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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55화 (35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55화

시몬은 펜타모니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행사를 관람했다.

메카 언데드 시연이나, 고위계 소환술사의 강연 등 볼거리가 풍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날이 어두워지고 숙소로 들어왔다. 시몬과 카쟌이 한 방을, 세르네가 다른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적당히 저주 공부 좀 하다가 자려고 책을 꺼내는데.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카쟌이 시몬을 불러냈다.

기숙사가 아니더라도 카쟌을 만나는 위치는 동일했다. 숙소의 옥상에 올라오니 카쟌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보름달이네.'

시몬이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와인은요?"

"지금은 임무 중이니 됐다."

시몬이 옆자리에 털썩 걸터앉자 카쟌이 입을 열었다.

"바로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내가 보자고 한 이유는-"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임무에 대해 보고할 게 있어서다."

시몬이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문제의 시간이 찾아왔다.

"우와아, 심장 떨려!"

"목소리가 자꾸 갈라지는데 어쩌지?"

오전 일과는 1학년 네크로맨서 학생 논문 발표회였다.

시몬은 벽에 등을 기대고 미리 작성한 논문의 대본을 빠르게 훑어보는 중이었다. 세르네가 지각하는 바람에 카쟌이 그녀를 보러 갔다.

"오~ 열심히 하는데? 키젠."

그때 녹색 바탕에 체크무늬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말을 걸어왔다.

시몬은 기억을 되짚었다.

알란드 1학년, 이름이 벤즈였던가. 손에 힘줘서 악수하던 애였다.

"아, 그렇게 경계하진 마. 오늘은 다른 수작 없이 순수하게-"

촤락!

그가 두꺼운 논문 용지를 펼쳐 들었다.

"소환학 실력으로만 승부할 테니까."

그런 거라면야 환영이었다. 시몬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기대할게. 벤즈."

"!"

그 한마디에 벤즈의 얼굴이 부끄러운 듯 붉어졌다.

'키, 키젠 학생이 내 이름을 기억해 주다니 영광......! 이 아니라!'

그가 갑자기 두 뺨을 짝!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이딴 걸로 좋아하지 마! 자존심 상하게!'

그러곤 고개를 돌려 근처의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나는 누구?"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가 교복 넥타이를 매만지며 거울 속 자신에게 씩 웃어 보였다.

"자랑스러운 알란드의 학생."

"......."

시몬은 그냥 못 본 척해주기로 했다.

"아무튼!"

다시 자존감을 충전한 벤즈가 시몬의 가슴을 척 가리켰다.

"올해 펜타모니엄의 논문 발표회는 역대 최악이야! 피차 조심하자고!"

"왜 역대 최악인데?"

"훗. 아무것도 모르네! 저길 봐!"

벤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세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서부터 출처지옥의 칼라반, 논문찢기의 빈트라, 증명무새 라토니야."

"뭐...... 뭐?"

"펜타모니엄에서 가장 악명높은 심사위원들이야. 원래 저 셋 중의 한 명 정도 있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끔찍하게도 저 삼총사가 한자리에 모였어."

벤즈가 닭살이 돋는다는 듯 어깨를 슥슥 쓸었다.

"어제도 장난 아니었어. 우리 2학년들은 죄다 멘탈 터져서 난 아무것도 아니라느니, 장래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느니. 숙소에서 궁상맞게 우는 선배들도 있었고."

"......그 정도야?"

"자신감을 밑바닥까지 갉아먹는 악마들이지."

그렇게 말한 벤즈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근데 우린 올해부터 제대로 흑마법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입장이잖아? 학생한테 논문을 쓰라고 시켜봐야 뭐 얼마나 독창적인 게 나오겠어? 이건 그냥 털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흠."

"그래서 나는 심사위원들이 못 알아듣도록 최대한 어려운 단어와 논리만 준비했......."

"두 분 뭐 하세요?"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듯한 듣기 좋은 미성이 끼어들었다. 뒤를 돌아본 벤즈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너, 너는......!"

상앗빛 머리카락을 화보처럼 휘날리며, 세르네가 뒷짐을 진 채 다가왔다. 그러곤 여우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살짝 숙였다.

"또 시몬을 괴롭히고 있었어요?"

"아, 아니야! 나는......!"

벤즈는 입술이 떨려서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이 인간은 태양이었다. 고귀한 태양에서 내리쬐어지는 빛을 가림막 없이 정면에서 직격당하는 기분. 벤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글쭈글 오징어처럼 구워지는 기분이었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황송하다. 이렇게 있는 건 불편하다. 그녀를 높이 올려다봐야 할 것 같았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어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세르네."

그때 시몬이 타이르는 듯한 투로 말했다.

"?"

그녀가 생긋 웃으며 시몬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벤즈는 비로소 가슴을 조이던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시, 실례할게!"

벤즈가 도망치듯 후다닥 계단을 내려갔다. 세르네는 그 뒷모습을 잠시 훑어보다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그냥 논문 심사에 대해."

"세르네 아인다르크. 두 번째 경고다."

뒤따라온 카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사소한 일로 힘을 쓰면 상부에 보고하고 로크섬으로 돌려보내겠다."

"너무해~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구요!"

세르네의 입술이 삐쭉 튀어나왔지만, 카쟌은 가볍게 무시했다.

이상하게도 세르네는 네프티스의 딸인 로레인이라면 바락바락 덤벼들었지만, 카쟌의 말은 나름대로 들어주는 편이었다.

아마 카쟌도 그녀의 영입대상 리스트에 있으니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시몬은 추측해 보았다.

"착석하지."

그렇게 1학년 논문 발표회가 시작됐다.

네크로맨서 학교 중에서는 시에라부터 시작이었다. 빨간 교복을 입은 1학년 여학생이 쭈뼛거리며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눈앞이 캄캄하구려."

자리 중간에 앉은 심사위원, 논문찢기의 빈트라가 말했다.

"어제 2학년이 최악이긴 했어요. 한 명 빼고는 별 볼 일 없었으니."

오른쪽에 앉은 심사위원, 출처지옥의 칼라반이 말했다.

"끔찍한 수준이긴 하나, 그래도 프로답게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공정하게 심사해야 할 것이오."

왼쪽의 심사위원, 증명무새 라토니가 말했다.

심사위원들이 발표회에 앞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으나, 학생들의 눈으로 보기에 그것은 악마들의 대화나 다름없었다.

이내 중간에 앉은 빈트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작하게."

"네, 넵!"

여학생은 마나 수정구로 영상을 출력한 다음, 가슴에 두 손을 얹고 한 차례 심호흡했다. 이내 눈을 크게 뜨고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시에라 1학년, 소환학 전공생의 엘라리아 레크렐입니다. 제가 연구한 주제는 늪지대의 언데드 '용골귀'의 습성과 생리. 그리고 운용에 대해서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심사위원이 시큰둥한 표정이 되어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댔다. 벌써부터 '나 관심없음'의 기운이 표정과 제스쳐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시에라 여학생은 조금 당황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발표를 이어나갔다.

"용골귀는 늪에 주로 서식하는 언데드로, 칼로스 왕국의 영토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몸길이는 약 2~3미터, 꼬리길이 30㎝, 어깨높이는......."

"다음."

"아, 네! 죄송합니다! 용골귀는 늪에 가라앉은 몬스터의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에서 언데드로 변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깊은 늪일수록......."

"다음."

"용골귀는 스켈레톤으로 분류되지만, 그 개체의 특성상 복원기술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다음!"

발표를 준비해 온 학생에게 제대로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여학생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도 네크로맨서 학생답게 과감하게 나갔다. 내용의 80%를 생략해 버리고, 논문을 뒷장으로 쭉 넘겼다. 심사위원들이 궁금해할 정보를 꺼냈다.

"출력한 화면을 봐주세요. 제가 미리 만들어본 용골귀의 소환 마법진 수식입니다."

그제야 심사위원들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보시다시피 핵심 룬어는 '장송'입니다. 그리고 이를 받쳐주는 수식으로는-"

"잠깐."

이번에는 '출처지옥'의 칼라반이 말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장송 룬어를 써서 용골귀를 만드는 연구 논문은 이미 있는 걸로 아는데요. 출처를 말해보세요."

"추, 출처는......!"

여학생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칼라반이 아공간을 열어서 마법진을 조작하자, 문서 몇 개가 착착 튀어나왔다.

그것을 확대마법을 이용해 관중들이 볼 수 있도록 크게 만들었다.

"<용골귀 설계를 위한 조립체 중심적 모델링 방법론>, 그리고 <장송 룬어의 소환학적 해석>. 간단히 찾아도 두 개나 있네요. 그럼 엘라리아 학생? 이 두 논문과 당신의 논문이 대체 어떤 차이점이 있죠?"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엘라리아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 물론 장송과 용골귀에 관련된 선제논문이 있습니다만! 저는 수식의 변형률과 회전값을 칸달 공식으로......!"

"증명해 보시오."

이번엔 '증명무새' 라토니가 끼어들었다.

"칸달 공식과 용골귀 설계가 어울린다고 생각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증명해 보란 말이오."

"아, 아, 네!"

그녀가 칠판에 급히 수식을 몇 자를 적어봤으나 라토니가 코웃음을 쳤다.

"기존의 <장송 룬어의 소환학적 해석> 논문을 기반으로 자기 생각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게 눈에 보이는군."

"네, 네?"

"왜 이 논문의 저자가 칸달 공식을 쓰지 않고 단순 계산을 했는지 증명하겠소."

라토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에 수식을 적기 시작했다. 학생 논문 발표회가 갑자기 수업시간으로 변했다.

심사위원이 발표자를 가르치는 아이러니. 그러나 펜타모니엄의 장로 중 한 사람인 그의 말을 일개 학생이 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라토니에게 탈탈 털린 이후에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왜 수식에 대해선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거죠?"

"용골귀는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오. 용골귀 시체를 실제로 조립해 보긴 했소?"

"대체 시에라에서는 애들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심사위원들은 하이에나와도 같았다. 약간의 허점만 보여도 끈질기게 물어뜯었고 죽일 듯이 야단을 쳤다.

여학생의 황망한 표정만 봐도 멘탈에 금이 간 것을 알 수 있었다.

"평가 결과를 말하겠소."

마지막으로 논문찢기의 빈트라가 여학생의 논문을 들어 올렸다.

"쓰레기. 0점."

그러고는 여학생의 눈앞에서 논문을 북북 찢기 시작했다. 그 조각난 종이들을 그녀의 발밑에 흩뿌리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펜타모니엄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오? 키메라 만들 듯 대충 짜깁기하면 될 줄 알았소?"

"너무하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출처지옥의 칼라반의 차갑게 말했다.

"최소한의 준비도, 정성도, 고민도 없이, 뻔한 내용 채우기. 먼저 펜타모니엄을 무시한 건 당신입니다."

좌중이 조용해진 가운데, 여학생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의 친구들이 달려와 등을 토닥여 주자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좀 심한 것 같은데.'

관중석에 앉아 지켜보던 시몬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물론 엘라리아라는 학생의 논문에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흑마법을 배우고 있는 학생을 저렇게까지 몰아붙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탕!

논문찢기의 빈트라가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치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시작부터 극도로 불쾌하군! 다음!"

* * *

순서가 지나갈수록 회장의 분위기는 살벌해졌다.

"쓰레기. 0점. 다음!"

갈기갈기 찢기는 논문 조각들이 연단 바닥에 가득했다.

"이런 걸 지금 논문이라고! 학교 숙제로 아는 겐가!"

"이래서 평화의 세대가 문제야! 내가 학생일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걸 다 떠나서 성의와 예의가 없습니다. 펜타모니엄 논문에 대한 기본적인 양식은 숙지하고 오는 게 정상 아닌가요?"

탈탈탈탈.

탈곡기 돌아가듯 연단에 오른 학생들의 멘탈이 갈려 나갔다. 시에라, 알란드, 모이란도 그런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나마.

"그나마 낫군."

모이란의 남학생.

어제 시몬 앞에서 키젠 타도를 운운했던 그 남학생은 꽤 좋은 평가를 얻었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그나마 이 중에선 제일 낫소."

"우리가 어디 큰 걸 바라나? 이 정도만 해줘도 그냥 넘어가는데 말이야."

처음으로 논문찢기의 빈트라에게 찢기지 않고 논문을 돌려받았다.

관중들의 자잘한 박수를 받고 내려온 그 남학생은, 자연스레 시몬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자, 이제 그들 차례군."

눈문찢기의 빈트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올라오시오, 키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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