬의 물음에, 카쟌이 눈가의 상처를 슥슥 긁었다.

"넌 로크섬 내에서도 군단장 매그너스에게 습격당했다, 시몬. 최근에야 까마귀들의 추적으로 매그너스도 몸을 사리고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네. 알겠어요. 조심......."

"아! 그러고 보니!"

세르네가 중간에 휙 끼어들어 시몬과 카쟌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 조합! 우리 또 모였네요! 힘을 숨긴 성녀 킬러 삼총사!"

시몬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이밍이 구려.'

"떨어져라."

카쟌도 오만상을 쓰며 말했다.

결국 세르네가 삐친 표정으로 팔을 풀자, 카쟌이 손짓했다.

"따라와라."

그렇게 카쟌을 따라 도착한 곳은 소환학 분야를 담당하는 유리탑 1층이었다. 설명에 따르면 이 건물 전체가 소환학 관련 시설이라는 것 같았다.

'오!'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표지에는 이 건물에서 일어나는 행사 일정표들이 가득했다. 신 소환수 콘테스트에, 끝장토론이나 유명인사 연설 프로그램도 있었다.

'멋지다. 이게 학술회구나!'

소환학에 관심이 많은 시몬의 입장에서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눈이 좌우로 팽팽 돌아갔다.

'전부 다 가보고 싶어! 몸이 열 개였으면 좋겠다.'

시몬이 일정을 죽 살펴보고 있는데, 자신의 차례도 발견했다.

<네크로맨서 학생 논문 발표회>

-키젠, 알란드, 시에라, 모이란.

키젠 말고도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온 모양이었다.

오늘은 2학년 학생들이 발표를 할 차례였고, 바로 내일이 1학년 발표회였다.

'기대된다!'

시몬이 일정을 보며 두근거리고 있는 한편, 세르네와 카쟌은 싸우고 있었다.

"5분이면 된다니까요?"

"같이 가지."

"어머나, 어디까지 따라오실 생각일까? 엉큼한 구석도 있으시네."

"어디까지 갈지는 내가 판단한다."

결국 세르네와 카쟌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시몬은 근처의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머릿속엔 뭐부터 보러 갈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 이게 누구야."

그런데 하이톤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고귀하신 키젠 학생도 오셨네."

"엘리트 중의 엘리트잖아."

초록색 체크무늬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둘과 여학생 한 명이 시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설마.'

다른 네크로맨서 학교 학생들과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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