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87화
4일 차.
시몬은 오늘도 주위의 경관이 잘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던전의 광물로 만든 창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방대한 들판을 예리하게 훑었다. 들소를 연상케 하는 몬스터 떼가 풀숲에서 무리 지어 활동하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몸을 덮은 광물은 갈색빛을 띠고, 꼬리는 채찍처럼 움직였다.
[어우, 더럽게 많네.]
헤르세바의 감상이었다. 지팡이가 된 그녀는 시몬의 머리 위에 꼿꼿하게 올라가 있었다.
[꼬마야! 저거 다 잡을 거 아니지?]
"응. 딱 필요한 녀석 한둘만 잡으면 돼."
[필요한 녀석?]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 상처가 있는 녀석을 찾아줘."
[상처, 상처. 상처가 있는 놈이라.]
헤르세바가 더 높이 올라갔다. 시몬도 다시 주위 경관을 내려다보았다.
이 던전의 몬스터들은 자기들끼리 잡아먹지 않고, 싸우지도 않는다. 영역다툼, 먹이다툼,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경쟁하는 등의 개념도 없다.
싸우는 경우는 단 하나.
던전의 외부에서 온 존재, 즉 인간을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 잡아먹으려 한다.
'즉, 몸에 상처가 났다는 건 외부자들과 싸웠다는 뜻이야. 몬스터들은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으니까.'
시몬은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잡았던 몬스터의 뱃속에서 나온 책이었다.
'이런 걸 또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꼬마야! 저기 찾았어!]
헤르세바가 알려준 곳을 보니, 몬스터 중에 온몸에 할퀴어진 상처가 있는 개체가 보인다. 심지어는 광석 가죽에 기다란 창 같은 게 박혀 있기까지 했다.
"잘했어! 바로 저거야."
시몬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언덕을 내려갔다.
* * *
공략법을 알아낸 뒤, 몬스터 사냥은 한결 쉬워졌다.
미리 만들어둔 광물 무기로 몬스터를 때려서 겉면의 광석을 박살 낸 다음, 드러난 맨몸에 저주를 걸거나 오버로드로 신체를 헤집었다.
그리고 헤르세바는.
[꺄아악! 꺄아아아아아!]
다른 들소 떼들의 시선을 끌면서 정신없이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녀의 활약 덕분에 시몬은 원하는 몬스터 하나를 끌어내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었다.
"웃차."
멀미 저주인 '시크니스' 2스택으로 움직임을 교란했지만, 몬스터는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저항하고 있었다.
그 위에 올라가 있던 시몬은 휘청휘청 흔들리다가 복부 부근에 박혀 있는 창대를 발견했다.
'이거다!'
꾸우욱!
그것을 양손으로 힘껏 틀어쥐고,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푸하악!
핏물이 터져 나오며 창이 시원스레 뽑혔다. 창날은 시몬이 쓰던 것처럼 광물로 이루어져 있다.
'역시 키젠 학생이 한 짓이 아냐.'
창은 낡고 오래되어 보인다. 시몬은 자신의 가설이 점점 더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쿠웅!
마침내 몬스터가 멀미와 출혈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시몬은 얼른 기척 차단 효과가 있는 포션을 몬스터의 몸에도 뿌린 다음, 그것을 질질 끌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 * *
타닥 타닥!
이렇게 성공적인 사냥 뒤에는 고기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를 잡은 시몬은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 몇 개를 나무에 꽂아서 올려두었다.
"수고했어 헤르세바."
[힘들어!!]
시몬은 칭얼거리는 그녀를 달래며 해체작업을 계속했다.
이번에도 위장에 해골과 각종 유품이 들어 있다. 책도 한 권 있었다.
"대박이다!"
시몬이 뿌듯한 얼굴로 전리품을 늘어놓았다.
벌써 이렇게 얻어낸 책이 총 세 권이나 됐다.
던전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전교생 647명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성과였다.
[그런데 꼬마야.]
지팡이가 된 헤르세바가 콩콩 뛰어와 책 앞에 썼다.
[왜 이런 책이 몬스터의 몸에 있는 거야? 그리고 이걸 누가 쓴 건데?]
"두 가지 가설이 있어."
시몬이 손가락을 펼쳤다.
"첫째. 우리보다 먼저 던전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둘째, 원래부터 던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사람이 있었단 거네.]
"응."
그들은 몬스터의 공격으로 전멸한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책을 쓰고 무기도 만드는 등, 나름대로 이 던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있다.
시몬이 책을 펼쳐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꼬불거리는 언어, 그리고 각종 그림자료가 가득했다.
[읽을 수 있겠어?]
헤르세바의 물음에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 보는 언어야. 그래도 그림이 많아서 어떤 내용인지 짐작은 가네."
시몬은 이 지식을 이용해 새로운 광물 무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광물을 가공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었다.
"이렇게."
바닥에 날것의 광물 덩어리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뗀석기처럼 대충 날카로운 광물을 모서리 부근에 딱 올려놓고, 같은 뗀석기로 그 위를 힘껏 내리친다.
까앙!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네 귀퉁이를 이렇게 몇 번 내리치자, 파스슥 소리와 함께 광석이 굵직굵직하게 갈라져 써먹기 좋게 변한다.
[오우!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제 창대 위에 광석을 단단히 꽂은 다음 접착포션을 부어 말리면 완성.
일회용이긴 하다만, 이걸로 몬스터를 찌르면 몬스터의 단단한 껍질을 부수는 동시에 속살을 찔러서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시몬은 여러 다발의 창을 만들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너무 많아.'
던전의 몬스터들은 먹지 않는다.
그래서 소화기관이 극도로 퇴화했고, 배설기관도 사라졌다. 그들이 잡아먹은 해골이나 물건이 위장에 떡 하니 남아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큰 몬스터들이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활동하는 게 이상하다.
음식물 섭취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원. 그게 뭔지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단서를 던전주의 위치와 어떻게 연관시킬지가 가장 문제야.'
4일 차인데 도저히 이 던전의 실마리가 잡히질 않는다. 시몬은 벌러덩 풀밭에 누워서 전에 얻은 책들을 훑어보았다.
던전의 동식물들이 그려진 도감이었다.
글자를 읽을 수는 없었기에 그림만 보는 식으로 페이지를 휙휙 넘겼다.
'어.'
그리고 마지막 장.
인간이 나왔다.
인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그림. 그 주위의 몸에는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바닥에서 하얀 손이 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건 뭔가.'
시몬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상징적인 의미 같은데.'
* * *
로크섬.
키젠 대강당.
"자아! 벌써 진급평가 5일 차!"
눈 아래에 짙은 다크서클이 생긴 사회자 콘라드가 서류를 들어 올렸다.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었지만 프로답게 목소리는 컸다.
"간단한 중간 리뷰가 있겠습니다! 벌써 5일 차인데 학생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홍펭 교수님!"
"어렵네요."
홍펭이 턱을 괸 채 영상을 바라보았다.
"던전 클리어는 제 쟁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요."
던전주 공략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모든 학생에게 있었지만, 극악한 환경 안에서 학생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 바빴다.
본인 생존하기에도 벅찼기에, 던전 공략이 아니라 던전 서바이벌 평가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미쳐가는군요."
영상에서 먹을 게 없어서 광물을 씹다가 이가 나가는 학생을 보며, 사회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대로는 진짜 큰일 날 것 같습니다! 특히 홍펭 교수님 말씀대로 시험이 한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된다면 끔찍한데요! 최대한 누군가 던전주를 빠르게 쓰러트리고 시험을 끝내주면 좋겠군요!"
홍펭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주목할 만한 건 파티를 이룬 학쟁들이에요."
엘리사 셀린의 4인 파티.
그리고 딕이나 제이미 등의 학생들도 3인 파티를 완성했다.
이들은 서로 몬스터 공략법을 공유하고, 사냥으로 식량을 손에 넣었다. 생존에 여유가 생기면 던전주 찾기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여지가 생긴다.
"그리고...... 아!"
마침 영상에 모닥불을 피운 채 책장을 넘기고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년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말끔했고, 영양 상태도 무척 좋아 보였다.
오랜 시골 영지 생활로 생활력이 강한 시몬이었기에, 고통받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던전에서도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유롭게 책까지 읽고 있네요. 저게 무슨 책일까요?"
사회자가 물었다.
그때 홍펭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정정하겠어요."
"네?"
"아까 말한 두 달이 아니라, 2주로."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전부 저 지몬 학쟁에게 달려 있어요."
* * *
5일 차.
시몬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깜짝 놀랐다.
어젯밤, 그의 근처에 있던 언덕이 통째로 사라졌다. 나름 엄폐물이라고 언덕 뒤에 자리 잡은 건데, 일어나니 주위가 휑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언덕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발자국이 나 있다.
시몬이 그 발자국을 따라 가보니, 아까 그 언덕과 거의 똑같이 생긴 초대형 몬스터가 비비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설마......."
시몬은 얼른 동식물 도감을 꺼내 뒤적거렸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몬스터 그림, 왼쪽 페이지에는 식물 그림이 보인다.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는데 이제야 규칙성이 보인다.
이 던전의 몬스터들은 모두―
'!'
시몬이 오싹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크게 뻗어 있는 나무들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공포의 감정이 싹텄다. 그냥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이렇게 공포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래, 식물이고 동물이고 모두 광물로 뒤덮여 있었어. 동물들은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았고, 식물에는 눈코입 같은 이목구비가 있는 것들도 있었지.'
시몬은 몬스터들을 몰래 따라다니며 관찰한 결과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던전의 몬스터들은 주위의 지형지물 및 던전의 자연 일부로 변한다. 나무나 언덕, 바위 따위로 말이다.
바닥에 몸을 딱 붙이고 웅크려 있으면 유기체 조직이 변화를 일으키며 바위든 식물이든 특정한 개체로 굳어진다. 반대로 식물이 됐다가 다시 동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대륙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이 던전의 몬스터는 그런 생리를 가졌다.
'......조심해야겠네.'
던전의 몬스터들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도 깨달았다.
에너지를 다 쓰면, 이들은 식물로 변해 광합성 등의 방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촤르륵!
시몬이 도감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 식물로 변하는 이 그림. 그리고 그 옆에 보이는 '하얀 손'.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뭐지?'
이것저것 시도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흉내라도 한번 내보기로 했다.
광석에 줄을 연결해서 일종의 광석 옷을 만들고, 그것을 몸에 뒤집어쓴 다음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후우우."
그리고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건 시몬의 주특기였다.
그렇게 얼마 있기 무섭게.
'......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다. 이성은 어떻게든 유지해야 했다.
'집중, 집중.'
그렇게 힘겹게 이성의 줄을 붙들고 버티기 몇십 분.
쿡.
바닥에서 일어난 하얗고 얇은 말단 신경 같은 것이 시몬의 몸에 연결을 시도했다.
시몬은 모른 척했다. 이윽고 그것은 시몬이 던전의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시몬이 눈을 번쩍 떴다.
'방금 확실히 내게 접촉했어!'
이게 바로 도감에 나와 있던 '하얀 손'의 정체였다.
그리고 시몬은 온몸에 느껴지는 잔재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도 그 하얀 신경이 물러난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멍하니 있던 시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