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86화
타닥. 탁.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던전에서 처음으로 사냥한 몬스터의 고기. 겉면이 노릇해지며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에 절로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그동안 아껴 먹는답시고 하루 두 끼 칼로리바만 먹었으니 더더욱 배가 고팠다.
"지금쯤 뿌리면 되려나."
홍펭으로부터 받은 특제 향신료를 살살 뿌린 다음, 잘 익은 고기를 손에 들고 입 앞으로 가져왔다.
비주얼은 그럴듯했다. 그냥 울룩불룩한 사슴 고기 같은 생김새다.
배가 고팠던 시몬은 한입 크게 베어 먹었다.
우물우물.
고기를 씹고 있던 시몬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이거 진짜 고기인가?'
생전 경험해 본 적 없는 식감.
굳이 대륙의 음식과 비유하자면 육류라기보다는 통통한 버섯이나 가지를 씹는 식감에 가깝다. 맛도 그냥 아무 맛도 안 나는 맛에 가까웠다.
그래도 허기를 반찬 삼아 먹었다. 불에 익히고 홍펭의 몬스터 고기용 향신료를 뿌리니 먹을 만은 했다.
순식간에 고기 여섯 덩이를 해치웠다.
"뭔가 아쉽네."
시몬이 쩝 입맛을 다시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렇게 큰 몬스터지만, 등껍질이 상체의 대부분이었고, 힘줄이 덕지덕지 붙거나 오염되어 먹지 못하는 고기들이 대다수. 물론 아직 시몬의 해체 기술이 부족한 것도 있었다.
더 구울 게 없나 해서 몬스터 시체 쪽으로 걸어가는 그때.
"어?"
시몬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해체한 몬스터의 부속물 사이에서, 기다란 가죽끈 같은 게 흘러나와 있었다. 위장에 들어 있던 것 같다.
시몬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붙잡아 당겼다.
스르륵 하고 끌려 나온 이 물건은 다음 아닌.
"......가방?"
몬스터의 위장에서 난데없이 가방이 튀어나왔다. 얼른 몬스터의 배를 크게 갈라서 위장 쪽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위장에는 이 가방 주인으로 추정되는 '해골'도 들어 있었다.
시체 전문가인 네크로맨서로서 분석해 보자면, 이것은 영장류에 가까운 형태였다. 두개골이 크고 영장류의 특징인 빗장뼈가 있다.
대륙의 인간과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지만 이 던전에도 인간과 비슷한 개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시몬이 인상을 찡그리며 가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떻게 이게 소화되지 않고 남아 있는 거지?"
이렇게 인간을 한입에 집어삼켜 잡아먹는 몬스터들은 강한 위액으로 뼈마저 녹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위에 위액이 없다. 가방의 겉면에도 젖은 느낌도 없이 빳빳하다.
'아니, 아니지. 여긴 던전이야. 대륙의 상식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어.'
시몬은 잠시 이 의문은 내버려 두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 안에서 익숙한 물건이 나왔다.
'이건!'
책이었다.
* * *
로크섬.
대강당.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정신없이 연단을 돌아다니던 사회자가 확성 수정구를 들고 외쳤다.
"지금 바로 다음 옵저버의 영상을 넘겨받아 준비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도 제 옆에는 홍펭 교수님께서 나와주셨습니다!"
옆 자리에 앉은 홍펭이 반갑게 두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제요!"
그녀를 보는 사회자의 얼굴이 잠시 헤벌쭉하게 변했다.
홍펭은 악명이 자자한 키젠 교수들과는 다른 인격자였고, 이국적인 느낌의 외모와 넘치는 건강미는 지극히 그의 취향에 가까웠다.
그래도 사회자는 프로답게 표정을 바로잡았다.
'여보, 넬리야, 오늘도 아빠는 한눈 팔지 않고 달린다!'
그가 관중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첫날 중계 이후 문의사항이 많아서 말씀드립니다! 시험이 던전 안에서 치러지는 만큼, 화질 및 시간 문제, 그리고 핵심적인 학생들을 딱 집어서 중계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던전이 워낙 넓고 방대하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교수님!"
홍펭이 방긋 웃었다.
"네~"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체취에 섞여 사회자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풀어지려는 표정을 온 힘을 다해 바로잡았다.
"영상이 준비되기 전에, 던전에 대해서 간단히나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대체 던전이란 뭔가요?"
"좋아요!"
홍펭이 드르륵 의자를 끌고 일어나 칠판 앞에 섰다. 침을 살짝 손바닥에 묻혀서 분필을 쥐고는 원 하나를 그렸다.
"우리가 지내는 이 대륙. 많은 자람들이 이 대륙이 제계의 전부라고 쟁각해요. 하지만 학자들은 우리가 있는 이 대륙 외에도-"
그녀가 대륙이라고 쓴 동그라미보다 훨씬 더 커다란 동그라미들을 주위에 쓱쓱 그려나갔다.
"또 다른 제장이 있다고 봐요."
"아하! '또 다른 세상'이란 말씀이시군요!"
"네! 그리고 이 또 다른 제장에서 갈라져 나온 여러 파편들이 있어요."
그녀가 '대륙'과 '또 다른 세상'의 사이에, 작은 알갱이들을 무수히 칠판에 그렸다.
"이렇게 많은 공간의 파편이 공간계를 떠돌고 있어요. 그런데 이 파편들이 모종의 이유로 대륙에 지공간의 비틀림을 일으키고 입구를 만들어요. 이게 바로 던전의 기본이에요."
"그, 그렇군요! 저도 던전이 어쩌고 주위에서 듣기만 했지. 이런 설명을 들어보는 건 처음입니다!"
초원 출신 및 마투학 교수라는 편견과는 달리, 그녀는 역사와 학문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강하면서 아름답고, 심지어 지적이기까지 하다니. 대체 이 여자는 부족한 게 뭘까?
"던전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지금은 멸망한 고대왕국의 지하에 공간의 비틀림이 벌어지고, 그 안에 살던 괴물들이 궁을 쑥대밭으로 만든 자태에 기인했어요."
그녀의 건강미 넘치는 입술이 움직인다. 열정적으로 칠판을 오가는 팔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던전은 발쟁과 함께 이장현장을 불러와요. 지금 우리 학쟁들이 가 있는 던전도......."
사회자가 홍펭의 설명에 푹 빠져 헬렐레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그때, 아까부터 방송 하수인이 급히 끊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뒤늦게 그 신호를 본 사회자가 급히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아! 말씀해 주신 이때, 학생들의 다음 영상을 상영할 준비가 다 됐다고 합니다! 교수님의 던전 강의는 바로 다음에 이어 듣도록 하고 우선 영상을 같이 보시죠!"
* * *
던전 2일 차.
학생들은 두 가지의 분류로 나누어졌다.
"고, 공격이 안 통해!"
"뭐 이런 게 다 있지?!"
여전히 던전 몬스터의 공략을 알아내지 못한 학생들.
"야, 찐따! 똑바로 날려!"
"으, 응!"
그리고 공략법을 깨우친 학생들이다.
타닷!
타다다닷!
메이린은 이번 진급시험에서, 하필이면 또 같은 반의 토토를 만났다.
"지금이야! 찐따!"
"응!"
토토가 지시를 내리자, 스켈레톤들이 품에 안은 열매들을 힘껏 공중으로 날렸다. 메이린이 집중력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팔을 뻗었다.
<피어스 오브 블리자드>
메이린의 특기인 정밀조준.
정확하게 발사된 얼음송곳들이 열매를 이끌고 날아가 달려오는 물소 형태의 몬스터에게 부딪혔다.
퍼억! 퍽!
열매가 부딪히자 광석으로 몸을 뒤덮은 몬스터가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광석 일부가 깨지며 맨살이 드러났다.
비로소 메이린이 왼손에 준비한 이글거리는 화염구를 꺼내 들었다.
<다크 플레어>
꽈아아아앙!
이어지는 그녀의 화력에, 몬스터는 통구이가 되어 풀썩 쓰러졌다.
"와아!"
토토가 폴짝 뛰며 좋아했다. 메이린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근데 상상도 못 했네. 이런 공략법이 있을 줄은.'
잠시 그녀의 머릿속에 1일 차의 고난이 떠올랐다.
아무리 두들겨 패도 쓰러지지 않는 몬스터에 절망해서, 몬스터만 보면 나무에 올라가 벌벌 떨면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토토를 만나서 공략을 알게 되니 이렇게 쉬울 수가. 밤 내내 나무에 올라가 있던 걸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말이 맞지? 헤헤."
잘난 척하는 토토를 메이린이 슬쩍 노려보자, 그는 즉시 깨갱 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략 가르쳐 줘서 고마워, 토토. 그럼 난 이만 갈게."
"메, 메이린! 같이 가!"
토토가 잽싸게 그녀를 따라왔다.
메이린은 으르릉거리며 짐덩이인 토토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아."
문득 생각난 게 하나 있었다.
"너 시몬이랑 같은 동아리랬지?"
"으, 응! 돌연변이 동아리 소속이야."
"그럼 벤야 선배님 잘 알아?"
갑자기 벤야라는 이름이 나오자 토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 아, 알지! 잘! 하하하!"
얼굴을 붉힌 채 더듬거리는 모습을 보며 메이린이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입가엔 음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야. 너 설마 벤야 선배님 좋아하냐?"
"아냐!!"
얼굴이 시뻘게진 토토가 꽥 소리쳤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가. 그녀가 쿡쿡 웃었다.
"좋은데~ 너랑 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 진짜?"
하인에서 친구로 격상인가! 토토가 기대감을 갖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엄~ 네가 벤야 선배님이랑 사귀게 되면 우린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도와줄......."
거기까지 말한 메이린의 시야에 짜리몽땅한 토토의 모습이 들어왔다.
키는 둘째 치더라도 무엇보다 저 자존감 없는 표정. 머릿속으로 그 옆에 멋지고 늘씬한 2학년 벤야 선배를 옆에 세워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각자 가던 길 가자."
"메, 메이린! 같이 가!"
* * *
한편 키젠 대강당에서는 메이린과 토토가 '피어스 오브 블리자드'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지켜보던 홍펭이 짝짝짝 손뼉을 쳤다.
"대단한 콤비네이젼! 환장의 팀플레이네요!"
"네?"
사회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환장의 팀플레이요!"
"아, 아아아......! 환상의...... 팀플레이......! 하하!"
사회자가 땀을 삐질 흘렸다.
"흠흠! 그보다 제가 보기엔 공략을 알아낸 학생들이 적은 게 의외입니다. 교수님."
그리고 메이린 다음으로 나온 화면에는, 학생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 장면들이 연달아 나오고 있었다.
"광석을 구해서 몬스터를 쳐보는 정도는 한번 시도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홍펭이 빙긋 웃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던전에 본인이 직접 들어가 싸우는 것과, 안전한 곳에저 제3자의 넓은 지야로 보는 건 엄연히 달라요."
"아앗! 그, 그렇군요! 제가 경솔한 소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홍펭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네크로맨저들의 경향을 쟁각해 봐야 해요. 학쟁들은 키젠에서 배운 흑마법이 엄청엄청 많아요. 대단한 명검과 보구들을 품에 가지고, 굳이 길가의 돌멩이로 찍어보는 발장을 하는 게 쥡지 않죠."
"화, 확실히......! 그렇군요."
"물론 잘하는 학쟁도 있네요!"
마침 화면에 딕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2일 차에 벌써 등과 허리에 광석 무기를 열 자루씩 짊어지고 다니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전교생에서 제일 먼저 공략법을 알아낸 인물이었다.
"자아! 그래도 학생들이 몬스터를 잡을 방법을 꿰차는 건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그럼 교수님이 보시기에! 영상에서 나온 학생들 중 던전주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도달한 학생들이 있을까요?"
메이린 일행을 비롯한 곳곳에서 활약하는 여러 학생들을 뒤로하며, 홍펭이 빙긋 미소 지었다.
"단 한 명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