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08화
-자, 해보시게나. 과연 자네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확인해 보세!
며칠 전, 병실에서 진행된 움브라의 수업은 간단했다.
움브라는 다양한 사령계 흑마법 마법진을 공중에 띄워놓고, 시몬이 혼돈으로 따라 해보도록 했다.
혼돈과 스피릿이 호환되는 부분을 찾기 위한 작업이었다. 위력이나 실전성은 상관없이 구현만 하면 오케이.
시몬은 처음 만든 '소울 스피어'는 문제없이 혼돈으로 구현할 수 있었으나 그 외의 모든 사령마법은 실패를 맛보았다.
'그나마 하나는 건졌네.'
시몬의 손에는 자줏빛의 번개를 연상케 하는, 파직거리는 창이 들려 있었다.
궤도와 타격, 범위와 지속시간까지 무작위로 결정되는 혼돈의 창.
하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소환학에 관심이 많은 시몬은, '사령소환'을 혼돈으로 구현하는 걸 가장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곧 실전이 있을 거라고 했지? 일단은 그 기술의 훈련부터 매진하는 게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나도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네의 혼돈과 호환되는 흑마법을 준비해 보겠네!
그렇게 말하며 움브라가 부스럭부스럭 꺼내놓은 짐들을 챙겼다.
그런데 꺼내놓은 여러 물건 중에 유난히 시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게 하나 있었다.
'돌'이었다.
사람 얼굴을 본떠 만든 듯한 이 돌은 마치 유령이 깃든 것처럼 눈에 안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시몬은 그것이 마치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군!
움브라가 불쑥 끼어들었다.
-자네에겐 아직 이르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보게!
이 '사령의 돌'은 유령을 일으키는 사령마법의 매개체였다.
시몬은 움브라의 도움으로 제작한 혼돈 마법진 위에 그 매개체를 올려보았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혼돈이 매개체를 중심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이내 돌의 안광이 사라지더니 그 위에 어떤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한 몸에, 손에는 낫을 들었으며, 얼굴엔 광대탈을 쓴 사신.
낄낄낄낄!
그것은 연신 웃음소리를 내며 시몬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혼돈색과 똑같은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믿기 힘들군!
움브라가 흥분하며 콧김을 뿜었다.
-너무 강한 이질성 때문에 나도 길들이는 데 애를 먹어서 연구 자료로 두고 있던 개체였네. 이게 자네의 혼돈에는 딱 들어맞는 모양이야.
-이, 이게 뭐죠? 교수님.
움브라가 씩 웃었다.
* * *
화아아아아악!
시몬의 혼돈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시몬이 마침내 움브라에게 받은 소환의 돌을 꺼내 그 마법진의 중앙에 붙이자, 빛은 더더욱 강해졌다.
[......뭐냐 그게.]
드래곤으로 변한 헥토르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스스스스스―
유령이 마법진의 중심부에서 나타났다.
마치 조커를 연상케 하는 외형에, 웃는 탈을 쓰고 한 손에는 낫을 든 유령.
"리퍼(Reaper)."
-소환학에 리치가 있다면, 사령학에는 리퍼가 있다!
움브라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시몬이 팔을 쭉 펼쳤다. 리퍼가 시몬의 그림자의 깃들며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물론 그냥 리퍼는 아니다.
<시몬 오리지널 - 카오스 리퍼>
시몬은 극도의 만족감과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내 근본은 소환.
드디어 혼돈의 힘과 사령의 힘으로 세상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소환수를 만들어냈다.
[네놈!!]
헥토르의 입매가 비틀렸다.
[사령학도 쓸 수 있었나!]
"엄밀히 말하면 사령학은 아냐."
시몬이 정정했다.
"혼돈이라니까."
리퍼가 등장하는 동시에 전장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동력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모든 혼돈의 창에 길쭉한 날이 생기며, 낫으로 바뀌었다.
리퍼의 첫 번째 능력. 모든 '카오스 스피어'가 '카오스 사이드'로 바뀐다.
부웅! 부웅!
공중에 떠오른 보라색 낫들이 회전한다. 리퍼가 낄낄거리며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또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헥토르가 인상을 구기며 자세를 낮췄다. 검은 용과 사신이 서로를 노려보며 전투를 준비했다.
시몬과 리퍼가 팔을 뻗었다.
"혼돈에 검증은 필요 없어."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악!
열 자루의 낫이 공중에서 제멋대로 빙그르르 회전하며 날아갔다.
혼돈의 기본 효과로 모든 궤적과 움직임이 변칙적인 낫들이 검은 용을 썰어버리려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큭!]
헥토르는 전신을 튼튼한 용의 비늘로 보호받고 있었다. 몇몇 공격은 힘없이 튕겨 나갔으나, 또 몇몇 공격은 비늘을 뚫고 타격이 들어갔다. 심지어 일격에 비늘을 베는 강한 공격력을 가진 낫도 있었다.
'먹힌다!'
본래 시몬은 헥토르의 비늘을 뚫는 데 애를 먹어야 했지만, 변수를 만드는 데 특화된 혼돈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카오스 사이드의 컨트롤은 리퍼에게 맡기고!'
시몬은 두 팔을 벌렸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스켈레톤의 뼈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날아갔다.
'나는 나대로 싸운다!'
<본 네일>
뼛조각들이 뾰족한 부분을 앞세우고는 단검처럼 날아갔다. 목표는 헥토르의 비늘이 아니라 날개였다.
일단은 기동력을 떨어뜨려야 했다.
부웅! 부웅! 부웅!
헥토르의 주위에는 카오스 사이드들이, 정면에서는 본 네일이 날아오른다. 현란한 투사체의 향연에 조원들과 헤이워드 형제들은 물론, 어른들도 놀라고 있었다.
"역시 키젠 수석은 다르네요."
메이린의 아버지 다니엘라가 탄성을 흘렸다.
"저 보라색 기술도 네놈이 가르쳤나?"
뱀파이어 로드 디트리히가 팔꿈치로 리처드를 툭 쳤다.
"그럴 리가요. 저건 시몬의 오리지널입니다."
리처드는 가짜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미소 지었다.
우르슬라, 상아탑, 그리고 무어 가문의 앞이었기에, 리처드는 입꼬리가 승천하려는 것을 부단히 참고 있었다.
"크으윽! 지지 마라! 헥토르! 더! 더! 격렬하게 싸워라!"
무어 가문 가주인 다르코스 무어만이, 잘 안 풀린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휙휙 휘두르고 있었다. 아들의 분투에 손을 가만두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쩐지 고소하다고 생각하며 리처드도 시몬을 보았다.
'너도 힘내거라! 시몬!'
촤아아아아아악!
"와아아아!"
이때 큰 거 한 방이 나왔다.
하늘을 날아 도망치려던 헥토르의 날개 한쪽 끝을 카오스 사이드가 잘라낸 것이다.
헥토르의 몸이 휘청이며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망할!]
그가 두 손바닥을 맞부딪히더니 마법진 하나를 펼쳤다. 그 앞으로 작은 브레스를 연달아 쏟아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법진을 통과한 드래곤 브레스는 화염비가 되어 시몬에게 쏟아졌다.
척!
시몬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팔을 뻗었다. 카오스 사이드 하나가 날아와 그의 손안에 잡혔다.
붕- 붕-!
한 손으로 낫을 가볍게 휘둘러 보던 시몬이 몸을 낮추고 전투자세를 취했다. 리퍼 또한 시몬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가자! 리퍼!'
날아오는 화염비를 향해 소년과 사신이 현란하게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 개의 낫은 보랏빛 궤도를 허공에 남겼고, 맞닿은 화염이 모조리 갈라지거나 바스러졌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쏟아졌다.
'윽!'
그런데 정확히 화염을 베었는데도 대뜸 날아와 시몬의 배리어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었다.
공격력이 자기 멋대로 변화하는 혼돈의 특성 때문이었다.
'변수 창출은 내게 리스크가 될 수도 있구나!'
바로 그때 헥토르가 찢어진 날개 부위를 칠흑으로 채우더니,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초고속으로 쇄도했다.
"막아, 리퍼!"
까아아아앙!
헥토르의 주먹과 리퍼의 낫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웃차!"
그사이 시몬은 빠르게 물러나 헥토르의 뒤로 돌아왔다.
그의 주먹이 빠르게 칠흑으로 휘감겼다.
<홍펭 오리지널 - 천흉>
쩌억!
방어를 관통하는 마투기가 헥토르의 등에 작렬했다. 이 기술만큼은 비늘로 보호해도 소용없었다.
헥토르가 무너져 바닥에 쓰러졌고 시몬이 다시 한번 천흉을 준비하는 그때.
"!!!"
순간 사념으로 섬뜩한 느낌을 받은 시몬이 급히 고개를 젖혔다.
부우우우웅!
보랏빛 칼날이 시몬의 목을 간발의 차이로 스치고 지나갔다. 시몬이 식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리, 리퍼?'
-낄낄낄낄낄낄!
리퍼의 동공이 이상하게 변질돼 있었다. 시몬이 당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야단났다!'
부앙! 부우웅! 부웅!
폭주한 리퍼가 난데없이 낫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는 공세에 시몬과 헥토르 모두 정신없이 바닥을 굴러다니며 피해야 했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냐!!]
"내 고의가 아냐!"
리퍼는 틀림없이 막강한 혼돈 소환수지만 부작용이 하나 있었다.
술사의 혼돈 공급이 약해지면 바로 배신하고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무차별 공격을 한다는 것. 그야말로 '혼돈'이 된다.
이 효과가 카오스 리퍼만 이런 건지, 모든 혼돈 소환수가 동일한지는 아직 모른다.
"큭!"
시몬이 비틀거리며 피하고는 몸에 그려뒀던 혼돈 마법진에 손을 올렸다.
"해제!"
퍼어어어엉!
리퍼 마법이 해체되며 몸이 초콜릿 케이크처럼 녹아내렸다.
"주인을 공격해? 뭐 저런 소환수가 있어?"
메이린이 얼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 근데 이럼 위험한데."
딕이 얼굴을 심각하게 굳혔다.
"시몬은 리퍼 타임이 끝났지만, 헥토르는 아직 드래곤 폼을 유지하고 있잖아!"
처억!
그 말대로였다. 모든 공세를 해제한 헥토르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다 끝났나?]
"......."
시몬은 해제한 혼돈 마법진에 수식을 하나 더 추가하고는 씩 웃었다.
"그럴 리가!"
퍼어어어어어어엉!
녹아내리던 리퍼의 몸이 폭음과 함께 수백 개의 혼돈 줄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들은 공중에 솟구쳤다가 이내 무차별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몬 오리지널 - 혼돈 난무>
쿠콰콰콰콰콰콰콰콰!
반경 일대를 보랏빛 참격이 허공을 미친 듯이 폭격했다. 헥토르가 전신의 칠흑을 끌어올리며 도망쳤고, 시몬은 최단 거리로 살짝살짝 몸을 틀어 피해 다니고 있었다.
'아직 리퍼와의 사념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궤적의 움직임이 감이 잡혀.'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혼돈의 공세를 떨어뜨리지만 술사는 피하는 게 훨씬 쉽다.
이게 바로 카오스 리퍼를 소모하는 대신 쓸 수 있는 마지막 혼돈 마법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몇 번이고 혼돈에 두들겨 맞은 헥토르가 고성을 질러댔다.
그런데 흑마법의 반경이 너무 넓었다. 혼돈의 참격이 메이린과 조원들에게도 떨어졌다.
"물러나렴."
그때 그들의 앞으로 듬직한 등이 나타났다.
리처드가 손짓하자 결계를 펼쳐서 막아냈다. 보랏빛 번개가 결계를 연신 두들기며 튕겨 나갔다.
리처드가 막는 사이, 다니엘라가 부유 마법으로 맞은편의 헥토르 파벌 학생들을 띄워서 이쪽으로 데려왔고, 디트리히는 머리 위로 혈류결계를 펼쳤다.
퍼억!
"흠!"
그때, 내려오던 보랏빛 번개 한 줄기가 디트리히의 혈류결계를 살짝 뚫고 튀어나왔다. 학생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서 가장 강한 뱀파이어 로드의 결계를!'
'뚫었어?'
디트리히는 자신의 결계가 뚫린 걸 보고는 히죽 웃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약한 번개는 맞아도 티가 안 나지만, 가장 강한 번개는 뱀파이어 로드의 결계를 뚫을 정도로 파괴적이다. 그렇기에 위험했고, 가장 약한 것마저도 경계해야 했다.
그게 바로 혼돈의 무서움이었다.
"확실히, 변수를 만드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힘이 없겠군요. 강력한 변동성입니다."
다니엘라가 말했다.
'하지만 아직 본인도 통제가 미흡해. 더 갈고닦아야겠군.'
리처드가 턱을 쓸며 생각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보랏빛 번개가 모두 내리고, 이내 주위가 다시 밝아졌다. 어른들도 결계를 거두었다.
바다 앞 모래사장은 거의 폐허로 변해 버렸다. 곳곳에 온통 커다란 크레이터가 나 있고, 그 사이에 두 소년이 숨을 헐떡이며 소강상태로 있었다.
헥토르의 드래곤 폼은 풀려 있었다.
시몬도 마찬가지. 피차의 칠흑이 바닥났다.
그러나.
"자!"
딕이 큰소리로 외쳤다.
"헥토르 학생! 배리어 다운!"
시몬은 아직 흐릿하게나마 배리어가 남아 있었지만, 헥토르는 이제 배리어 게이지가 모두 꺼져 있었다.
그 말은 즉.
"경기 종료입니다!"
딕이 소리쳤다.
"이번에도 역시 완벽한 경기운영! 마투에서 저주, 맹독, 소환으로 이어지는 폭넓은 전술! 그리고 마지막엔 신기술로 승리를 결정짓는 완벽한 한판이었습니다! 승자느으으으은......!"
쩌어억!
딕의 승리 선언이 떨어지려는 순간, 난데없이 헥토르가 시몬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윽!"
간발의 차이로 팔을 세워 막아낸 시몬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팔이 욱신거렸다.
"잠깐, 헥토르......!"
"시몬 폴렌티아."
그런데 어쩐지 헥토르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의 동공이 보랏빛 이채로 물들어 있었다.
"승부는 아직."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헥토르가 맨몸으로 돌진했다.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