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88화
던전의 수수께끼가 점점 풀리고 있다.
이곳에 사는 몬스터들이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고 어떻게 에너지를 보충하는지 계속 궁금했는데, 몬스터들은 힘이 다 떨어지면 식물이나 바위 등 던전의 자연물로 변한다.
그리고 이 상태로 잠시 기다리면, 알 수 없는 존재가 직접 하얀 신경 같은 것을 접촉시켜 에너지를 전달해준다.
시몬은 그 알 수 없는 존재가 '던전주', 즉 보스 몬스터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의 생태계를 조율할 정도의 존재라면 던전주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 존재와 맞닿을 수 있는 방법.
'몬스터처럼 하는 거지.'
자리에 앉아 집중력을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던전주로 추정되는 존재가 신경세포처럼 생긴 하얀 촉수 같은 것을 보내온다.
그러나 접촉하는 순간, 던전주는 시몬이 몬스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친다. 그래도 시몬에게는 그 촉수가 도망치는 방향에 대한 잔여감이 강하게 남는다.
그 방향으로 계속 걸으면 된다. 일종의 나침반인 셈이다.
방향을 잃었거나 헷갈리게 되면 다시 그것을 반복해 던전주를 속이고 방향을 캐치한다.
여기까지 알아내는 데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광물로 몸을 덮는 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조건은 최소 한 시간 이상 미동하지 않을 것, 호흡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흐트러지지 않을 것, 수면하지 않을 것, 주위에 나무나 식물이 많은 곳에서 할 것 등이다.
그렇게 10일 차.
"음."
명상 중이던 시몬은 이번에도 던전주의 움직임을 느끼고 눈을 떴다.
이젠 정말로 던전주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접촉 후의 잔여감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일단 뭐라도 좀 먹자.'
명상하느라 배가 고팠기에, 시몬은 저번에 몬스터를 사냥하다 남은 고기로 배를 채웠다.
언제 먹어도 맛이 없었다. 이곳의 몬스터들이 식물로 변하는 걸 알고 나니 더욱 그랬다.
'......어쩐지 식감이 고기가 아니라 버섯을 씹는 식감이라더니.'
게다가 몬스터의 살점은 몇 시간만 지나도 흐물흐물 말라붙은 식물처럼 변해 버렸다.
보존기간은 고작 하루. 즉, 하루에 한 번은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웃차."
식사를 마친 시몬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방향은 정해졌고, 슬슬 오늘 저녁에 먹을 사냥감도 구해야 했다.
그의 시야에 숲 바닥 곳곳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발자국이 보인다.
'일단 이걸 따라가...... 어?'
시몬이 눈을 부릅뜨며 무릎을 굽혔다.
바닥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정한 한 쌍의 보폭.
그보다 놀라운 건, 여기 와서 질리도록 봐온 몬스터들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이거 신발 자국이잖아!'
키젠 학생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 시몬은 즉시 발자국을 따라 달렸다.
축축한 바닥이라 자국이 잘 보이고, 갈수록 파여 있는 폭이 깊어졌다. 최근에 누가 여기 머물렀다는 증거다.
이내 발자국을 따라 빼곡한 숲에서 빠져나오자.
휘이이이잉-
눈부신 빛과 함께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곳에는 휘날리는 하늘색의 긴 머리카락과 소녀의 등이 보였다. 샤락 하고 귀밑머리를 넘기던 그녀도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
소녀의 두 눈망울이 급격히 커졌다. 놀라움도 잠시, 이내 표정에서 숨길 수 없는 반가움과 감격이 튀어나왔다.
"시......!"
"시모온!!!"
그런데 그녀보다 한발 앞서 튀어나온 한 명이 있었다.
토토가 시몬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토, 토토?"
"흐허헝! 시몬! 만나서 반가워! 진짜 무서웠어!"
그러면서 슬쩍 메이린 쪽을 곁눈질로 보는 토토였다. 메이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야!! 내가 뭐 어쨌다고!"
"흐익!"
토토가 시몬의 등 뒤로 숨었다.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너희 둘은 여전하네."
"......내 재회의 감동 돌려내. 진짜."
메이린이 이마를 짚으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시몬을 보았다.
10일이나 지났으니 남자애들은 덥수룩한 수염에 얼굴도 꾀죄죄할 줄 알았는데, 시몬은 여전히 반듯한 모습이었다. 여유 있게 면도까지 한 모습.
하긴 저번 섬 생존평가 때도 그랬고, 이 인간은 어디에 떨어뜨려도 살아남을 것 같긴 하다.
"혹시 일행 더 있어?"
메이린이 물음에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처음 만난 게 너희야."
메이린이 반짝이는 눈으로 손을 착 내밀었다.
"그럼 우리랑 같이 활동할래? 물론 너만 좋다면......."
시몬이 그 손을 맞잡으며 미소 지었다.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딱 좋은 기분 좋은 악력이 그녀의 하얀 손을 덮었다.
"당연히 좋지."
메이린의 입가에 헤픈 미소가 새어 나왔다. 던전에 온 이후로 쭉 막막하기만 했는데, 시몬을 만나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물론 토토도 있긴 하지만, 그는 의지가 된다기보다는 메이린 본인이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무, 물론 내가 대장이야! 이의 있어?"
"하하! 마음대로 해."
세 사람은 그간의 경과를 이야기하고 알아낸 정보를 공유했다.
일단 세 사람 모두 광물 몬스터의 공략법과, 몬스터가 식물로 변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메이린과 토토는 던전주의 위치까지는 몰랐지만, 나름의 기준을 가진 채 이동하는 중이었다.
"자세히 보면 말야. 나무들의 뿌리가 일정한 방향으로 쏠려 있어."
"그래?"
메이린의 말에, 시몬이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근처의 나무뿌리를 훑어보았다.
"......음, 나는 잘 모르겠는데."
"진짜 진짜 자세히 살펴보면 미세하게 방향이 같아."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미세한 정도라면 의미 없는 정보 아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메이린이 팔을 넓게 펼쳤다.
"그 조건이 여기 있는 모든 나무가 동일하다면?"
식물의 뿌리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건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숲의 300그루 중에서, 299그루가 똑같이 그렇게 쏠려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대단한 발견은 아닌데, 우리가 알아낸 건 이 정도뿐이었으니까 무작정 이 방향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어."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던전주의 하얀 촉수는 지면을 타고 올라와 식물화된 몬스터에 영양을 공급한다. 그쪽으로 뿌리의 방향이 쏠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식물의 뿌리란 게 지형의 경사면이나 바람, 빛 등의 자연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100% 확실한 단서는 아니었다만, 결국 뭐라도 확실한 방향성을 잡고 이동했기에 이렇게 시몬을 만날 수 있던 거였다.
시몬은 이번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이야기했다.
"던전주와 접촉할 수 있다고?"
메이린과 토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한번 해볼래!"
메이린은 얼른 무릎을 모으고 앉은 자세로 눈을 감았다. 옆의 토토도 호기심이 생기는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들썩! 들썩!
30분도 못 버티고 메이린의 어깨가 지루함에 들썩이고 있었다. 토토는 아예 입에서 침까지 줄줄 흘리며 자고 있었다.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 다 실패야."
방법을 알아도 산만한 성격이거나 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하기 힘들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실패했지만, 시몬은 한 번 더 던전주와 접촉해서 방향을 재확인한 뒤였다.
"방향은 내가 알려줄게. 움직이자."
"응!"
일단은 직접 가서 시몬이 세운 가설을 증명하고, 던전주의 위치를 확정하는 게 급선무였다.
세 사람은 부지런하게 걸음을 옮겼다.
던전주가 있는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몬스터들이 커지고 수도 많아졌다. 들키면 끈질기게 덤벼들기에, 최대한 몬스터가 없는 방향으로 둘러둘러 이동해야만 했다.
"시몬! 정면의 오솔길에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해!"
정찰을 나간 토토가 보고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물 무기를 아껴야 해. 여기 산언덕을 올라가면 전투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시몬이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메이린도 그쪽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체력소비가 심하겠지만 어쩔 수 없겠네."
"잠깐만."
시몬이 아공간을 열었다.
등장한 여섯 기의 스켈레톤들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세 사람의 몸에 철썩철썩 달라붙었다.
"자, 이걸 입고 등반하면 좀 나을 거야."
"전신 본 아머라니이!"
시몬을 보는 토토의 눈이 존경심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휙 휙.
본 아머를 다 장착한 시몬이 팔을 휘둘러보더니 먼저 시범을 보였다.
두 팔을 뻗어 튀어나온 곳을 붙잡은 다음, 오른발로 탄탄한 지점을 밟고 쑥쑥 올라갔다.
"따라와 메이린!"
"아, 응!"
메이린도 바로 본 아머의 외골격 효과를 시험해 보더니 경사진 언덕의 튀어나온 부분을 짚고 올라가 보았다.
"좋네! 이거 힘들이지 않고도 쭉쭉 올라가!"
메이린도 순식간에 적응을 마쳤다. 다소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그녀도 시몬이 본 아머로 직접 보조하고 있으니 문제없었다.
"야! 찐따!"
신이 난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 이렇게 느려? 빨리 와!"
그런데 뒤따라오던 토토가 메이린과 눈을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
"왜 그러느......."
뒤늦게 메이린이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퍼억!
이내 그녀의 뒷발차기에 맞은 토토가 절벽에서 미끄러졌다.
토토는 다시 벽을 타고 기어서 메이린보다 먼저 올라가야 했다.
"......시몬, 나 정말 힘들었어."
얼굴에 신발 자국이 난 토토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원체 소심한 성향의 토토는 메이린의 성격을 감당하기 힘들었으리라.
"사, 사실 메이린은 날 싫어하는 게 아닐까?"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진 토토가 쭈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메이린은 결과를 중시하는 철저한 성적 우선주의자다. 그런데 이번 진급시험의 1위를 진지하게 노리고 있는 그녀가, 짐이 될지도 모르는 토토를 끝까지 데리고 다니며 보호하고 있다.
그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메이린은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라, 맘에 없는 행동이나 말을 가끔 해."
시몬이 말을 이었다.
"너도 메이린을 조금 더 편하게 대하면 알게 될......."
"그, 그것부터가 불가능해!"
토토의 투정에 시몬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본 아머의 힘으로 절벽의 꼭대기에 올랐다.
"와, 진짜 보스가 있을 만한 장소에 왔네!"
메이린이 콩콩 뛰며 기쁨을 표출했다. 이 던전 어디서도 본 적 없었던 새까만 산맥의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자, 내려가자. 조심해."
시몬이 앞장서서 내려가려는데, 토토가 하늘을 가리켰다.
"얘, 얘들아. 저기 뭔가 오는데?"
"응?"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새인 줄 알았는데, 새가 아니었다.
"......!"
검은 용이었다.
펄럭!
날개에 구멍이 숭숭 난 검은 날개를 휘날리며, 커다란 용 한 마리가 내려왔다. 날갯짓만으로도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꺄아악!"
"숙여!"
시몬이 칠흑을 일으킨 채 자리에 엎드린 메이린과 토토를 지탱해 주었다. 이내 검은 용이 세 사람이 있는 까마득한 언덕 꼭대기에 다리를 붙이고는 날개를 접었다.
'하필 이런 곳에서......!'
시몬이 입술을 깨물었다.
검은 용의 몸이 점점 줄어들더니 몸에 빈틈없이 박혀 있던 비늘도 튀어나와 대롱대롱 매달리게 됐다.
파충류 특유의 주둥이가 들어가고 반듯한 인간의 얼굴로 돌아오며 날카로운 이빨도 가지런하게 변했다.
"시몬 폴렌티아."
이내 모두가 알고 있던 헥토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헥토르!"
메이린이 벌떡 일어나 두 손에 마법진을 일으켰다.
"던전 안에서 학생들 간에 교전은 금지인 거 알지?"
"교전은 금지겠지만, 이 언덕에서 조금 아프게 굴러떨어지는 정도는 교전이라고 할 수 없겠지."
"너어!"
달려들려는 메이린을 시몬이 팔을 들어 막아 세웠다.
"무슨 용건이야?"
승부욕이 지나치게 심하고, 한번 화나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긴 하지만, 시몬이 보기에 헥토르는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헥토르도 시몬을 보았다.
"네놈이라면 보스의 위치를 찾아냈겠지."
"......."
"안내해라."
던전 클리어에 협력해 주려는 건가?
시몬은 내심 반가웠지만 메이린이 '흥'하고 팔짱을 꼈다.
"니가 뭐가 예쁘다고 우리가 그래야 하는데?"
헥토르가 말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 안내하지 않아도 뒤에서 끝까지 따라오겠지. 시몬은 그를 보고 말했다.
"한 명이라도 전력이 더 필요해. 이번 보스전에서는 협력하자 헥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