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53화
펜타모니엄.
40층.
깨끗한 접객실에서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의외로군요.]
먼저 입을 연 쪽은 집사복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그렇게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들키지 않고, 까마귀에 버티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남자는 사실 인간이 아니었다.
매그너스의 에이션트 언데드. 통칭 '좀비집사'였다.
"의외로군."
그리고 맞은편, '까마귀'의 상징인 깃털 망토를 두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매그너스 군단이 따분한 학술회에도 관심이 있었나?"
이 남자의 이름은 에반겔로스 알포니아. '바늘'이라는 이명을 가진 네크로맨서였다.
[우리 군단이 관심 있는 건 시몬 폴렌티아뿐입니다. 그보다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완벽해."
에반겔로스가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길게 기대며 말했다.
"장치에 손을 써놨고, 이제는 나도 말릴 수 없어. 곧 펜타모니엄 학술회는 생지옥으로 변한다."
[기대되는군요.]
"그래. 그건 그렇고 매그너스 경 말인데."
에반겔로스가 이마를 슥슥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닌가? 특히 로크섬에서 학생을 습격한 거 말이야. 내가 뒷수습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래서 이번엔 군단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쓰기로 했잖습니까.]
좀비집사가 말을 받았다.
[자연형 언데드 투입. 이것도 간신히 군단장님을 설득한 결과입니다.]
"알만하군."
[브리핑이나 계속해 주시죠. 계획에 방해가 될 만한 강자들은 누구누구 있습니까?]
"여긴 펜타모니엄이야. 강자들이야 많지. 물론 시몬 폴렌티아를 회수하는 데 가장 큰 방해꾼은-"
스으.
그가 품에서 초상화를 꺼냈다.
"카쟌 에드발트, 그리고 세르네 아인다르크. 이 둘은 시몬 폴렌티아와 계속 붙어 다니겠지."
[주의하겠습니다.]
"특히 세르네라는 인간과는 엮이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야. 그리고 한 명 더."
에반겔로스가 턱을 쓸었다.
"진짜 괴물 같은 놈이 하나 있는데-"
* * *
"이쪽이다."
시몬과 세르네는 카쟌의 안내에 따라 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또 어딜 가는 건데요."
시몬의 옆에 착 달라붙은 세르네는 무언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카쟌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빨리 시몬이랑 데이트를 즐기러 가야 한다구요!"
"......세르네."
시몬이 좀 떨어지라며 눈치를 주었지만, 그녀는 능글맞은 여우처럼 눈썹을 들썩였다.
"외부 행사 때는 연인 행세하는 게 우리 루틴이잖아요! 벌써 까먹었어요?"
"......무슨 루틴?"
"아이, 참. 펜타모니엄에는 상아탑의 어르신들도 많이 왔어요! 우리가 계속 잘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여야 당신을 지지하는 제가 상아탑 내에서 발언권도 커진다구요!"
이번에도 그 논리로 달라붙는 건가. 하지만 시몬도 논리적으로 지적했다.
"근데 여긴 아무도 없잖아."
그녀가 생긋 눈웃음을 치며 시몬의 팔에 뺨을 비볐다.
"방심은 나쁜 거예요~"
"......."
"애정 행각은 거기까지. 도착했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문이었다.
"여기 누가 있어요?"
시몬이 물었다. 카쟌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키젠의 학생회장이 너희들과 만나고 싶다고 한다."
"!"
그제야 두 사람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아~ 그런 거라면야."
세르네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카쟌이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학생회장이기 전에 3학년 선배인 만큼 예를 갖추도록. 그리고 세르네. 괜히 귀찮다고 깃털을 썼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알아요~ 알아. 저도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다구요."
세르네가 혀를 달싹였다.
"그보다, 소문의 그 남자가 과연 어떤 인간일지 궁금했는데 잘됐어요."
그녀의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이었다. 3학년은 졸업을 앞둔 세대인 만큼 상아탑에서 스카우트할 여지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경고하마. 이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문 앞에 다가간 카쟌이 목소리가 진지하게 내려앉았다.
"소리를 지르지 마라."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쟌이 문을 열었다.
"카쟌입니다. 회장."
꾸르르르륵.
꾸륵.
방 안에 물이 차 있었다.
빛이 들지 않는 심해처럼 검은 물.
그것은 문을 열어도 흘러내리지 않고 방 안에만 고여 있었다. 카쟌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물은 아니겠지?'
시몬은 긴가민가했지만, 카쟌처럼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며 그의 뒤를 따랐다.
꼬르르르륵.
방 안에 들어가는 순간 깨달았다.
이건 진짜 물이다.
부력 때문에 몸이 두둥실 떠오르려 하자, 두 발에 칠흑을 집중해서 균형을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소파나 탁자 등 온갖 가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그 사이에는 평생 본 적이 없는 이빨 달린 물고기 떼가 헤엄치며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있었다.
꼬르르르르륵!
옆에는 몬스터 같은 대형 상어가 지나다녔다.
그것이 시몬을 보고 이를 드러내자,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간신히 입을 틀어막으며 참았다.
'......!'
그리고 이 물속 한가운데, 가장 어둡고 깊은 공간으로 보이는 곳에.
뭔가 거대한 게 앉아 있었다.
그것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턱을 괴고 있었다. 두 눈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덩치는 헥토르보다 컸으며, 거인혼혈인 샤텔보다는 작았다. 아마도 인간 남성이 클 수 있는 가장 큰 사이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바로.'
시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전교 최강의 네크로맨서.'
카쟌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헤엄을 치다가 방의 조명 스위치를 찾아서 눌렀다.
팟!
불이 켜지며 환하게 밝아지자. 방에 가득 차 있던 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몬은 갑작스러운 중력의 변화에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쿠웅! 쿵! 쿵!
소파와 테이블 등의 가구들도 다시 원래 자리대로 내려왔다.
"후읍. 하아."
시몬이 비로소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머리와 교복은 축축하게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5초 안에 휘발되듯 완전히 말라 버렸다.
'저 사람은?'
학생회장은 여전히 턱을 괸 채 퍼질러지듯 앉은 자세 그대로였다.
그르르르르-
그의 코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회장."
카쟌이 그에게 다가갔다.
또 한 번 그르르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후배들이 왔습니다. 약속시간입니다."
퍽. 하고.
코에서 방울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으음?' 하고 눈을 뜨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음, 그렇군. 깜빡 졸았어."
카쟌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꿈을 꾸다니, 제정신입니까?"
평소 카쟌의 모습과는 다른, 다소 날 선 목소리였다.
"흠! 꿈을 꾸고 말고 하는 게 내 마음대로 되나?"
"당신의 꿈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끔찍한 병기라는 자각을 하십시오. 피곤하면 외딴 사막 같은 곳에 가서 자던가."
"하하하하! 성격은 여전하군 카쟌!"
학생회장이 통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들인가! 음!"
학생회장이 몸을 일으켰다.
선 채로 보니 더욱 거대해 보였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커다란 울림을 일으키며, 그가 시몬에게 다가왔다.
"판타서스 휴 이켈! 이 몸의 이름이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이 판타서스와 손을 맞잡는 순간, 작은 손이 거대한 손에 덮였다. 그 상태로 판타서스가 손을 위아래로 흔들자 시몬의 몸도 위아래로 휙휙 격렬하게 흔들렸다.
시몬과의 악수를 마친 판타서스가 고개를 돌렸다. 세르네가 생긋 눈웃음을 흘리며 하얀 손등을 위로 향하게 내밀었다.
"세르네 아인다르크라고 해요. 회장님~"
그녀의 당돌한 행동에, 판타서스는 오히려 유쾌하게 웃으며 허리를 꺾었다. 그녀의 손등을 잡고 가볍게 입맞춤하자 세르네는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음! 앉아라!"
판타서스가 등을 돌렸다.
이내 세 사람이 소파에 나란히 앉았고 판타서스는 소파 하나를 혼자서 차지했다. 물론 그래도 그의 덩치 때문에 무척이나 작아 보였다.
"특례 1번과 2번! 그대들이 1학년 최고의 남학생과 여학생이라는 건 익히 들었다!"
"최고의 한 쌍이기도 하죠."
세르네가 시몬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며 덧붙였다.
"그래! 그래! 최고의 한 쌍이기도 하지! 하하하하! 나는 후배처럼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
"어머나~"
세르네가 부끄러운 척하며 뺨을 감쌌다. 의외로 두 사람은 쿵 짝이 맞는다. 괴물은 괴물을 알아보는 걸까.
"회장은 곧 키젠을 졸업하신다."
카쟌이 말했다.
"졸업 후에는 까마귀에 들어갈 예정이다. 바힐 교수님과 함께 공동 최연소 기록이지. 그전에 너희들과 만나서......."
"카쟌! 설명 중에 미안하지만 까마귀 제안은 거절했네!"
카쟌이 미간을 좁히며 판타서스를 보았다.
"왜 거절했습니까? 최강의 사나이가 회장의 꿈 아니었습니까?"
"음! 그도 그렇지만,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니 시몬은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네크로맨서들 중에서 정상은 없다는 속설은 사실인 것 같았다. 물론 전교 최강의 네크로맨서 또한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후배들 앞에서 내 이야기는 됐네! 그보다, 자네들은 펜타모니엄 학술회는 무슨 연유로 왔나?"
판타서스의 물음에 시몬이 대답했다.
"논문 발표를 하......."
"음! 논문?"
판타서스가 말을 끊었다. 그는 스스로 귀를 의심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고개를 쭉 내밀며 눈을 부릅떴다.
"교수들이 시켜서 여기에 온 건가!"
'덩치가 더 커졌어?'
시몬은 판타서스의 거대한 덩치가 두 배는 커졌다고 생각했다.
이능? 흑마법? 아니면 그냥 환상? 그의 쭉 뻗은 얼굴이 시몬의 시야를 가렸다.
시몬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것보다는. 하하."
......어쩐지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려고 왔습니다."
짝!
판타서스가 손뼉을 쳤다.
짝! 짝! 짝!
손뼉을 칠 때마다 진동처럼 파장이 퍼져 나가며 주위의 사물이 덜컹거렸다.
"음! 훌륭하다!!"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미리 자본을 확보해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자각이 제대로 박혀 있다! 후배여!"
"그, 그런가요?"
"그럼 자네는 어떤가? 자네도 교수들이 시켜서 논문 따위를 발표하러 왔나!"
이번엔 판타서스가 세르네를 보았다. 그녀가 여우처럼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남자 꼬시러 왔는데용?"
"퍼펙트!!!"
꽝! 꽝!
판타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아주 훌륭해! 바로 그거야! 음! 그대들이 왜 1학년 최고인지 알 수 있어!"
그러면서 세 번째 자리에 앉은 카쟌을 보았다.
"후배들을 보고 배워라, 카쟌! 허구한 날 시키는 임무만 하지 말고!"
카쟌은 대꾸하지 않고 눈에 난 흉터만 슥슥 긁었다.
"음! 명심하게 후배들이여!"
그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세상은 나의 존재로 말미암아 존재하네! 자네들은 고작 한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그냥 세상이 바로 자네들 것이야! 주위의 상황! 과거와 배경! 남의 의견 따위에 귀를 기울여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그가 커다란 손가락으로 시몬의 얼굴을 가리켰다.
"자네! 돈을 벌어서 어쩔 생각인가!"
"그...... 리치를 만들고 싶습니다."
"음! 리치를 왜 만들고 싶은 거지? 그건 아직 1학년이 만들기에 벅찰 텐데!"
시몬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것까지 생판 남에게 말해야 하나 싶긴 했지만.
"제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니까요."
우뚝.
판타서스의 동작이 멈췄다. 이내 그의 커다란 눈망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그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또 악수를 하나 싶어서 시몬도 일어나는데.
덥석!
"훌륭하다!!"
이번엔 포옹이었다. 시몬은 숨이 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거야! 음! 1학년에 리치 정도는 만들어야지! 꿈의 크기만큼 도전할 세상의 크기도 커지는 법이라네!"
그가 시몬을 풀어주며 콧김을 뿜었다.
"자네가 그런 목표를 정한 덕분에 남들 놀 때 이런 곳도 와보고 하는 게 아닌가!"
"화, 확실히 그러네요."
"암! 앞으로도 그렇게 나 자신의 꿈을 위해서 달려가게! 인생의 그 어떤 장벽도 하늘을 보고 달리면 어느새 넘어서 있게 마련이니!!"
그가 거대한 두 팔을 쫘악 벌렸다.
"그게 무엇이든 나 자신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하게! 내 꿈을 위해 세상을 박살 내서 질질 끌고 다니는 것! 그게 바로!"
투우우우웅!
그가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씩 웃었다.
"최강이 되는 길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몬은 가슴에 불이 붙는 것을 느꼈다.
'와, 이 사람 너무 멋지다.'
시몬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걸 본 세르네와 카쟌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역시 시몬도 소년이었다.
"자랑스러운 후배여!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묻겠네!"
판타서스가 손바닥을 척 펼쳤다.
"차기 학생회장 자리는 생각 없나?"
"......네?"
순간 시몬의 사고가 정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