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09화
부웅! 붕!
헥토르의 배리어 게이지가 박살 난 시점에서, 이 결투는 끝이 나야 했다.
하지만 헥토르는 멈추지 않았다. 시몬을 향해 무자비한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뭐야?"
심판인 딕이 기겁하며 말했다.
"지가 정정당당하게 결평으로 하자 해놓곤 왜 그래? 야. 멈춰!"
딕이 싸움을 막으러 달려갔으나, 대뜸 그의 머리로 헥토르의 비늘이 날아왔다.
딕이 허우적거리며 피해냈다.
"딕! 괜찮아?"
"우와, 저거 눈깔이 맛 갔네!"
바닥에 쓰러진 딕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 아빠! 싸움을 말려주세요!"
"뭐 하고 있어? 아빠!"
카미바레즈와 메이린이 다급하게 아빠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굳은 얼굴로 전투를 지켜보기만 했다. 리처드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취소를 원한다면 시몬이 먼저 요청했을 거다."
"네?"
"시몬도 끝까지 가볼 생각이야. 우리가 멋대로 방해할 권리는 없다."
파악!
한편 시몬도 헥토르의 맹공을 막아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역시 이렇게 된 건 혼돈의 힘 때문이겠지?'
시몬도 조금 놀랐다. 연습할 때는 이런 효과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일시적이지만 혼돈으로 정신이 오염되어 헥토르의 이성이 날아간 것 같았다. 아까 카오스 리퍼가 술사인 시몬을 공격했던 것과 같은 상태.
'일반적으로 이성을 잃은 상대를 제압하는 건 쉬워. 하지만.'
헥토르의 경우는 달랐다.
동작 하나하나, 발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성을 잃었다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군더더기 없다.
동작과 전투 논리가 완전히 몸에 익은 것이다.
'대단해.'
지금의 움직임은 순전히 노력의 산물.
시몬은 이 순간만큼은 헥토르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스르륵!
그때 헥토르의 주먹이 칠흑으로 휘감겼다.
'착검(着劍)이다!'
시몬이 주먹이 휘둘러지는 방향을 계산해 급히 몸을 낮췄으나.
"?!"
그의 몸이 갑자기 갈고리에 붙들린 것처럼 헥토르의 앞으로 끌려왔다.
착검이 아니었다.
<헥토르 오리지널 - 만파(輓把)>
꽝!
이어지는 헥토르의 박치기가 시몬에게 작렬하며, 그의 배리어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여기서 오리지널이라니!'
서로 배리어가 박살 나고 이제는 피차 맨몸이다.
결투평가라서 교복의 방호 기능도 꺼져 있는 상태.
후두부가 아득해지는 충격을 받으며 시몬이 비틀거렸다.
'큭! 정신이......!'
시야가 흔들리는 가운데, 동공이 보랏빛으로 물든 헥토르가 우악스럽게 웃으며 돌진했다.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 시몬 폴렌티......!"
쩌어어억!
헥토르의 콧대가 무너지며 핏방울이 비산했다.
번개처럼 날아간 시몬의 발차기가 제대로 꽂힌 것이다.
"와!"
"시몬도 전혀 안 밀려!"
헤이워드 형제들이 환호했다.
스륵!
그대로 시몬이 그의 어깨로 올라타 헥토르의 목을 두 다리로 휘감았다.
'이대로 목을 조여서......!'
덥석! 덥석!
그러나 헥토르의 두 팔이 시몬의 다리 사이로 들어오더니 오금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시몬은 놀랐다. 기술을 푸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
'그라운드 기술까지 익혔단 말야?'
예전 BMAT에서, 헥토르는 시몬의 그라운드 기술에 애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반성하고 방비를 준비한 것이다.
시몬은 굴러떨어지듯 헥토르의 위에서 내려왔다.
"크하압!"
즉시 헥토르의 바위 같은 주먹이 쇄도했다.
쩍!
고개를 꺾어 피해내며 다가온 시몬이 역으로 헥토르의 턱을 올려 찼다.
빡!
거의 동시에 헥토르의 로우킥이 시몬의 다리에 작렬했다.
으적!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의 안면에 작렬했다. 핏물이 튀고 두 사람이 동시에 비틀거렸다.
"크우웁!"
"하아!"
이제는 의지의 싸움.
칠흑을 다 소진하고 맨주먹으로 겨누는 두 사람을 보며 주위는 정적에 휩싸였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미친 싸움이네."
코뼈가 무너지고, 입술이 터져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두 소년은 웃고 있었다.
빠악! 팍! 타닷! 탓!
주먹이 부딪힐 때마다 대기가 뒤흔들리고, 발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의 모래가 튀어 올랐다.
"이, 이러면 누가 유리한 거냐? 딕."
둘째인 단 헤이워드가 물었다.
"당연히 헥토르지. 체격 차가 너무 심해."
딕이 팔짱을 꼈다.
빠아아아악!
그 말대로, 헥토르의 발차기를 가드해 낸 시몬이 공처럼 튕겨 나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쪽 코에서 피가 줄줄 쏟아지고 관절은 삐걱댔다.
'뭔가 방법이...... 아!'
마침 모랫바닥에 카오스 스피어 한 자루가 굴러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지속시간이 긴 녀석인지, 아직 해제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변수 창출! 이래서 혼돈이 좋다니까!'
시몬이 허우적거리며 카오스 스피어를 향해 달려갔고, 그 모습을 본 헥토르가 눈을 부릅뜨며 뒤쫓았다.
이성이 흐릿한 상태에서도, 혼돈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파밧!
시몬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웠다.
"큭!"
너무 급했다. 발이 바닥에 미끄러지며 크게 한번 휘청이는 사이, 헥토르가 쇄도해 온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허리를 돌렸다.
"크합!"
부아아아아앙!
그대로 투척.
하지만 너무 성급했던 걸까, 헥토르는 간단히 머리를 꺾어 피해냈다.
쩍!
시몬의 몸이 발길질에 무너지며 바닥을 굴렀다. 온몸이 피와 모래로 범벅이 되었다.
헥토르가 포효하며 달라붙어 시몬의 위에 올라탔다.
"빠져나와 시몬!"
"그대로 끝내 헥토르!"
7조 조원들과 파벌들의 외침이 교차했다. 헥토르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꾸욱!
시몬이 다리에 순간적으로 힘을 주어 몸을 세우자, 헥토르의 상체 밸런스가 무너지며 팔꿈치가 모랫바닥에 닿았다.
덥석!
덥석!
이내 시몬의 두 손이 헥토르의 허리를 붙들고, 두 다리는 헥토르의 몸을 뱀처럼 휘감더니 그대로 옆으로 넘겨 버렸다.
"또 이 기술을!!"
헥토르의 눈이 시뻘게졌다. 좋은 자리를 선점한 시몬이 바로 반격하려 했지만.
"!"
헥토르가 시몬의 두 주먹을 붙잡고는, 기술에 걸렸으면서도 깡 힘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그의 다리 근육이 부들부들 터질 듯이 움직였다.
'진짜 더럽게 터프하네!'
시몬이 하는 수 없이 헥토르의 얼굴을 걷어차며 옆으로 빠져나갔다. 입에 핏물이 터지며 휘청거렸지만 헥토르는 주저앉지 않았다.
반면 시몬은 방금의 발차기로 힘이 다 떨어졌다. 그가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끝이다!!"
승리를 직감한 헥토르가 팔을 들어 올렸다.
"......잊지 않았어?"
그때 시몬이 힘겹게 미소 지었다.
"카오스 스피어는 마지막 명중 지점을 지정할 수 있단 걸."
'!'
거의 마지막 순간에야, 헥토르의 이성이 돌아왔다.
'설마 아까 날린 창에......!'
쩍!
등 뒤에서 보랏빛 창이 부딪히며, 내달려오던 헥토르의 몸이 크게 꺾였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이내 혼돈의 창이 맹렬한 보랏빛 폭발을 일으켰다. 헥토르가 저만치 날아가 흙바닥을 굴렀다.
"와!"
"제대로 들어갔어!"
곳곳에서 환호성과 적막이 교차하는 가운데.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헥토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비로소 커다란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승자!!"
딕이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결국 마지막에도 시몬 폴렌티아!"
"와아아아아!"
시몬이 불끈 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조원들과 헤이워드 형제들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왔고, 파벌 학생들은 헥토르에게 달려갔다.
풀썩!
그리고 시몬은 주먹을 들어 올린 동작을 취하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시몬!!"
"어우, 진짜 이 밥팅아! 어제 퇴원했으면서 왤케 무리하는 거야!"
카미바레즈가 다급한 목소리와 메이린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진짜 한 끗 차이였네."
딕이 시몬과 쓰러진 헥토르를 번갈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
뒤이어 리처드도 저벅저벅 걸어와 시몬의 앞에 섰다.
'후련했냐? 시몬.'
척.
그때 기척과 함께 커다란 덩치의 다르코스 무어가 다가와 있었다.
리처드가 재빨리 반응하려는 그때, 다르코스는 공격 대신 손을 뻗었다.
"응?"
악수 제의였다.
"......재능 있는 아들을 두셨군. 자랑스러우시겠소."
그렇게 말하며 슬쩍 미소 짓는 모습은 헥토르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긴장하고 있던 리처드도 무안한 듯 웃고는 손을 잡았다.
"그쪽 아들의 재능도 대단했습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아들이 아니라 조카입니다."
"그런 걸로 쳐두겠소."
다르코스가 쓰러진 헥토르에게로 향했다. 리처드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시몬을 보았다.
그 말대로.
리처드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군.'
그가 고개를 젖혔다.
'이 녀석이 내 아들이라고.'
뱀파이어 로드 디트리히가 혈류마법으로 시몬과 헥토르의 상처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쓰러진 시몬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메이린의 곁으로, 다니엘라가 다가왔다.
"메이린."
"아빠?"
다니엘라의 시선은 쓰러진 시몬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가 비로소 메이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그 머리카락."
"응?"
"예쁘구나. 역시 계속 기르는 게 낫겠다."
"??"
메이린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보았다.
한편 치료를 마친 디트리히도 뒤로 물러나 넌지시 카미바레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딸 카미바레즈야."
"아, 네."
"우르슬라의 여식으로서 무조건 너를 뱀파이어와 이을 생각이었으나, 생각이 달라졌다."
다니엘라 쪽을 슬쩍 견제하듯 바라본 그가 엄지를 척 세웠다.
"실력으로도, 사랑으로도, 인간 따위에게 지지 마라!"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무, 무슨 소리세요! 갑자기!"
* * *
시몬이 눈을 뜰 즈음엔 저녁이었다.
'으윽!'
한동안 신세를 졌던 그 병동이었다.
벌떡 일어나자, 그 옆에 안경을 쓴 리처드가 다리를 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일어났느냐? 시몬."
시몬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 아버지! 다른 애들은요?"
"이미 집에 갔다."
리처드가 책을 탁 덮으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작별 인사를 못 하고 헤어져서 다들 아쉬워하더구나."
그렇게 말하며 그가 침대 한쪽을 가리켰다. 종이에 7조 조원들과 헤이워드 형제들이 남긴 작별 메시지가 있었다.
글씨체만 봐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삐뚤삐뚤 알아보기 힘든 딕의 필체, 반듯하고 정갈한 귀족다운 메이린의 필체, 귀여운 이모티콘이 들어간 카미바레즈의 필체. 헤이워드 형제들도 한마디씩 남겼다.
시몬은 즐거운 미소를 흘리며 그 글을 읽었다.
"키젠 생활은 재밌었니?"
"네!"
시몬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최고예요. 학교에 온 뒤로 제 삶이 꿈처럼 바뀌었으니까요!"
"다행이구나."
리처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병동 의사가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한 시간만 더 쉬었다가 레스힐로 돌아가자꾸나."
"네!"
* * *
시몬은 몇 가지 방학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예전에 따냈던 던전 독점 공략권.'
임무 평가로 랭거스틴 왕국 연회에 갔을 때, 3왕자인 안드레와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따낸 던전 공략권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 던전은 에이션트 언데드가 숨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흰 무덤 던전'이다. 유일하게 출입 방법을 알고 있는 피어가 직접 참전하기로 했다.
-크흐흐! 좋은 소식을 들고 오마!
그리고 프린스와 에르제베트, 아케뮤스까지 피어에게 붙여주었다. 시몬은 헤르세바만 있으면 충분했으니까.
시몬도 레스힐에서 조금 쉬다가 같이 갈 생각이었지만, 부상도 부상이고. 무엇보다 독성이 짙은 던전이라서 인간이 가봐야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피어는 말했다.
이번에 그가 찾는 에이션트 언데드는 '독'에 관련된 존재였다.
그렇게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방학 동안 던전을 공략하기로 하고, 시몬은 헤르세바를 데리고 리처드와 함께 레스힐로 넘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방학 동안 시몬과 적대하는 군단장 매그너스의 습격이 염려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리처드가 있는 이상 레스힐에 있어도 안전하긴 하겠지만, 시몬은 자신의 사정 때문에 영지와 영지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는 싫었다.
며칠만 집에서 요양하고 적당한 핑계를 대서 레스힐 밖으로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몬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키젠 2학년들 중 가장 늦게 로크섬을 빠져나갔다.
"돌아왔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 레스힐.
가장 큰 뉴스가 옆집 소의 순산 정도뿐인, 산골 중의 산골.
공기부터가 맛있었다. 시몬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랜만에 오니 좋으냐."
"당연하죠!"
키젠에 가기 전에는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익숙한 오솔길을 걸으며, 시몬과 리처드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시몬은 오랜만에 엄마를 볼 생각에 들뜬 얼굴로 달려가 문을 노크했다.
"엄마! 저예요!"
달칵!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자, 먹음직스러운 냄새와 함께 달그락달그락 부산스럽게 뭔가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 돌아왔니?"
부엌에서 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안나 말고도, 식탁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차분히 눈을 감고 있는 바다색 머리카락의 여인.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여기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인물이었다.
"내 조카, 시몬."
신성연방 온건파의 실세이자, 신해의 성녀라는 이명을 가진 존재.
신성연방에서는 시몬을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안나의 수술에 필요한 재료까지 구해준 은인.
"이스라필 님!!"
성녀 이스라필이, 암흑연합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