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14화
노파는 아쉬운 듯 웃더니 시몬의 손을 붙잡았다.
"그럼 이 청년부터 시작하겠네."
"......아, 잘 부탁드립니다."
노파는 시몬의 손을 끌어서 수정구에 올린 다음,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눈을 감게나."
시몬이 눈을 감았다. 노파의 손이 수정구와 시몬의 손을 스르륵 쓸었다.
"지금 뭐가 보이는감?"
"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그렇겠지."
점을 보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기에, 시몬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눈을 감으라고 시킨 걸 보니 뭔가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는 걸까?
"오오!"
그때 노파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이는구만! 보여! 청년의 모습이 보여!"
노파가 보는 거였다.
"날아! 나는구먼! 자네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어!"
노파는 한동안 계속 '난다!', '날고 있어!'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손을 붙잡힌 시몬은 잠자코 기다렸고, 레테는 벽에 기대어 어이없다는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나는군! 날아! 그, 그걸 뭐라 하는감! 바, 바퀴 달린 거!"
"마차요?"
"그거 말고! 상인들이 짐을 싣고 질질 끌고 가는......."
"수레?"
"그래, 수레! 수레에 자네가 탄 채 끌려가고 있으이!"
"......아깐 하늘을 난다면서요?"
도저히 흐름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였다.
"어, 어어어!"
그때 노파의 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본인의 입으로-
"쾅!"
하는 폭발음을 내며 눈을 떴다.
"여기까지라네."
"???"
시몬이 손을 빼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레테가 '와아' 하고 싱거운 박수를 몇 번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밌었슴다. 그럼 할머니, 저희는 이만 가봐......."
"어이구! 아가씨도 해봐야지 어딜 가남!"
그러면서 노파가 레테의 손을 강제로 붙잡아 수정구에 올리도록 했다.
레테는 하는 수 없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게."
레테가 마지못해 눈을 감았다.
"뭐가 보이는감?"
"......당연히 아무것도 안 보이죠."
"오, 오오, 오! 그래! 보여! 아가씨의 모습이 보이는구먼!"
아까와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날아. 나는구만! 하늘을 훨훨 날고 있어!"
심지어 이것도 같은 레퍼토리였다.
'우리 둘 다 어디 날아가는 건가.'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며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노파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끔찍하군!"
"네?"
"피. 피. 온통 피일세! 피가 흥건하고,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 불길. 그리고 고통에 젖은 비명과 신음이 들려. 많은 사람들이 미동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구만."
눈을 감고 있던 레테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아! 아아! 그 피와 살육의 장소에 아가씨가 서 있네!"
노파의 목소리가 숨넘어갈 듯 커졌다.
"아가씨가 괴이한 손짓을 하는구먼! 그러자 바닥에 쓰러져 싸늘하게 식어 있던 사람들이 흐물흐물 일어나기 시작하네. 그러고는 다시 무기를 들고......!"
팟!
시몬은 깜짝 놀랐다.
레테가 돌연 손을 수정구에서 빼낸 것이다. 그러고는 핏발선 눈으로 노파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레, 레테?"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등을 돌려 성큼성큼 골목으로 들어가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 볼게요."
노파가 익숙하다는 듯 수정구를 들고는 빙그레 웃었다.
"잘 가시게나. 여신의 축복이 그대들과 함께하길."
저벅! 저벅! 저벅!
아랫입술을 깨문 레테가 거침없이 골목길을 걸어갔다.
시몬이 얼른 뒤따라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레테! 기다려!"
팍!
그녀가 시몬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시몬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진정해! 대체 왜 그래?"
"당신도 들었잖슴까!"
레테가 희번덕이는 눈으로 소리쳤다.
"방금 그 장면! 누가 들어도 시체를 일으켜 싸우게 하는 네크로맨서였잖아요! 내가 그 끔찍한 네크로맨서라고? 내가?"
시몬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네크로맨서의 공격으로 부모를 잃고 미아가 됐다.
그때 네크로맨서들이 죽은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스켈레톤으로 일으키는 모습이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레테의 네크로맨서 혐오증이 다시 도지게 되면 곤란했다.
"그냥 재미로 듣는 점이었잖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재미로 듣는 것도 정도가 있슴다! 내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감수할 수 있어! 그런데 왜 하필 그딴......!"
시몬이 침착하게 손바닥을 펼쳐 들며 다가왔다.
"수사는 중단하고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거기서 좀 쉬면서-"
"내 몸에 손대지 마! 네크로맨......!!"
불같은 화를 쏟아내려는 레테가 멈칫했다.
"......."
"......."
레테는 어깨를 떨며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손바닥으로 얼굴을 슥 쓸어내리며 하아아아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미안해요."
저벅.
레테가 등을 돌렸다.
"수사. 계속하죠."
"......괜찮겠어?"
"네."
그녀가 힘 빠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살짝, 피곤할 뿐임다."
* * *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이 도시의 영주성이었다.
하지만.
-영주님은 지금 긴급회의 중이셔서, 면담은 어렵다고 하십니다. 죄송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소득 없이 영주성에서 나와야 했다.
레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그렇지~ 도시가 이 꼴인데 영주가 외부인인 우릴 만나줄 리가 없잖슴까."
"그러네, 내 생각이 짧았어."
레테는 방금 그 상황이 없던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빠르게 멘탈을 다잡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시몬은 속으로 안도했다.
물론 정말로 괜찮은지는 시간을 들여 확인해 봐야겠지만.
이제는 정말로 이스라필이 잡아준 숙소에 가서 쉬기로 했다.
평범한 여관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숙소 중 하나라고 했다.
"벌써 6개월하고 이틀 만의 손님이로군요!"
숙소 주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맞이했다.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물 안인데 냉기가 쌩쌩 들어오며 무척이나 추웠다. 입에서 입김도 났다.
"방 안은 따뜻하니 걱정 마세요."
숙소 주인이 재빨리 말했다.
"건물이 이렇게 큰데 손님이 없어요?"
"하아아, 몇 년 전만 해도 빈방 없이 붐볐는데. 지금은 도시가 죽느니 마느니 하는 꼴이라 어쩔 수 없죠. 일단 손님 두 분 방은 깨끗하게 청소해 뒀습니다!"
숙소 주인이 시몬과 레테를 번갈아 보더니 묘한 미소를 흘렸다.
"즐겁고 뜨거운 시간 보내시길! 자, 여기 열쇠."
숙소 주인이 시몬에게 방 열쇠를 주고 자기는 다른 일이 있다며 나갔다.
원래는 추가비용을 내면 식사도 가능했지만, 지금 도시에 식량이 없어서 제공이 어렵다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 3층으로 올라왔다.
시몬이 절그럭 소리를 내며 숙소 주인에게 받은 열쇠를 들었다.
"어?"
"왜 그러심까."
"이제 알았는데 이거."
시몬이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열쇠가 하나뿐이네."
"!"
레테가 식겁한 표정을 짓더니, 얼른 시몬의 손에 들린 열쇠를 빼앗아 제 눈으로 확인했다.
"아니, 진짜! 아무리 손님이 없다지만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검까!"
레테가 급히 등을 돌리더니 무서운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아저씨! 방이 하나라고!"
그녀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이미 숙소 주인은 밖으로 나간 뒤였다.
레테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돌아왔다.
"아, 진짜-!"
"일단 들어가 보자. 열쇠는 하나지만 안에 들어가면 방이 여러 개일 수도 있잖아."
그녀의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아왔다.
"......음, 당신 말이 맞슴다. 그 정도라면 뭐."
두 사람은 다시 3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재잘재잘 수다도 떨었다.
"들어가면 샤워부터 할 검다. 부스가 있으면 좋을 텐데."
"여긴 부자도시라 하수도가 갖춰진 모양이야. 물도 제대로 나올 것 같아."
"다행임다. 하늘섬에 있다가 다른 촌 동네에 들어가면 인프라 차이를 확 느껴서."
"나도 키젠에서 목욕탕이란 곳을 처음 가봤어. 아, 도착했다. 문 열게."
방문 앞에 도착한 시몬이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레테를 먼저 안으로 보내고, 시몬이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오는데.
"왜 그래?"
레테가 걸음을 멈춘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몬도 안으로 들어갔다가, 그녀의 옆에서 똑같이 동작이 굳어지고 말았다.
"......."
"......."
야릇한 홍색 조명이 가득한 방이었다.
벽지도 레드톤이었고 넓은 방에 큰 침대 하나 달랑 있다. 심지어 방에 붙어 있는 욕실 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그냥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시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스라필은 이번 여행 내내 준비성이 너무 좋았다.
"......하하. 아하하."
레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러고는 방의 문을 두 손으로 붙잡고 한마디 했다.
"안녕히 계세요."
쿵!
레테가 문을 닫은 뒤, 어디론가 달려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다시 문을 열고 복도 쪽을 들여다보자, 분노와 당혹감으로 가득한 그녀가 다른 방의 문고리를 거칠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니, 진짜! 선 넘어도 너무 넘는 거 아니냐고 X발!"
쾅! 쾅!
이내 모든 객실을 확인했지만 전부 잠겨 있었다. 이 숙소 전체에 열려 있는 건 저 빨간 방 하나뿐이었다.
"......으으."
머리를 마구 쓸어넘기며 좌절하던 레테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더니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시몬이 기겁하며 외쳤다.
"레테! 잠깐만!"
"그 방은 당신 혼자 쓰십쇼!"
레테가 이를 악물었다.
"난 죽어도 남자랑 같은 방에서 못 자겠으니까!"
쾅!
결국 힘으로 문고리를 박살 내며 옆 방으로 들어가는 레테였다. 시몬이 다급히 뒤따라갔다.
"무슨 짓이야! 이거 다 배상해 줘야 하는...... 어?"
그런데 그 옆방의 내부는 훨씬 심했다.
바닥과 침대의 먼지가 수북했고,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난방도 없어서 미친 듯이 추운 건 덤이었다.
지네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어 다니던 모습을 본 레테가 문을 탁 닫았다.
그리고 잠시 후.
"......."
제 발로 빨간 방에 들어와 침대에 엉덩이를 붙인 채 얌전히 앉아 있는 레테였다.
시몬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죽어도 같은 방에서 못 자겠다며?"
"......닥쳐요."
소리 내어 웃던 시몬이 자신도 침대에 털썩 걸터앉아 앓는 소리를 냈다.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으으, 피곤해. 빨리 자고 싶다."
툭!
그렇게 말하던 시몬의 눈앞에, 베개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시몬이 얼른 고개를 돌려보자, 레테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니, 잠깐만! 이건 아니지!"
인내심 강한 시몬도 이건 못 참았다. 레테가 하나뿐인 이불을 사수하듯 안아서 몸을 가렸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인마! 그럼 내가 네크로맨서랑 같은 침대에서 자란 거냐?!"
"바닥에서 재울 거면 적어도 이불은 줘!"
"그럼 니가 내 몸을 다 보잖아!!"
와악 와악 이번에는 잠자리 문제로 싸우는 두 사람이었다.
30분간의 토론과 싸움 끝에, 결국 시몬이 내려가는 대신 모든 이불은 레테가 양보하는 걸로 했다. 레테는 대충 가운을 덮고 자기로 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을....... 여신이시여, 왜 자꾸 제게 이런 시련만 주시는 건가요."
침대에 기도하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시몬은 가방을 꺼내 짐을 풀고 있었다.
"레테, 먼저 씻을래?"
"......."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뜬 레테가 냉랭하게 말했다.
"개수작 부리지 마십쇼."
"?"
레테도 따뜻한 물에 씻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아니, 진심으로 씻고 싶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여기서 씻을 수 있겠냐!"
그녀가 욕실 문을 붙잡고 덜컹덜컹 흔들었다.
통유리라 내부가 방에서 훤히 보였고, 무엇보다 문에 잠금장치가 없었다.
문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럼."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씻을게."
레테가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