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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03화 (40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03화

진급식 전날.

탈락이 확정된 247명의 학생들은 키젠 교복을 벗고 로크섬을 떠났다.

시몬을 포함한 살아남은 A반 학생들이 마지막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모였을 때, 빈자리가 유난히 커 보였다.

그렇게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제인 교수의 마지막 '초급 흑마법' 수업이 시작되었다.

-1년 동안 제 지도를 따라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1학년 A반'이네요.

살짝 떨리는 듯한 제인의 목소리는, 시몬도 처음 들어보는 거였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A반.

그 한마디에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하며, 반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카미바레즈는 펑펑 울었고 메이린은 고개를 돌린 채 눈가를 훔쳤다. 개그 타이밍을 잡고 있던 딕도 이번엔 감히 산통 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울음은 빠르게 전염되었고 뒤에 서 있던 조교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조교들과 얼싸안고 작별인사를 했다.

"조교 언니! 1년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2학년 진급 축하해요, 제이미."

뭐가 됐든, 키젠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대강당에서 1학년 400명의 진급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학부모와 친인척들은 꽃다발을 들고 로크섬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학생들도 오랜만에 부모님을 볼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오늘이 키젠 1학년 마지막이었기에, 시몬도 일찍 짐을 싸고 기숙사를 나서서 미처 인사하지 못했던 교수들을 찾아갔다.

소환학의 아론, 마투학의 홍펭, 맹독학의 별야, 칠흑역학의 에릭, 사령학의 움브라.

그러나 아쉽게도 저주학의 바힐은 만나지 못했다. 바힐의 연구실에는 수석조교 체헤클뿐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바힐은 시몬의 병실에서 나간 뒤로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고 한다.

어차피 신학기가 시작되면 들어올 인간이라며 체헤클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신성방어학 교수이자, 시몬의 프리스트 스승인 파라한이었다.

파라한은 키젠에서 나가 있는 방학이 가장 신성을 수련하기 좋은 시기라며 이런저런 신성 관련 과제들을 내주었다.

그리고 파라한의 집에 있던 신수, 하양이와 까망이도 챙겨서 아칼리온이 있는 신성 아공간에 넣고 돌아왔다.

방학 동안에도 파라한에게 계속 맡기기도 미안했고, 무엇보다 전 성녀이자 어머니인 안나가 보면 뭔가 각성의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웃차."

새벽부터 엄청나게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팠다. 시몬은 기지개를 쭈욱 켜며 산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대강당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럼 나도 내려가 볼까!"

* * *

아직 진급식이 시작 전이었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키젠 입학이 집안의 경사라면, 키젠 2학년 진급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눈물지으며 얼싸안는 아버지와 아들,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활짝 웃고 있는 여학생. 곳곳에서 행복과 웃음소리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열심히 주위를 휙휙 두리번거리고 있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있었다.

바로 메이린이었다.

"분명 분수대 앞이라고 했는데! 어디서 헤매는 거야?"

30분 내내 열심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메이린은, 마침내 그녀와 똑같은 하늘색 짧은 머리의 남자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아빠! 여기야!"

메이린이 팔을 흔들었다.

주위의 인파를 헤치며 걷고 있던 남자도 메이린을 발견하고 미소 지었다.

"그래, 메이린."

상아탑 내 온건파 거두이자 메이린의 아버지, 다니엘라 빌렌느.

두 부녀는 주위 사람들처럼 얼싸안거나, 울거나, 낯간지러운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마주하고 담백하게 미소 지었다.

"2학년 진급을 축하한다."

다니엘라가 메이린의 머리색을 닮은 청장미 꽃다발을 건넸다.

그것을 품에 안아 든 메이린은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아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응. 고마워 아빠!"

"이야기는 들었다. Top10 안에 들었다고?"

메이린이 V자를 그리며 웃었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랬지!"

"그래. 기어이 탑주님 낯을 볼 면은 서겠구나."

다니엘라가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짚었다.

"상아탑에서 가출해 멋대로 키젠에 입학해서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내가 얼마나 원로들께 고개를 숙였는지 아니?"

"아, 진짜아!"

메이린이 얼굴을 붉혔다.

"그, 그래도 열심히 해서 8위 찍었잖아! 좋은 날에 잔소리는 거기까지 해!"

하지만 다니엘라의 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메이린이 정성껏 기른 하늘색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었다.

"머리를 더 길렀구나. 학생인데 이건 너무 길지 않니? 자꾸 머리만 만지작거리다 보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럴 텐데."

"내 머리에 상관 마! 갑자기 머리까지 왜 그래?"

메이린이 불같이 화를 내며 다니엘라의 손을 치웠다.

"상아탑에 돌아가면 미용사부터 불러야겠구나."

다니엘라가 한숨을 푹 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보다 세르네 님은 어디 가셨니?"

"......."

그 물음에 메이린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왔다.

"......걔는 또 왜?"

다니엘라가 짐짓 엄격한 투로 타일렀다.

"아빠가 세르네 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시, 싫어! 내가 미쳤어?!"

메이린이 펄쩍 뛰었다.

"그, 그리고 오늘 나 축하해 주러 온 거 아냐? 아빠는 왜 그 싸가지 이야기를 꺼내서 기분 잡치게 만들어?"

"나는 상아탑을 대표해서 왔단다. 세르네 님도 2학년 진급을 축하드려야 해."

다니엘라가 등 뒤에 들고 있던 백장미 꽃다발을 보였다.

메이린이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그런 건 탑주님이 와서 직접 주라고 하면 되잖아."

"탑주님은 키젠을 적진 한복판이라 생각하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던 다니엘라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런, 곧 식이 시작하겠구나. 화장실은 어디 있니?"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면 돼. 여기선 맹독학관이 제일 가까워. 직진하다가 오른쪽 편에 있어."

볼일이 급했는지 다니엘라는 화장실로 향했다.

메이린은 청장미 꽃다발과 세르네의 몫인 백장미 꽃다발까지 들고 있어야 했다.

그녀가 뚱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빠 바보."

메이린이 툴툴거리며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괜히 에잇에잇 주위의 자갈들을 발로 차보기도 했다.

열심히 했는데.

바닥부터 시작해서 Top10 안에도 들었는데.

훌륭하다. 자랑스럽다. 그런 말 한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힘든 거야?

서운한 감정이 마구마구 몰려들었다.

"잠시 말씀 좀 묻겠습니다. 레이디."

그때 한 남자가 메이린에게 다가왔다.

"아, 네."

메이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

걸어 다니는 조각상이 눈앞에 있었다. 전혀 안 어울리는 안경에 콧수염을 붙이고 있었지만, 이 남자의 외모를 빛바래게 하지는 못했다.

"대강당이라는 곳에 가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아."

메이린의 얼굴이 퐁 붉어졌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사람이다. 온몸에서 페로몬을 뿜어내는 것만 같았다.

미중년의 정석. 오히려 '나이 듦'으로 인한 연륜이 신사로서 그의 멋을 더더욱 농축해 내고 있었다. 나이마저도 이 남자에게는 무기였다.

메이린이 더듬더듬 말했다.

"저, 저기 보이는 큰 건물에......!"

그때 메이린을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그녀의 왼손을 붙잡아 들었다. 갑자기 손을 붙잡힌 그녀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왜, 왜 이러세요?"

"......여기."

남자가 메이린의 여리여리한 손목을 들어서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녀도 뒤늦게 발견했다.

피가 나고 있었다.

"장미 가시에 찔렸나 보네요."

남자가 포켓치프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을 꺼내는 간단한 동작에서도 기품이 물씬 풍겼다.

그는 원소마법을 일으켜 순식간에 출혈을 멎게 만들더니, 메이린의 손목을 세심하게 손수건으로 묶어주었다.

"함초롬히 이슬을 먹고 자란 장미는 향기로 유혹하고, 그 찬란한 자태를 뽐내지만 가시가 있을 수 있죠."

남자가 멍하니 있는 메이린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바로 레이디처럼."

메이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오글거리는 대사가 지금은 품격 있게 들린다.

메이린의 손목을 손수건으로 묶어준 그가 한 발짝 물러나 미소 지었다.

이제 아프지 않았다.

"가......!"

감사인사를 하면 이제 헤어지겠지.

하지만 뭔가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웠다.

"가, 가시가 있으면 다들 무서워할까요?"

메이린은 말을 다 내뱉은 순간 미친 듯이 후회했다.

나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미친!

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하고 싶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

메이린이 속으로 절규하며 미쳐 날뛰는 가운데.

"날카로운 가시를 겁내지 않고, 찔려서 피 흘릴 각오까지 하게 되는 것. 그것이."

남자가 진지하게 웃었다.

"장미의 매력입니다."

메이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남자는 멋진 제스처를 한번 보내고는 대강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렬한 인상이었다. 메이린은 털썩 분수대에 걸터앉았다.

'......그, 그런데 왜 이렇게 누굴 닮은 것 같지?'

* * *

진급식이 시작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앞에 섰고, 뒤쪽에는 학부모들이 있었다.

부총장 제인의 임팩트 넘치는 연설, 그리고 키젠 장로들의 지루하고 하품 나오는 연설이 이어졌다.

"여러분은 이제 키젠 2학년입니다. 키젠 2학년은 프로 네크로맨서와 동등한 권한을 가지며, 지휘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키젠이라는 선배들이 쌓아온 명예와 역사에 먹칠하지 않도록......."

엄청나게 길었다.

"야, 시몬."

딕이 킥킥거리며 팔꿈치로 시몬을 때렸다.

"너도 부모님 오셨냐?"

"......아니."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인 리처드는 배신자 낙인 때문에 로크섬은커녕, 레스힐 밖으로도 못 나오는 처지였다. 프리스트인 안나는 말할 것도 없다.

딕이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으, 으음. 내가 괜한 걸 물었나."

"괜찮아. 곧 집에 가서 뵐 건데 뭐."

고개를 돌리면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부모들 쪽으로 팔을 휙휙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꽃다발 같은 것들을 하나씩 안고 있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러는 넌 어때?"

시몬의 물음에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장남만 편애하는 아빠가 고작 삼남의 진급식에 오실 리가 없지."

참고로 딕은 여덟 명의 아들 중 삼남이었다.

"엄마는 아빠랑 이혼해서 다른 왕국에 계시고. 대신 둘째 형이랑 셋째 넷째 동생들이 놀러 왔어. 좀 이따 소개해 줄게."

"그래?"

시몬의 얼굴이 펴졌다.

딕의 형제들이라니!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야, 그보다 메이린 아빠 봤냐? 진짜 머리만 짧은 메이린이야!"

퍽!

딕이 '응악!'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뒷자리에 앉은 메이린이 얼굴을 붉힌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방금 내 뒷담했지!"

"아니 뭔, 이름만 불리면 다 지 뒷담인 줄 아냐? 그러니까 평소 행실을...... 악! 아! 알았어! 잘못했어! 머리는 놓고 말해!"

시몬이 킥킥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카미바레즈도 빙긋빙긋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카미는 어때? 아빠 오셨어?"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사람이 많으니까 오지 않으셨으면......."

"......아하하."

카미바레즈의 아버지는 현 뱀파이어 로드인 '디트리히 혼 우르슬라'였다.

막무가내에 민폐쟁이, 그리고 심각한 딸바보라서 카미바레즈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시몬도 한번 겪은 적 있었다.

2학기 시작하기 직전 랭거스틴에서 그녀와 함께 있던 디트리히가 다짜고짜 '가치를 증명하라'며 공격했었으니까.

"이상입니다."

그때 마침 장로의 연설이 끝났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학생들이 어느 때보다 큰 박수를 보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장로님. 그럼 다음 차례입니다."

강단에 올라간 제인이 입을 열었다.

"2학년 수석, 시몬 폴렌티아. 강단으로 올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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