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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58화 (35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58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아티팩트 경매장으로 가는 길, 시몬은 뜬금없이 한 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상아탑 귀족이다.

"학생은 정말 화제를 몰고 다니십니다그려. 이곳 펜타모니엄에도 한 건 크게 터뜨리셨던데, 벌써 주위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하하!"

시몬이 겸손한 비즈니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찬이십니다."

"그리고-"

그가 시몬의 팔에 철썩 달라붙어 있는 아이보리색 머리카락의 소녀를 보았다. 그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렸다.

"저희 후계자님과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십니다."

"오호호!"

세르네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우아하게 웃었다.

"친한 정도가 아니죠. 친구 이상? 부부 이하?"

세르네가 산새처럼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고, 시몬은 웃는 얼굴로 노코멘트했다.

상아탑 귀족이 다시 시몬을 보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상아탑에서 주최하는 학술회에도 한번 초대하겠습니다."

"아, 그래 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죠."

"펜타모니엄이 많은 지식과 사료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그 지식을 거래하고 돈으로 사고판다는 점에서 학자들이라기보다는 장사치에 가깝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은근히 펜타모니엄을 디스하고 자신들을 어필하는 이야기까지.

그렇게 시몬은 상아탑 사람과 헤어지고는, 잠시 쉬어갈 겸 근처의 카페에 들렸다.

"시몬. 아~"

세르네가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부담스러웠던 시몬이 고개를 뒤로 살짝 뺐다.

"......이제 상아탑 사람도 갔잖아."

"에이. 뭐 어때요?"

세르네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미간에 모인 눈썹과, 두 눈동자에 힘이 들어간 모습에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결연함이 엿보였다.

결국 주위의 눈치를 살피던 시몬이 하는 수 없이 한입 베어 먹었다. 그러자 세르네가 즉각 입을 앙- 하고 벌려 시몬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를 한입에 삼켰다.

"잠......!"

"?"

세르네가 귀엽게 눈을 깜빡이면서 아이스크림을 구석구석 핥기 시작했다. 여우 같은 눈매를 휘면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다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민망함에 휩싸인 시몬이 고개를 돌려버리자 세르네는 그런 반응이 귀엽다는 듯 쿡쿡 웃었다.

"팔자 좋군."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앉아 있던 카쟌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보다 이런 외부 카페는 경호에 부적절해. 곧 아티팩트 경매가 시작하니 빨리 먹어라."

"아, 정말!"

세르네는 웃는 얼굴이었지만 이마에 살짝 혈관이 맺혔다.

"눈치 드릅게 없네! 어르신들이랑 이야기할 때도 뒤에서 졸졸졸~ 좀 도와달라구요!"

"시몬의 경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누구랑 대화하든, 매그너스가 변신해서 접근할 가능성도 있다."

"참 피곤한 스타일이네요."

세르네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고 있는데, 시몬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휙휙 돌리고 있었다.

"왜 그래요 시몬?"

"좀 어수선하지 않아?"

"당연히 어수선하죠. 카페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시몬이 창밖을 응시했다. 그러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카페 밖으로 달려 나갔다.

시끄러운 카페에서 빠져나와 밖으로 나와보니 확실해졌다.

"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적나라한 비명소리.

카쟌과 세르네도 뒤따라 나왔다. 그들의 귓가에도 적나라한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도망! 도망쳐!"

"도시 안은 안전하다며!"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사람들을 보니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비명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동시에, 이제는 저 멀리서 사람들이 뭐에 쫓기고 있는지 드러났다.

'좀비......!'

그것은 네 발로 뛰어다니는 좀비들이었다.

"응, 뭐야? 어떤 바보 같은 네크로맨서가 사념 컨트롤에 실패한 거 아녜요?"

"그런 것치곤 너무 많은데."

저 멀리서 한두 마리 보이던 좀비들이 급기야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났다.

카쟌도 심각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결계 밖에 살던 좀비다."

시몬이 홱 고개를 돌렸다.

"잠깐만요 카쟌! 그 말씀은......!"

"그래."

카쟌이 서늘한 음색으로 말했다.

"펜타모니엄을 둘러싸고 있던 결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위잉!

위이잉!

도시 곳곳에서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경보가 들렸다.

[비상! 비상사태입니다! 언데드 몬스터가 도시 내에서 활보하고 있사오니, 방문객 여러분께서는 속히 가까운 유리탑으로 대피해 주시길 바랍니다!]

몰려드는 좀비들, 그리고 이 상황이 결코 '쇼'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대피 방송과 번쩍이는 붉은 경광등까지.

활기 넘치던 도시가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시몬! 저기 봐요!"

세르네가 뒤를 가리켰다.

펜타모니엄의 핵심이자, 가장 크고 높은 7개의 유리탑에 결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내부에 보관 중인 자료를 지키기 위해 경보가 울리면 자동으로 발현되는 시스템이었다.

"빨리 도망 안 치면 유리탑에 못 들어가겠는데요?"

"......."

시몬이 눈을 감았다.

수백, 수천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이내 다시 눈을 뜨자, 시몬의 시선에 좀비들과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민간인들의 피난 유도부터 하죠. 우리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그의 사념에 반응한 스켈레톤 아처들이 즉각 밖으로 뛰쳐나왔다.

"좀비가 보이는 족족 쏴!"

그 말에 아처들이 화살을 번개처럼 장전해서 날렸다. 사람들을 뒤쫓던 좀비들의 머리에 화살이 정통으로 퍽! 퍽! 틀어박혔다.

이어서 시몬이 빨래 걷는 동작처럼 두 팔을 휘두르자, 스켈레톤의 뼈들이 쏜살같이 날아가 도망치던 사람들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대로 공중으로 붕 띄워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두 사람도 도와주세요!"

"어쩔 수 없죠~"

세르네가 상앗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몇 번 흔들다가 화보처럼 흩날리게 했다. 머리카락이 찰랑이며 무수한 깃털들이 쏟아져 바닥에 떨어졌다.

"나오렴."

깃털들이 마법진으로 변하더니, 그 안에서 이번 논문에 발표했던 세르네의 '깃털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깃털병사들이 하늘을 날아가 좀비들을 상대하고, 세르네 본인은 다른 깃털에 칠흑을 입혀 표창처럼 던졌다. 깃털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좀비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우측에서 다수가 온다."

카쟌이 전투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엄청난 수의 좀비 떼가 측면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잠깐만요. 카쟌."

시몬이 카쟌의 돌진을 막았다. 저 멀리 공중에서 크고 작은 화염구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꽈아아아아앙!

퍼어어엉!

검은 화염이 쏟아지는 대폭격에 측면의 좀비 무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도 도울게! 키젠!"

알란드와 시에라, 모이란 학생들까지 대피를 미루고 전선에 합류했다.

그들이 팔을 움직이자 곳곳에서 처음 보는 소환수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식물형 몬스터나, 공중을 떠다니는 가오리 같은 언데드들도 있었다.

우웅!

거기에 펜타모니엄의 반격도 시작됐다. 바닥 곳곳에서 유도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하늘에서 커다란 '누더기 골렘'들이 그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혜성처럼 날아온 골렘들이 주위의 좀비들을 짜부라뜨리며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군."

카쟌이 말했다.

"펜타모니엄의 방어 시스템이 가동하고 있다."

일곱 유리탑에 결계를 펼치는 동시에, 민간인들이 많은 식당이나 야외 공연장 같은 곳에도 원격으로 결계를 치고 있었다.

좀비들은 결계에 닿는 순간, 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까만 잿더미로 변했다.

'이쪽은 어느 정도 수습됐고.'

시몬은 주위를 훑어보다가 알란드 학생 중에 유일하게 아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벤즈!"

시몬의 부름을 받은 벤즈는 얼굴에 참을 수 없는 기쁨의 감정이 드러났다.

'내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이쪽은 너희들한테 맡길게. 적당히 싸우면서 일반인들과 같이 결계로 후퇴해 줘."

"오케이! 우리한테 맡겨!"

곳곳에서 골렘들이 떨어지고 결계가 펼쳐진다.

도시의 결계가 뚫린, 펜타모니엄 역사상 일어나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에도 펜타모니엄은 잘 대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방문객인 네크로맨서들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섰다.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고, 그 사이 일반인들은 유리탑의 결계 안으로 도망쳤다.

시몬과 세르네, 카쟌도 전장을 옮겨 다니면서 계속 일반인들을 구해냈다.

'좀비전이라면 역시.'

평소라면 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꺼낼 생각도 하지 않겠지만, 지금 같은 난전 사태에 언데드들이 우글거리는 경우라면 괜찮았다.

"도와줘. 프린스."

시몬이 왼손에 낀 반지에 그렇게 말하곤 쓰러진 좀비의 몸에 손에 갖다 댔다. 즉시 하늘에서 검은 번개가 내려와 좀비의 몸에 떨어졌다.

[역시나-]

그리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건, 빛바랜 왕관을 쓴 작은 소년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뒤덮은 새까만 좀비들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난 소환될 때마다 이런 상황이라니까.]

"프린스, 네 힘이 필요해!"

[후후!]

프린스가 머리 위의 왕관을 붙잡았다.

[이 히든카드님이 나설 때라 이거지!]

그가 '왕관'의 힘을 발동시켰다. 프린스의 왕관은 좀비들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새까맣게 무리를 이루어 달려들던 몇몇 좀비들의 눈 색깔이 프린스와 같은 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프린스가 장악한 좀비들은.

'시체폭발!'

군단장인 시몬이 시체폭발로 터뜨리는 게 가능하다.

꽈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엉!

무리 지어 몰려드는 좀비들 곳곳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시체폭발 한 번에 거의 10~20기의 좀비들이 나가떨어진다.

"계속 부탁해!"

[알았어!]

시몬과 프린스의 활약으로 우글거리던 한쪽 라인의 좀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오, 과연 과연~"

깃털병사들을 컨트롤하던 세르네가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이렇게 귀여운 꼬마 언데드는 처음 보네요."

[뭐, 뭐라고?]

프린스가 발칵 화를 내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데스랜드의 지배자이자 세상 모든 좀비들의 정점인 프린스다! 귀엽다고 하지 마!]

"어머~ 귀여워라."

세르네가 무시하고 프린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프린스가 분노로 얼굴을 확 붉혔다.

[애 취급하지 마아!]

"누나가 사탕 줄까?"

[안 먹어!]

"둘 다 놀지 말고 좀 도와!"

프린스와 시몬 콤비는 무지막지한 화력을 바탕으로 전세를 단번에 안정화시켰다.

그러나 구멍 뚫린 결계로 외부의 좀비들이 끊임없이 충원되었기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다.

"민간인들의 대피는 거의 다 끝났다고 하는군."

통신 수정구의 보고를 들은 카쟌이 말했다.

"우리도 이제 유리탑으로 돌아가지. 여기는 너무 위험하다."

"네!"

세 사람은 가장 가까운 소환학 쪽의 유리탑으로 향했다.

"이런."

하지만 결계가 이미 유리탑 전체를 감싼 뒤였다. 원천 봉쇄였다.

"이렇게 빨리 닫아도 되나 몰라요~ 밖에 사람들이 더 있을 수도 있는데."

"다른 곳으로 가보자."

세 사람은 좀비들을 뚫고 바로 다음 유리탑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도 건물의 결계가 완전히 쳐져 있었다.

"펜타모니엄 상층부에서 애가 달았나 보군."

카쟌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료가 유실되는 것보다 최악은 없다. 인명 피해가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출입을 막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겠지."

"아! 저기 좀 보세요!"

세르네가 결계 너머로 보이는 유리탑 내부를 가리켰다.

엉망이었다. 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듯 주위가 온통 피범벅이었고 좀비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난리네요. 결계가 완전히 펼쳐지기 전에 좀비들이 들어간 걸까요?"

"......."

그때 시몬의 표정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왜 그래요 시몬?"

"이 건물."

시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샤가 있는 건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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