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67화
-크르르!
-그르르르르!
어둠으로 물든 숲에서 하나둘씩 튀어나오는 웨어울프들.
그것도 잘 자란 성체에, 이빨에 불그스름한 빛이 감도는 걸 보면 웨어울프 중에서도 특히 위험한 무리들인 것 같았다.
시몬이 지팡이가 된 헤르세바를 앞세우며 말했다.
"헤르세바, 지금부터 네 힘으로 싸울 거야. 네가 가진 이능에 대해 자세히 말해줘."
헤르세바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게 뭔 소리야?! 난 아직 네게 날 허락한 적이 없는데?]
"허락은 무슨!"
[앗! 아아! 강하게 붙잡지 마! 손에 땀 찐득해! 불결해!]
지팡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말이 많은 리치였다.
그때 자세를 낮추고 기회를 엿보던 선두의 웨어울프 하나가 기습적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헤르세바!"
시몬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가 '윽' 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더니 지팡이가 된 자신의 몸체를 번쩍 세워 들었다.
그러곤.
콩!
웨어울프가 아닌, 시몬의 정수리를 힘껏 지팡이 끝으로 때렸다. 동시에 웨어울프의 날카로운 발톱이 시몬을 강타했다.
쩡!
-깨갱!
웨어울프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마치 단단한 바위를 발톱으로 내리친 느낌.
어느새 시몬은 전신이 번쩍거리는 황금으로 변해 있었다. 동상처럼 굳어있던 그의 몸이 잠시 후 원래대로 돌아왔다.
"와!"
시몬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신을 차리자 달려들었던 웨어울프가 어느새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게 내 능력이야.]
헤르세바가 말했다.
[손에 닿은 만물을 황금으로 만들지. 장사치나 호사가들이 환장할 만한 힘 아니니?]
헤르세바가 스스로 움직여 바닥의 모래를 튀기자, 흩날리는 모래 입자들이 금빛으로 변해 공중으로 모여들어 여성의 모습을 이루었다.
아름다운 긴 머리의 여성, 아마도 헤르세바의 생전 모습이리라.
마녀처럼 지팡이에 걸터앉은 그녀가 손가락을 펼쳤다.
[황금화의 지속시간은 생물 삼십 분, 비생물은 일주일 정도? 언데드가 된 지금은 자세한 잘 모르겠네. 아! 그리고 이제 지팡이니까 손이 없구나!]
"굉장한데."
설명만 들어도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숨 고를 틈도 없이 또 다른 웨어울프가 후방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감 잡았지?]
찬란한 여성의 모습이 된 헤르세바가 시몬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지팡이를 쥔 손 위에 본인의 손을 포개어 올렸다.
"그래."
두 사람이 달려오는 웨어울프를 향해 동시에 지팡이를 내밀며 소리쳤다.
"황금화!"
[황금화!]
쩡!
웨어울프가 도약한 자세 그대로 황금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헤르세바의 눈이 반짝였다. 난데없이 황금으로 변한 늑대가 공중으로 수십 미터 넘게 솟구쳐 올렸다.
[내가 변신시킨 황금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황금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웨어울프는 공중에 높이 솟아오른 황금화 상태가 풀렸다. 그대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니 바위산에 부딪혀 즉사했다.
[그리고 헤엑! 헤엑! 기왕이면 생명체는 황금으로 만들지 마! 힘들어 죽겠으니까!]
"오케이. 메인은 사물의 황금화, 그리고 컨트롤."
헤르세바가 손끝으로 이마를 퉁기는 시늉을 했다. 여성의 형태를 이루고 있던 모래가 무너져서 바닥에 내려앉았다.
확실히 감을 잡은 시몬이 헤르세바를 두 손으로 쥐고 자세를 낮추었다. 격분한 세 마리의 웨어울프들이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다.
'황금화!'
시몬이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때리자, 반경 수 미터가 황금의 땅이 되었다. 탄탄한 흙바닥을 밟고 돌진하던 웨어울프들이 빙판에 올라온 것처럼 미끄덩거렸다.
'그리고 컨트롤!'
바닥에서 지팡이를 살짝 떨어뜨린 다음, 다시 한번 바닥을 내리쳤다.
푸욱! 푹!
황금바닥이 뾰족하게 올라와 웨어울프들의 복부를 찔렀다. 일격에 배를 뚫고 등까지 삐쳐나오며 즉사시켰다.
[잘하는데! 꼬마.]
시몬은 나직이 탄성을 흘리며 자신이 일으킨 가시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가시가 아니라, 뾰족한 건축물의 지붕처럼 보였다.
"이상하네. 난 이런 걸 떠올리고 컨트롤한 적 없는데."
[명령은 네가 내리지만 결국은 내 힘이니깐.]
시몬은 만족스러웠다. 반응성도 좋고 위력도 좋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나 자신의 칠흑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점.
이건 리치의 힘이다. 방금 싸운 것도 리치고, 어떻게 보면 시몬은 칠흑 한 줌 쓰지 않고 지팡이만 휘둘러서 몬스터를 잡은 것이다.
'이거라면......!'
이전처럼 친위대를 쓰고 힘들어서 전투불능이 될 일도 없고, 온 힘을 다해야 할 때는 친위대와 황금화 이능을 함께 쓸 수 있다.
전투 지속력이 떨어지는 지금의 시몬에게 있어 최고의 소환수였다.
'?'
그런데 시몬은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헤르세바를 쥐고 있는 오른손에서 팔까지, 검은색과 황금색이 뒤섞인 리본, 혹은 붕대 같은 것이 일정 거리를 두고 빙빙 회전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흠?]
다시 주위의 모래입자로 여성의 모습이 된 헤르세바가 턱을 쓸었다.
[황금왕의 도포. 황금왕의 상징이야. 원래는 내가 능력을 쓸 때 내가 나오는 건데, 저 옷이 이상하게 네 쪽으로 갔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 시몬이 자신의 팔을 덮은 이상한 붕대를 만져보았다.
재질이 금속 같으면서도 촉감은 섬유였다. 그리고 오른팔에서 점점 몸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게 네게도 황금도시의 권한이 있단 증거야.]
"? 생전 처음 듣는 말이라 못 알아듣겠어."
[이해시켜 줄까?]
순간 헤르세바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계속 능력을 써봐 꼬마야. 황금왕의 도포가 네 전신을 덮을 때까지.]
그러곤 그녀의 몸이 다시 흩어져 바닥에 내려앉았다.
시몬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의 웨어울프들을 상대로 황금화 능력을 연달아 사용했다.
그렇게 웨어울프를 10마리 정도 제압할 즈음.
[좋아. 이 정도면 됐어. 날 바닥에 일자로 내려놔.]
시몬이 시키는 대로 헤르세바를 바닥에 꽂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
헤르세바를 중심으로 펼쳐진 황금의 대지에서, 뭔가가 솟구쳐 오르고 있다.
'뭐, 뭐야 저게?'
그것은 특이한 문화권 양식의 건축물들이었다.
이번에는 지붕뿐만 아니라 건물의 몸체까지 완전히 일어났다.
이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건물부터 문이 벌컥벌컥 열리더니, 그 안에서 뭔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갸갸갹갹갸갸갸갹!
붕대로 온몸을 두른 괴물들.
시몬은 저 괴물들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언데드 도감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은, 대륙 너머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그야말로 전설 속의 언데드.
'미라(Mirra)!'
헤르세바가 계속해서 능력으로 황금도시의 건물을 일으키고, 그 안에서 미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모두 시몬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흐흐! 이거 재밌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피어의 분신이 입을 열었다.
[굳이 리치를 만든다고 난리 치길래 의아하긴 했다만, 아무래도 대박을 뽑은 모양이다 소년!]
리치 헤르세바의 진짜 능력.
그것은 황금도시에서 무한히 미라들을 꺼내는 능력이었다.
[7군단에 전설 속 미라의 군대까지 합류했군! 축하한다, 소년!]
"......아."
시몬은 다소 어안이 벙벙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이 벅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흐음~ 언데드가 된 뒤, 능력의 사양이 바뀌긴 했네.]
이번엔 헤르세바가 말했다.
[원래 저런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건 내 이능에 없었어.]
"아, 그래?"
[황금화 능력의 스펙이 떨어지고, 리치로서 언데드를 만드는 능력이 새로 추가된 것 같아. 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웨어울프들은 다 쫓아냈지만, 미라들이 끊임없이 증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지된 숲은 학생 출입금지구역이고 시간도 늦은 새벽이다.
파수꾼들에게 들키면 곤란했기에 시몬은 헤르세바를 뽑아 손에 들었다.
그러자 황금도시와 미라들이 원래 이 세상에 없던 것처럼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참, 참. 아직 마지막이 남았어.]
"마지막?"
[응! 황금도포를 입고 있는 네 힘이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볼까?]
우우우우우웅!
지팡이에서 거대한 황금빛이 쏟아졌다.
[잘 들어. 내 이능의 1단계 권능은 황금화, 2단계 권능은 황금도시와 주민들이야. 하지만 내 진가는 이 3단계 권능부터지!]
어느새 시몬의 전신에 검은색과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도포가 온전한 형태로 입혀지는 게 보였다.
[보여줄게! 내 힘의 끝을!]
순간.
시몬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
모래와 황금이 뒤덮인 세상으로 초대받았다.
* * *
[군단장님! 군단장님!]
시몬이 눈을 뜨자, 걱정 가득한 에르제베트의 얼굴이 보였다.
'어.'
시몬은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시몬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주위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보였다.
[역시 마지막 권능은 무리였나 보네.]
그렇게 말하는 지팡이가 된 헤르세바는 거미줄에 묶여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입 다물어 리치!]
격노한 에르제베트의 입가가 거미처럼 벌어졌다.
[감히 군단장님을......!]
[나,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지팡이에 달린 눈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대단한 경험이었지? 꼬마야.]
"......."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시 꼭 그 세계에 가보고 싶은데."
[너무 지쳤사와요 군단장님. 오늘은 쉬셔야 해요.]
"응, 그래."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정말로 강력한 소환수를 손에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 날은 주말이었다.
피어의 유적에서 자고 일어난 시몬은 바로 로체스트로 향했다.
아공간 장인 겔런 이클립스가 일주일 정도 로크섬에 있을 거라고 했기 때문에, 벤야와 함께 그를 만났다.
"전용 아공간을 만들어달라구요? 오버로드 때처럼?"
시몬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네! 오버로드 때처럼 몸체는 안전하게 아공간에 있는데, 외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로요! 가능할까요?"
"어렵지 않죠. 이미 만들어본 거기도 하고."
겔런은 시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완전한 새 제품 제작.
그리고 보류작 하나를 전용 아공간으로 개조하기.
오버로드 아공간의 경우 후자였다.
"일주일 정도 계신다고 했으니까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걸로 부탁드려요!"
"그렇군요! 그럼 보류작 개조로 가닥을 잡아보겠습니다."
겔런 주섬주섬 갈색 주머니를 꺼내더니 와르르 테이블에 쏟아냈다.
번쩍번쩍 빛나는 수많은 액세서리들. 이게 전부 아공간이었다.
"괜찮은 게 몇 개 있군요."
엑세서리를 골라보던 겔런이 미소 지었다.
"아공간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기능이면 되는 거죠?"
"네!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하면서요!"
지금 헤르세바의 가장 큰 문제는, 리치를 움직이지 못하는 점이다.
원래는 리치로서 직접 지팡이를 휘두르며 이능을 사용해야 했겠지만, 현재 그녀의 정신은 지팡이에 들어가 있다.
시몬은 오버로드처럼 본체를 아공간 안에서 보관하고 지팡이만 쏙 빼서 싸울 생각이었다. 실수로 적의 공격이 라이프베슬에 적중하기라도 하는 순간, 2만5천 골드에 더해 미라 군단까지 날아가 버리는 거니까.
겔런은 주문한 아공간이 완성되면 벤야를 통해 알려준다고 말했다. 거기에 시몬이 원한다면 먼저 만들었던 오버로드 아공간도 AS 개념으로 개조해 주겠다고 해서 이쪽도 맡겼다.
'빨리 실전에서 헤르세바를 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온몸이 근질거려 미칠 것 같았다.
당분간은 이능 특훈에 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