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57화
시몬의 발언은 파격 그 자체였다.
-우리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심사위원님.
그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관중들은 환호했으며, 심사위원들은 시뻘게진 얼굴로 도망치듯 자리에서 떠났다.
시몬이 등을 돌려 연단을 내려오자 3대 네크로맨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다시 봤다! 키젠!"
"내 속이 다 시원했어!!"
"어제는 미안했다. 진짜 그릇이 다르네."
학생들이 사방에서 감사인사를 쏟아냈다. 너무 몰려들어서 시몬은 조금 당황했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정말 정말 고맙다 시몬! 다시 봤어!"
특히 알란드의 벤즈는 끝까지 시몬을 따라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시몬은 계단을 내려왔다.
"어머나-"
그런데 발표회장 밖으로 나가는 복도에서, 세르네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시몬을 뒤따라오던 벤즈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게, 시몬의 지침 아니었어요?"
"......."
"그렇잖아요? 저 어중이떠중이들을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어요."
세르네가 벤즈를 훑어보며 그렇게 말하자, 벤즈의 표정이 침울하게 굳었다.
"시몬의 논문은 심사위원들에게 유일하게 선택받았어요. 저 바보들을 짓밟고 펜타모니엄에 인정받았다는 게 시몬이 가장 빛나는 시나리오일 텐데, 왜 굳이 손해 보는 짓을 한 거죠?"
그러자 시몬의 귓가에 어제 만난 학생회장의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타인이 내 인생을 끌고 가게 두지 말게! 뜨거운 심장과 큰 꿈으로 무장한 채 나만의 길을 가게!
"그런 계산적인 생각은 없었어."
시몬이 작게 미소 지었다. 학생들을 위한 것도, 이득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내 감정에 솔직했을 뿐이야."
세르네가 흠-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돌아가지."
불현듯 카쟌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박쥐처럼 천장에 붙어 있던 카쟌이 시몬의 옆으로 툭 떨어졌다.
"우왁! 뭐야!"
벤즈가 기겁한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카쟌, 왜 그러고 있었어요?"
"생활 운동이다. 가자."
두 사람이 시몬을 가운데 두고 떠났다. 벤즈와 학생들은 시몬의 뒷모습을 여러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키젠 1학년 꼬마가 학생 논문 발표회에서, 장로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을 물 먹인 사태는 전 펜타모니엄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신기하게도 '어딜 학생이 건방지게' 같은 반응은 거의 없었다. 네크로맨서들은 새로운 화젯거리에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시몬은 처음에 계획했던대로, 자신이 쓴 '스켈레톤 메이지와 시체폭발' 논문을 펜타모니엄 경매에 등록했다.
늦으면 몇 주씩 걸린다는 그 절차가 놀랍게도 두 시간 만에 체결되고 바로 경매에 들어가게 됐다. 카쟌은 펜타모니엄 상층부가 직접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저 상층부에 찍힌 거 아니었어요?"
시몬의 얼떨떨한 물음에 카쟌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소문이 빠르게 퍼졌어. 그리고 펜타모니엄도 심사위원 몇 명 덮어주려다가 전체가 먹물을 뒤집어쓸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오히려 이 사태를 이용하려 할 거다."
"그러게요. 전화위복이 됐네요~"
세르네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아까는 시몬에게 '손해 보는 짓'이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시몬의 행동은 확실한 이슈몰이가 됐다.
심사위원들을 물 먹인 키젠 1학년 꼬마가 쓴 논문 → 그게 스켈레톤 메이지의 시체폭발이더라. 하는 식으로 소문이 퍼져 나가며, 중앙 경매장은 물론 제2, 제3 경매장까지 사람이 가득 찼다.
시몬도 세르네, 카쟌과 함께 관중석에서 구경했다.
경매라는 이름이긴 했지만, 지식을 사고파는 이벤트에 가까웠다. 더 간단히 말하면 시몬은 자신의 '오리지널'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게 된다.
그 외에도, 시몬이 논문을 펜타모니엄에 정식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시몬의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내면, 시몬은 로열티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뭐가 됐든, 대박이 터져준다면 돈방석에 앉는 것이다.
시몬은 경매사를 바라보았다.
"5천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금액부터가 벌써 시몬이 생각했던 목표 금액을 넘어섰다.
시몬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너무 센데? 5천 골드면 아무도 입찰 안 하는 거 아냐?'
노심초사하며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경매사가 드디어 경매 시작을 선언했다. 곧바로 입찰이 들어왔다.
"5천 골드! 5천5백 골드!"
순식간에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손이 올라갈 때마다 시몬은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내 연구의 가치를, 경매에 참여하는 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금액은 6천, 7천을 빠르게 넘어가더니 급기야.
"1만 골드! 1만 골드 더 없으십니까?"
1만을 찍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도 관중들은 앞다투어 손을 들었다.
"1만5천 골드!"
"1만6천 골드!"
목표였던 5천 골드의 세 배. 이제 시몬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1만7천 골드!"
"2만 골드!"
"2만5천 골드!"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고, 결국.
"3만 골드! 3만 골드! 3만 골드! 축하드립니다, 볼로레 경! 3만 골드에 낙찰입니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다. 경매에 참여한 그 볼로레라는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들며 기뻐하고 있었다.
"......."
그리고 시몬은 멍청한 표정으로 제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프다.
꿈이 아니었다.
'3만 골드라니!'
시몬이 일말의 야망도 없는 사람이었다면, 이대로 산골에 틀어박혀 평생 돈 걱정 없이 먹고살아도 될 정도 커다란 금액이었다.
'그냥 시체폭발 쓰는 스켈레톤 메이지인데. 내 연구가 그렇게 가치 있는 거였어?'
조금은 어안이 벙벙했다.
리치의 라이프베슬 재료를 구하러 왔는데 이 정도 수입이면 최고 품질의 심장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축하해요 시몬!"
"축하한다."
세르네와 카쟌도 축하인사를 건넸다. 특히 세르네는 시몬의 팔을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돈도 많이 벌었으니 맛있는 거 사주세요!"
"아, 응! 당연하지."
기분 같아선 비싼 식당에서 골든벨이라도 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몬은 바로 경매장 측의 요구에 따라 구매자인 볼로레를 만나러 갔다.
두 사람은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방에 마주 앉았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두 갈래의 콧수염이 인상적인 볼로레 백작은 왕국의 '클론멜'이라는 화산 영지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본인도 네크로맨서였다.
그의 영지 클론멜은 몬스터의 공격이 잦아서 왕국의 허가를 받아 사설 네크로맨서 군대까지 두었지만, 그것으로도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가 힘든 실정이었다.
그런데 몬스터전에서 효과적인 시체폭발을 사용하는 스켈레톤 메이지, 그것도 재료가 화산 영지에 흔한 '무스펠'이라는 사실에 입찰을 결심했다고 했다.
시몬은 구매자에게 논문의 100% 내용을 공개했다. 볼로레는 시몬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했다.
"여기서 헥사 공식을 대체할 수도 있었군요! 부럽습니다. 키젠의 교수님들은 이런 독창적인 방법도 가르쳐주나 보네요!"
시몬은 그저 웃었다. 사실은 배운 적 없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시몬과 볼로레는 새로운 논문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대단해요! 시몬 학생의 연구가 우리 영지를 구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볼로레가 논문의 복사본을 소중히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제 연구가 도움이 된다면 영광이네요."
시몬도 미소 지었다.
볼로레와의 대화는, 뭔가 엄청난 힘과 상승감을 얻어가는 기분이었다. 리치의 재료를 사려고 논문을 팔러 왔다가 이렇게 현역에서 뛰는 네크로맨서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심지어 좋은 일에 쓰이게 된다니 말이다.
아직은 일개 학생 신분에 불과하지만, 학교에서 벗어나 세상에 뭔가 기여를 한 기분이라 행복했다.
"졸업 이후의 행보가 기대되는군요. 업계 선배로서 앞으로도 쭉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볼로레가 밖으로 나가며 경매장 측에 구매를 확정 짓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류에 혈장을 찍고,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눈 후 길을 나섰다.
이내 경매장 측 직원이 시몬에게 다가와 말했다.
"수령은 금화로 하시겠습니까? 수표로 하시겠습니까?"
"금화로 부탁드립니다.
시몬은 직원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상에.'
금화가 꽉꽉 들어찬 보물상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펜타모니엄 경매장 측의 수수료 10%를 제외한 2만7천 골드가 시몬의 몫이었다.
시몬은 소중히 보물상자를 아공간에 모셔두었다.
"그렇게 좋아요? 얼굴이 아주 확 폈네."
세르네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시몬은 갑자기 겸연쩍은 기분이 되어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거 알아요?"
세르네가 지나가는 투로 슬쩍 운을 떼보았다.
"상아탑에 들어오면 저 정도 금액의 몇십 배는 받을-"
"세르네!"
시몬이 갑자기 확 커진 눈으로 소리쳤다.
"혹시 말야!"
"네?"
세르네가 깜짝 놀라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설마 돈이 먹힌다고? 보기완 다르게 돈으로 매수가 되는 타입이었나?
"이런 지식경매 말고, 상품 경매도 펜타모니엄에 있을까?!"
"......."
사실 시몬은 듣고 있지 않았다. 당장 리치의 라이프베슬을 최상품으로 질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심술 난 세르네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왔다.
"흥, 나도 몰라요!"
"당연히 있다."
이번에도 천장에서 휙 떨어진 카쟌이 대꾸했다.
"가보겠나?"
"네! 가보고 싶어요!"
품에 3만 골드가 있으니, 새삼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 * *
같은 시간.
"자, 자, 신사 숙녀 여러분! 저를 따라오십시오!"
1년에 한 번 민간에 개방되는 열리는 펜타모니엄 학술회.
암흑연방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행사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들어와야 하는 만큼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는 건 물론, 펜타모니엄 측으로부터의 초대장이 필요했다.
펜타모니엄의 초대를 받는 건 대단한 영광으로, 귀족들의 사교회에서는 초대장이 왔느냐 오지 않았느냐에 따라 귀족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이 초대장이야말로 귀족이 가진 권력과 재력 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으니까.
"이번에는 펜타모니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펜타모니엄에 입성한 고위귀족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극도로 들떠 있었다.
펜타모니엄에서 고용한 가이드 또한 고위귀족들과 귀부인들의 기분을 살살 달래며 시티 투어를 시켜주고 있었다.
"우리는 '결계'의 바로 앞으로 갈 겁니다. 부디, 결계 밖의 끔찍한 것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실수로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 가이드가 손가락을 흐물거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저주받을지도 모르니까요!"
숙녀들은 무서운 척 비명을 지르며 신사의 품에 슬쩍 기댔고, 신사들은 얼굴을 붉히며 걱정 말라는 둥 내가 지켜주겠다는 둥 허세를 부리는 시간이 잠시 있었다.
그렇게 결계 앞에 마차가 도착했다.
"이 결계는 1대 펜타모니엄의 회장, 고리스 공께서 만드시고 위대한 죽음의 마녀께서 직접 보수했던 결계로, 펜타모니엄의 역사 내내 단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 도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죠."
결계 밖은, 음침할 정도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황량한 검은 벌판이었다. 결계 밖의 좀비들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종잇장같이 얇은 결계를 중심으로, 내부는 극도로 발전한 인간의 문명 도시가, 외부는 죽음의 황무지로 나누어져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무, 무너지진 않겠죠?"
한 귀부인이 저 멀리서 흐느적거리는 좀비를 보며 겁에 질린 투로 말했다.
"하하! 펜타모니엄이 세워진 이래로 단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답니다! 자, 그럼 20분간 자유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자유롭게 구경하셔도 좋습니다!"
펜타모니엄의 결계는 귀족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촬영 스팟이었다.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값비싼 마력촬영기로 사진을 찍는 사치의 극치가 벌어졌다.
그렇게 사진을 다 찍고 결계 밖의 좀비들을 구경하던 귀족들은 금방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
"가이드님! 여긴 다 봤으니 다른 곳으로 가요."
"예이~ 마님. 알겠습니다! 이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아티팩트 경매장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세계의 진귀한 물건들을 직접 참여해서 구매할 수 있으십니다."
"드디어 올 게 왔군!"
귀족들이 다시 마차를 타고 펜타모니엄의 도심지로 이동하는 그때.
쩌저적.
쩍.
역사상 단 한 번의 침입도 허용한 적이 없다는 결계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