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66화
[그래, 당신이 내 창조주구나?]
역사적인 순간.
시몬은 본인이 만들어낸 이 언데드를 바라보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말하고 있다.
움직이고 있다.
수정으로 덮인 뼈대에, 얼굴은 그냥 평범한 두개골을 가진 이 리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더니, 뼈밖에 없는 다리를 꼬며 머리카락도 없는 빈 허공을 휘어 넘겼다.
[그런데 창조주가 아직 어리네? 웃기다. 몇 살이야?]
"......?"
이 리치는 여성형 언데드인가.
리치가 꼰 다리를 풀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근- 두근-
라이프베슬이 북소리처럼 박동하고 있다. 주위의 마나를 끌어들여 칠흑으로 만들어 전신과 마법진에 공급하고 있다.
시몬이 사념에 접속하지 않아도, 칠흑을 부여하지 않아도, 스스로 활력을 유지하는 언데드.
'이걸 내가 만들었다니!'
흥분이 차올라서 진정할 수가 없다.
소환학을 배운 뒤로 이렇게 '경외감'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은 처음이다.
주위에 에이션트 언데드들만 없었다면 신나서 마구 소리라도 질러대지 않았을까.
그때 가까이 다가온 리치가 뼈밖에 없는 손가락으로 시몬의 턱을 세웠다.
[귀엽긴 한데, 연하는 쫌. 내 취향은 아니네. 수비범위 초과야.]
"......?"
가만히 있었는데 내가 만든 피조물에게 차였다.
그때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에르제베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감히 어디서 새파랗게 어린 게! 우리 군단장님의 몸에서 손 떼세요!]
리치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야? 저 거미는? 왜 거미가 인간 교복 입고 있어? 너무 웃겨.]
에르제베트에 이마에 빠직하고 굳은살이 배겼다. 아케뮤스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진정하라고 했지만, 에르제베트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제 막 만들어진 언데드 따위가 에이션트 언데드에게 어딜 감히! 만들어지자마자 소멸당하고 싶나요?]
[이상한 언니네. 언데드 사이에서도 죽은 순서대로 서열 같은 거 있어?]
"그만, 그만."
시몬이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내 이름은 시몬 폴렌티아라고 해. 내가 널 만들었어. 널 뭐라고 부르면 될까?"
사실 그렇게 말하며, 시몬은 은근히 자신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지만.
[헤르세바.]
리치가 자신의 가슴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헤르세바야.]
비싼 심장을 써서 그럴까,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엄청나게 강한 리치였다.
"혹시 생전의 기억이 남아 있어?"
[당연하지!]
헤르세바가 팔짱을 끼고 미소 지었다. 아니, 미소 지었다고 시몬만 생각했다. 피어와는 달리 저 두개골은 표정 변화가 없다.
[다만 이제 언데드가 됐잖아? 이제는 그냥 아무래도 좋은 느낌이야! 난 다시 태어났어! 무거운 육체에서 해방된 느낌! 기분 좋은데?]
그녀가 '라라라' 노래를 부르며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뒤로 비켜주었고, 시몬은 머리를 긁적였다.
[야, 시몬!]
프린스가 인상을 굳히며 시몬을 보았다.
[제대로 만든 거 맞아? 어쩐지 나사 빠진 리치가 만들어졌잖아!]
"부, 분명 제대로 만들긴 했는데."
헤르세바는 과거에 발레리나였던 걸까. 우아하게 빙글빙글 춤을 추던 해골이 손가락으로 벽을 툭 댔다.
[응?]
아무 변화가 없자 다시 벽을 툭 건드리다가, 강하게 여러 번 손가락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내 능력 어디 갔어! 왜 안 써지는 거야?]
"아, 리치는 지팡이로 마법이 발현하는 시스템이야. 곧 지팡이랑 연결해 줄게."
[놀랐잖아! 빨리 해줘!]
시몬은 마지막 재료를 꺼냈다.
고급스러운 외형의 긴 상자. 케이스를 여는 순간 '낄낄낄' 소리를 내며 자율 행동 지팡이 '아렐델루'가 날아올랐다.
"잡아주세요."
괜히 또 쏘다니면서 귀찮게 할까 봐, 피어에게 아렐델루를 붙잡고 있도록 부탁했다.
피어의 손에 잡히니 아렐델루는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좋아. 내가 가진 최고의 지팡이까지.'
시몬은 마지막 마법진을 그렸다.
* * *
시몬은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벤야 바닐라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아, 지팡이? 그거야 뭐 네가 가진 가장 고품질의 지팡이를 쓰면 돼.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심장을 헤르세바의 심장으로 정했으니까, 재료와 가장 잘 어울리는 지팡이를 따로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그 심장과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
확실히 그렇긴 했다.
-원래 '리치의 삼요소' 배치는 그냥 본인이 가진 최대 품질의 재료 세 가지를 놓고 최고의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 혼자 작업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라이프베슬 성공률도 그렇고, 리치 제작이 운이 많이 따라야 하는 편이긴 하지.
-원래 그런 거였군요.
결국 시몬은 아렐델루를 리치가 사용할 지팡이로 정했다.
시몬이 가진 가장 비싼 지팡이.
내부에는 흑마법과 저주도 내정된, 정말 희귀한 아티펙트였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벤야도 그게 최선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하지만.
[끼야아아아아아악!]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시몬은 그 결정을 아주 살짝 후회했다.
[이, 이게 감히 내 몸을 뺏으려고 해? 죽었어!]
-낄낄낄낄!
사념이 서로 연결되자마자 리치와 지팡이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헤르세바가 워낙 자신의 정체성이 강하고, 아델렐루 또한 의식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두 개체가 하나의 몸을 놓고 미친 듯이 싸웠다.
파직! 파직!
곳곳에서 불똥이 튀고 칠흑이 뒤엉키며 회오리처럼 변했다.
피어의 유적이 쿠르릉! 소리와 함께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쟤, 쟤들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벽에 딱 붙은 프린스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피어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사념연결을 시작한 이상, 우리가 끼어들면 둘 다 위험하다.]
난리도 아니었다. 지팡이와 리치가 서로 부둥켜안고 싸우고 있었다.
두개골이 '저리 꺼져!'라고 소리치다가 고개를 축 늘어뜨리더니 벌떡 고개를 들며 '낄낄낄!'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또 잠시 축 늘어지다가 '지팡이 따위가!'하는 헤르세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기를 30분 정도 반복한 후.
꽝!
거대한 폭발과 함께 소용돌이치던 칠흑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내 주위가 조용해졌다.
최대한 벽으로 물러난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프린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약속해, 시몬. 이 리치가 네 인생 마지막 리치였다고.]
[너무 비싼 재료를 때려 박아서 문제가 된 게 아닐까요?]
시몬이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누가 이겼지?'
폭발의 중심에 축 늘어진 리치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팡이가 보였다.
다행히 라이프베슬은 두근두근 뛰고 있는 걸 보니 멀쩡해 보였다.
[하!]
그때 헤르세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겼다! 내가 이겼어! 그 재수 없는 지팡이 놈을 물리쳤다고! 꺄하하!]
라고, 지팡이가 펄쩍펄쩍 뛰며 말했다. 그러다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는 딱 멈췄다.
[뭐야! 뭐야! 뭐야! 뭐야 이게에!]
헤르세바의 정신이 아렐델루에 들어가 있었다. 지팡이가 울부짖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내가 이 녀석 몸에?!]
하지만 아렐델루의 정신은 싸우다 소멸한 건지, 리치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몬이 얼른 다가가 리치의 상태를 살폈다.
멀쩡했다.
라이프베슬도 정상적으로 뛴다.
[일어나! 일어나 내 몸!]
헤르세바가 엉엉 울면서 리치의 몸을 움직였지만 라이프베슬만 뛸 뿐, 팔 다리는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망했어! 망했어! 이게 무슨 꼴이야?]
당황한 그녀가 공중에 날아다니다가 익숙하지 못한 몸 때문인지 벽에 쿵 부딪혔다.
"......?!"
그 모습을 본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방금, 지팡이에 부딪힌 벽이 황금으로 변했다.
[흑흑! 으아앙!]
쿵! 쿵!
지팡이 끝이 벽에 닿을 때마다 벽이 황금으로 변하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도 지팡이에 닿자 황금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시몬의 표정이 급격히 진중해졌다.
'이게 바로 헤르세바의......!'
벤야에게 들은 적 있다.
헤르세바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비쌌던 이유는, 던전 안에서 '이능을 쓰는 개체'였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사후에도 조치가 잘되어, 그 이능을 살린 채 두개골과 심장으로 발현한 아주 특별한 케이스였다고.
벤야는 두 가지 결과를 예측했다.
칠흑을 소모해 평범한 흑마법을 쓰는 리치가 되거나.
'......아니면 칠흑으로 이능을 쓰는 리치가 되거나.'
그의 온몸이 전율로 부르르 떨렸다.
시몬은 얼른 자신의 몸상태를 확인했다. 주위가 황금으로 변하고 있는데 자신의 칠흑은 소모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리치의 라이프베슬에서 칠흑이 소모되고 있다.
'역시!!'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여러 가설들이 세워진다.
이능 사용자는 네크로맨서가 되면 칠흑을 소모해서 이능을 사용한다고 한다.
세르네나 로레인, 네프티스도 그랬다.
그런데 방금 소환수가 이능을 사용했는데, 시몬의 칠흑이 아닌 리치의 라이프베슬의 칠흑이 소모됐다.
'대박이다.'
정신만 지팡이로 갔을 뿐, 리치로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거다.
'이러면 오히려 더 좋은 거 아닌가?'
리치의 가장 큰 약점은, 라이프베슬이 파괴되면 전력소모와 재정소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환술사들은 리치를 결정적인 순간에만 꺼내거나, 스스로 방어 흑마법을 둘둘 두르게 한 뒤에 활용했다. 그만큼 공격력이 떨어지지만 감수했다.
하지만 그런 리치의 고질적인 약점이 사라진다면? 시몬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으흑흑! 망했어! 나 떠날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지팡이가 된 헤르세바 본인은 절망하고 있었다. 그녀가 공중으로 날아가려 했다.
"자, 잠깐만!"
시몬이 훌쩍 뛰어서 지팡이를 붙잡았다. 헤르세바는 여전히 엉엉 울면서 공중으로 치솟았다.
'우왓!'
시몬이 두 손으로 지팡이를 붙들었다.
달빛이 내려오는 천장을 지나 순식간에 피어의 유적을 빠져나온 헤르세바가 끝도 없이 올라갔다.
'높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시몬이 다급히 지팡이 몸체를 툭툭 때리며 말했다.
"진정해! 헤르세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내 예쁜 몸이 어떻게......!!]
그 해골도 그렇게 예쁘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팟. 하고 지팡이에 칠흑이 꺼졌다.
'아차!'
본체인 리치와 너무 멀어져서 칠흑 공급이 끊긴 것이다.
시몬과 헤르세바의 몸이 크게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중력에 의해 떨어졌다.
[꺄아아아악!]
시몬은 지팡이를 품에 안은 채 눈을 질끈 감고 등을 돌렸다.
곳곳에서 나무에 긁히고 부딪히는 게 느껴진다. 시몬은 전신에 칠흑을 끌어모아 등을 보호했다.
쿵-!
시몬과 헤르세바는 추락한 곳에서 커다란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으윽."
시몬이 한쪽 눈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헤르세바는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이제보니 아렐델루가 베이스라서 지팡이에 눈과 입이 달려 있는 게 보인다.
'여긴 또 어디야?'
금지된 숲은 생각보다 크고 넓다. 그리고 방금처럼 큰 소리를 내는 건 위험했다.
순찰하던 파수꾼들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크르르르.
-크르르.
금지된 숲에는 몬스터가 많다.
곳곳에서 소란을 들은 웨어울프들이 몰려들었다.
[히익! 느, 늑대!]
헤르세바가 폴짝 뛰어올라 시몬의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시몬이 진정하라는 듯 그녀의 몸체를 슥슥 쓸었다.
"걱정 마, 헤르세바."
[뭐, 뭐 해? 빨리 쫓아버려!]
헤르세바를 손에 쥐는 순간, 시몬은 묘한 고양감에 차올랐다. 무엇보다 헤르세바에게서 다시 칠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본체와 거리가 가까워져서 그런 거구나.'
시몬은 침착하게 헤르세바를 한 손으로 잡고 검처럼 들어 올렸다. 웨어울프들이 경계하듯 자세를 낮췄다.
"헤르세바, 지금부터 네 힘으로 싸울 거야."
[뭐, 뭐?]
시몬이 씩 웃었다.
"네가 가진 이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