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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80화 (38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80화

혈류학 최종 수행평가.

「심장과 관련된 흑마법 시현」

시몬은 이 수행평가도 자신 있었다. 리치의 라이프베슬보다 대단한 '심장 관련 흑마법'이 또 어디 있을까?

소환학 계통이긴 하지만, 라이프베슬의 마법진에는 혈류학 수식도 다량 들어가 있어서 평가받을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물론 발터 교수가 시몬에게 공정한 점수를 준다는 게 전제였으나.

"쿨럭쿨럭! 1학년이 벌써 라이프베슬이라니, 훌륭하구나. A+다."

병가 후 교정에 복귀한 발터는 순순히 시몬에게 A+ 성적을 줬다.

"감사합니다."

시몬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발터를 보았다. 몰골이 전보다 더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예전 실라지 교수님도 그렇고, 혈류학 교수들은 어쩐지 다들 건강이 좋지 못하네.'

아무래도 피와 생명력을 직접 쓰는 학문상의 리스크가 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시몬이 자리로 돌아오고 다음 학생 차례가 됐다.

"스콧 스나이더입니다! 저 만의 오리지널 박동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기대되는구나. 한번 해보렴."

키젠 1학년생들은 대부분 조혈주사를 맞았다.

혈류마법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도 컸지만, 빼도 박도 못하고 주사를 맞은 이유는 바로 이 「심장과 관련된 흑마법 시현」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발터와 뒷반 혈류학 교수 모두 이쪽 수행평가를 채택했다.

시몬의 리치제작은 극소수의 예외적인 케이스다. 리스크와 비용, 준비에 시간이 덜 걸리는 심장 관련 흑마법 중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만만한 건, 조혈주사를 맞고 박동(搏動)기를 시현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되고 있는 박동기.

우선 조혈주사와 조혈세포에 대해서, 발터는 이렇게 말했다.

-블러드 슬라임의 조혈세포를 움직이기 위해선, 심장의 박동을 특별한 주파로 맞춰야 한단다. 블러드 슬라임과 같은 박동을 일으켜서 체내의 조건을 동일하게 만드는 거지.

바로 이와 관련된 기술이 '박동기'다. 조혈주사를 맞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박동으로 조혈량을 확 늘리거나, 피의 성질을 바꾸거나, 같은 혈류탄이라도 다양한 특성을 입힐 수 있게 된다.

처음엔 조혈주사를 주저하던 학생들도, 주사를 맞은 학생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자 앞다투어 주사를 맞았다.

물론 시몬도 그간 조사한 조혈주사 관련 내용을 교내신문에 투고해서 학생들에게 알렸지만, 그저 의혹으로 그치는 분위기였다.

명망 높은 펜타모니엄에서도 조혈주사가 인체에 해에 가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한 뒤였으니 사실상 주사를 안 맞는 게 손해인 상황이 됐다.

심지어 2학년 3학년 학생들까지 발터에게 찾아오곤 했으니까.

'끙.'

박동기로 혈류마법의 위력을 높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시몬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정말 발터 교수는 무고할까? 모든 게 내 과대망상일 뿐일까?'

사실 필체 증명으로 '키젠의 발터 교수'와 '혈류교의 유다'가 다른 사람으로 판명 났을 때, 시몬의 모든 전제와 가설은 산산조각 난 거나 다름없다.

발터의 지인들이 그를 '유다'라고 부른 것도 이상하지 않다. 유다라는 이름이 흔하기도 하고, 별명이나 옛 이름 같은 거일 수도 있고.

매번 들고 다니는 만년필에 유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것도 조금 머리를 식히고 생각하면 그리 대수롭지 않긴 했다.

"시몬 학생."

그때 혈류학 조교가 시몬의 옆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발터 교수님께서, 혹시 조혈주사를 맞을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하셨어요."

"......."

발터는 시몬을 많이 신경 써주는 편이었다.

직속제자 제의도 했었고, 무엇보다 그는 시몬의 SM-1, 즉 '클라우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스승인 실라지의 연구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했으니까.

하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시몬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은 생각이 없네요."

혈류학 조교의 표정이 조금 굳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사라졌다.

* * *

수행평가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기말고사 기간이 찾아왔다.

이번 통합 2학기의 유일한 필기시험인 만큼, 학생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공부했다.

키젠에서도 교내에 한해서 24시간 활동할 수 있도록 학칙을 바꾸었다. 특히 도서관은 24시간 개방되어서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밤을 지새우는 중이었다.

"으어어어어어......."

아침만 되면 학생들은 좀비 같은 걸음걸이에, 좀비 같은 소리를 내며 강의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키젠은 좀비 공장이 틀림없어어어어."

딕이 힘 빠진 목소리로 비틀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수업은 들어야 했다. 오전 첫 시간은 '에릭 아우라' 교수의 칠흑역학.

교수들이 한창 시험문제를 만드는 중이기에, 지금 배우는 부분에서 시험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은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수업을 들었다.

메이린은 안 자려고 제 허벅지를 꼬집거나, 극약처방으로 빨래집게까지 팔에 붙였다. 카미바레즈는 다른 학생들의 눈치 때문에 잘 안 먹던 피팩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펑! 펑!

수업 도중에 곳곳에서 코피가 터지는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익숙한 듯 옆에 놓아둔 휴지로 코를 틀어막으며 깃펜을 움직이는 손은 쉬지 않았다.

다들 절실하다.

아니, 필사적이다.

사실상 여기서 절반 정도의 인원만 키젠 2학년이 될 수 있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 누구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릭이 분필을 내리며 말했다.

"다들 수고했......."

그렇게 말한 에릭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당장 점심을 먹으러 강의실을 뛰쳐나가야 할 학생들이 퀭한 눈으로 자리에 앉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에릭은 뒤늦게 '아'하고 작게 탄성을 흘리더니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래요. 시험 범위 몇 가지만 좀 집어줄까요?"

"감사합니다!!!"

다들 공부에 미친 사람들 같았다.

에릭의 말이라면 시시콜콜한 농담 한쪽까지 깡그리 받아적은 학생들은 비로소 만족하고 강의실을 나섰다.

"웃차차! 오늘 점심은 뭐 먹지?"

딕이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난 패스, 도서관 가야 해."

다크서클이 짙어 보이는 메이린은 대충 바나나 하나를 까서 입에 물었다.

그녀는 자로 잰 듯한 '공순이' 모드에 들어가 있었는데, 큼지막한 뿔테 안경을 끼고 앞머리를 쭉 넘겨 머리띠로 고정했다. 남은 머리카락은 뒤로 묶어서 끈으로 마무리했다.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

"......와! 메이린이 먹을 걸 마다한다고? 내일 세상이 막 멸망하는 거 아냐?"

딕이 언제나처럼 깐죽거렸지만 메이린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한 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우, 머리에 기름기 봐. 반들반들하네~ 머리 좀 감아라. 진짜."

"머리 감을 시간도 아까워."

차갑게 대꾸한 메이린이 앞서 걸어갔다. 이제 보니 교복 스커트 아래에는 그냥 파자마 바지였다.

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징하다 징해. 저거 공부 못 해 죽은 귀신이라도 들렸나."

시몬의 옆에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무안한 미소를 지었다.

"중간교사는 전교 2등이었잖아요. 이번에는 꼭 1등 하겠대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서관에 가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오답노트를 펼쳐 든 메이린이 조원들을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다 어지러움을 느꼈는지 걸으면서 한 차례 휘청이기도 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영 불안했다.

"메이린."

보다 못한 시몬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녀는 오답노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왜? 식당은 셋이서 가등가."

시몬이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1학기 때 첫 조별과제였던, '사이클롭스 수행평가' 기억해?"

"......."

"그때 네가 출전조원이었는데. 갑자기 약점인 마투를 보완한다면서 무리하다가 다리 삐끗해서 난리 났었잖아."

고개를 홱 돌린 그녀의 얼굴은 화아악 달아올라 있었다.

"가,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 흑역사라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시몬이 타이르듯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무 급하면 무조건 탈이 나게 되어 있어. 컨디션 조절도 좀 하고, 밥 먹어서 활력도 보충하고 뇌에 영양소도 공급해야지. 안 그래?"

그렇게 말한 시몬이 가볍게 팔짱을 끼며 고민하는 척했다.

"아! 그리고 오늘 점심 치킨 스테이크라던데."

주륵.

과일로만 연명하던 메이린의 입가에 어쩔 도리 없이 침이 흘렀다.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얼른 소매로 입가를 슥슥 닦고는 새초롬하게 말했다.

"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아니, 잠깐만요 아줌마!"

뒤에서 카미바레즈와 함께 걸어오던 딕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왜 나는 씹고 시몬 말에는 설득되는데? 시몬 입은 입이고 내 입은 주둥이냐? 어?"

"아가리."

메이린이 칼같이 끊으며 딕을 노려보았다.

"세상이 멸망하고 뭐? 기름기가 어쩌고저째? 넌 놀리기만 했잖아!"

"그만 그만."

시몬이 또 싸우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등을 밀며 식당으로 데려갔다.

카미바레즈도 기쁜 듯 활짝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 * *

그렇게 일주일 후.

"해방이다아아아아아아!"

기말고사가 끝났다.

제인이 시험 종료를 선언하고 답안지를 모두 걷어간 순간, 딕이 책상 위로 올라가 시험지를 휙휙 스카프처럼 휘날리다가 공중으로 던졌다.

다른 학생들도 기쁨의 탄성을 질러댔다. 성적과는 관계없이 비로소 웃음과 미소를 되찾았다.

"딕 헤이워드."

이제는 논문찢기 빈트라 뺨치는 기술로 시험지를 찢고 있던 딕이 고개를 돌리자, 제인이 무서운 얼굴로 손가락을 까닥까닥하고 있었다.

"내 연구실로 따라오세요."

"아, 교수님 제발!"

"하하하하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가는 가운데, 메이린은 마치 봉인을 푸는 것처럼 안경을 벗고 머리띠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자 화보의 한 장면처럼 하늘색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으읏!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녀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쭉 켰다. 그녀의 시험지와 비교해 보려고 다가오던 남학생 두 명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응?"

기지개를 쭉 켜던 그녀가 그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아, 뭔데. 왜 날 그런 눈으로 봐? 죽고 싶냐?"

"아, 아무것도 아냐!"

두 사람이 허겁지겁 도망치듯 사라졌다. 눈빛 한 번에 남학생들을 쫓아낸 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짐을 챙겼다.

"다들 수고했어요!"

"카미도 수고했어."

시몬과 카미바레즈도 인사를 주고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알지, 얘들아? 기말고사가 끝났지만 쉴 시간은 없어."

메이린이 시험지를 가방에 넣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이제 최대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네."

"네!"

그 말대로, 이제 키젠 1학년 학생들에게는 마지막 난관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시몬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2학년 진급시험, 과연 어떻게 나올까?"

* * *

치직.

칙.

치치지직-

-준비는 끝났나?"

"예."

어둠 속에서 은밀한 이야기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수고했다. 그럼 본 무대에서 보도록 하지.

달칵.

통신이 끊어지고, 긴 숨이 차올랐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이제 약속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천 명의 인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도의 탄생이 머지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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