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52화
"너도 1학년이지? 반갑다."
초록색 체크무늬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난 알란드 소환학 전공의 벤즈라고 해."
3대 네크로맨서 학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네크로맨서 학교이자 명문 중의 명문인 '키젠'이 최정상에 있다면, 그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받는 3대 네크로맨서 공립 학교도 있었다.
알란드, 시에라, 모이란.
키젠에서 1학년 입학시험을 치르면, 그 뒤에 이 세 학교가 키젠의 시험 내용을 참조하고 트렌드와 기조를 파악한 다음 앞다투어 신입생 입학시험을 공지한다.
다소 키젠의 후광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도 상당한 명문가의 귀족들이 입학하는 엘리트 학교였다.
'알란드 학생은 처음 보네.'
저쪽에서 먼저 인사했으니, 시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이라고 해. 나도 소환학 지망생이야."
"지망생?"
벤즈가 뒤에 서 있는 두 친구를 돌아보았다. 그러곤 다 함께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미안."
벤즈가 끌끌거리며 말했다.
"지망생이라는 어감이 좀 웃겨서."
"그럼 우리처럼 전공자는 아닌 건가?"
"전공생이면 전공생이지. 지망생은 또 뭐야."
키젠은 2학년부터 전공을 선택하지만, 알란드는 입학과 동시에 전공을 선택한다.
단순히 교과 시스템의 차이로 꼬투리를 잡다니.
시몬은 화가 난다기보단 약간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피어.'
[오냐.]
'원래 다른 학교 학생들끼리 만나면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는 거예요?'
[그냥 저것들이 병신이다.]
그때 벤즈가 시몬에게 다가왔다.
"그쪽도 논문 발표하러 왔지? 잘 부탁해, 지망생!"
그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 제의를 못 본 척하는 것도 이상해서, 시몬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꾸욱.
그러자 벤즈가 손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참.'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유치하기도 하고, 딱히 맞불을 놓기도 뭐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벤즈는 전력을 다해 힘을 주고 있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시몬은 슬쩍 고개를 돌려 다른 두 학생을 보았다. 이 둘은 어느새 시몬의 차림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음, 키젠 교복도 예쁘긴 하네."
"여학생 교복이 더 대박이래."
"근데 너무 새까맣고 수트 느낌이라 촌스러워. 스쿨룩의 멋이 없잖아."
이쪽은 이쪽대로 교복 품평회가 열렸다.
시몬도 알란드 학생들의 교복을 보았다.
전체적으로 색상만 녹색 계통이지, 포인트를 준 부분이나 로고의 위치 등이 키젠을 따라 한 느낌이 강하게 났다.
교복 바지와 치마가 체크무늬인 게 투머치한 느낌이지만, 보다 보니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시몬이 빙긋 웃었다.
"너희들 교복도 멋있어."
"!"
그러자 두 사람이 움찔하더니,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와! 봤지 봤어? 우리 교복 돌려 까는 거?"
"이런 식으로 키젠 짝퉁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는 거라고!"
'?'
시몬은 순수하게 칭찬했을 뿐이지만, 알란드 학생들은 열등감부터 내고 있었다.
"끄윽!"
그리고 벤즈는 아직도 낑낑거리며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이번엔 시몬이 역으로 손에 살짝 힘을 가해보았다.
우드득.
"으아아악!"
벤즈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알란드 학생들이 기겁하며 저주를 쏠 것처럼 검지를 세웠다.
"벤즈를 풀어줘!"
"아."
시몬이 손을 놓자, 벤즈가 눈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시몬을 노려보았다.
"너! 감히 내 손을......!"
"또 또 시작이다."
뒤에서 제3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악수하다가 역으로 털리는 패턴, 질리지도 않냐?"
"오호호호!"
알란드 학생을 신랄하게 까면서 등장한 학생들은 레드 컬러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다홍색 재킷에, 금색 단추가 여섯 개나 달린 제복 형태의 복장. 목 카라는 길어서 입을 살짝 가리고 있다.
교복이라기보단 이쪽은 격식 있는 제복에 가까워서, 조금은 활동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들이 등장하자 알란드 학생들이 이를 갈았다.
"시에라의 폐기물들......!"
"응, 다음 메뚜기 교복."
두 학교의 사이는 무척이나 험악한 듯했다.
이상한 별명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하는 모습에, 시몬은 슬쩍 뒤로 빠졌다.
"쟤들 부들부들하는 거 봐. 아직 '시알전' 패배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나 본데?"
그렇게 말한 시에라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깔깔 웃어댔다. 알란드의 벤즈의 미간이 꿈틀했다.
"겨우 5점 차이 가지고 생색이냐? 애초에 '알시전'에서 니들이 심판 매수만 안 했으면......!"
"승패에 승복하지 않고 씨알도 안 먹힐 논란만 들먹이는 것처럼 추한 건 없어. 그리고 대회 이름은 똑바로 말하지? 시알전이다."
"알시전이야!"
시알전이든 알시전이든 시몬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두 학교가 싸우는 틈을 타서 얼른 물러나려는데.
"진정해. 우리끼리 왜 싸우는 거야?"
이번에는 파란색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들은 모이란의 학생들이었다.
다른 네크로맨서 학교의 교복들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이었는데, 파란색 바탕에 장식도 많았다. 허리춤에는 벨트를 매고, 어깨에는 견장을 찼다.
"잊지 마. 우리들의 목적은 공공의 적인 키젠 타도야."
그 말에 다른 두 학교의 시선도 시몬에게로 향했다.
"사실 죽음의 마녀랑 키젠 본부가 대단한 거지. 학교는 거품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잖아? 이번 학술회에서 우리가 박살을 내면, 그 명성도 스크래치가 나겠지."
다른 학교 학생들도 동의한다는 듯 열을 올렸다.
"맞아, 키젠은 너무 고평가됐어!"
"같은 네크로맨서인데 맨날 교복 색깔로 사람 깔보고."
"이번에 자기들끼리 BMAT인가 뭔가 한다고 교류전도 일방적으로 취소했잖아."
"어, 그 시험 때문에 시알전 이슈도 엄청 약해졌어."
"알시전이야!"
"사실 니네들 성녀 습격당한 거 다 뻥이지?"
"진짜 성녀 봤어?"
웅성 웅성 웅성 웅성!
시몬은 머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제발 한 명씩 말해."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세 학교의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피곤하게 서로를 깎아내릴 필요 있어? 다들 자기 학교에 만족하면 됐지 않아?"
"다, 당연하지!"
"우리 학교는 정말 좋아! 키젠인 너희가 깎아내리는 게 싫을 뿐이라고!"
알란드에 다닌다는 게 자랑스럽다느니, 모이란이 졸업 후 취업률은 최고라느니, 그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그럼-"
시몬이 입을 열었다.
"키젠에 전과할 기회가 생겨도, 너흰 계속 원래 학교에 남겠네?"
"......."
"......."
순식간에.
무거운 정적이 주위를 짓눌렀다.
어색한 바람 한 줄기가 학생들을 훑고 지나갔다.
"이, 이......!"
"늘 이런 식이니까 키젠이 싫다는 거야!"
아까의 그 어색한 침묵이 부끄러웠는지 다들 뒤늦게 얼굴을 붉히며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 누구도 키젠 편입 기회가 와도 모교에 남겠다고 굳이 말하는 학생은 없었다.
[크하하하하!]
피어가 시몬의 머릿속에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속이 다 시원하군! 한 방 잘 먹였다 소년!!]
'아뇨 저는 그냥.......'
"어머나~"
바로 그때.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시나요?"
또각 또각.
찬란한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세르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몬은 그녀의 등장이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
그녀는 등장만으로 모든 학생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인간 그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아우라.
숨이 막힐 듯한 드높은 품격.
그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아니, 동등하게 여길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까.
세르네를 알고 모르고는 상관없었다. 모든 학생들이 그녀에게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 왜 갑자기 입 다물고 그래요? 키젠 욕하는 거 계속해 봐요."
그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가장 앞에 보이는 알란드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시몬과 악수했던 벤즈의 턱을 검지 손가락으로 올렸다.
"자, 말해보아요."
"그. 그그그......!"
그녀의 빨려 들어갈 듯한 눈동자가 가까워지자 벤즈의 눈에 빠르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잘못했......!"
샤락.
그때 벤즈의 목덜미에 하얀 깃털이 내려앉았다.
"키젠 재수 없다악!"
벤즈가 꽤액 소리 질렀다.
"교류전 하자고 우리 학교가 그렇게 졸라도 개무시해! 학교 간 약속이었는데 맨날 일방적으로 캔슬하고! 니들이 그렇게 잘났냐!"
"응! 좋아. 바로 그거예요!"
세르네가 다음 학생에게 넘어갔다.
"어른들은 교복만 보면 키젠이냐고 묻고, 네크로맨서 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맨날 키젠이란 이름부터 나와. 자존감도 떨어지고 지긋지긋해."
"좋아요! 아쉬운 마음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거예요!"
"일단 애들이 싸가지가 없어. 지들이 엘리트인 건 인정하는데, 왜 자꾸 우리 교복을 보면 비웃으면서 지나가?"
"맞아 맞아! 나도 키젠이지만 그런 거 인정!"
그렇게 깃털로 강제로 키젠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게 하는 세르네를 보며, 시몬은 쓰게 웃었다.
'......넌 대체 누구 편이야?'
물론 세르네의 의도는 따로 있었다.
'시몬! 듣고 있죠? 키젠은 이토록 나쁜 곳이에요!'
세르네는 그냥 다른 수작 없이, 순수한 의미에서 키젠 욕을 시키는 거였다.
로레인과 시몬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세르네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세르네는 키젠에 대한 험담을 듣는 게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우리한테 왜 이러는데?!'
다른 학교 학생들은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같은 험담이라도 자기 의지로 말하는 것과, 남들 앞에서 강제로 말하게 되는 건 완전히 달랐다.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지, 진짜 전과 못 하는 거 아냐?'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3대 네크로맨서 학생들의 최고의 테크트리가 '키젠 편입'이라는 사실을.
"자- 어서."
그런데 저 키젠 교복을 입은 미친 여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본인의 모교 욕을 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학생들은 그녀의 명령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더 빡세게 험담을 늘어놓으라구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학생들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듯 눈을 굴렸지만.
"......."
"......."
이런 난리가 벌어졌음에도 지나가던 어른들은 누구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막 시끄럽게 구는데 이상할 정도로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모두가 뒤늦게 소름이 끼쳤다.
이 공간은 벌써 세르네가 지배하고 있다.
"그럼 다음!"
세르네가 알란드와 시에라를 지나 모이란에 넘어왔다.
"맨날 키젠에 비교당하는 모이란도 기대되네요! 당신은 키젠을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가 사근사근 목소리로 말하며 살짝 까치발을 세우고는 모이란의 남학생의 목덜미에 깃털을 붙였다.
"......."
처음에 타도 키젠을 외쳤던 바로 그 학생이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목덜미에 있는 깃털을 툭 뽑아 바닥에 떨어뜨렸다.
"!"
처음으로 세르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거 안 해도, 내 의지대로 말하겠어."
그가 세르네를 지나 시몬을 노려보았다.
"난 내 왕국에 있는 우리 학교, 모이란을 사랑해. 키젠에 편입할 기회가 있어도 나는 날 선택해 준 모교에 계속 남을 생각이야. 그리고."
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키젠은 지나치게 거품이 껴 있다는 발언도 취소할 생각 없어. 이번 학술회에서 제대로 차이를 보여줄 생각이야."
'오오!'
몇몇 학생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틱틱 견제하고 뒷담화하는 것보단, 이렇게 앞에 나와서 시원하게 경쟁하자고 선언하는 쪽이 훨씬 호감이었다.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도 이번 학술회에서 최선을 다할......."
"맘에 안 들어."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푹.
무수한 깃털이 꽂히는 소리와 함께 그가 털썩 세르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르네가 토라진 표정으로 입술을 삐쭉였다.
"왜 내 의사에 반한 채로 지껄이는 거예요?"
그녀의 뒤틀린 입술에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인정한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내 앞에선 말 잘 듣는 인형이어야 해요."
세르네가 발을 내밀었다.
바닥에 엎드린 그가 구두를 핥으려는 것처럼 고개를 쭉 내밀었다. 정신력으로 저항하려는 건지 어깨를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만해, 세르네."
시몬이 말했다.
"!"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 같던 세르네 아인다르크가, 시몬의 한마디에 표정이 싹 바뀌더니 봄눈 녹아내리듯 활짝 미소 지어 보였다.
"에이, 장난이에요 장난~"
그녀가 애교스럽게 눈을 찡긋하고 손뼉을 치자, 그제야 모든 학생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뛰는 듯한 걸음으로 달려와 시몬의 옆에 꼭 달라붙었다.
"어때요? 이제 키젠이 좀 싫어졌어요?"
"......저건 그냥 네가 강제로 말하게 시킨 것뿐이잖아."
"무슨 말씀을! 전 그냥 솔직하게 되도록 감정을 부추겼을 뿐이에요. 제가 억지로 지어낸 건 아니라구요."
그녀가 또 사고 칠까 봐, 시몬은 얼른 세르네를 데리고 이동했다.
기둥에 벽을 기대어 상황을 지켜보던 카쟌도 한숨을 푹 쉬며 옆에 붙었다.
"이럴 줄 알았지. 다른 학교 학생들을 건드리지 마라. 경고다."
"헤헤."
세 사람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키젠은 저런 거물들도 다니는구나."
"그, 급이 다르긴 하네."
"근데 저 여자 누구야?"
"빨간 머리였지?"
"흑발 아냐?"
"애초에 여자이긴 했나? 남자 아냐?"
그들은 벌써 세르네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