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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65화 (36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65화

시몬이 벤야를 따라 들어온 곳은 로체스트의 작은 술집이었다.

오래되어 거뭇거뭇한 때가 묻어 있는 나무집 안은 흑맥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람 냄새나는 곳. 키젠 학생들이 가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한잔 걸치기에 좋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시몬이 들어오자마자 떠들썩해지는 테이블 한 곳이 있었다.

"어서 와라 시몬!"

턱수염 남자가 맥주잔을 들고 유쾌하게 인사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두 명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

시몬에게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벤야랑 같이 어시장에 방문했을 때 시몬이 보유한 해양 언데드, '데이모스'를 제작해 준 바닐라의 언데드 장인들.

"디에고 경! 마르코 경! 로드리온 경!"

아직도 이 세 사람에게 야단맞아 가며 마법진을 만들던 기억이 선명했다.

시몬이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 리더격인 디에고가 일어나 두 팔을 벌렸고 시몬도 그 품에 안기며 두 사람이 얼싸안았다.

"하하하! 오랜만인데! 키가 좀 컸나?"

"그런가요?"

"오랜만이에요. 시몬 경."

"친구야. 우리도 좀 봐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났기에 반가움은 더 컸다. 네 사람은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보이지도 않아요? 아저씨들."

뒤에서 벤야가 다가오자 장인들은 '아가씨'하고 부르면서 깍듯하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뒤이어 시몬이 물었다.

"깜짝 놀랐어요! 로크섬엔 어쩐 일이에요?"

"겸사겸사 키젠 측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지. 그리고."

디에고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네게 볼일이 있는 사람은 저기 있다."

테이블 사이로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행 지난 낙엽색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중년 남성. 그가 중절모를 벗어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시몬 학생. 저 기억하시죠?"

"그럼요! 오랜만이에요!"

아공간 장인, 겔런 이클립스.

시몬의 '오버로드 전용 아공간'을 제작해준 남자였다.

시몬은 조금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렇게 다들 모이다니.'

아공간이든, 데이모스든, 여기 있는 모두가 시몬에게 기술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준 엔지니어들이었다.

"시몬 학생에게 이걸 전해주러 왔습니다."

겔런 이클립스가 테이블에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반지 상자 정도의 크기였는데, 겔런이 손가락으로 케이스를 툭 건드렸다.

팟!

그러자 상자가 열리더니 공중에 아공간이 벌어졌다.

그 안에는 심장이 있었다. 마치 마력적 효과를 강조하듯 푸르스름한 광채를 뿜어내는 심장.

"주문하신 헤르세바의 심장 되겠습니다."

"아!"

시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무려 2만5천 골드짜리 물건이 눈앞에 있다.

"라이프베슬 심장은 보관과 운송에 극도의 주의가 필요해서요. 이렇게 온도와 습도 조절이 가능한 아공간으로 옮기거든요. 그리고 하나 더."

겔런은 아공간째로 시몬에게 심장을 건네주며 그 옆에 있는 물건을 가리켰다.

"헤르세바의 두개골입니다. 어차피 심장과 연동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니 판매자 측에서 무료로 제공한 것 같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겔런이 작게 웃었다.

"물론 작업이 다 끝나면 아공간은 반납하셔야 해요."

"그럼요."

"제가 만든 오버로드 아공간은 잘 쓰고 있죠?"

시몬에 왼손에 낀 반지를 보이며 씩 웃었다.

"네, 이 녀석 덕분에 숱한 위기를 넘겼어요."

이번에는 바닐라 장인의 리더인 디에고가 다가왔다.

"이건 서비스야."

그러면서 마법진이 그려진 판자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다 뭐예요?"

"리치 만든다며? 이야기 듣고 세팅 마법진 준비해 봤다. 네 칠흑을 불어넣기만 하면 돼."

시몬의 눈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뭘."

디에고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하다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우리가 다 달라붙어서 보조라도 해주고 싶긴 한데, 알지? 리치 제작은-"

"타인의 칠흑이 섞이면 안 되는 거. 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아론에게 배웠다.

네크로맨서 상점에서 조립형 리치가 없는 이유.

라이프베슬은 순수하게 한 종류의 칠흑으로 작업해야 했다. 다른 불순물이 섞이면 나중에 칠흑 전환 값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서 만들어야 하는 언데드였다.

'긴장되네.'

예전엔 여기 있는 장인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시몬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그래도 시몬은 이 술집에서 큰 에너지를 받아가는 걸 느꼈다.

장인들이 손뼉을 치며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 * *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시몬이 깍듯하게 인사하고 술집을 떠났다. 네크로맨서 장인들이 '웃차'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맥주 다 식었잖아?"

"새 걸로 시켜!"

"겔렌 장인도 같이 앉아서 드시죠."

"아, 그래도 되나요?"

네 아저씨들이 왁자지껄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옆자리에서 맥주를 홀짝이던 벤야가 두 뺨이 발그레해진 채로 다가왔다.

"별일이 다 있네요."

"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디에고가 물었다.

"키젠 측 일이 있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렇게 시몬을 보러 온 거요."

"흠흠."

디에고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디에고는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시몬에게 마법진 판자를 건네줬지만, 사실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만든 결과물이었다.

"굳이 시몬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죠? 혹시 뭐, 그런 거예요? 키젠의 특례 1번이니까 미래 권력에 투자?"

"하하하! 아가씨!"

디에고가 큰 소리로 웃으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아가씨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가끔 그렇게 바닐라의 피를 물려받은 티를 낸다니까. 우리 네크로맨서들은 변태예요.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그럼......?"

"명검이 주인을 선택한다는 말이 있죠. 그럼 그 명검을 만드는 사람은? 다를 바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작품을 써주는 것만큼 좋은 건 없습니다. 보답을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시몬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인간적인 매력에 반해서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건 선의도 아니고, 계산적인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답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요?"

디에고가 두 팔을 벌렸다.

"자기만족이지 뭐겠습니까!"

"하하하!"

"벌써 취했나 취했어!"

타앙!

벤야도 덩달아 큰 소리로 웃으며 아저씨들 술판 사이에 쏙 끼어들었다.

"조아 조아! 오늘은 나도 달릴 거야!"

그녀가 맥주잔을 번쩍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배, 시몬 폴렌티아를 위해!"

"건배!"

다섯 개의 잔이 맞부딪혔다.

* * *

시몬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피어의 유적'으로 들어왔다.

바로 오늘 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장소에서 리치를 만들 생각이었다.

[군단장니임~]

에르제베트가 제일 먼저 뛰어왔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아케뮤스가 깍듯하게 허리를 꺾으며 인사했다. 카드게임을 하고 있던 프린스는 '왜 이렇게 늦었어!' 하고 화를 냈다.

[크흐흐흐! 왔느냐 소년!]

피어도 망토를 휘날리며 다가왔다. 시몬도 빙긋 웃으며 그를 따라 중앙의 제단으로 향했다.

"예전 생각나네요."

시몬이 제단 위에 겔단에게 받은 아공간과, 각종 세팅 마법진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막 키젠에 입학했을 때 여기서 피어를 조립했었는데."

[크흐흐! 그랬지!]

시몬은 물건들을 내려놓고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준비는 충분히 했나?]

"네. 저도 이제 세 개의 띠를 만들 수 있어요. 실험용 심장이긴 했지만."

[좋다!]

네 명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거리를 조금 두고 시몬을 둘러쌌다.

"시작하겠습니다."

더 시간 끌 것도 없었다. 제일 먼저 방과 후 BMAT에서 얻은 '크리스탈 메이지'의 포장을 뜯었다.

차악!

착!

안의 내용물을 꺼내 탑을 쌓아 올리듯 스켈레톤을 조립해 나갔다. 스켈레톤 조립은 시몬이 가장 잘하는 분야였고 순식간에 완성에 이르렀다.

[군단장님! 두개골도 크리스탈 스켈레톤으로 하시겠어요?]

옆에서 밀착 보조하던 에르제베트가 물었다.

"아니, 그건."

시몬이 아공간에서 심장 옆에 놓인 헤르세바의 두개골을 꺼냈다.

"이걸로 하자."

원래는 몸체 전체를 크리스탈 스켈레톤으로 하려고 했지만, 더 좋은 재료가 왔으니 방향을 바꿨다.

반짝반짝 수정이 자라난 스켈레톤의 몸체 위에, 그냥 평범하게 생긴 두개골을 올리니 조금은 언밸런스한 모습이긴 했다.

'이제 소환 마법진 작업.'

시몬은 시트지 위에 커다랗게 마법진을 그린 다음, 장인들에게 받은 마법진 판자들도 전부 꺼냈다.

시몬은 판자에 그려진 내용을 살피고는 조금 감격했다. 그냥 간단한 마법진 몇 개라고 했는데, 상당히 고난도의 마법진도 들어 있었다.

'진짜 고마워요. 장인 여러분!'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하며 시몬은 판자의 마법진에 칠흑을 흘려 넣었다. 장인들의 도움 덕분에, 시몬은 집중력이나 칠흑을 크게 안배하고 순식간에 소환 마법진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준비해 주세요!"

하지만 리치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라이프베슬이다. 몸체가 있어도, 소환 마법진이 있어도 소용없다.

이 라이프베슬을 완성해야 비로소 리치라는 언데드를 일으킬 수 있다.

시몬은 아공간 반지에서 주문한 심장을 꺼냈다.

[오!]

[멋있는데.]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수군거렸다.

단지 심장을 아공간에서 꺼내는 것만으로도 유적이 확 밝아지고, 마나로 충만해지는 게 느껴진다.

이걸로 리치를 만들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시몬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을 한번 풀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리치의 라이프베슬 제작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고난이도의 제작 난이도는 물론, 값비싼 재료를 써도 실패할 확률이 높기에 어지간한 소환술사들도 리치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군단장님! 여기 마법진 꿰맸어요!]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주위에서 시몬을 돕고 있었다.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군단장과 칠흑을 공유한다. 네 사람 모두 시몬의 검푸른 칠흑을 일으키며 작업하고 있었다.

군단장만이 쓸 수 있는 일종의 꼼수. 에이션트 언데드들도 이번 리치 제작을 위해 각자의 주특기를 갈고 닦았다.

시몬이 심장에 새긴 마법진 위에, 에르제베트가 거미줄에 칠흑을 입혀서 수식 몇 부분을 고정하고 있었다. '스톡'이라는 고난도 작업을 에르제베트는 자신의 능력으로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도련님.]

프린스와 아케뮤스는 공중에 떠 있는 마법진을 온전히 유지했으며.

[회로를 다듬는 건 내가 하지.]

피어가 마법진에 간섭해서 칠흑회로를 틀었다. 이어서 시몬이 룬어를 새기고 수식을 이어나갔다.

'할 수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

리치를 만드는 지금도 혼자가 아니다.

시몬은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초소형 마법진을 그렸다.

몇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심장의 마법진과 소환 마법진을 연동.'

팟!

팟!

두 개의 마법진에 동시에 불이 들어왔다.

'첫 번째 띠!'

마법진이 일렁이며 칠흑을 뿜어내더니, 그 칠흑이 '띠'의 형상으로 변하며 심장을 둘러쌌다.

'두 번째 띠!'

이내 두 줄의 띠가 심장을 둘렀다.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 쭉쭉해!]

프린스와 에르제베트의 모습이 흔들리자 시몬은 잠시 눈앞을 손등으로 닦았다.

잠깐 어지럼증이 느껴졌지만 쉴 수는 없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고 있다. 한번 아공간에서 심장을 꺼낸 이상, 빠르게 모든 걸 해치워야 한다. 심장을 라이프베슬로 만드는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성능도 떨어진다.

'이제 세 번째 띠!'

모든 의식을 한 점으로 집결시킨다. 정신이 확장되고 감정이 고양된다.

어느새 시야도 회색빛으로 변했다.

눈앞에 놓여 있는 헤르세바의 심장이 서서히 느리게 뛰기 시작하고, 깊은 심해에 가라앉은 것처럼 모든 소리가 먹먹한 무의식 속에서 잠겨 가라앉는다.

완벽한 몰입 상태.

흑마법의 효과로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두 개의 띠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지금! 지금 해야 해!'

시몬의 팔이 움직였다. 너무 집중해서 그럴까, 아론이 세 번째 띠를 어떻게 만들라고 했는지 그 조언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훤했다. 손이 알아서 척척 움직여 준다.

두 개의 띠와 심장의 박동 속도를 의식하며, 세 번째 작은 띠를 그렸다 멈추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마치 심장 박동의 패턴과 같게 이어진다.

시간을 느끼는 감각도 잊을 정도의 끊임없는 집중력 싸움.

'후우.'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시몬이 손을 뗐다.

세 개의 띠가 일렁이며 완성되어 있었다. 아론이 보여줬던 바로 그 자태가 눈앞에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시몬은 간단한 마법진 하나를 심장 앞에 그렸다. 간단했다. 이 마법진은 그냥 '버튼'이었다.

시몬이 주문을 외웠다.

<서먼 리치(Summon Lich)>

그러고는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모든 요소들이 쳇바퀴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심장은 뛰고 띠는 회전한다.

그리고 아까 완성해 놓은 해골이 스스로 움직이더니 심장을 들어 올렸다.

프린스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어! 뭐야?]

[크흐흐. 가만히 지켜봐라!]

그러곤 해골이 스스로 자신의 가슴뼈를 열어 그 중앙에 심장을 소중히 위치시켰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의 박동이 마치 북처럼 들린다. 돌아가는 두 개의 띠에 마나가 끌려들어 온다.

마나가 띠를 타고 혈관처럼 흐르다가, 세 번째 띠와 심장을 통과하는 순간 검게 변한다.

'됐어!'

마나의 칠흑 변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변환 된 칠흑이 크리스탈 스켈레톤 전신을 휘감으며 지나가자, 다리로 몸을 일으키고 팔을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

마침내 칠흑이 두개골에 그려진 마법진에 도달하는 순간.

파앗!

이 리치에게 '정신'이 깃든다.

[음.]

두개골의 마법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아?]

스켈레톤이 삐걱거리며 크리스탈로 뒤덮인 몸을 움직인다. 그러다 두개골을 갸웃하며 시몬을 보았다.

'......!'

시몬은 너무 긴장해서 덜덜 떤 채로 앞만 보고 있었다. 이내 리치의 턱뼈가 벌어졌다.

[그래, 당신이 내 창조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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