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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71화 (37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71화

"오, 오오오!"

사회자 다렐도 흥분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첫 순서부터 대박! 대박입니다! 특례 1번과 3번의 빅매치!"

"......."

시몬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샤텔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키보다 두 배 가까이 큰 거인이, 육중하고 두꺼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부터 드리워진 검은 그늘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샤텔이 날 지목하다니.'

고대거인의 혼혈이라는 혈통, 그리고 키젠 최고의 방어력.

샤텔은 시몬에게 있어서도 위협적인 대상이었다. 결투평가 때도 세르네, 샤텔, 로레인 이 세 사람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범접하기 힘든 영역에 가까웠다.

웅성 웅성 웅성!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멀리서 쾅! 하는 소리도 들렸다.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진 헥토르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친 것이다. 목에 핏대가 붉어지며 곳곳에서 우악스러운 힘줄이 튀어나왔다.

[샤텔!!!]

몇몇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드래곤 피어(Dragon Fear)였다.

"헤, 헥토르!"

"야, 야, 진정해!"

기겁한 파벌 학생들이 그의 팔과 다리를 붙잡으며 뜯어말렸지만, 헥토르는 그들을 매달고 휘척휘척 다가왔다.

"얘 또 눈 돌아갔다!"

"아, 여자애들 뭐 해! 이그저스트라도 날려!"

헥토르의 다리를 붙든 채 끌려가던 파벌 학생이 비명처럼 외쳤다.

뒤에서 머뭇거리던 학생들이 정말로 저주를 준비하려는 찰나.

"오우 오우."

헥토르의 몸이 철컥 멈췄다.

"찜해둔 상대를 빼앗겨서 기분 나쁜 건 알겠지만, 좋은 날에 딱 거기까지만 해. 후배님."

까득.

까득 까득.

어느새 꼭두각시 인형들이 헥토르를 둘러싸고 날붙이로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종하는 건 사회자 다렐이었다.

그 또한 텔레포트라도 쓴 것처럼 헥토르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어, 언제 연단에서 여기까지 온 거야?'

파벌 학생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다렐이 말했다.

"으흐흐, 공식 행사에서 광역 저주? 친구야, 내가 우습게 보이긴 했나 보다. 그치?"

다렐은 제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연단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는 엉덩이를 반쯤 일으킨 상태였다.

"예이, 예! 괜찮슴다 교수님! 제가 다 해결했으니까요! 하하하!"

다렐은 애써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헥토르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만하자잉?"

뚜둑. 뚝.

그때 헥토르를 막아놓고 있던 꼭두각시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헥토르가 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아- 진짜. 그만하자니까. 야. 야. 아, X발."

생글생글 웃던 다렐의 표정이 순간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난 3학년 같지도 않냐?"

꼭두각시들의 입이 쩍 벌어지며 괴물처럼 변하려는 순간.

푹! 푹! 푹! 푹!

여러 장의 깃털들이 헥토르의 등 뒤에 꽂혔다. 이글거리던 분노를 뿜어내던 헥토르가 마침내 차분해지며 움직임도 잠잠해졌다.

"어머나~"

정적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드레스 차림의 소녀가 와인잔을 손가락에 끼고 있었다.

상아탑 후계자.

세르네 아인다르크였다.

"감-히 3학년 선배님 앞에서 저러다니, 홧김에 맛탱이가 갔나 봐요."

그녀가 와인잔을 기울이며 여우 같은 윙크를 다렐에게 날렸다.

"선배님은 화, 안 나셨죠?"

애교 섞인 살랑거리는 목소리에, 다렐은 얼굴 근육이 이완되며 헬렐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럼! 그럼! 난 너그러우니까."

"헤헤, 그러면 그냥 넘어가 주시는 거죠?"

"상아탑 후계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딱 이번만이다?"

다렐은 세르네의 선배 대접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시 연단에 복귀했다.

세르네가 생글생글 웃으며 와인잔을 내려놓자,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생이 슬쩍 귓속말로 물었다.

"......무, 무슨 변덕이래?"

"빚을 만들어서 둬서 나쁠 건 없단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가 와인잔에 비춘 본인의 입술을 보며 미소 지었다.

"시몬에게 승부욕을 불태우는 남자라, 언젠간 써먹을 때가 있겠어요."

그때 확성 수정구를 든 제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헥토르 무어. 대강당에서 퇴장하십시오.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수업 외에 저주 사용은 금지입니다. 헥토르 무어 학생은 1학년 전교생 가장 마지막 순서로 미루겠습니다.

헥토르가 이를 한번 뿌득 갈더니, 이내 제인 쪽으로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고는 터덜터덜 나가는 문으로 향했다.

"저거 언젠간 사고 칠 줄 알았지."

의자에 앉아 있던 딕이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웃었다.

"쟨 진짜 성격 좀 죽여야 돼."

"야, 평민."

메이린이 즉시 눈치를 주며 입술 위에 손을 올렸다.

"분위기 파악 못 하냐? 조용히 해."

"예이~ 마님. 입 싸악 다물겠습니다."

그때 시몬이 7조 조원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카미바레즈와 메이린이 얼른 고개를 쭉 빼 밀었다.

"시, 시몬! 괜찮으세요?"

"응. 난 괜찮아. 헥토르는?"

"퇴장했어."

딕이 그렇게 대답하며 미간을 구겼다.

"근데 차암~ 이상하단 말야. 샤텔이 왜 널 고른 거지? 걔 은근 성적에 신경 쓰는 타입이라 대충 상위 스쿼드의 최하위 학생한테 걸어서 승률 100% 유지할 줄 알았는데."

시몬도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시몬."

메이린이 다가와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권해."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기, 기권?"

"샤텔 마에르 쟤, 절대 정상은 아냐. 결투평가에서 상대한 학생들 모두 피떡이 될 때까지 맞아서 방호슈트를 입고도 피가 철철 흘렀대. 부상으로 1~2주 쉬던 애도 있고,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애도 있고."

"아......."

설명을 듣던 카미바레즈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메이린이 다시 말했다.

"이제 곧 가장 중요한 2학년 진급시험인 거 알지? 결평 정도의 이벤트에서 부상이라도 당하면 손해가 너무 막심해. 부상은 절대 절대 절대로 안 돼!"

"......."

맞는 말이긴 했다.

1학년 일정이 얼마 안 남아 있다. 앞으로 결투평가는 많이 해봐야 1~2번.

2연패를 한다고 해도 하위 스쿼드다. 최하위 스쿼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퇴학은 없다.

이성적으로는 샤텔을 피하고 진급시험에 올인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자신 있어."

그건 샤텔을 상대할 수 없을 때의 이야기다.

예전이라면 역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헤르세바를 손에 넣은 시몬의 머릿속에 패배라는 생각은 없었다.

"싸워보고, 정말 못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기권할게."

"하여간."

메이린이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팔짱을 꼈다.

* * *

행사가 재개되었다.

시몬과 샤텔 외에도 재미있는 매치들이 많이 튀어나왔다. 특히.

"세르네 아인다르크! 덤벼!"

연단에 올라온 메이린이 세르네를 지목했다.

시몬, 딕, 카미바레즈 모두 입을 벌렸고, 행사 내내 딴짓하고 있던 세르네 또한 의외였는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흐응, 가끔 우리 메이린도 깜찍한 짓 한다니까?"

사회자인 다렐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뭐야, 상아탑끼리 내전? 이것도 빅매치네요! 역시 1학년들이 놀 줄 알아!"

그렇게 당당히 세르네를 지목한 메이린이 테이블로 돌아왔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나한텐 샤텔전 기권을 종용하더니. 자긴 세르네를 고르네."

드레스를 정리하며 자리에 앉은 메이린이 흐트러진 옆머리를 쓰윽 귀 뒤로 쓸어넘겼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나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란 게 있어."

"......메이린."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딕도 마찬가지인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세르네, 샤텔, 로레인 중에, 두 명이 우리 조원들 상대네. 박 터진다 박 터져."

그렇게 말하는 딕은 예전에 공성전에서 싸웠던 늑대인간 소녀에게 지목당했다. 딕은 낄낄 웃으며 '어지간히 분했나 본데'하고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카미바레즈도 다른 반의 혈류학 지망생에게 지목되어 싸우게 됐다.

그렇게 모든 행사가 끝났다. 학생들은 대강당에서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딕, 오늘은 좀 늦을 거야."

시몬이 아공간에서 헤르세바를 꺼내며 말했다.

"기숙사 관리원분이 물어보면 잘 부탁해."

"예이, 예이. 또 너무 무리하진 말고."

이제는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아는 딕은 쿨하게 보내주었다.

시몬은 달리면서 손에 든 헤르세바에게 말했다.

"오늘은 밤샘 연습할 거야. 괜찮지?"

[꼬마가 기합이 팍 들어가 있네. 무슨 일 있어?]

시몬이 빙긋 웃었다.

"바로 내일, 나보다 강한 상대랑 싸울 것 같아."

[어머! 그거 문제네.]

지팡이에서 황금의 바람이 휘날리더니, 이내 긴 머리의 여자로 변해 몸체 위에 마녀처럼 걸터앉았다.

[어떻게 이길 건데?]

"방법은 하나뿐이야."

시몬이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 안에 그 세 번째 권능을 완성하겠어."

* * *

다음 날 아침.

제1 실내 경기장.

결투평가는 세 개의 경기장에서 동시에 진행되지만, 오늘 제1 실내 경기장은 다른 어떤 경기장보다 많은 관중들이 들어차 있었다.

1학년들은 물론, 특례 1번과 3번의 대결이라는 빅매치의 소식을 듣고 2학년들이나 3학년 선배들까지 수업을 빼먹고 구경하러 왔다.

"예에이! 시몬 파이팅! 이겨라!"

그리고 관중석 가장 앞자리의 딕은 피켓까지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피켓에는 '탈라리아'라는 본인 사업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시몬 이겨라' 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봐도 응원보다는 광고가 주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카미바레즈도 딕의 것보다는 조금 작은 피켓을 들고 쭈뼛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히, 히, 힘내세요! 시몬!"

"어허! 그래서 대기실에 있는 시몬한테 들리겠어? 더 크게!"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히, 힘내주세요! 시몬!! 이길 수 있어요!"

딕이 잘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그리고 그 주위에 있던 학생들은 제 어깨를 감싸며 몸을 비틀고 있었다. 대충 귀여워 죽겠다는 반응이었다.

"안녕, 여기 앉아도 돼?"

그때 크림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딕이 눈에 힘이 빡 들어갔다.

"벤야 바닐라 선배님!"

딕과 카미바레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아하하! 그렇게 막 예의 차릴 필요 없어."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비어 있는 카미바레즈의 옆자리에 앉았다. 딕이 얼른 명함을 내밀었다.

"딕 헤이워드라고 합니다 선배님!"

"학생인데 명함도 있어? 대단하네."

"선배님보단 못하지만, 저도 작은 사업 몇 개 굴리고 있습니다!"

"오, 그래?"

그녀가 딕의 명함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탈라리아(Talaria)? 배달 사업이구나. 아이디어 좋네."

"감사합니다!"

딕이 열심히 본인 사업을 어필하는 가운데, 카미바레즈도 두 손을 곱게 무릎위에 올려놓고는 힐긋힐긋 벤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벤야가 그 모습을 깨닫고는 웃었다.

"나한테 할 말 있니?"

"......아! 그!"

카미바레즈가 벌벌 떨며 벤야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몬......."

"응? 아, 우리 제군이?"

'제군이?!'

카미바레즈는 깜짝 놀랐다. 벌써 애칭도 있단 건가!

'......시몬.'

카미바레즈는 최근 이렇게 완벽한 사람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예쁘고, 능력 있고, 학생회고, 거기에 바닐라라는 거대한 기업체를 물려받을 인물이었다.

소환학을 좋아하는 시몬과 취미도 맞고 전공도 맞고, 완벽하게 그를 서포터할 수 있는 기반도 갖추고 있다.

카미바레즈는 그런 벤야가 부러웠다.

"?"

벤야가 웃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후배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기에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이, 이번 시몬의 헤르세바 제작에......!"

그때 카미바레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러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

벤야는 조금 놀란 얼굴로 카미바레즈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사업 이야기를 꺼낼 핑계를 궁리하던 딕도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으흠~"

비로소 벤야의 얼굴에 깊은 미소가 걸렸다.

"고개 들어줘."

그 말에 카미바레즈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고 숨을 색색 뱉고 있었다. 가지런히 스커트 위에 모은 두 손은 불안하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때 벤야도 일어나더니 무릎을 굽혀 카미바레즈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러곤 그녀의 머리를 살포시 끌어안으며, 그녀의 귀에만 들릴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몬을 정복하는 중이니?"

그 말에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더 할 수 없을 만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저저저저저저 정복이라니! 그게 무슨......!"

벤야가 두 주먹을 가볍게 쥐며 눈웃음쳤다.

"응원할게? 흡혈귀 제군."

"......아."

카미바레즈가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 심판의 외침이 들렸다.

"A반의 시몬 폴렌티아 학생! I반의 샤텔 마에르 학생! 지금 바로 경기장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그 외침에 미리 대기실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시몬과 샤텔이 경기장 중앙으로 나왔다.

딕이 손뼉을 짝 쳤다.

"드디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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