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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04화 (40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04화

자리에서 일어난 시몬이 강단으로 걸어가자, 관중석 곳곳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고마워! 영웅이야! 대단했어! 그런 이야기들이 귓가에 윙윙 울려 퍼졌다. 학생들 모두가 이번 진급시험에서 시몬의 활약과 분투를 알고 있었다.

시몬은 살짝 짠한 기분을 느꼈다.

입학 첫날 불려갔을 때 '쟤 누구야?' 하는 반응이 1년 만에 이렇게까지 바뀌었다.

이내 강단에 올라온 시몬은 제인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연설장 위에서 학생들을 내려다보았다.

'대본도 이미 있구나.'

시몬은 가볍게 목을 푼 다음, 수려한 문장력으로 작성된 대본을 줄줄 읽어내려갔다.

미사여구가 다소 과했으나, 핵심만 말하면 앞으로도 나태해지지 않고 학생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뻔한 이야기였다.

'이대로 교과서 읽듯 줄줄 읽어내려가긴 좀 그러니까.'

시몬은 대본의 마지막 부근에서 말을 끊은 다음,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성녀 사태, 혈천교 사태, 그리고 준전시 커리큘럼과 통합 2학기. 굵직굵직한 일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진급식에서 마주 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력 촬영기 앞에서 만족스럽게 듣고 있던 방송 하수인이 뒤늦게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대본을 무시한 건 둘째 치더라도 혈천교 사태는 언급 금지였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키젠 본부.'

방송 하수인이 급히 끓으라는 신호를 했지만 시몬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옆에 제인도 못 말린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경쟁으로 600명을 떨어뜨린 거죠. 그 무게를 잊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고, 그들 몫까지 앞으로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시몬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2학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며 시몬은 물러났다.

얼굴이 시뻘게진 방송 하수인이 씩씩거리며 시몬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스윽.

제인이 다음 대사를 하면서 손짓으로 시몬을 불러들였다. 밑에서 기다리던 방송 하수인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그녀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시몬 학생. 내가 현장에 있었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해서."

"무슨 말씀이세요, 교수님."

누가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0년을 키젠에서 일한 교수의 반전이었고, 실라지 같은 괴물이 백 년 넘게 준비한 계획이었으니 불가항력이라고 시몬도 생각했다.

그때 돌아가려는 시몬의 등을 향해 제인이 말했다.

"2학년 진급,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제인과 헤어진 시몬은 무대 뒤편으로 나가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행사의 마지막 코스.

모든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으하하! 드디어!"

딕이 교복 옷깃에 2학년을 상징하는 '빨간색 배지'를 달았다.

"이제 우리도 키젠 2학년이다아아!"

"어때? 시몬."

빨간색 배지를 붙인 메이린이, 모델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보았다.

"이제 좀 선배님 같아?"

"오, 확실히 더 위엄 있어졌는데."

팔짱을 낀 시몬이 웃음을 흘렸다.

1학년 때 저 빨간 엠블럼만 봐도 바짝 긴장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배지를 이제 우리가 달다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시몬!"

카미바레즈가 쪼르르 다가왔다.

"제가 배지 달아드릴까요?"

"아, 고마워."

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시몬의 옷깃에 빨간 배지를 달아주었다. 그러곤 뒤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뒷짐을 지고 시몬의 모습을 감상했다.

"넥타이와 한 세트 같아서 잘 어울려요!"

"고마워."

이번엔 시몬이 카미바레즈에게도 배지를 달아주었고, 그렇게 모든 진급식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흩어졌고, 대강당의 뒷좌석이나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학부모들도 우르르 몰려갔다. 서로 얼싸안고 울고 웃었다. 곳곳에서 기쁨의 탄성이 쏟아졌다.

"정말 자랑스럽구나!"

"가문의 숙원을 이뤘어!"

인파 때문에 홀로 떨어진 시몬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감동적인 재회의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헤이, 시몬!"

그때 딕이 히죽거리며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혹시 모르니까 부모님 찾아봐! 오셨을 수도 있잖아."

"아니, 우리 부모님은 절대 못 오시는......."

거기까지 말한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데 너 언제 사복으로 갈아입었어?"

푸핫!

딕이 갑자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시몬이 당황하며 눈을 깜빡이고 있다가 뒤늦게 뭔가를 깨닫고 입을 벌렸다.

이 사람, 딕과 미묘하게 달랐다.

"헤이, 시몬!"

그리고 똑같은 대사와 함께 등 뒤에서 나타난 건 교복차림의 딕이었다. 그가 낄낄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아, 실망인데! 1년 내내 룸메이트였으면서 못 알아보냐?"

"내가 말했잖아. 절대 몰라본다고! 흐하하핳!"

사복차림의 딕이 손짓하자, 교복차림의 딕이 혀를 차며 팅! 하고 동전 하나를 튕겨 주었다.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딕."

"소개할게."

교복차림의 딕이 사복차림의 딕의 목에 팔을 두르며 히죽 웃었다.

"우리 둘째 형이야. 이름은 단 헤이워드. 그리고 이쪽은 내 베프 시몬 폴렌티아야."

"단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자, 잘 부탁드립니다."

단과 시몬이 악수를 나누었고, 딕이 설명을 곁들었다.

"첫째 형과 둘째 형, 그리고 나. 이렇게 세쌍둥이야!"

"그, 그랬구나."

딕이 늘 아버지는 장남 형만 아들 취급한다고 해서, 세 사람이 세쌍둥이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안녕하세요! 딕 형의 친구 형!"

"안녕하세요! 딕 형의 친구 형!"

또 딕의 형제들이 나타났다. 이번엔 딕과 닮았지만, 확실히 생김새가 다르고 키도 조금 작았다.

"오른쪽은 넷째 빌 헤이워드, 왼쪽이 다섯째 알 헤이워드야! 넷째와 다섯째도 쌍둥이야."

대단한 집안이었다. 세 쌍둥이 다음, 또 쌍둥이라니.

"동생들이구나. 반가워."

시몬이 그들과도 악수했다. 오른손만 내밀었는데, 쌍둥이는 굳이 시몬의 왼손을 들어서 동시에 양손 악수했다.

'......딕이 네 명이 된 것 같아.'

이 형제들은 생긴 것도, 성격도 빼다 박았다.

"딕 형! 오늘 몰래 꽃다발 공수해 왔어! 로크섬에 팔아서 재미 좀 봤지!"

"꽃다발? 스케일이 작네. 난 선물세트로 딱!"

"로크섬 돌멩이 사업하실 분?"

장사 이야기를 하는 것도.

"와아! 키젠 누나들은 다들 하나같이 미인이야!"

"딕 이 부러운 새끼!"

"네크로맨서가 저렇게 예쁜 건 반칙 아니냐?"

여자를 밝히는 것도 다 똑같았다.

네 사람의 고개와 눈동자가 똑같이 움직였다. 그들은 스커트 자락을 팔락이며 지나가는 여학생들의 다리를 무언의 예술작품 감상하듯 경건히 바라보았다.

"여러분! 잠깐......!"

괜히 같이 있는 시몬만 식겁했다. 팔을 들어 그들의 시선을 가리며 딕에게 외쳤다.

"딕! 어떻게 좀 해봐!"

"말려도 소용없으니 냅둬."

딕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형제들은 항구에 일하면서 우락부락한 뱃사람들만 봐왔거든. 학교에 여자애들 보고 눈 돌아가는 게 당연하지."

"딕 형! 난 저 누나가 제일 예뻐!"

그때 넷째 빌이 손가락을 뻗어 하늘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을 가리켰다.

"올, 보는 눈 있는데."

다섯째 알이 킥킥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런데 바로 그 여학생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몬!"

메이린이었다.

화사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딕 형제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여자를 밝히는 것과 여자와 친한 건 다른 문제였다.

"시몬, 인사해. 우리 아빠야."

"응?"

시몬의 눈이 커졌다. 메이린과 같은 하늘색 머리카락에, 정장을 쫙 빼입은 남자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빠, 이쪽은 시몬. 나랑 같은 반 조원이고 학기 내내 정말 많이 도와줬어."

"딸 아이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답니다. 반가워요."

다니엘라 빌렌느가 손을 내밀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메이린의 아빠라니!

어쩐지 바짝 긴장된 시몬이 그와 악수하고는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음."

그리고 다니엘라는 귀족으로서 시몬의 자세와 말투, 그리고 예절을 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배웠군요. 부모님은 어디 계시나요? 아버님은 어떤 영지를 다스리시고? 와인은 좋아하시나요?"

"아빠!!"

메이린이 다니엘라의 등을 찰싹 때렸다.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일이 바쁘셔서 이번 진급식엔 안 오셨습니다."

"하하, 아쉽네요."

이번엔 메이린이 다니엘라에게 딕을 소개해 주었다. 딕도 형제들을 메이린에게 소개했다.

"둘째 단 헤이워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메이린 빌렌느라고 해요."

메이린이 스커트 자락을 들어 올리며 정중히 인사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단이 딕의 뒤통수를 퍽퍽 때리며 조용히 말했다.

"와 이씨! 딕! 니가 출세하긴 출세했나 보다. 어?"

"아! 아파!"

"메이린 예쁘지 않냐? 쟤 왜 작업 안 걸었냐."

"......형."

딕이 진심으로 질색하는 표정으로 온몸을 뒤틀었다.

"딱 말할게.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쟤랑 딱 일주일만 지내봐. 그럼 본색을 알게 될......."

퍼억!

갑자기 옆에서 날아온 메이린이 이단 옆차기로 딕을 날려 버렸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스커트를 추슬렀다.

"저 밥팅이랑 무슨 이야기 하셨어요? 단."

단이 잽싸게 손을 들며 반응했다.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단 형! 배신하...... 아악!"

메이린에게 짓밟히는 딕의 모습을 보며, 단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뒤덮였다.

......키젠은 대체 어떤 곳일까.

"시몬~"

뒤에서 카미바레즈가 종종걸음으로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팔락팔락 등 뒤의 앙증맞은 박쥐 날개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 1순위 저 누나로 변경."

넷째 빌이 재빨리 말했다.

"누나가 아니라 우리 또래 같은데."

다섯째 알이 말했다.

카미바레즈도 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눈으로 헤이워드 형제들을 보았다.

"디, 딕이 네 명......?"

"소개할게. 카미."

발차기에 맞아 바닥에 엎어져 있던 딕이 잽싸게 일어났다.

"오른쪽에서부터 둘째 단, 넷째 빌, 다섯째 알이야."

"안녕하십니까!!"

형제들이 앞다투어 다가왔다.

낯을 가리는 카미바레즈는 안절부절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카, 카미바레즈 우르슬라라고 해요! 자, 잘 부탁드려요."

'......귀엽다!'

세 형제의 뺨이 동시에 붉어졌다. 넷째 빌이 잽싸게 말했다.

"지, 진짜 누나도 네크로맨서예요?"

"해골 만져봤어요?"

"아. 네에. 조금 무섭지만 이젠 적응했어요."

역시 카미바레즈는 인기가 많았다. 딕 형제들의 폭풍 질문에 나긋나긋한 투로 살갑게 대답해 주었다.

시몬이 그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지켜보고 있는 그때.

[오랜만이다.]

갑자기 시몬에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천장에서 들렸다.

시몬이 놀라서 고개를 들자 천장에 박쥐처럼 두 다리를 붙이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현존 최강의 우르슬라이자, 뱀파이어 로드.

그리고 카미바레즈의 아버지.

'디트리히 혼 우르슬라!'

처억!

디트리히가 천장에서 내려와 시몬의 앞에 섰다.

굵직한 목 두께와 벌판처럼 드넓은 어깨. 다리는 가늘었고, 검은 망토 같은 것으로 몸을 두른 차림은 예전에 봤던 그대로였다.

시몬이 얼른 어깨에 한 손을 올리며 자세를 낮춘 채 예를 취했다.

"뱀파이어 로드를 뵙습니다."

"호오."

디트리히가 웃자 튀어나온 송곳니가 번뜩이는 게 보였다.

"인간 주제에 뱀파이어의 예법을 아는가!"

저 특유의 위압감은 여전했다. 시몬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시, 실례였을까요?"

"하하하하! 아니, 잘 배웠다!"

그가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런 건 누가 가르쳐 줬지?"

"저희 아버......."

"아빠!!"

카미바레즈가 기겁하며 뛰어왔다. 디트리히가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 왜 또 소란을 일으키시는 거예요!"

"크흠! 나의 딸 카미바레즈야. 나는 그저......."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세계 최강의 뱀파이어가 작디작은 소녀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흠! 아무튼."

디트리히가 다시 시몬의 앞에 와 섰다.

"내 딸은 유약해서 키젠 2학년 진급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만."

디트리히가 눈동자를 굴려 카미바레즈를 보았다.

"고맙다. 이 아이가 살아남은 건 수석 1위인 네놈의 도움 덕분이겠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시몬은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 힘이 들어갔다.

"모든 건 순전히 카미, 아니. 카미바레즈 우르슬라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호."

"도움을 줬다고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았죠. 힘들 때 곁에 있어줬고, 수행평가 중에 독에 걸렸을 때는 제 목숨을 구해줬습니다."

"시, 시몬......!"

카미바레즈가 놀란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그녀는 언제까지 당신이 보호해야 할 아이가 아닙니다. 뱀파이어 로드."

디트리히의 안면 근육이 일그러졌다. 그 반응을 본 카미바레즈가 기겁하며 시몬의 앞을 가로막았다.

크.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대강당을 뒤흔들었다.

"건방진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군! 인간!"

어마어마한 위압감과 박력.

딕은 다소 얼빠진 표정으로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카미 아빠 무섭네."

"저 사람 앞에서 저렇게 말하는 니 친구도 대단하다."

둘째 단이 말했다.

어느새 분위기가 풀려서 시몬과 디트리히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네 아비는 여기 왔느냐?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아, 그게......."

저벅. 저벅.

시몬의 말이 멈췄다.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척을 느낀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

다가오는 남자를 본 시몬의 입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잠깐 지나가겠습니다. 레이디 여러분."

남자가 메이린과 카미바레즈에게 양해를 구하며 지나갔다. 두 사람의 얼굴이 퐁 하고 붉어졌다.

'시, 시몬이랑 빼닮았.......'

카미바레즈가 다급히 시몬과 그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저 사람......! 누굴 닮았다 했더니!'

메이린이 자신의 손목을 보았다. 그녀의 손목엔 여전히 그 손수건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놀란 건 시몬이었다.

'아, 아버지?!'

"하하!"

분장한 상태의 리처드가 웃는 얼굴로 손을 척 세워 들었다.

"오랜만이다? 조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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