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01화 (40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01화

시몬과 바힐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 진급시험에 같이 가신 줄 알았어요."

"제 역할은 다 끝나서 돌아왔습니다. 헥토르 학생이 1위를 했더군요."

간단한 안부 인사 몇 마디를 주고받자마자 바힐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땠습니까?"

"네, 네?"

"이번 사태 때, 당신은 콤펠로니아를 사용했을 겁니다. 아닙니까?"

기대감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썼어요."

그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바힐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미소, 쾌락, 황홀.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언제나 젠틀하고 상냥하던 그가 날것의 표정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끝났군요! 하하하하하!"

그러고는 큰 소리로 웃어댔다.

몸을 뒤틀고 침까지 튀겨가며 귀곡성을 연상케 하는 웃음소리를 쏟아내는 바힐의 낯선 모습에, 시몬의 동공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당신도 봤겠죠! 문을 넘어선 지식의 총체적 집합을!"

극도로 흥분한 그는 과장된 제스처를 사용하며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너무 말이 빨라 100%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책장.

도서관.

사서.

이런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뭐, 뭔가 이상한데. 나는 콤펠로니아를 쓰고도 못 본 것들이야.'

제 마음대로 이야기하던 바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야망 또한 그렇습니다."

그가 광기에 번들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세계에 저주를 걸 겁니다."

"!"

세계에 저주를 건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시몬은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고 그 뒷이야기를 기다렸다.

"물론 쉽지 않겠죠. 하지만 나와 당신이 힘을 합친다면 가능할 겁니다. 세계의 룰과 규칙까지 변화하는 힘! 그야말로-"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이죠."

너무나도 페이스가 빨랐기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시몬이 말했다.

"교수님은 세계를 지배하고 싶으신가요?"

"설마. 나는 뼛속부터 네크로맨서입니다. 정치나 통치 따위엔 관심이 없어요.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가 궁금할 뿐. 그리고."

바힐이 안광마저 빛내며 말했다.

"세계에 저주를 건다면 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이상적인 사회?"

"예를 들자면 세계에 이런 저주를 거는 겁니다. '살인자에게는 죽음을'. 그렇다면 전쟁이나 학살 같은 수많은 비극을 막을 수 있겠죠."

심취한 표정의 그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위선과 거짓을 없애는 것도 가능합니다. 기아와 가난을 없애는 것도 물론 가능하죠. 유토피아가 탄생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울려 퍼졌다.

"이 세계의 신이 되는 겁니다."

"......."

시몬이 눈을 감았다.

바힐의 야망은 잘 알겠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중간'이 텅 비었다.

그가 비난받을 수도 있는 가치관과 야망을 털어놓은 계기, 바힐은 시몬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왜?

"교수님."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와 교수님은 서로 방향성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바힐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나와 다르다고? 어째섭니까! 어째서! 설마 콤펠로니아를 사용했다는 건 거짓말이었습니까?"

"확실히 사용했어요."

"그럼 책장의 사서에게......!"

"네, 바로 그 이야기."

시몬이 바힐의 말을 끊고 이어 말했다.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광기에 찬 바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며 입 끝이 움찔움찔 떨렸다.

"사서의 서재에...... 가지 않았다? 그럼 대체 무엇을 본 겁니까?"

"제가 콤펠로니아를 발동한 뒤에 본 심상은 어둠. 그리고 그곳에 상주하며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하지 않는 존재."

시몬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로지 '신'이라고밖에 표현 못 할 존재였으니까요."

쿵!

뒷걸음질 친 바힐의 등이 병실의 벽에 닿았다. 그가 스르르륵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재를...... 넘어섰다고? 그 뒤에도 뭔가 있었다고?"

시몬도 꼿꼿이 상체를 일으켰다.

"교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콤펠로니아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도 사실입니다. 제 은인이시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꾸벅 고개를 숙인 시몬이 다시 그를 보았다.

"역시 제게 이 기술을 가르쳐 주신 이유는, 선의만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네요."

"......."

"저는 앞으로 콤펠로니아는 봉인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야망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몬은.

"정말 죄송합니다."

바힐의 직속제자 및 저주학 전공 제안을 거절했다.

* * *

저벅. 저벅.

시몬의 병실에서 빠져나온 바힐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연구실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과음한 주당처럼 그의 걸음걸이는 비정상적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시몬 폴렌티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의 팔이 약물 부작용처럼 부르르 떨렸다.

'시몬은 천재니, 우수하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코웃음 쳤다. 그리고 우월감에 빠졌다. 시몬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천재라는 단어도 비좁다. 시몬은 패러다임을 바꿀 존재다! 시몬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확신하고 있는 건 이 세상에서 나뿐이다! 라고.'

비틀비틀 위태롭게 걸어가던 그가 주먹으로 벽을 쾅! 소리가 나게 쳤다.

'그런데!'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오로지 '신'이라고밖에 표현 못 할 존재였으니까요.

바힐이 충혈된 눈으로 머리를 벅벅벅 긁어댔다. 날카로운 손톱에 두피가 찢어져 피가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바힐조차도! 그 아이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단 말인가!'

패인은 하나.

시몬이 콤펠로니아의 문을 열고 서재에 갔다고 단정 지었다는 것.

만약 시몬이 합리성의 요람인 '서재'에 갔다면, 세계를 바꾸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저주라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야망에 동조하게 됐을 터.

나는 너만이 이해하고.

너는 나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관계에 봉착했어야 할 터인데.

시몬은 서재마저 넘어섰다. 아마도 그 뒤에 있는 여러 단계들까지 넘어서서, 정말로 끝까지 가서 그 존재를 알현했으리라.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시몬 폴렌티아는 대체 누구지?

정말로 인간인가?

"하, 하하하하하하하!!!"

이제는 바힐조차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1학년 학생들이 돌아오는 데 이틀 정도 남았다.

대체 시험의 1위는 확정됐지만, 중하위권 학생들의 세부 성적과 순위까지 전부 측정해야 하기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는 모양이었다.

시몬도 병동에서 몸을 회복해 가는 중이었다. 모두가 돌아오는 날 즈음에는 퇴원해서, 진급식에 참여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헥토르가 1위라고 했지.'

시몬에게는 1학년 마지막 이벤트가 남아 있었다.

헥토르는 자신이 회복되든 말든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시몬도 1학년 마지막에 헥토르와 승부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헤르세바 없이 절정의 기량인 헥토르를 이기기 위해선.

'혼돈의 숙달은 필수겠지.'

시몬이 두 손을 펼쳐 들었다.

파라한으로부터 새로운 기술을 배웠다. 피를 수급해야 하는 출혈환자에게 피에 신성을 섞어서 빠르게 전신으로 보내는 '성혈(聖血)'.

왼손을 펼치고 마법진으로 피를 뽑아 신성을 섞으니, 붉은색에서 은은한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오른손에는 클라우드를 일으킨 채.

두 손을 천천히 중앙으로 모았다.

스스스스스스스!

칠흑과 신성은 상극이지만, 그것으로 만든 클라우드나 성혈은 전부 시몬의 SM-1이 베이스다. 두 기운이 뒤섞이며 흔들리는 폭풍처럼 변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힘이 마침내 하나의 구체처럼 변한다. 성혈의 분홍색이 진해지며 보랏빛으로 변했다.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좋아.'

혼돈(Chaos).

나름대로는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마력으로 변한 지금에도 아무런 규칙성 없이 뒤섞이고 해체되고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마치 보랏빛 태풍을 축소해 손에 쥔 것만 같다.

어젯밤에 파라한이 성혈을 가르쳐 준 뒤로 여기까지는 무사히 왔다. 이제 계속 비율을 바꿔가며 황금비율을 찾고 있었다.

그때 혼돈을 보여주니 파라한의 표정이 볼만했다.

-내일 아침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겠네. 그에게 혼돈을 보여주게나. 사용법을 같이 고민해 줄 걸세.

그 사람이 올 시간이 슬슬 다 되어간다. 복도의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면서, 계속 혼돈을 연마했다.

'근데 혼돈의 사용법을 같이 고민해 줄 사람이...... 누구지?'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방심하던 시몬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그가 잽싸게 혼돈을 허공에 흩뜨려 해체하고는 말했다.

"드, 들어오세요!"

드르륵!

이내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인물이었다.

"하하하하하! 1학기 이후로 처음 보는구나! 시몬 폴렌티아!"

전신이 흐릿하고, 다리 부분은 유령처럼 변해서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남자.

2학기 내내 본 적이 없던 키젠의 파이팅 넘치는 사령학 교수.

"우, 움브라 교수님!!"

1학기 동안 스피릿을 느끼지 못했던 시몬은 2학기가 되고 나서 사령학 수업을 제외했다.

그래서 그의 방문이 더더욱 놀라웠다.

"그래, 자네가 내 수업을 들었을 때가 기억나는군! 스피릿은 느끼지 못했지만 의식의 춤을 잘 추는 학생이었지!"

시몬이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저, 그......!"

"하하하! 내 수업을 뺀 거라면 괜찮네!"

움브라는 하반신은 으스스한 유령이면서 유쾌하고 파이팅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보다 파라한 교수님께 들었다네! 내게 보여줄 게 있다고?"

"아. 넵."

그러고 보니 왜 움브라 교수님이지?

사령학이랑 혼돈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시몬은 다소 의아했지만 일단 마법을 일으켜 보기로 했다.

'신성을 쓰는 건 들키지 않아야 하니까.'

시몬은 오른손에 클라우드를 일으켜 그의 시선을 끌고, 왼손은 뒤로 보내 선혈을 일으켰다.

이내 두 힘을 합쳤다.

시간이 지난 후, 보랏빛의 태풍이 담긴 구체로 변했다.

"제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술이에요. 저는 혼돈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음......!"

시몬의 혼돈을 살피던 움브라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과연! 과연! 파라한 교수님이 말했던 것들이 이제 이해가 되는군! 내가 살펴봐도 되겠나?"

"물론이죠.

움브라가 주위에 마법진을 몇 장을 펼쳐 들며 이것저것 반응을 체크했다.

"참으로 흥미로워!"

움브라가 히죽 웃었다.

"그래 확실해! 일시적이긴 하지만, 이건 틀림없이 스피릿의 성질을 보유하고 있다!"

시몬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스, 스피릿이요?"

"그래! 놀랍군!"

물론 진짜 스피릿처럼 유령의 효과가 있는 건 아니라고 움브라가 말했다. 근본적인 부분은 다르지만, 호환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1학기 때, 스피릿이 뭔지 설명을 들었겠지?"

"아, 아뇨."

일단 스피릿부터 느껴야 한다며 죽도록 이상한 춤만 추고 위저보드만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럼 천천히 설명해 주지! 흥분되는데."

그가 콧김을 뿜었다.

"소환학 지망생이니 이쪽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군! 유령계 언데드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밴쉬, 레이스, 팬텀 같은 것들 아닌가요?"

"그래! 폐허나 오래된 폐가에 레이스 같은 흔한 유령계 언데드는 많이 볼 수 있다네. 스피릿은 바로 그 유령계 언데드를 이루는 물질이라고 생각하게!"

그가 손을 쫙 펼치자 마법진이 그려졌다.

"사령술사들은 이 칠흑을 변환해서 영혼을 담는 물질인 이 '스피릿'을 만들 수 있다네! 이 기술을 이용해 유령계 몬스터들의 힘을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투콰악!

마법진에서 투명한 창이 날아갔다.

실내에서 흑마법이라니!

시몬이 기겁했지만 투명한 창은 그냥 벽을 뚫고 날아가 저 멀리 떨어진 나무에 적중했다.

"사령학의 기본일세!"

"아......!"

벽을 관통했다. 사령학이 가지는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힘이었다.

"자네의 그 혼돈이라는 기술은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능력 외에 다른 효력이 발현한 것 같으이! 그리고 사령마법과의 호환성이 발견됐네!"

그가 두 팔을 펼치자 스피릿으로 만든 열 개의 마법진들이 주르륵 펼쳐졌다.

"대표적인 사령학 마법들이라네! 어떤 게 통하고, 어떤 게 안 먹히는지 알면 앞으로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겠지."

"아......!"

움브라는 엄청나게 흥분한 상태였다.

시몬이 조금은 머쓱한 기분이 되어 말했다.

"바, 바쁘실 텐데 저를 도와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

움브라가 천천히 팔을 내렸다.

"사실, 1학년 교수들에게 특례 1번은 특별한 존재라네."

움브라는 BMAT에서 소환학, 마투학, 저주학 등 다른 교수들에게 배운 흑마법으로 활약하는 시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론과 발터가 블러드 골렘을 완성해 시몬의 활약에 한몫 보탰을 때 얼마나 부러웠던가.

움브라는 특례 1번에게 사령학 기술 하나 안겨주지 못하고 그냥 보낸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시몬이 사령학에도 재능이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한 게 몇 번이나 됐다.

"하지만 세상만사! 한 치 앞도 모르니 재미있는 법!!"

움브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기서 특례 1번인 자네가 사령학의 호환기를 발현하다니 말일세!"

"......하하."

움브라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 1학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말이야. 자네도 스킵한 사령학에 약간의 미련은 있지 않나?"

시몬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7대 과목 저칠소 사혈맹투.

기왕 키젠에 왔으니 이 일곱 가지 모두 배워가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사령학을 넘어가 버린다는 사실은 아쉬웠다.

두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자, 해보시게나."

움브라가 두 팔을 펼쳤다.

"과연 자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확인해 보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