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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397화 (39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97화

시몬이 잠들어 있던 5일.

그사이 많은 일이 벌어졌다.

혈천교가 키젠의 진급시험에 관여했다. 그들이 학생들을 노렸다는 것도 경악할 만한 사실이었지만, 무엇보다 대주교라는 핵심인물이 이 계획을 위해 무려 20년 가까이 키젠 교수로서 지낸 건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 샤헤드 왕국 극동부에서 의문의 파장이 발생했다.

이에 파견된 네크로맨서 요원들은 바로 그 파장이 발생한 장소에서 혈천교의 암흑연합 본부를 찾아냈다.

결계는 알 수 없는 흔적에 의해 찢어져 있었고, 심지어 그 커다란 본부 건물 전체가 두 동강 난 채로 폭발까지 일어나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 안에서 실라지로 추정되는 시체까지 발견됐다.

요원들은 불에 다 타버리기 전에 서둘러 중요 자료를 탈취한 다음, 대륙 전역에 뿌리내린 혈천교 지부와 협조처들의 위치를 알아내고 동시간에 일제 공습.

대대적인 혈천교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아."

시몬은 넋을 놓고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것보다, 네 이야기가 가장 중요해 시몬."

시몬의 침대 위에 사뿐하게 걸터앉은 네프티스가 생긋 웃었다.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그게......."

어느새 네프티스의 옆에는 키젠 본부 직원도 와 있었다. 그 밖에 듣는 귀가 많았기에 시몬은 침착하게 기억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피의 고리가 펼쳐지고 학생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변했다. 시몬은 던전주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고, 그곳에서 실라지와 교전했다. 헤르세바의 제3권능으로 그를 모래의 세계에 끌고 가 미라의 군대를 일으켜 싸웠다.

실라지도 혈천교 신도들을 던전 내로 불러들여 대응했지만, 그에게는 심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피의 고리, 던전주 사냥, 혈석성 건설, 그리고 대규모 포탈 마법과 미라 군대와의 전투까지. 결국 혈류마법 남용으로 실라지는 피를 토하며 자멸했고, 포탈을 열어 도망쳤다.

잠시 후 헤르세바의 던전이 풀려 버리고, 혈천교 잔당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레인과 세르네에게 제압됐다.

'이 정도면 됐겠지?'

군단에 관한 것과, 칠흑과 신성을 융합했던 이야기는 당연히 제외했다.

키젠 본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몬의 진술을 받아적었다.

"그럼 실라지의 죽음에 대해선 시몬 학생도 몰랐단 거군요."

"아, 넵. 그렇습니다."

시몬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하고 있는 가운데, 네프티스만 빤히 시몬을 바라보다가 빙긋- 웃었다.

"협조 감사합니다, 학생."

이내 모든 직원들과 의사들이 나가고, 네프티스와 시몬 둘만 남았다.

"으으으읏! 차아!"

그녀가 기지개를 쭉 켰다. 몽실거리는 뺨으로 흐아아암 하품도 한 그녀가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시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안 물어보시나요?"

"응? 뭐가?"

"결계에서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프티스가 헤헤 웃었다.

"괜찮아. 가장 중요한 건 결과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투였다.

"그보다 시몬은 궁금한 거 없어? 갑자기 일어나서 혼란스러울 텐데."

안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다른 애들은 정말 괜찮은 거예요?"

"응. 정말 괜찮아. 한 명도 안 다쳤어."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다시 물었다.

"그럼 저희가 치르고 있던 진급시험은 어떻게 되는 거죠?"

"진급시험 말이지~"

네프티스의 말에 따르면 시험은 당연히 중단됐다.

다행히 학생들의 건강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하늘에 붉은 고리가 떴다는 것. 그리고 눈을 뜨니 던전 밖이었다.

깨어난 학생들에게는 혈천교 괴한들의 난입으로 시험이 중단됐다고 밝히고, 진급시험을 더 간단한 시험으로 대체할 거라고 공지했다. 물론 이에 따른 보상과 인센티브도 지급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오히려 이 일련의 상황에 좋아하는 눈치였다.

사실 던전에서의 생활이 극도로 고통스럽기도 했고, 시험기간도 1~2개월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진급시험을 오히려 더 쉬운 걸로 대체해 주고 보상까지 준다니 말이다.

대체 시험은 카드의 네크로맨서 '엔돌라스 보드빌'의 능력과, 가상 전투 시뮬레이션 시스템 '아발론'을 이용한 던전 평가였다.

직접 던전에서 지내면서 시간을 끌 것 없이, 학생들에게 딱 던전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핵심사건만 추려서 바로바로 겪게 하고 거기에 따른 대처와 반응으로 성적을 매기는 식이다.

그렇게 학생들은 이틀간의 휴식 후, 새로운 시험을 치르러 이동한 뒤였다.

지금 키젠에 1학년이 없는 이유도 시험을 치르러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자, 잠깐만요!"

시몬이 벌떡 상체를 일으켜 소리쳤다.

"그럼 저도 거기 가서 시험을 쳐야 하지 않아요?"

"아, 걱정 마."

네프티스가 빙긋 웃었다.

"시몬은 진급시험 1위 확정이니까."

"네, 네?"

"다른 학생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너는 던전주의 방에 가서 용감하게 혈천교 괴한들을 상대했고 그들을 억제했지. 네 활약 덕분에 다른 학생들도 무사할 수 있었던 거야. 학생들도 네가 1위라는 사실을 납득했어."

시험의 완전 대체가 아니었다. 시몬을 1위로 남겨놓고, 나머지 2위부터 뽑는 시험으로 바뀐 것이다.

시몬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구!"

네프티스가 양 허리에 손을 착 올리며 눈썹을 모았다.

"지금 몸이 그 모양인데 시험 걱정이야? 안정을 취해!"

"하하, 알겠어요. 그럼......."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지금 진급시험에 목숨을 걸고 있는 학생들이야 적절한 보상과 시험 대체로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외부였다.

"지금 밖에서 시끌시끌하지 않아요? 키젠에 혈천교 사태가 일어나서......."

"아~ 그거?"

네프티스가 활짝 웃었다.

"묻어버렸는데?"

시몬은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뒤로 뺐다.

"......무, 묻어버렸다뇨?"

"아! 물론 진실을 숨겼다는 게 아니라 화제를 묻어버렸단 거야. 지금 사람들은 전쟁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거든."

네프티스가 경과를 이야기했다.

최근 국경에서 점점 커지던 신성연방의 도발과 전쟁 이슈들. 평화 무드를 위해 묻혀두고 있던 것들을 네프티스는 이 기회에 모조리 터뜨려 버렸다.

성녀들의 국경 침입, 신성연방의 군비 확장과 연이은 전투까지.

언론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실어날랐고 과장의 과장이 섞였다. 암흑연합의 주민들은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여기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 말야. 이단심문관들의 보스인 '심문청장 레이트'라는 사람, 알아?"

"아, 네. 들어는 봤어요."

사실 들어본 정도가 아니라, 신성연방에서 직접 본 적도 있다.

'레이트'는 극단적인 전쟁 강경파다. 온건파 성녀이자 시몬의 이모인 '이스라필'과 대립하는 관계다.

혈천교가 신성연방과 암흑연합을 싸움 붙여 세계전쟁을 일으키려 했을 때, 그걸 이용해 가장 적극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남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네크로맨서를 죽였다고 알려진 프리스트.

"암흑연합 사람이라면 치를 떠는 그 심문청장 레이트의 음성이 담긴 녹음을 따왔어."

네프티스가 녹음 아티팩트 하나를 흔들었다.

"이 사람을 혈천교랑 엮었거든. 이 사람이 사실은 혈천교의 배후다~ 라는 느낌으로."

"아......."

"우리가 지금 혈천교와 하고 있는 전쟁도 여기에 기인해. 암흑연합 신성연방 할 것 없이 모든 혈천교의 기지에 폭격을 퍼붓는 중."

두 다리를 휙휙 흔드는 네프티스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당장 세계 전쟁이 벌어질까 말까 한 분위긴데,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대수일까? 이번 건은 혈천교가 일으킨 수많은 악행 중 하나로 남는 거야. 오히려 이렇게 될 수도 있겠지. '역시 키젠! 학생을 노리는 혈천교의 공격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막아냈다!'"

"그, 그러다 진짜 신성연방과도 전쟁이 나면요?"

네프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으으응, 걱정 마. 난 에프넬 교황의 성향은 훤히 꿰고 있거든. 진짜 레이트가 혈천교와 손잡은 것도 아니고.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만 하다가 치울 거니까."

"......아.

살짝 소름이 끼쳤다.

반 키젠파. 그리고 키젠 무용론을 들고 일어나는 세력들이 유일하게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쭈그러들 때가 있었다.

바로 신성연방과의 전쟁 이슈가 퍼질 때다.

일곱 명의 성녀와 수많은 프리스트들을 보유한 에프넬을 상대할만한 조직은 키젠뿐이다. 그건 동네 다섯 살 꼬마 아이도 아는 사실.

사건 당일 혈천교에 피의 보복을 가하면서, 전쟁 분위기로 반 키젠파를 억제. 하지만 신성연방과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발 빠르고 영리한 대처.

대륙의 절반을 좌지우지하는 암흑연합의 지배자쯤 되는 인물이라면, 무력뿐만 아니라 세계 정세를 읽는 눈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걸까.

"......헤헤, 실망했지?"

네프티스가 무릎을 모으고 앉아 그 위에 콩 하고 머리를 얹혔다.

"나도 다른 어른들처럼 치사하고 비열해서."

"아, 아뇨."

시몬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한 조직의 장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진실을 엄폐한 것도 아니고,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도 멀쩡하며 불만도 없다.

다만, 네프티스를 조금은 다시 봤다. 활짝 웃는 순진한 미소 속에 있는 또 다른 면모를 본 것 같다.

"뭐어,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한 너겠지."

네프티스가 빙긋 웃었다.

"공을 세웠으면 상을 받아야겠지? 뭐든 말해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들어줄게."

"아......!"

암흑연합의 지배자에게 뭔가를 부탁할 기회.

흔치 않은 경우였다.

아니, 인생 일대의 찬스일지도 모른다.

"이런 건 어때?"

네프티스가 아이처럼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암흑연합 전역에서 평생 아이스크림 무료! 아이스크림 폭탄!"

'그건 그냥 네프티스 님 본인의 소망 같은데요.'

시몬이 곤란한 미소를 흘리며 옆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게 아니면......."

네프티스가 불쑥 음흉한 미소를 흘렀다.

"따님을 주세요! 같은 건?"

푸후웁!

시몬이 컵에서 물을 뱉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그가 콜록 콜록! 소리를 냈다.

"네, 네프티스 님!"

"우리 로레인 정도면 괜찮지 않아? 응응? 날 닮아서 귀엽고! 능력도 있고! 싸움도 잘하고!"

신이 난 그녀가 침대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늘그막에 힘들게 얻어서 소중히 키운 아이지만, 시몬이 그렇게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헤헤!"

능글맞은 이 미소는 역시 애들을 놀리는 어른의 그것이었다. 시몬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호, 혹시 이런 부탁은 안 될까요?"

"우리 로레인보다 더 갖고 싶은 게 있단 말야? 말해봐!"

"크흠."

자꾸 로레인을 언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배신의 군단이라고 불리는 원인. 동료들을 죽인 제7군단의 죄."

다시 냉정을 되찾은 시몬이 네프티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죄의 사면. 혹시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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