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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02화 (40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02화

이틀이 지나고, 대체 진급시험을 마친 키젠 학생들이 로크섬으로 복귀했다.

'결국 퇴원은 못 했네.'

시몬이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

눈물을 한 움큼 매달고 있는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가 보인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카미."

툭 건드리면 울음이 터질 것 같던 그녀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러곤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시모오오온!"

그녀가 달려와 침대에 앉아 있는 시몬의 가슴에 폭 얼굴을 묻었다. 은은한 라벤더 향기가 나며 환자복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시몬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야아! 시몬!!"

"진짜 괜찮냐?"

뒤이어 메이린과 딕도 시뻘게진 얼굴로 헉헉대며 병동에 들어왔다.

세 사람 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넘어오자마자 전속력으로 비탈길을 내달려 온 게 눈에 훤했다.

시몬은 괜한 걱정 끼치지 않도록 태연하게 웃었다.

"나 괜찮아. 멀쩡해."

그제야 메이린과 딕의 표정에도 커다란 안도감이 드러났다.

시몬의 가슴팍에서는 히끅거리고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다행이에요'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거, 걱정 끼치지 말라고. 시험 때 집중 안 돼서 힘들었잖아!"

메이린이 새초롬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시몬! 지금 애들 얼마나 난리 났는지 모르지?"

딕이 극도로 흥분한 얼굴로 팔을 휘저었다.

"빨리 혈천교 상대한 썰 좀 풀어봐!"

"지, 진정해."

시몬은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특히 세 사람 모두 실라지가 이끄는 혈천교의 이야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들었지만. 시몬의 입으로 들으니 더 충격이네요."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실라지와 발터가 동일 인물이었고, 심지어 흑막이자 혈천교의 대주교라는 사실은 가히 악몽과도 같은 반전이었다.

딕이 창가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네프티스 님이 혈천교들 다 때려 부수고 있잖아. 배후인 '심문청장 레이트'까지 찾아내서 죽일 기세던데? 로크섬도 전쟁 분위기 때문에 뒤숭숭해."

"다행히 신성연방과의 전쟁은 없을 것 같아. 심문청장도 배후가 아니고."

메이린이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확고한 투로 말하네?"

"네프티스 님이랑 이야기했거든."

네 사람은 재잘재잘 이번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시몬이 뒤늦게 깨닫고 네 사람을 보았다.

"아니, 그보다! 너희들 이번 진급시험은 어떻게 됐어?"

그 물음에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가 병실에 내려앉았다.

"서, 설마......."

더듬거리며 세 사람의 눈치를 보던 시몬은 뒤늦게 딕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메이린이 입가를 손으로 가리는 모습을 보았다. 카미바레즈는 척 봐도 안절부절 연기가 서툴렀다.

시몬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다들 합격 축하해!"

와아!

비로소 세 사람이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환호했다.

"2학년! 드디어 우리도 키젠 2학년이 됐어요! 시몬!"

기쁨에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카미바레즈가 메이린을 끌어안았다.

"응! 응! 우리도 이제 프로 네크로맨서와 동등한 자격을 가지게 됐네!"

"으흐흐, 각오해라 내년 1학년들! 이 선배님이 예뻐해 주마!"

딕이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메이린이 바로 핀잔을 주었다.

"야! 넌 벌써 기뻐하면 안 되지. 진급시험은 붙었지만 전체 성적이 아슬아슬해서 확정도 아니잖아!"

"에이, 뭐 또 어떻게든 되겠지."

"사실 진급이 확실한 건 시몬과 메이린뿐이니까요. 저도 기말고사와 수행평가 성적이 조금 걱정이에요."

시몬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다 잘될 거야. 카미."

그 한마디에 카미바레즈가 강아지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네! 시몬!"

쾅!

화목한 분위기인 그때, 갑자기 병동 문이 거칠게 열리며 불청객이 들어왔다.

"뭐야, 여긴 어떻게 알았어?"

딕이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샤텔을 넘어서 이번 진급시험 1위를 따낸 소년.

바로 헥토르였다.

그는 다른 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시몬을 보았다.

"몸은 괜찮나."

그 말에 세 사람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헥토르가 시몬의 안부를 묻다니?

시몬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빨리 회복해서 약속을 지켜라. 사흘 주마."

그렇게 말한 헥토르가 등을 돌렸다.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야! 환자 앞에서 그러고 싶냐?"

척.

문을 닫고 돌아가려던 헥토르의 걸음이 멈췄다. 메이린이 으르릉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시몬은 부상자야! 그것도 우리를 구하느라 저렇게 됐어! 네 이기적인 결투 요청에 응할 필요는......!"

"선택은."

헥토르가 다시 몸을 되돌려 시몬을 보았다.

"당사자가 정할 일이다."

"......너어!"

"사흘을 준 건, 사흘 뒤가 2학년 진급식이기 때문이다."

헥토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말해두지만, 나는 방학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은 없다."

"좋아. 약속은 약속이니까."

시몬이 홀가분하게 미소 지었다.

"진급식 끝나고 봐."

헥토르의 입가도 벌어졌다.

"네놈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펄럭!

헥토르가 교복 자락을 휘날리며 병동을 빠져나갔다. 잠시 냉랭한 적막이 흘렀다.

"이 바보야! 진급식 끝나고 보긴 뭘 봐! 집에 가야지!"

메이린이 빼액 소리쳤다.

"마, 맞아요! 퇴원하자마자 또 싸움이라니......."

카미바레즈도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흠. 나는 존중해."

딕이 평소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내리깔며 잘난 척했다.

"원래 남자에겐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째릿 노려보자 딕이 급히 말을 바꾸었다.

"-을 수도 있는데! 이번엔 좀 아닌 것 같다 이거지! 하하! 회복이 우선이야. 암."

시몬이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다들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난 정말 괜찮아. 몸은 착실히 회복하고 있고, 헥토르를 상대로 써보고 싶은 것도 있고."

"써보고 싶은 거?"

시몬이 씩 웃으며 두 손바닥을 펼쳤다.

"응. 입원 중에 신기술을 만들었거든. 볼래?"

"......입원 중에?"

세 사람이 미친놈 보는 시선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 * *

2학년 진급식을 하루 남기고 시몬은 퇴원했다.

그사이 1학년 종합 성적이 나왔다.

1학기와 통합 2학기를 합친 총 성적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각종 수행평가와 결투평가, 임무평가, 파견평가, BMAT, 진급시험까지 포함한 1학년 총합 성적이다.

"해냈다!!"

시몬은 기숙사 의자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성적표를 높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석차 1위, 시몬 폴렌티아]

금빛으로 번쩍이는 1위 표시. 그 옆에 적힌 '수석'이라는 표시까지!

믿기지 않아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기뻤다.

선행학업 없이, 코어만 개방한 채로 입학해서 여기까지 왔다.

오늘 하루만큼은 나 자신에게 감동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엄청 아슬아슬했지만.'

중간고사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다행히도 실기 중심의 키젠 시스템과, 준전시 통합 2학기로 1학기의 비중이 떨어졌기에 전체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냥 평범한 1학기, 2학기였다면 시몬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었다. 실제로 2위와 3위와의 차이도 거의 나지 않았다.

'이러면 내년에도 절대 방심은 못 하겠네.'

그래도 수석은 수석. 기분은 좋았다. 시몬은 싱글벙글 웃으며 아래 석차도 확인했다.

[석차 2위, 샤텔 마에르]

반전의 여지 없이 2위는 거인혼혈 샤텔이었다.

결투평가에서는 시몬, 진급시험에는 헥토르에게 밀렸지만 실기와 필기, 전체적인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2위를 따냈다.

[석차 3위, 헥토르 무어]

이쪽도 인간승리였다.

비특례 입학생 출신인 헥토르가 피나는 노력으로 3위에 올랐다. 시몬이나 샤텔과 성적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사실상 1위, 2위 3위. 이 세 소년들은 줄 세우기가 애매할 만큼 비슷한 점수대였다.

[석차 4위, 메리다 휴 이켈]

특례 4번의 메리다 휴 이켈이 최종 석차도 안정적으로 순위를 지켜내며 최종 4위를 차지했다.

그 유명한 키젠 역대급 학생회장인 '판타서스 휴 이켈'의 여동생이다.

'얘 무섭네.'

세부 성적을 보니 특히 더 대단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필기를 시몬 이상으로 망쳤는데도 불구하고, 실기나 수행평가는 모조리 최정상급이다. BMAT에서도 Top 10 안에 꾸준히 들었다.

아마 필기 성적이 중위권만 됐어도 시몬을 뛰어넘을 수 있었으리라.

'......내년에도 편하게 공부하긴 글렀다.'

몰려오는 부담감에 쓰게 웃으며, 시몬은 다음 석차를 확인했다.

[석차 5위, 아세라즈 미켈]

[석차 6위, 메르디아나 앤 서든데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처음 들어보는 학생들.

이게 바로 키젠의 무서운 점이었다.

비특례 입학생 출신들이 압도적인 성장치를 바탕으로 특례 입학생을 가뿐히 물리치고 최상위권에 진입했다.

암흑연합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곳인 만큼, 다음에는 또 어떤 괴물들의 포텐이 터져서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키젠에선 영원한 강자도 없고 영원한 약자도 없었다.

[석차 7위, 엘리사 셀린]

그래도 특례 입학생의 자존심인 유령선의 '엘리사'가, 특례 7번에 이어 석차 7위를 따냈다.

[석차 8위, 메이린 빌렌느]

'메이린! 축하해!'

비특례 입학생 출신인 메이린이 당당하게 Top10에 입성했다.

키젠에서 실기와 실전에 약하고, 위기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웠지만 중간고사 전체 2위, 기말고사 전체 2위를 찍는 등 필기에는 절대적 강점을 보였다.

평범한 2학기였다면 톱 3위도 노려볼 만했으리라.

참고로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두 전체 1위는 석차 5위인 '아세라즈 미켈'의 몫이었다.

[석차 9위, 엘리시아 로젠펠드]

[석차 10위, 쥴 빈체레]

엘리시아라는 여학생이 석차 9위. 특례 입학생이 아니었을 뿐이지 시몬도 이름을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특례 5번, 마검 사용자 쥴이 석차 10위를 차지했다.

쥴의 경우는 어쩔 수 없었다.

순수 전투력으로는 시몬, 샤텔, 헥토르 세 소년에 비견되는 강자였지만 마검을 선택하느라 다른 과목의 성적이 떨어졌다. 사실상 전투력만으로 따낸 10위였다.

그 외에 특례 8번 설원성주 라헤임 노스폴드, 특례 10번 갱단 소속 말콤 렌돌프 등은 Top10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리고.......'

시몬이 초조한 눈으로 아래 석차를 살폈다.

"아!"

[석차 95위,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다행이다, 카미!"

재능은 넘치지만, 네크로맨서답지 않은 소심하고 착한 심성의 카미바레즈는 꽤 좋은 성적으로 2학년에 올라가게 됐다.

혈류학에 올인해서 다른 과목 성적은 평범했지만, 전공제인 2학년부터는 훨씬 더 높은 순위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딕이 제일 걱정인데.'

성적표를 훑어보는 시몬의 시선이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내려갔다.

'이쯤이면.......'

200위대의 명단을 쭉 훑어봤는데 딕의 이름이 없다.

조금씩 초조함에 속이 울렁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야, 딕! 너 설마......!'

유쾌한 딕이 없는 학교생활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초조하게 300위권 순위를 살피던 시몬이 시선을 아래로 확 내렸다.

"제발......!"

그리고 놀랍게도.

[석차 400위, 딕 헤이워드]

푸핫!

비로소 시몬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2학년 진급자 400명 중에 400등. 내 친구라지만 골 때리는 녀석이었다.

시몬은 그제야 안도하고 의자에 늘어졌다.

'......혈천교가 딕을 살렸네.'

혈천교 이슈 때문에, 키젠 본부가 학생들에게 제시한 혜택 중 하나가 2학년 정원의 증가였다.

2학년은 일반적으로 350명 정원이었으나 이번에 400명으로 늘었다.

아이러니한 상황. 정말 세상사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애들도 볼까."

시몬은 아래에서부터 리스트를 쭉 훑으며 다른 친구들의 등수도 확인했다.

토토는 382위. 그리고 성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강자들인 로레인, 세르네, 카쟌이 중위권에서 지나갔다.

상위권에는 제이미, 신디, 클라우디아 등 친한 A반 에이스급들이 보였다. 같은 돌연변이 동아리인 피츠제럴드는 무려 20위였다.

"하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했다.

가장 꼭대기.

입학생 1,000명 중의 1명.

[석차 1위, 시몬 폴렌티아]

몇 번을 봐도 행복했다.

시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고향 레스힐에 있을 아버지에게 자랑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아버지! 이번엔 칭찬해 주시겠죠?'

* * *

다음 날.

2학년 진급식 당일 새벽, 황천고래와 각종 선박들이 정신없이 사람들을 로크섬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곧 있을 행사에 앞서 학생들의 학부모와 친인척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 자녀들의 2학년 진급 합격 소식을 듣고 얼굴이 환하게 펴져 있었다. 손에는 꽃다발이나 선물을 한 아름 들었다.

뚜벅뚜벅.

그런 가운데, 사뭇 여성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지점이 있었다.

"누구?"

"......세상에."

인파들이 웅성거리며 좌우로 갈라졌다. 안경을 쓰고 깔끔한 수트 차림의 신사가 선착장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

그때 남자를 보느라 한눈을 팔던 한 숙녀의 힐이 선착장 바닥에 미끄러졌다.

그녀의 몸이 기우뚱하며 바다에 빠지려는 순간.

"괜찮으십니까? 레이디."

바로 그 신사가 번개처럼 달려와 숙녀를 안아주었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그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고, 고, 고맙습니다!"

신사가 가볍게 눈을 찡긋했다.

"별말씀을."

곳곳에서 중년 귀부인들의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사는 가볍게 탁탁 옷을 털며 기숙사 쪽을 바라보았다.

'이 학교는 하나도 안 변했군.'

안경을 끼고 가짜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감성에 젖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기숙사 쪽을 응시했다.

'이제 곧 보겠구나.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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