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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72화 (37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72화

결투용 슈트로 갈아입은 시몬과 샤텔이 경기장 중앙으로 나왔다.

시몬은 그의 모습을 살폈다.

'진짜 위압감이.'

거인.

그것만큼 샤텔을 잘 표현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3미터가 훌쩍 넘는 키, 입학식 때보다 더 자랐는지 4미터에 다다르려 하고 있었다.

거기에 밝은 회색 피부와 짙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

그야말로 커다란 동상이 눈앞에 떡하니 서 있는 것 같았다. 드리워진 그늘은 시몬을 넘어 경기장 전역을 뒤덮을 듯 장대했다.

종(種)이 다른 상대. 도저히 같은 학년 학생과 싸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두 학생, 악수."

심판의 지시에, 시몬은 팔을 머리 위로 들어야 했고 샤텔은 팔을 늘어뜨려야 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해. 샤텔."

"......."

"BMAT 이후로 처음이네."

"......."

"아, 그런데 왜 날 결투대상으로 지목한 거야?"

"......."

시몬이 무안한 미소를 흘렸다.

이 녀석, 혹시 말을 못 하는 건가?

이어지는 심판의 지시에, 두 사람은 거리를 두고 멀어졌다.

"샤텔 파이팅!"

"이번에도 화끈한 경기 부탁한다!"

"시몬~! 힘내!"

두 사람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목소리는 딱 절반에서 절반. 백중세였다.

샤텔은 특유의 묵직묵직한 전투, 그리고 고전적인 콜로세움 혈투처럼 상대를 피떡으로 만드는 행위 덕분에, 호전적인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선배들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시몬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간 그가 이루어낸 비약적인 성장과, 시몬이 가진 천재성 및 스타성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컸다.

"시몬! 힘내세요!"

카미바레즈와 딕도 피켓을 들고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벤야도 손뼉을 짝짝 치고 있는데, 뒷자리에서 누군가가 깡충 뛰어 이쪽으로 건너왔다.

"예쓰! 자리 하나 비었네?"

옆자리에 털썩 앉는 여학생을 보며 딕이 고개를 돌렸다.

양갈래 머리카락에 하얀 제복 상의를 망토처럼 어깨에 두른 소녀. 그 유명한 특례 7번이었다.

"엘리사 셀린!"

"음?"

그녀가 딕을 보더니 불쾌한 듯 미간을 구겼다.

"너 뭐니? 듣보잡이 왜 아는 척이야?"

날카로운 일침에 딕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몸을 기울였다. 엘리사가 입을 가리며 푸훗! 웃었다.

"농담이야. 딕 헤이워드. 하얀소 상단 아들을 내가 모를까 봐?"

"오."

그제야 딕이 자존감을 회복한 듯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엘리사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그쪽은 우르슬라 가문의 카미바레즈고, 그 옆에는...... 아!"

엘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벤야 바닐라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엘리사 셀린이라고 합니다."

"안녕~"

벤야가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가운데에 앉은 카미바레즈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엘리사를 보고 있었다.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싹싹하고 예의 바른 아이인데.

"역시 정치인."

하지만 딕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피식 피식 웃고 있었다.

"네, 장사치님."

엘리사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러고는 무릎을 붙이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근데 니들 사총사 아니었어? 그 재수 없는 하늘색 머리는?"

카미바레즈가 대답했다.

"메이린이라면 제3 경기장에서 경기 준비하고 있어요."

"아~ 겹치는구나. 아쉽네. 그 기집애가 세르네한테 털리는 거 보고 싶었는데."

-그럼, 지금부터 A반 시몬 폴렌티아 학생과 I반 샤텔 마에르 학생의 결투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드디어 빅매치가 시작된다. 두 소년이 전투자세를 취하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예아, 파이팅 시몬! 깔끔하게 샤텔 잡고 2학년 올라가자!!"

"시몬~ 죽어버려!"

방금 외침을 들은 딕이 엘리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여버려가 아니라 죽어버려?

"확 미끄러져서 대갈통 터지고 병동에 실려 가라! 샤텔 아자아자! 특례 1번이라고 봐주지 마!"

"......차라리 저주를 날리지 그러냐."

딕이 헛웃음을 흘렸다. 카미바레즈도 듣다못해 말했다.

"마, 맞아요!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응원해야지! 누군가를 비난하면 나빠요!"

"싫은데~ 내 맘이지롱! 시몬 망해라!"

엘리사는 샤텔 응원파라기보단 시몬 디스파였다.

그간 계속 시몬과 엮이고 밀리면서 고생을 이만저만 한 게 아니었으니까.

* * *

그리고 한편.

'집중하자.'

경기장의 시몬은 커다란 중압감과 맞서는 중이었다.

단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솜털이 돋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훑었다.

"두 학생 모두 준비됐습니까?"

심판이 물음에 시몬과 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 심판이 마침 팔을 내리며 선언했다.

"경기 시작!"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경기 시작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소음에, 관중들이 두 귀를 틀어막았다.

'윽.'

시몬도 인상을 찌푸리며 앞을 보았다. 샤텔의 정면에 초대형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검은 지침들이 빙글빙글 움직이며 마법진을 완성하려 하고 있었다. 시몬은 저게 무슨 마법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영역반전(領域反轉).'

샤텔의 주력 흑마법.

시몬도 바다 테마의 3차 BMAT에서 잠깐 상대해 본 적이 있었다.

흑마법으로 섬 전체의 토양과 암벽을 자신의 탄환으로 만들어 마음대로 날리는 강력한 칠흑대지계. 이미 1학년의 수준을 아득히 넘은 기술이었다.

'저건 무조건 막고 싶다.'

마투에 자신 있는 시몬이 무릎을 굽히고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접근한 다음엔?'

시몬의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이 재생된다.

자신의 신형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서로 다른 방법으로 샤텔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그 결과는 다섯 차례 모두 샤텔의 거대한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엔딩이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어.'

안광을 번뜩이며 두 주먹을 가슴 앞으로 세운, 이상적인 격투기 자세의 샤텔. 저 커다란 주먹에 제대로 맞으면 100% 배리어 게이지도 일격에 바닥나리라.

저렇게 대놓고 초대형 마법진을 펼친 건 '자신감'이다.

다짜고짜 영역반전을 막겠답시고 마투로 달려들기보다는, 이쪽도 후속 마법을 준비하며 화력전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침착하게.'

시몬은 오른쪽 옆구리에 원을 그리며 '친위대'를 위한 빌드업인 블러드 골렘 마법진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공간을 열고.

[등장!]

오늘 경기의 비장의 무기이자 히든 카드. '헤르세바'를 꺼내 들었다.

"오! 지팡이를 들었네?"

"의외네. 마투를 잘한다고 들었는데 지팡이는 마이너스 아닌가."

관중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시몬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야! 들었냐? 내가 마이너스래!]

'신경 쓸 필요 없어, 헤르세바.'

이제 곧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헤르세바의 힘에 전율하게 되리라.

하지만 그 전에.

'영역반전의 완성만은 막고 싶어!'

시몬은 아공간에서 여덟 기의 스켈레톤 메이지를 경기장으로 불러들였다.

"다크 블레이즈!"

시몬이 지휘관처럼 지팡이를 내밀자, 모든 스켈레톤들이 시몬을 따라 하듯 지팡이를 앞세우며 마법진을 펼쳤다.

화르르륵!

화륵!

순식간에 완성된 여덟 발의 화염구가 새까만 연기를 뿌리며 날아갔다. 이에 샤텔은 직접 앞으로 나와서 자신의 몸으로 영역반전 마법진을 가렸다.

꽈아앙―!

치밀어 오르는 후끈한 열기와 후 폭발이 시몬이 있는 곳까지 닿았다.

시몬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걸 굳이 맨몸으로 막아?'

샤텔의 축복받은 육체는 검이나 화살 등 날붙이 따위로 상처 낼 수 없다.

그래도 이건 어디까지나 결투평가고, 배리어 슈트도 입었다. 배리어 게이지가 0이 되면 경기에서 패배하는 룰 자체가 샤텔의 유일한 핸디캡이었다.

하지만 폭발 연기가 걷히는 순간.

"와아아아!"

"역시 샤텔!"

멀쩡해 보이는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이 얼른 스크린을 확인했지만 배리어 게이지는 100% 그대로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칠흑의 막이 보인다.

'중간고사 때 나온 기술이네. 칠흑막.'

칠흑으로 몸을 감싸는 간단한 원리의 흑마법이지만 칠흑 소모가 크고, 움직일 때마다 신경써야 해서 구사 난이도는 최상이었다.

어쨌거나 샤텔은 칠흑막으로 입고 있는 수트 위를 덮어서 자신의 막강한 방어력을 재현했다.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 않게 됐다.

'그럼 다음!'

메이지들이 돌아가고, 이번에는 스켈레톤 아처들이 아공간에서 튀어나왔다.

"전부 쏴!"

피잉! 핑!

전신을 커버하는 칠흑막이라면 단순 화력보다는 칠흑 인챈트가 실린 화살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샤텔은 화살이 날아오는 지점을 예측해 칠흑막의 부분부분을 순간적으로 두껍게 만들어 화살을 막아냈다.

벌써 칠흑막의 운용까지 상당한 경지였다.

그리고 이제는 샤텔이 두 손바닥을 맞붙였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다시 한번 경기 시작때 들리던 소음과 함께 마법진이 완성됐다. 샤텔이 마법진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것을 강하게 짓밟았다.

<영역반전>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작됐다.

마법진의 영향력이 퍼져 나가며 경기장이 먹색으로 물들었다.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니 마치 수묵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다.

"!"

주위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고개를 드니 사각형의 예쁘게 잘린 경기장 바닥 파편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쿠우우웅!

시몬이 급히 뒤로 물러나 피했다. 시선을 움직여 보니 샤텔 옆자리의 바닥이 텅 비어 있었다.

"영역반전이 완성됐다!"

"죽여!"

흥분한 샤텔팬들이 소리쳤다.

샤텔이 두 팔을 세워 들자 까만 수묵화처럼 변한 경기장의 바닥 타일들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쏟아진다.

'크윽!'

시몬은 다리에 칠흑을 뿜어내며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파편을 날리는 개념이 아니다. 샤텔의 칠흑이 들어간 만큼 투사체의 힘과 강도가 다르고 궤도도 휘었다. 중간에 쳐내거나 부수는 건 불가능했다.

콰앙! 콰앙! 콰앙!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어떤 방향에서든 기어이 공격을 피해내고 마는 시몬의 회피도 경이로웠으나, 샤텔의 영역반전은 점점 더 범위를 넓혀왔고, 탄환의 수량과 크기도 늘어났다.

[꼬마야! 후면!]

'알았어!'

뒤에서 날아오는 파편 덩어리를 캐치한 시몬이 물러나 피하려 했지만.

쑤욱!

갑자기 발밑이 푹 꺼지며 몸의 균형을 잃었다. 영역반전의 효과로 시몬은 안전하게 발을 내딛는 것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것이 칠흑대지계. 모든 대지가 적이다.

후우우웅!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은 시몬의 앞으로, 폭 10미터 이상의 거대한 암벽 덩어리가 날아오고 있다. 지켜보던 관중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승패가 갈리는 순간을 보려고 했다.

'가자, 헤르세바.'

[오케이!]

휘리릭!

시몬은 손에 들린 지팡이를 고쳐잡고는 날아오는 초대형 암벽을 향해 내질렀다.

'황금화!'

[황금화!]

텅!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팡이에 닿은 암벽이 통째로 황금으로 변하더니 이내 완전히 박살 나 가루처럼 휘날렸다.

번쩍이는 금빛 가루가 시몬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지나갔다.

"와!"

"방금 뭐야?!"

관중들은 물론, 샤텔의 표정에 처음으로 놀란 기색이 어렸다.

샤텔의 영역반전 최대의 강점은 '범위'와 '강도'.

그런데 지팡이에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며 깨졌다.

빙글빙글-

시몬의 오른손에서 자유자재로 춤추던 지팡이가 가슴 앞에서 척! 소리와 함께 멈췄다.

"진짜 미안한데."

시몬의 눈빛이 번뜩였다.

"샤텔 너, 나랑은 상성이 나쁜 것 같다."

어느새 시몬의 두 팔에는 금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붕대가 슈트 위에 의복처럼 자리해 있었다.

시몬이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자, 지팡이가 바닥에 푹 꽂혔다.

영역반전에 잠식됐던 경기장의 검은 색이, 역으로 농밀한 황금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와라. 미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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