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85화
광물 등껍질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대륙의 기준으로는 거북 형상을 한 몬스터.
덩치가 조금 크긴 해도 대륙에서 온갖 흉악한 몬스터들을 다 잡아본 시몬은 어렵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우, 하아. 하아!"
벌써 전투가 시작된 지 30분째.
시몬은 아직 몬스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었다.
-따닥!
-따다딱!
스켈레톤들이 몬스터를 둘러싸고 날붙이를 휘둘러댔지만, 몬스터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광석 껍질에 부딪히자 허무하게 튕겨 나왔다.
후방에서는 스켈레톤 아처가 화살을 날렸고, 그 옆에는 스켈레톤 메이지가 다크 블레이즈를 발사했다. 그러나 화살도 화력도, 몬스터에겐 통하지 않았다.
가히 철벽에 가까운 방어력.
'개문!'
스켈레톤들이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시몬은 오버로드의 촉수칼날로 몬스터의 관절 부위를 노렸다.
칼날이 몬스터의 다리를 예리하고 훑고 지나갔지만 상처하나 나지 않았다. 껍데기뿐만 아니라 모든 피부가 광석과 같은 재질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뒤로 몇 걸음 물러난 시몬이 마법진을 완성하고 검지를 뻗었다. 물리 공격이 안된다면 저주로 승부다.
<시크니스>
팅!
그러나 이 몬스터의 전신을 덮고 있는 광물은 저주마저 튕겨냈다.
"......대체 뭐야?"
이 정도로 모든 공격이 안 통할 줄은 몰랐다.
그때 몬스터가 스켈레톤들을 뚫고 시몬에게 똑바로 돌진해 왔다.
시몬은 재빨리 두 다리에 칠흑을 집중시키며 아공간을 열었다.
"부탁해! 헤르세바!"
[꼬마야!]
아공간에서 지팡이가 날아와 시몬의 손에 착! 잡혔다. 동시에 무릎을 펼치며 공중으로 힘껏 도약했다.
라이프베슬의 칠흑 회복 속도는 평범한 인간의 코어보다 느린 편이다. 그녀를 벌써 꺼내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공중에 떠오른 시몬이 몬스터의 등껍질을 향해 있는 힘껏 헤르세바를 내리쳤다.
"황금화!"
쩡!
그러나.
헤르세바의 이능마저도 등껍질을 황금으로 만들지 못했다.
[얏! 아프다고 꼬마야!]
"큭!"
공격에 실패한 시몬이 그대로 등껍질 위로 굴러떨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물리 공격도, 마법도, 저주도, 심지어는 이능도 통하지 않는다.
던전주도 아닌 일개 몬스터 하나가 말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노력해서 배워온 모든 것들이 통하지 않으니 약간의 좌절감도 들었지만, 시몬은 빠르게 멘탈을 바로잡았다.
'여긴 던전이야.'
시몬은 여기 오기 전에, 키젠 도서관에서 던전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어봤다. 의외로 던전 탐험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중요시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킬 힘도, 던전을 읽는 경험도, 바른 판단을 해내는 직관도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정신론'에 대한 이야기였다.
-던전은 별개의 세계입니다.
-당신이 살았던 세계에서 통용됐던 규칙들이 당연히 통하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육지에선 크고 강한 생물도, 바다에 빠지면 꾸물거리는 말미잘 한 줌보다 약합니다.
-모든 상식을 리셋하고 생각하십시오.
뭔가 희미하게 감이 잡히려는 순간, 몬스터가 등껍질에 시몬이 올라갔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우왓!"
시몬은 두 팔을 휘저으며 중심을 잡았다. 떨어지면 바로 육중한 발에 짓밟힐 것이다.
[으으! 으쯜 끄으? 끄므야!]
헤르세바가 튕겨 나가지 않으려 입으로 시몬의 옷자락을 문 채 소리쳤다.
"일단 여기선 물러나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굳이 지금, 무리하게 고집부려서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시몬이 헤르세바를 아공간으로 불러들인 다음, 저 멀리 보이는 나무를 향해 클라우드를 날렸다.
에메랄드 빛깔의 밧줄이 나무를 휘감자, 시몬은 두 다리를 등껍질에서 떼어 줄을 타고 날아올랐다.
몬스터는 아직도 시몬이 등껍질에 있는 줄 알고 몸을 뒤흔드는 중이었다.
* * *
로크섬.
키젠 대강당.
"이거 난장판이네요."
사회자 콘라드가 혀를 내둘렀다.
지금 막 던전에서 가져온, 옵저버의 저화질 영상을 스크린에 띄웠는데, 그 광경은 가히 총체적 난국이었다.
학생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1학년 입학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고, 자신의 실력에 커다란 자부심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이니 자신감이니 하는 건 던전에 들어온 몇 분 만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내가 던전주를 잡겠다며 호기롭게 뛰어다니던 키젠 학생들은 작은 토끼 같은 몬스터 하나 잡지 못하고 좌절하는 중이었다.
자신감과 오만이 큰 학생들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컸다.
"죽어 죽어!!"
"아니, 대체 왜 안 쓰러지는 거야?"
몬스터에게 칠흑화염계를 미친 듯이 쏟아부으며 칠흑 고갈 증상을 보이는 학생.
"아아아아악!"
시작하자마자 무리하게 싸우다가 몇 시간 만에 팔이 골절되어 도망치는 학생도 있었다. 학부모들이 안타까운 소리를 흘렸다.
"홍펭 교수님!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태어나 자란 '초원'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홍펭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초원에저는 초원의 법을 따르라."
"......예?"
"초원에 왔어도 자국의 진분이나 부를 들먹이며 마을을 어지럽히고 자연을 훼존하려는 대륙민들이 많아요. 그런 자람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초원에는 귀천이 없다. 위에는 오로지 위대한 대자연이 존재하며, 그 아래에 동등한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던전에 들어온 학쟁들도 마찬가지예요."
홍펭이 턱을 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던전에 왔으면 던전의 법을 따라야 해요."
* * *
던전 2일 차.
와작 와작.
시몬은 바닥에 앉아 고열량의 초코바를 씹고 있었다.
'나름 아껴먹긴 했는데.'
가져온 식량은 고작 이틀치.
이제 어떻게든 몬스터를 사냥해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귀한 칼로리바 하나를 맛있게 먹은 시몬이 이번에는 바닥에 놓아둔 아티팩트를 보았다.
자는 도중에 아무 곳이라도 놔두면 대기 중의 수분을 모아서 마실 수 있는 식수로 바꿔주는 일명 '생명의 샘 아티팩트'.
키젠에서 학생들 전원에게 제공해 줬지만 시험이 끝나면 반드시 반납해야 했다. 잃어버리면 2천 골드 물어줘야 한다.
'물 걱정은 없어서 다행이다.'
시몬은 감사한 마음으로 아티팩트에 고여 있는 물을 마셨다. 갈증이 단번에 사라지며 컨디션도 돌아온다.
남은 물은 수통에 한 방울도 빠짐없이 옮겨 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다시 해보자!"
시몬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며 앞에 보이는 나무로 다가갔다.
하루 지나서 확실히 알게 된 거지만, 이 세계 대부분의 동식물은 정체불명의 '광물'로 뒤덮여 있었다.
식물의 경우 뿌리에서부터 나뭇가지, 심지어 열매나 나뭇잎까지.
부위마다 강도와 신축성 등의 세세한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부 같은 광물 재질이다. 내부를 함부로 파손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 던전의 식물은 왜 이렇게 무섭게 생긴 거야?'
약간 눈 코 입 비슷한 흔적이 남아 있어서 괜히 불쾌했다.
시몬은 잡생각을 흐트러뜨린 다음, 광물로 이루어진 나무껍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살 칠흑을 흘려보내 보았다.
팅-! 팅-!
검푸른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와 파직거린다. 광물은 외부의 그 어떤 종류의 힘이라도 튕기거나 체외로 내보낸다.
어떻게든 칠흑을 침투시킬 여지가 있다면 공략의 방향이 확정됐겠지만, 시작부터 원천봉쇄당했다.
'방어기제가 아냐. 그냥 재질 자체가 던전 외부의 힘을 튕겨내는 거야.'
나무에서 손을 뗀 시몬이 손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콜 파이어>
작게 피어오른 불꽃을 나무 겉면에 대고 기다린 다음, 만져보았다.
겉면은 뜨거웠지만 잠시 후 열마저도 외부로 방출하는지 원래대로 돌아왔다. 타거나 수축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콜드 볼트>
냉기도 마찬가지. 온도로도 공략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시몬은 전격을 가하거나, 맹독포션의 내용물을 흘려보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이쯤 되면 거의 뭐 무적의 광물.
이 신소재를 밖에 퍼트리면 대륙에 대파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물론 던전에서 나온 것들을 던전 밖으로 가져오면 효과가 극도로 떨어지는 건 상식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파삭! 소리가 들리며 시몬이 인상을 찡그렸다.
방금 사념의 접속에 끊겼다.
주위에 정찰용으로 세워둔 스켈레톤이 당했단 뜻이기에, 시몬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쿵! 쿵! 쿵! 쿵!
던전에 와서 처음 봤던 그 거북 모양의 괴물이 시몬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 상대한 녀석과는 다른 녀석이었다. 이 숲에 가장 많은 개체 수의 몬스터였다.
"웃차!"
시몬이 급히 칠흑을 밟고 뛰어올랐다. 거북 몬스터가 시몬을 지나 머리를 나무에 들이박았다.
우지끈-!
시몬은 부술 엄두도 내지 못하던 그 광물로 뒤덮인 나무가, 일격에 박살 나 쓰러졌다.
바닥에 내려온 시몬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게 엄청나게 강한 힘은 아니었는데.'
던전의 동식물끼리는 타격이 통하기라도 하는 걸까.
그때 몬스터가 고개를 시몬 쪽으로 돌리더니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어?'
시몬의 눈이 커졌다. 몬스터의 이마 부분의 광석이 깨져 있는 게 보인다.
"......."
그 모습을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시몬이 비로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설마 그런 거였어?"
부웅!
즉시 옆으로 물러나 피한 시몬이 아공간에서 첫날에 구했던 열매를 꺼냈다.
광물을 깨는 방법을 익히면 먹을까 해서 보관하고 있던 거였지만.
"이걸로!"
시몬이 팔을 뻗었다. 주위에 대기하고 있던 스켈레톤들의 뼈들이 오른팔을 빠르게 뒤덮었다.
<본 아머 - 건틀릿 모드>
본 아머로 오른팔에만 일시적으로 근력을 강화한 다음, 열매를 들고 힘껏 던졌다.
꽝!
광물껍질에 덮인 열매가 몬스터의 머리에 부딪히자, 열매가 산산조각 나며 터졌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의 머리의 광물도 크게 깨졌다.
투둑. 툭.
떨어지는 잔해를 보며 시몬은 자신의 가설을 확정했다.
"던전에서는 던전의 룰을."
시몬은 저벅저벅 걸어가 아까 괴물이 박살 냈던 나무를 들었다.
<칠흑 체내 분화>
화아악!
오랜만에 사용하는 마투기. 시몬의 전신에 칠흑이 들끓으며 신체능력이 극대화됐다. 커다란 나무가 무리 없이 훌쩍 들리자 돌진해 오는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탓!
그리고 힘껏 도약해서 몬스터의 등껍질로 올라온 다음.
"하아아아아아!"
있는 힘껏 나무로 등껍질을 내리쳤다.
꽈앙!
나무와 등껍질이 부딪히는 순간, 광물끼리 번쩍이더니 양쪽 모두 박살 났다.
"이거였어!"
두 광물은 외부의 힘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광물끼리 서로 강한 힘으로 부딪히는 순간 어떤 특수한 파동 작용이 일어나며 두 광물 모두 비슷한 질량만큼 박살 난다.
괴물이 나무에 스스로 들이박아 주는 바람에 알아냈다. 운이 좋았다.
시몬은 광물이 박살 나서 속살이 드러난 괴물의 등을 향해 두 검지를 붙인 채 겨누었다.
그리고 준비했던 저주를 연사했다.
<이그저스트>
<이그저스트>
겉 부분만 광석으로 보호받고 있을 뿐, 내부는 제대로 흑마법이 통한다.
이그저스트의 스택이 쌓여가며, 비틀거리던 거북이 괴물이 이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안해."
이내 시몬의 주위 아공간에서 여섯 개의 촉수칼날이 튀어나왔다.
"고통 없이 끝내줄게."
칼날들이 무서운 속도로 괴물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몬스터가 비로소 축 늘어지자, 시몬도 힘겨운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칠흑 체내 분화의 반동으로 힘들고 숨은 찼지만 그의 입가엔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야 좀 감이 오네."
이 던전에서 커다란 한 발을 내디딘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