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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70화 (37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70화

결투 대상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지목제 결투평가.

헥토르에게 있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노, 놀래라! 언제 온 거야?"

깜짝 놀란 딕이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헥토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해라, 버러지. 확실한 정보냐?"

"확실한 정보면 뭐, 어쩔 건데?"

그때 메이린이 눈에 힘을 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지목제라면 네가 시몬을 고르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시몬이 누굴 고를지는 자유야."

"마, 맞아요!"

카미바레즈도 용기를 내어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헥토르! 여기 있었어?"

"무슨 이야기 해?"

우르르르르!

이에 질세라 흩어져 있던 헥토르의 파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지원사격을 가하려는 순간.

"그만, 개인적인 이야기다."

오히려 헥토르가 팔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괜찮아."

시몬도 조원들을 물리며 앞으로 나왔다.

이내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섰다.

"......."

주위의 학생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두 사람의 투 샷은 언제나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느낌이 있었다.

헥토르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그래, 알겠어."

우뚝.

시몬의 한마디에 모두의 동작이 멈췄다.

"딕의 말대로 이번 결투평가가 지목제라면, 날 지목할 생각이지?"

헥토르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한 소리."

"좋아. 내 차례가 오면, 나도 널 지목할게."

헥토르가 눈을 부릅떴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딕과 메이린, 카미바레즈도 놀란 표정으로 시몬을 돌아보았다.

'그래, 여기서 한번 헥토르랑 싸우고 가는 것도 괜찮아.'

헥토르가 계속 자신과의 승부를 갈구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헥토르가 부담스러워서 피했다. 그는 랭거스틴 시내 한복판에서 싸움을 걸 정도로 막무가내였고, 싸우자고 시비 걸다가 다른 조원들에게 불똥이 튀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냥 그에 대한 접근 자체를 꺼린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헤르세바를 시험해야 해.'

진급시험 전에 새롭게 얻은 헤르세바의 이능을 활용하면서, 이걸 실전에서도 쓸 수 있을지 조율해야 했다.

약한 상대면 곤란하다. 그리고 헥토르는 어지간한 특례 입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강자. 헤르세바의 전력을 끌어내기엔 괜찮은 상대란 생각이 들었다.

헥토르도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시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시몬이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결투가 됐으면 좋겠어. 잘 부탁해, 헥토르."

"......."

헥토르는 그 손을 맞잡지 않았다.

묵묵히 입을 다물고, 시몬의 의향을 파악하려는 듯 그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침내.

"......건방진 새끼."

본색을 드러내듯 이빨을 드러냈다.

"날 실험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

시몬은 속내를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반면 옆자리의 딕은 팔로 뒷머리를 받치며 느물거렸다.

"아, 그럼 뭐 어쩌라고? 받아줘도 지랄~ 안 받아줘도 지랄~"

"물론 승부는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나와 싸우는 걸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헥토르의 두 눈이 섬뜩한 예기를 품었다.

"네게 있어 힘겹고, 고통스러운 싸움이 되도록 노력하마. 그리고 마지막엔 지독한 무력감과 패배감에 짓눌려 휘둘리게 해주지."

펄럭!

그 말만 남기고, 헥토르가 교복자락을 휘날리며 등을 돌려 걸어갔다. 헥토르의 파벌들도 쪼르르 그 뒤를 따랐다.

팽팽하던 긴장감이 풀어지며 시몬은 한숨을 내쉬었다.

"쟤 왜 저래?"

메이린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평의 취지 자체가 동급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새로운 역량을 시험하는 거 맞잖아? 결평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때 시몬이 옆머리를 긁으며 한쪽 눈을 감았다.

"......이번만큼은 헥토르한테 한 방 먹은 기분이네."

"뭐?"

"이번 결평. 진짜 열심히 준비해야겠어. 먼저 간다."

시몬이 가방을 챙기고 떠났다. 세 사람이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남자애들은 원래 다 저래?"

메이린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 그런 건 아냐."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요, 딕! 정말로 결투평가 지목제라면, 어떤 시스템으로 지목하고 지목당하는 거예요?"

카미바레즈의 물음에 딕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몰라."

"뭐어?!"

메이린이 소리를 높였다.

"니 입으로 방금 지목제라며!"

"그냥 지목제로 할지도 모른다. 하는 것만 들었는데."

"야 이 밥팅아!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일 난 건 너 아냐? 쟤들한테 바람 넣어놓고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딕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내가 뭐 언제 그런 거 신경 썼나? 그보다 순서가 중요한데. 이거 어떻게 되려나?"

* * *

그 궁금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샤마임 축제 행사.

가장 인원이 많은 1학년 전교생이 대강당을 차지했다.

학생들이 멋진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만찬을 즐기는 가운데, 사회자의 충격 발표가 이어졌다.

"내일 결투평가는 지목제로 시작됩니다! 지목 순서는 최근 방과 후 BMAT의 순위대로라고 하네요!"

사전 정보가 없었던 학생들은 당황한 얼굴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

"갑자기 결평이라고?"

"저녁에는 무도회라며!"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미 정보를 알고 있던 딕은 숨죽인 채 낄낄거렸고, 메이린은 괜히 드레스에 힘줬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푸하하하! 아, 아! 웃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여러분의 심정을 십분 이해합니다! 저도 3년간 내내 당해왔거든요!"

그리고 오늘의 사회자는 3학년의 다렐이라는 학생이었다. 그는 확성 수정구를 들고 신랄하게 깎아내렸다.

"키젠은 진짜 독한 놈들이에요. 샤마임 축제에 결평 끼얹는 정도는 애교지! 댄스 파트너 고르러 왔다가 결투대상을 골라야 하는 이 기분! 아마 2학년 되면 더 할 거예요! 아, 이런 말 해도 되냐고요? 이제 곧 졸업하는 말년인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하하!"

"다렐."

사회자 다렐이 움찔하며 등을 돌렸다.

그가 바라본 곳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제인이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경고입니다."

그녀의 싸늘한 음색에 다렐이 잽싸게 고개를 되돌렸다.

"핫! 하하! 하지만 키젠이 위대한 학교고 훌륭한 네크로맨서들을 해마다 배출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요! 그럼요!"

다렐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대사가 적힌 카드를 들었다.

"까라면 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지목제 결평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시험 성적이...... 보자아."

다렐이 씩 웃으며 후배들을 돌아보았다.

"공동 1위인 시몬 폴렌티아, 샤텔 마에르. 앞으로."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방과 후 BMAT 최고 성적의 두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강당의 연단 위로 향했다.

"흠."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헥토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시몬이나 자신이나 서로를 지목하기로 약속했다.

지목 순서가 전 시험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거라면 아무런 변수가 없었다.

"어젠 진짜 대단했지~"

같은 헥토르의 파벌인 여학생이 헛웃음을 흘리며 어제 일을 생각했다.

-엘리사 셀린!! 시몬 폴렌티아와의 결투를 포기해라!

-꺄아아아악! 엄마야!

"세상에, 남자가 여자기숙사에도 쳐들어오고 말야."

"입 다물어라."

"넹넹."

헥토르의 일갈에 그녀의 입이 쏙 들어갔지만, 놀리는 듯한 미소는 남아 있었다.

이내 다른 파벌 학생들도 킥킥거리며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자, 헥토르가 눈을 꾹 감으며 설명하듯 말했다.

"엘리사 셀린은 시몬 폴렌티아에게 원한이 있었다."

즉, 지목제 결투평가에서 그녀가 시몬을 지목할 우려가 있다는 뜻이었다.

"와, 그런 식으로 시몬 폴렌티아를 찍을 것 같은 애들 다 찾아서 들들 볶고 다닌 거야?"

"헥토르도 은근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입 다물어라."

결국 파벌 학생들이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헥토르는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연단에 올라간 시몬을 바라보았다.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참 재밌네요! 특히 지목제 결투평가는 여러 인간관계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다렐이 히죽 웃으며 1학년 후배들을 돌아보았다.

"이 룰에서는 무조건 '같은 스쿼드'의 한 명을 픽해야 합니다. 누가 누굴 찍었는지, 누가 누구를 신경 쓰고, 누가 누구에게 원한이 있는지 다 보이죠. 재미있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후배님들!"

하늘 같은 3학년의 외침에 군기가 잔뜩 들린 1학년들이 자세를 바로 하고 외쳤다.

"네! 선배님!"

평소에 끼가 넘치는 다렐이 손에 귀를 대며 소리쳤다.

"아, 목소리가 작다!"

"네에!!!"

"아, 키젠에 여학생은 없습니까! 이번엔 여학생들만!!"

"네에에~!"

"좋아 좋아!"

"다렐."

결국 의자에 앉아 있던 제인이 입을 열었다. 다렐은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몸을 떨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제인이 손가락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제, 제인 교수님! 이제 진짜 무조건 진지하게 할게요!"

"와봐요."

다렐은 그야말로 사형수가 된 표정으로 제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군기가 바짝 들려서 그녀의 앞에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졸업하기 싫나요?"

"아, 아닙니다!"

"프로 네크로맨서가 되면 내 얼굴 안 볼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이번에 제출한 졸업논문,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체크해 보겠습니다."

"아, 제발 교수님! 살려주세요!"

잠시 제인이 제자를 어루만져 주는 시간이 있었다.

이미 실력으로는 어지간한 현역 네크로맨서도 다 씹어먹는다는 3학년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부총장 제인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결국 한풀 꺾인 다렐이 털레털레 연단으로 복귀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시작하죠."

그는 간단히 룰을 설명했다.

최근 시험인 방과 후 BMAT의 순위별로 내려가면서 같은 스쿼드에서 상대할 학생을 무조건 한 명 지목한다.

같은 점수와 순위인 경우에는, 방과 후 BMAT 성적의 세부지표를 참고해서 결정한다.

"지금 시몬 후배와 샤텔 후배는 같은 공동 1등이네요."

다렐이 조교로부터 건네받은 서류를 받아서 샤라락 펼쳤다.

"그래서 세부지표 총합으로 순서를 정하겠습니닷!"

시몬의 경우는 공성전과 소환수 디펜스 등에서 테마 전체를 캐리한 적이 있을 정도의 큰 활약을 펼쳤지만, '저주 필기 테마'에서는 메이린의 도움을, '사령학 테마'에서는 신디 비바체의 일방적인 도움을 받았다.

반면 샤텔의 경우, 모든 시험을 본인의 힘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했다. 성적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세부 평가는 샤텔이 우위였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거인 혼혈 샤텔 마에르 후배부터! 과연 과연! 누굴 지목하게 될지!"

조교가 샤텔에게 상위 스쿼드의 학생 명단을 내밀었지만, 그는 손바닥을 들어 사양의 의사를 밝혔다.

"그럼 샤텔 학생! 누구를 지목......!"

다렐의 말이 멈췄다.

관중석의 웅성거리는 목소리도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

시몬의 동공도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

샤텔의 크고 두꺼운 손가락이, 시몬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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