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62화
시몬이 서 있는 지점으로부터 몇십 미터 떨어진 위치.
환상마법으로 만든 커튼으로 앞을 가린 채, 세르네와 카쟌, 그리고 학생회장 판타서스가 모여 있었다.
"......이거, 효과는 확실한가?"
카쟌이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커튼을 툭툭 건드렸다. 그 옆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던 세르네가 생글거리며 답했다.
"그럼요! 이렇게 보여도 방음효과, 방마효과, 심지어 기척까지 차단하는 흑마법이에요. 상아탑을 얕보지 말라구요!"
"그럼 그럼! 훌륭한 환상결계다!"
판타서스가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그런데 이렇게 잠복하고 있으니 1학년 시절 첫 임무평가 때가 떠오르는군! 그래, 그때는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이었지."
판타서스는 겉모습과는 달리 말이 많은 타입이었다. 세르네와 카쟌은 그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마주 보았다.
"혼자서 오는 게 조건이긴 한데, 저쪽도 혼자 오진 않겠죠?"
"당연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포로교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카쟌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매그너스를 붙잡아 오라는 상부의 명령이다."
"그쪽 상부는 참 무리한 명령만 시키네요."
세르네가 여우 같은 미소를 지었다.
"키젠 말고 상아탑을 위해 일할 생각은 없어요?"
"없다."
"우와- 너무해. 제 얼굴은 보고 거절하시죠?"
"싫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때. 판타서스가 대기 중의 마나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흐름?'
그 말대로 변화가 있었다.
허공에 문이 생겼다.
'왔다!'
시몬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난데없이 허공에 떡 하니 생겨난 문 하나. 커다란 게이트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방문처럼 생겼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하얀 배경이 보인다. 그 너머로 느릿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등까지 내려오는 흰 머리카락.
창백한 피부.
그리고 회색 가운을 몸에 걸친 남자.
쇄골부터 상체가 훤히 드러나 있고, 맨발이며 몸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가운 안은 알몸인 듯했다. 마치 욕탕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모습이다.
'저 사람이.......'
시몬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린다.
통제 불능.
수많은 사건 사고의 주범.
마음에 안 들면 죽이고 보는 쾌락 살인마.
심지어 키젠 학생 시절에는 교수까지 살해한 죄가 있는 제5군단장.
'매그너스 알반.'
그는 한 손에 사슬 같은 것을 쥐고 있었다. 그 사슬을 잡아당기자, 문 안에서 누군가가 끌려오듯 모습을 드러냈다.
'!'
그것은 검은 깃털을 가진 존재였다.
절반은 인간, 절반은 새.
썩어있는 깃털 날개로 전신을 가렸고, 다리는 조류의 발처럼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얼굴은 중년 남성의 모습. 부리는 없지만 맹금류 같은 눈빛이 번뜩인다.
다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곳곳에서 피가 줄줄 흐르며 독한 냄새가 났다.
그가 바로 전 7군단 소속의 에이션트 언데드 아케뮤스. 하피에게서 변조된 언데드인 '스컬윙'들을 이끄는 공중전의 제왕이다.
팽팽!
매그너스가 사슬을 한 번 더 당기자, 목에 걸려 있는 사슬 때문에 아케뮤스가 휘청거렸다.
시몬은 피어의 사념에서 진득한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흠-"
매그너스는 거미줄에 묶여 있는 좀비집사 쪽을 한번 보고는, 주변 구석구석으로 시선을 던졌다.
"분명 혼자 오라고 했을 텐데?"
시몬은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매그너스가 히죽 웃었다. 시몬도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암흑연합의 핵심.
두 군단장이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폭풍전야.
드넓은 벌판에 두 남자의 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며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어느 쪽이든 먼저 아공간을 여는 순간, 이 벌판 전체가 언데드로 새까맣게 뒤덮이며 전장으로 변하리라.
"싸가지 없는 새끼."
매그너스가 혀를 차듯 끌끌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나는 네 군단장 선배이자 키젠 선배야. 거의 직속 선후배 관계라고 우리는."
"당신 같은 선배 둔 적 없어."
시몬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보다, 왜 계속 날 노리는 거지?"
"알지 않나."
매그너스가 조소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이션트 언데드를 손에 넣을 거다."
'......역시.'
매그너스가 시몬이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가 크리라.
시몬이 체포당한 뒤에 다른 네크로맨서들에게 군단장 자리가 넘어가면 안 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자신의 야망에 충실한 매그너스이기에 오히려 시몬은 안심할 수 있었다.
"모든 에이션트 언데드를 손에 넣는다고 했지?"
시몬이 경계 어린 눈으로 매그너스를 응시했다.
"당신의 그 야망 때문에 군단장의 전체 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오호, 신성연방과의 전력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생각하는 거냐? 생각은 기특하다만."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런 문제 없다. 나 혼자 7명 몫을 하면 돼."
시몬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이건 뭔 미친 소리야.
"알고 있나? 원래 군단장은 일곱 명보다 더 많았다."
매그너스가 맨발로 황무지 바닥을 휘휘 걸었다.
"반면 성녀는 일곱 명으로 쭉 고정되어 내려왔지. 그리고 성녀는 죽는 족족 새로운 성녀가 탄생하지만 군단장은 아니야. '관리자'가 파괴당하면 군단장의 자리도 줄어들어."
"그러니까 더더욱!"
"그러나."
매그너스가 시몬의 말을 잘랐다.
"과거엔 성녀 한 명을 상대하려면 군단장 2~3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군단장과 성녀는 거의 같은 역량이라 보고 있지. 격차가 점점 줄어드는 거야. 이유가 뭐겠나?"
"......."
이런 군단장의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시몬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뻔하지! 지금은 한 명의 군단장이 다수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거느리기 때문이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군단장은 '수의 한계'가 없어. 일곱 명이서 일곱 군대를 거느리나, 한 명이서 일곱 군대를 거느리나 똑같다! 모든 군단장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을 때."
매그너스의 눈이 야망으로 번들거렸다.
"군단 따위가 아니라 비로소 모든 언데드의 왕! 프리스트들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거다!"
시몬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건 당신의 생각일 뿐이잖아."
"네놈은 아직 초짜라서 감이 없을 뿐이야. 더 배워야 해. 식견도 넓히고, 더 더 많이 배워야 해."
매그너스가 검지 끝으로 제 미간을 툭툭 건드렸다.
"그런 의미에서 직속 선배로서 한 가지 알려줄까? 에이션트 언데드의 진정한 사용법을."
"!"
그 순간, 거미줄과 저주부적에 묶여 있던 좀비집사가 두 눈에 흰자를 보이더니,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다.
시몬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뚜둑!
뚝!
좀비집사의 몸이 거인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거미줄도 풀리기 시작했다.
"시몬!!"
어느새 카쟌이 환상 커튼을 걷고 튀어나와 소리쳤다.
"협상 결렬이다! 놈을 잡아!"
"아, 넵!"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고쳐잡은 순간.
-우에에에에에에엑!
비대해진 좀비집사가 입에서 허연 액체를 내뱉었다.
시몬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깨끗한 물 위에 하얀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순식간에 이 벌판 전체를 뒤덮었다.
시몬뿐만 아니라, 매그너스와 카쟌 쪽도 하얀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무슨!"
끄드득.
끄드드드득.
이내 하얀 바닥에서 무수한 좀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펜타모니엄에서 애를 먹었던 좀비집사의 정예병들, '백귀'의 형상을 한 좀비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수를 한 번에!'
"하하하하하하!"
매그너스가 어깨를 들썩이며 광소했다.
그때 하늘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학생회장 판타서스가 내려왔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 노도(怒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검은 파도가 하늘을 가리며 내려오자, 매그너스는 두 손을 가운 안에 넣은 채 씩 웃으며 고개만 들었다.
카작 카작 카작!
그의 그림자가 부풀어 오르며, 눈과 이빨이 달린 무수한 그림자 괴물이 되어 내려쳐지는 파도를 막아냈다.
콰콰콰콰콱!
바다와 그림자.
두 종류의 힘이 맹렬하게 부딪히는 모습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연상케 했다.
"네가 그거군."
매그너스가 판타서스를 보며 나른하게 눈을 빛냈다.
"죽음의 마녀가 요즘 밀고 있다는 그 '걸작'인가. 나를 졸립게 만들다니, 과연."
탓!
그때 매그너스가 시선을 돌렸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들고 역으로 매그너스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아!"
"터프한데?"
매그너스가 히죽 웃으며 손을 세우자 이빨 달린 그림자가 모여들어 그의 손을 감쌌다. 이내 그의 손에도 괴이한 디자인의 흑검이 들렸다.
이내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졌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 군단장이 검을 맞부딪히는 순간, 세계가 뒤흔들리고 구름이 갈라지며 지축이 일그러졌다.
시몬은 두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소리쳤다.
"지금이야! 프린스!"
터업!
어느새 튀어나온 프린스가, 결박되어 있던 아케뮤스를 데리고 달렸다.
[핫하! 아케뮤스는 받아간다!]
카가각!
한 손으로는 판타서스의 파도와 맞서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시몬과 검을 맞댄 매그너스가 피식 웃었다.
"아- 괜찮아. 난 진심으로 포로 교환을 할 생각으로 왔으니까."
"뭐?"
꾸륵 꾸륵.
어느새 축 늘어진 좀비집사가 하얀 늪 안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케뮤스는 돌려주마. 내 말을 듣지도 않는 놈이고, 어차피 언젠가는-"
그의 눈빛이 소름 끼치게 번뜩였다.
"[전부 내 것이 될 테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그너스의 몸이 바닥의 하얀 늪으로 쑥 꺼지며 사라졌다.
시몬이 휘두르는 대검과 판타서스의 파도가 그가 사라진 바닥을 강하게 강타했지만, 애꿎은 바닥만 갈라질 뿐이었다.
"놓친 건가!"
판타서스가 아쉬운 듯 소리쳤다. 매그너스가 사라지자, 하얀 바닥도 걷히며 주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몬이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케뮤스! 정신 차려! 아케뮤스!]
프린스가 기절한 아케뮤스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시몬도 얼른 그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주위에 숨어 있던 에르제베트도 합류했다.
'......지독하네.'
곳곳에 고문의 흔적이 보인다.
온몸이 검은 피투성이에, 목에 찬 목걸이는 안과 밖 모두 가시가 달려 있다. 몸 곳곳에서 데인 흔적과 할퀴어진 상처도 보인다.
시몬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고문을 받으면서도, 매그너스 군단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끝까지 버틴 거야?'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아케뮤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
두 팔이 올라와 시몬의 어깨를 짚고 자신 쪽으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깜짝 놀란 시몬의 몸이 확 끌려갔지만, 피어가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커다란 아케뮤스의 얼굴이 가까워지며 진한 적갈색의 눈동자가 시몬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아.]
이내 그 적갈색의 눈동자가 감격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빼닮으셨습니다.]
"네?"
[리처드 님과 꼭 빼닮으셨습니다.]
아케뮤스의 눈동자에는 어린 시절의 키젠 교복을 입은 리처드와 시몬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었다.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도련님!]
쿵!
커다란 몸이 움직였다. 그가 자리에 엎드리더니 이마를 쾅! 소리가 나게 지면에 박았다.
[소신 아케뮤스, 7군단의 합류가 너무나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시몬의 눈이 감격, 그리고 안도감에 휩싸였다. 피어가 비로소 큰 소리로 웃어댔고 프린스와 에르제베트는 은근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고생했어요 아케뮤스. 일단 몸을 좀 추스르세요."
초대형 아공간을 연 시몬이 피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피어가 다가가 아케뮤스를 부축했다.
[다시 함께 싸우게 되어 즐겁구만! 아케뮤스!]
아케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네. 오랜 전우여.]
드디어.
네 번째 에이션트 언데드가 7군단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