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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90화 (39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90화

실라지 비사바르.

1학년 1학기의 혈류학 교수다.

시몬의 입장에선 입학식 때 황천고래로 로크섬에 데려다준, 제일 먼저 만난 키젠 교수였기에 더욱 각별하게 기억이 남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름을.

'어째서 발터 교수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실라지 교수님을 어떻게 했지?"

"어떻게 하다마다."

발터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내가 실라지라네."

발터의 목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제3자의 목소리에, 시몬은 혼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실라지 교수님은 분명 임무로......."

"그래, 임무 때문에 키젠에서 떠나야만 했지."

실실 웃고 있는 이 남자는 무척이나 이 상황이 즐거운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번 '사도 탄생 계획'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키젠에 남아 있어야 했네. 그래서, 내 제자 발터를 후임으로 키젠에 보내기로 한 다음-"

발터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를 먹었다네."

"......!!"

"그리고 그의 몸으로 다시 키젠에 돌아온 걸세. 내 소중한 제자 발터에게는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야."

한꺼번에 폭발하듯 밝혀진 거대한 진실에, 시몬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먹었다는 표현이 정확히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만, 실라지가 발터의 몸을 차지한 건 확실해.'

그럼 그때 필적감정이 다른 사람으로 확정된 것도 이해가 된다. 발터의 서명과, 발터로 변한 실라지의 서명이 같을 리가 없으니까.

머릿속에 의문으로 남았던 여러 퍼즐들이 짜 맞춰진다.

혈천교에 이어 지금의 진급시험 사태까지. 그 모든 흑막은 발터가 아니었다.

시몬이 만난 최초의 교수, 실라지였다.

시몬의 주먹에 꾸욱 힘이 들어갔다.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당신 제자들이잖아. 당신이 아꼈던 카미바레즈도 있어!"

"아꼈지. 희귀한 우르슬라의 피를 가진 카미바레즈도, SM-1 피를 보유한 자네도, 하지만."

그가 미소 지었다.

"사도의 강림이라는 목적을 위해선 아무것도 아니라네. 자네를 포함한 1학년 전원은 위대한 업적을 위한 제물이 될 걸세. 우리는 젊고 생생한 코어와 심장이 다수 필요했거든."

등허리에 전율이 오르며 시몬의 얼굴이 바싹 굳었다.

"제물이라고?"

"밖에서 자네가 본 그 동상들이 제물이 된 모습이네. 심장을 바칠 준비를 마친 게야."

딱딱하게 굳은 메이린, 그리고 토토와 헥토르의 모습을 떠올렸다.

뇌리에 번지는 충격에 육체와 사고가 얼어붙었다.

"그럼 당신은-!"

"자네는 아주 현명한 학생이야."

발터, 아니.

어떤 끔찍한 흑마법으로 발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실라지가 시몬의 말을 끊었다.

"그 들끓는 분노마저 갈무리하고 바깥의 교수들이 들어올 시간을 버는 겐가."

"......."

"소용없네."

그의 손가락이 하늘에 펼쳐진 피의 고리를 가리켰다.

"저 피의 고리는 내가 수백 년간의 연구로 만들어낸 걸작일세. 생명체인 이상 그 무엇으로도 뚫고 들어오지 못하지. 바힐도, 제인도, 심지어 네프티스가 와도 마찬가지라네."

시몬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프티스가 혈류학 권위자인 실라지를 파견 보낸 이유도, 던전의 입구를 막고 있는 저 피의 고리를 부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러나 공교롭게도 저 피의 고리는 실라지 본인이 만든 거였다.

'......그보다, 방금 수백 년간의 연구라고 했어.'

시몬이 실라지가 차지한 발터의 몸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이 끔찍한 짓을 해온 거지?"

"우문이군. 자네는 지금까지 몇 끼를 먹었는지 세어왔나? 나는 아주 오랜 세월 존재했네. 자네들의 우상인 네프티스와 같은 괴물이지."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내 이름은 실라지 비사바르. 진리를 탐구하는 불로불사의 네크로맨서이자-"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혈천교의 '대주교'다."

파아아앗!

피의 고리에 광채가 일며 주위의 붉은빛이 더더욱 강해졌다. 시몬은 필사적으로 피가 끓는 걸 억누르며 대검을 고쳐 잡았다.

"이곳은 다른 공간. 외부에서의 침입은 불가능하다네. 1학년 전교생은 '제물'이 되었지. 이제 자네가 유일한 희망이로군."

처억!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치켜세웠다.

'상대는 키젠 교수.'

흔들림 없이 칠흑을 뿜어내며 서 있는 실라지의 모습에, 검 손잡이를 쥔 손에 땀이 줄줄 흘렀다.

'동시에 혈천교의 대주교다. 피어를 입은 상태라고 해도 이길 수 있을까?'

정면승부는 위험하다.

방법은 한 가지.

시몬의 눈동자가 살짝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실라지의 붉은 창에 꽂힌 '던전주'가 축 늘어져 있었다.

죽인 게 아니라 봉인을 해둔 것이리라.

'던전주를 죽이면 이 던전도 파괴돼. 밖에 있는 교수님들을 부를 수 있어!'

제인이나 바힐, 둘 중 한 명이라도 불러들일 수 있다면 베스트다. 계획을 세운 시몬이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콰직!

발이 맞닿아 있는 바닥에 금이 갔다. 이내 지면을 힘껏 걷어차며 돌진했다.

'온 힘을 다해 실라지의 시선을 끈다!'

이에 실라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손을 움직이지도 않고 마법진을 펼치지도 않는다.

'무슨 속셈이지?'

의문을 품고 있던 시몬의 눈동자에.

허공에 떠 있는 작은 핏방울 입자가 보인다.

시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급브레이크를 밟고는 몸을 날려 자리에서 이탈했다.

퍼어어어엉!

이내 작은 핏방울이 사람 한두 명은 집어삼킬 크기의 피폭발로 변했다.

"호오."

실라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걸 대처하다니. 자네, 이 기술을 경험한 적이 있군."

숨길 것도 없었다.

시몬이 빠르게 방울이 없는 측면으로 우회하며 소리쳤다.

"신성연방에서 벌어졌던 혈천교의 신성열차 습격 사건!!"

하얀 대검이 실라지의 등을 노리고 내려왔다.

"거기서 혈천교 주교를 쓰러트린 게 나다! 대주교!"

그때 실라지의 전면에 떠 있던 핏방울들도 빠르게 뒤로 돌아왔다. 이내 먼저 폭발하며 생기는 혈류가 시몬의 대검을 밀어냈다.

"영리하군. 힘과 말로 어떻게든 내 신경을 붙잡아두고."

실라지의 고개가 돌아갔다.

"뒤꽁무니로는 저런 걸 준비하고 있었나."

[앗!]

몰래 봉인된 던전주에게 접근하고 있던 헤르세바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망쳐 헤르세바!"

사방에서 밀려드는 피의 사슬들이 헤르세바를 붙잡으러 다가왔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꽈아앙!

그사이 시몬의 대검과 실라지의 핏방울이 한 번 더 격돌했다.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뤄지는 저 혈류마법은 여전히 까다로웠다.

'피폭발 때문에 뚫고 들어갈 수가 없어!'

"자네가 입은 본 아머에서 느껴지는 그 칠흑. 그리고 학생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강함."

실라지가 느긋한 미소를 흘렸다.

"통제불능인 에이션트 언데드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네크로맨서는 하나뿐이지. 그렇지 않나? 배신의 제7군단장."

"......."

시몬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히죽 웃었다.

혈천교 대주교와 배신의 군단장.

피차 정체를 알았기에 이제는 확실히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운명뿐이다.

"자네가 군단장이라면, 나도 조금 진지해질 필요가 있겠지."

딱!

실라지가 손가락을 튕겼다. 봉인된 던전주의 몸이 가슴을 관통한 붉은 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붉은 창은 마법진의 모습으로 변해 근처의 암벽에 고정되었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봉인이네. 그리고."

실라지가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인 채로 손바닥을 펼쳤다.

꾸르르르륵!

천 개가 넘는 붉은 방울들이 흘러나와 주위를 시뻘겋게 메웠다. 저 하나하나가 모두 피폭발 효과가 있는 방울이다.

실라지가 팔을 휘젓는 것으로 천 개의 핏방울들이 한꺼번에 날아왔다.

까득!

시몬의 잇새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강하게!'

오른발로 바닥을 짓밟았다. 동시에 칼날을 세운 대검을 움직여 평평한 부분이 보이도록 바꾸었다.

'검격이 아니라 검풍으로!'

시몬이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뒤트는 힘으로 생긴 회전을 그대로 검에 실은 다음.

쿠와아아아아아아악-!

휘둘렀다.

대검이 움직인 방향으로 풍압이 거칠게 터져 나오며 쇄도하는 방울들을 모조리 반대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실라지도 즉각 대처했다. 풍압에 밀려나던 방울들이 빠르게 자기들끼리 뭉치더니 이내 지름 10미터 크기의 초대형 핏방울로 바뀌었다.

중간은 붉은색이고, 테두리는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그 큰 덩어리 두 개가 시몬에게 쏟아졌다.

[피하겠다! 소년!]

시몬이 대검을 휘두른 반동에 멈춰있자 피어가 직접 시몬의 다리를 움직였다.

시몬이 도약하는 동시에 피의 구체가 떨어져 대폭발이 일어났다.

"......아!"

그것은 산마저 무너뜨릴 만한 피의 격노.

바닥이 갈라지고 대기가 끓어올랐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능선 하나가 충격으로 무너져내렸다.

"크윽!"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시몬이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소년! 한 발 더 온다!]

푸화악!

시뻘건 바람을 뚫고 또 두 번째 구체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공간째로―'

몸에 반동이 남아 있었지만 죽을힘을 다해야 했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몸을 회전시켰다.

'베어내는 감각!!'

쩌어어어어어어엉!

파멸의 대검이 하늘에 기다란 직선의 흉터를 남기고, 그 안에 속한 피의 구체 또한 쩍! 소리와 함께 갈라지더니 폭발한다.

구체는 갈라냈지만, 중심부가 아닌 구체 외부가 다시 작은 핏방울로 변해 시몬에게 떨어졌다.

'파편이!'

[꼬마야!!]

헤르세바가 시몬의 앞으로 급히 날아왔다. 동시에.

퍼버버버버버버벙!

핏방울들이 일제히 폭발하며 시몬의 몸을 집어삼켰다.

도저히 인간의 피로 만든 폭발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경지.

지형을 바꾸는 피폭발을 실라지는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흙먼지가 걷히며, 주위는 황금의 건축물들과 오버로드의 몸체로 감싼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오버로드가 키긱 거리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자, 그 사이로 시몬의 두 눈이 드러났다.

오버로드가 너무 큰 데미지를 입었다. 칼날들을 모두 회수한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푹.

그리고 헤르세바를 뽑아서 피어의 본 아머가 감싸지 않은 왼손에 들었다. 헤르세바를 들자마자 시몬의 몸에 황금 도포의 형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헤르세바."

시몬이 진지하게 말했다.

"제3권능을 쓸게. 괜찮지?"

[절대 안 괜찮아!]

헤르세바가 빼액 소리쳤다.

[나 그때 결투평가인가 뭔가 할 때 진짜 소멸할 뻔했다고! 다신 쓰고 싶지 않다고! 너도 당분간은 봉인한다며!]

"하지만 이대로 가면 우리 둘 다 당해."

[......으으.]

짝. 짝. 짝.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인상을 확 찡그리며 본 곳에서는 실라지가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우수해. 몇 번을 봐도 죽이긴 아깝군."

그가 손을 내렸다.

"자네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해주겠네. 나와 함께 가세."

"......뭐?"

"마침 발터의 자리가 비었지. 내 제자로, 그리고 혈천교의 주교로 들어오게. 그저 이번 일만 못 본 척하면 자네의 목숨은......."

실라지의 말이 멈췄다.

시몬이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그것은 힘 빠진 헛웃음에 가까웠다.

이내 싸늘하게 웃음을 멈춘 시몬이 손목을 떨어뜨렸다.

"......구역질이 나."

지금까지 시몬이 알고 있는 혈천교의 악행만 해도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신성연방의 주민들을 꾀어내 불안한 코어개방 시술을 하고, 실패자는 끔찍한 실험 끝에 블러드 좀비로 만들었다.

신성열차의 승객들을 납치했다.

죄없는 키젠 학생들을 흑마법의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다.

암흑연합과 신성연방의 평화를 깨고,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대전쟁을 일으키려 했다.

적어도 성녀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성녀 플레마는 여신과 신성연방에 충성한다는 본인만의 이유라도 있었다.

하지만 혈천교는, 실라지는.

"난 이분법적인 선악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처억.

시몬이 파멸의 대검과 헤르세바를 동시에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이 대륙에서 가장 끔찍한 악(惡)이야. 실라지 비사바르."

실라지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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