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95화
칠흑과 신성을 융합했을 때 탄생하는, 일찍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제3의 마력.
보이드(Void).
"있을 수 없다......!"
실라지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극단적 상극인 칠흑과 신성의 융합이라니! 차라리 악마와 천사가 교합한다는 말을 믿으리라.
진리를 얻고자 했던 수백 년의 세월과 연구들이, 저 존재하지도 않았던 힘에 의해 깡그리 부정당하고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네크로맨서로서의 사고가 끊임없이 저것을 분석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극도의 두통과 허무감이 머릿속을 잠식할 뿐이었다.
날붙이.
날붙이가 필요했다.
만약 손에 칼이라도 쥐고 있었다면 당장 스스로 머리를 꿰뚫었으리라.
이마가 지끈거리고 오장육부가 뒤틀렸으며 입에선 침이 줄줄 흘렀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미쳐가는 것 같다.
"있을 수 없다!!"
당장 저것을 눈앞에서 치워 버려야 했다.
실라지의 의지에 반응한 강화 블러드 좀비들이 쏜살같이 몰려들었다.
[소년!]
"괜찮아요 피어."
시몬은 여유롭게 피어를 막아 세운 다음, 구체의 형상을 하고 있는 보이드를 자신의 가슴에 가까이 댔다.
츠스스스스스-
그러자 보이드가 시몬을 뒤덮으며 의복의 형상으로 변했다.
우주를 비추는 듯한 검푸른 빛의 망토는 시몬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그 끝부분이 휘날렸다.
시몬은 지금, 공허를 입었다.
-어어어어어!
블러드 좀비들이 시몬의 목을 물어뜯으려 달려들었지만.
사라라락-
가까이 가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전신이 검은 잿더미가 되어 휘날려 버렸다.
사라락!
사라라라락!
이내 시몬을 포위한 스무 기의 좀비가 모두 잿더미가 되어 휘날렸다.
주위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고요만이 남았다.
"대체 뭐냔 말이다!"
실라지가 두 손을 강하게 쾅! 맞부딪히더니 앞으로 보냈다.
무수한 핏방울들이 날아가 크고 작은 피폭발들을 연신 만들어냈다.
뚜벅- 뚜벅-
그리고 그 붉은 폭발 속을, 공허를 입은 시몬이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티끌만 한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야말로 세상의 법칙을 초월하는, 규격 너머의 힘.
"!"
실라지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두 발이 시몬 쪽으로 주르륵 끌려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핏방울, 그리고 암벽이나 파편, 동강 난 시체 따위가 시몬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중력?'
텅 비어 있는 공허가 주위의 모든 것들을 갈구하듯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빨아들인 모든 것들은 시몬에게 닿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 휘날렸다.
만물이 시몬에 의해 삭제되고 있다.
"이럼 곤란한데."
시몬이 중얼거리더니 입고 있는 공허의 로브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중력이 그 대상을 가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바람과 모래, 빛, 자갈 따위는 빨려들지 않게 했다.
그러나 실라지는 예외였다. 실라지는 두 다리에 칠흑을 집중하며 버텼다.
"크으으으으으!!"
그가 충혈된 눈으로 두 팔을 세워 들었다.
수백 년간의 성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눈앞에 있다.
사도 부활 계획은 완벽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신성연방 국경에 있을 네프티스가 키젠에 있었어도 막을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
'이런 애송이 따위에게!!'
쿠구구구구구구!
실라지가 손가락을 움직여 주특기인 혈석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의 뒤편으로 붉은 보석이 구조물을 쌓아 올렸다.
<실라지 오리지널 - 롱기누스>
투콰악!
이내 그 구조물이 깨지며 정제된 피의 창이 날아갔다.
바깥의 던전주를 일격에 봉인했던 바로 그 흑마법. 그러나.
스륵!
롱기누스마저도 보이드의 안에 빨려들어 가듯 사라졌다.
"......!"
그와 동시에 실라지는 강렬한 뭔가가 자신을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움직여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상체 1/4이 뜯겨 나가 훤히 시뻘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고, 그 뒤로는 아까 시몬에게 발사했던 롱기누스가 역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크으윽!"
그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다리에 칠흑이 풀리자 다시 중력에 의해 시몬 쪽으로 주르륵 끌려갔다.
시몬은 계속 걷고 있었고, 이제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네놈은 대체 정체가 뭐냐!"
실라지가 발악하듯 외쳤다.
"어떻게 그런 힘이 존재할 수 있냔 말이다!!"
시몬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제기랄!'
오랜 세월을 존재하며 선을 뛰어넘은 실라지의 생존욕과 야망은 더 집착스러워졌다.
피를 철철 쏟아내던 그가 몸에 피로 마법진을 그린 다음 작동시켰다.
퍼버버버버벙!
스스로의 몸에 발동시킨 피폭발. 시몬이 인상을 찡그리며 걸음을 멈췄다.
방대한 범위를 뒤덮은 피폭발 너머로, 몸의 크기가 확 줄어든 실라지가 헐떡이면서 두 팔과 다리로 바닥을 짚으며 달리고 있었다.
"아직! 아직 진 게 아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아까 신도들을 불러온 것과 같은 시뻘건 포탈이 펼쳐져 있었다.
"사도는 부활하리라!"
발악하듯 외치며, 실라지는 볼품없는 짐승처럼 달려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포탈이 닫혀 버리자 언데드들과 싸우고 있던 신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 대주교님이 도망쳤다!"
"설마 우릴 버린 거야?"
쩌억!
신도 하나를 주먹으로 패대기친 프린스가 한심하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당연하지! 그딴 사기꾼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이유를 모르겠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에르제베트는 제 뺨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멋지시와요!]
그런 그녀의 뒤에는 거미줄에 휘감긴 신도들이 빨랫줄처럼 널려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콱!
잡담을 나누는 두 에이션트 언데드 뒤로, 하늘에서 검은 날개의 언데드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려왔다.
[아케뮤스!]
그는 우악스러운 힘으로 세 번째 주교 안반테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크으윽!"
어느새 안반테가 자랑하는 양손의 톤파는 박살 난 뒤였다.
[코어를 망가뜨려 놨다. 이자를 캐물어서 실라지라는 자가 도망친 위치를 추정토록 하지.]
프린스가 '헹!' 하고 웃었다.
[아케뮤스가 꼴등! 제일 늦었어! 이 선배님을 보고 배우란 말이야!]
[그런데 여러분.]
에르제베트가 시몬을 가리켰다.
[저기 군단장님이 뭔가 하고 있는데요?]
시몬이 의복처럼 입고 있던 보이드를 오른손에 모으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
주위의 대기가 진동하며 밤의 모래가 휘몰아쳤다. 어마어마한 힘의 파장에 사막 전체가 뒤흔들린다.
[구, 군단장님?]
시몬의 공격은 아직-
'반드시 찾아낸다.'
끝나지 않았다.
실라지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시몬이 눈을 감았다. 암흑이 시야를 뒤덮으며 '그 존재'와 함께 있었던 어둠과 별과 공허의 세계가 나타났다.
'찾아낸다!'
시몬은 시공간을 초월한 다른 차원을 보고 있었다. 시야가 미친 듯이 회전하고, 주위의 우주가 크고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수색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몬 자신의 위치 정보를 중심으로, 몇 번이고 먼지와 티끌을 뒤집어내던 그가 마침내 한 존재에 도달했다.
어둠 속에 위태롭고 음침한 붉은 점.
실라지가 분명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시몬은 눈을 감은 채로 두 손을 세워 들었다. 의복의 형태로 있던 보이드가 이내 시몬의 주 무기인 대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눈을 감고.
실라지의 존재를 자각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상태로.
'벤다!'
* * *
샤헤드 왕국령.
혈천교 암흑연합 총본부.
샤헤드 왕국에 악의 본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도로 드물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농사도 짓지 못하는 황량한 땅으로 보이지만, 사실 혈천교의 비술로 만든 결계가 총본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관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태의 이 구조물은 전체가 혈천교의 연구소였다. 끔찍한 악행이 자행되는 것을 증명하듯 곳곳에서 실험자들이나 몬스터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우우우우우웅!
시뻘건 포탈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나체의 남자가 튀어나왔다.
"크허억! 쿨럭! 쿨럭!"
그는 포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입에서 핏덩이를 연신 토해냈다.
"누군가 침입했다!"
총본부 내부에 포탈이 열렸다는 사실은 즉각 알려졌다. 하얀 가운을 입은 혈천교의 연구원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저, 저 거지는 뭐야?"
"실라지 대주교님!"
웅성 웅성 웅성!
연구원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혈천교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췌하고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그때 선임 연구원이 잽싸게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어째서 돌아오셨습니까? 피의 포탈은 사도의 부활에 맞춰 여신다고......!"
"어르신은! 어르신은 어디 계신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실라지가 소리쳤다.
"예, 예? 어르신이라면 본부에 오신 지 벌써 2년은 넘었습니다만."
"망할!!"
실라지가 입에서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네?"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칠흑과 신성! 칠흑과 신성이다!"
거의 실성이라도 한 듯한 대주교의 외침의 연구원들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그, 그게 뭐 어쨌다는 겁......."
덥석!
실라지가 선임 연구원의 두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고개를 바짝 내밀었다.
"합쳤다!!"
그의 입에서 핀 튄 핏방울이 선임 연구원의 얼굴에 파바박 묻었다. 그가 기겁하며 버둥거렸다.
"윽! 왜, 왜 이러십니까!"
"합쳤단 말이다! 그 두 가지를!!"
"놔, 놔주십쇼!"
파악!
실라지가 연구원을 넘어뜨리고는 달렸다.
계속 달렸다.
그 사막에서 벌어진 일은 믿기 힘들었지만 현실이었다.
그것을 혈천교의 적으로 돌리고 말았으니, 어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쾅!
총본부 연구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실라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대주교님!"
다른 연구원들도 헐레벌떡 뒤따라왔다.
"아!"
"하늘이......!"
쩌적.......
쩍.......
하늘이 금이 가고 있었다. 검푸른 광채가 이 공간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실라지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연구소의 자재나 부품들이 중력에 의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저 검푸른 힘은 틀림없이......!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뇌리에 꽂히는 듯한 천둥 같은 음성에, 실라지가 허우적거리며 엎어졌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대주교!"
연구원들이 급히 그에게 몰려들었다.
"나를 숨겨! 숨기란 말이다!"
실라지가 발악하는 그 시점.
같은 순간.
같은 시간대에.
처억!
모래의 세계에 남아 있던 시몬이 '보이드'를 대검처럼 만들어 늘어뜨리고 있었다.
'어디에 있던, 어디로 도망치든 상관없어.'
주위의 대기가 떨리며 밤의 모래가 휘몰아쳤다. 어마어마한 힘의 파장에 공간 전체가 진동하고 있었다.
시몬은 실라지의 위치를 자각한 채로, 보이드로 만든 대검을 뒤로 보내는 베기 준비 자세를 취했다.
공간이 그를 중심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차원째로-]
허리가 돌아가고 양팔이 움직인다. 원심력으로 그어지는 검의 묵직함을 느끼며 온 힘과 마음을 다해 쏟아낸다.
[베어내는 감각!!]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공허의 대검이 휘둘러지며 허공에 은하와도 같은 긴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 검격은 정확히.
"!"
두 개의 차원을 뛰어넘어.
대륙.
샤헤드 왕국령을 지나.
비로소 혈천교 본부 전체를.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도려내고 지나갔다.
"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실라지의 머리가 날아갔다.
그의 눈이 담은 마지막 광경은, 세계를 갈라낸 듯한 검푸른 공허의 검격이었다.
터엉!
보이드를 내려놓은 시몬이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눈을 떴다.
'어디에 있든 소용없다니까.'
사막의 하늘에 거대한 차원의 흉터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