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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16화 (41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16화

'이제 백룡 란을 꺼내는 건가?'

시몬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본 레테는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는 듯 픽 웃었다.

"여기서 란을 꺼내면 도시를 홀라당 태워먹을 검다."

"그럼 어쩌려고?"

"딱 지켜보기나 하십쇼."

레테는 신성 아공간에서 두 마리의 신수를 꺼냈다.

하나는 거북이, 다른 하나는 산새와 흡사한 외형이다. 신수답게 전신이 하얗고 눈에서는 신성이 일렁였다.

"부탁해. 미미. 라라."

레테가 눈을 감고 거북이 신수의 등껍질에 손을 올렸다.

신수는 그녀의 신성을 물먹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더니 이내 눈부신 광채에 휩싸였다.

'잠깐, 저거 설마!'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양이 까망이에게 신성을 주입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물론 새끼 고양이들은 도중에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파아아아앗!

저 거북이 신수는 끝까지 변신에 성공했다.

빛 속에서 분리와 결합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시몬은 신성 방어학 교수 파라한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대륙 최강의 아크 팔라딘이라는 '아칸'에 대해 들어봤나? 그는 자신의 드레이크를 비행선의 형태로 변신시켜 몰고 다니지.

그 희귀한 신수들 중에서도. 그야말로 극소수만이 가능하다는 '사물화'.

어느새 거북이 신수는 바닥을 파고들어 가 간이 지하벙커와도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신수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잘 봐요."

레테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라라, 준비해."

-끼룩!

새 형상의 신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사이 레테는 벙커가 된 거북이 신수의 위로 '증폭 마법진'을 여러 장 겹쳐 깔았다.

"미미."

벙커의 천장. 아니, 등껍질이 육중한 금속음과 함께 열리더니 그 안에서 무수한 섬광 다발을 공중으로 뿜어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섬광 다발들은 수 겹의 증폭 마법진을 통과해 공중으로 치솟았다.

시몬이 깜짝 놀라 말했다.

"잠깐 레테! 무슨 짓이야! 이대로는......!"

레테는 가만히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고는, 자신의 몸에 그려놓은 백마법을 발동했다.

<시야 감응>

눈을 감은 그녀는 하늘에 떠 있는 새 신수의 눈으로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격 통제>

이내 날아가는 섬광의 각도를 조절했다. 공중으로 치솟던 수백 개의 빛들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었다.

잠시 도시가 낮처럼 환하게 변했다.

<정밀 사격>

이내 빛의 기둥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퍼억!

그것은 상처 입은 자경단의 숨을 끊으려던 고블린의 뒤통수에 틀어박혔고.

퍼억! 퍽!

벽을 타고 오르던 고블린, 시체에 한눈팔던 고블린의 목을 쳤으며.

퍼버버버버벅!

심지어 실내에 들어온 고블린들까지 학살했다.

도시에 난입한 100기가 넘는 고블린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동시에 숨통을 끊어버렸다.

털썩! 털썩!

가히 초 단위의 시간 안에 100마리가 넘는 숫자가 지워졌다.

도시의 주민들은 물론, 곁에 있는 시몬도 탄성을 흘렸다.

'역시!'

에프넬의 선발 1번이자, 현역 성녀다운 실력이었다.

물론 저 신수학 기술은 성녀로서의 권능이 아니었다. 순전히 레테 본인이 에프넬에서 공부하고 갈고닦은 힘이었다.

"하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그녀가 하얀 머리카락을 흔들며 눈을 떴다.

"수고했어. 미미, 라라."

-끼루룩!

하늘에 떠 있던 새가 돌아와 그녀의 어깨에 앉았고, 장갑기지로 변했던 거북이도 빛무리와 함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단했어! 방금 그거 신수의 사물화지?"

"그렇슴다. 덧붙여서, 나는 나를 선택한 신수들만 사용함다. 란도 마찬가지고."

레테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두 신수들을 신성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그러고는 새로운 신수를 하나 더 꺼냈다.

쿠웅!

그건 꽤 컸다. 마치 움직이는 나무처럼 생긴 신수.

레테가 손바닥을 올려 신성을 불어넣고는 말했다.

"다들 나와."

그러자 나뭇잎 안에서 신성을 뿜는 수 백 마리의 반딧불이들이 튀어나왔다.

"부상자들의 치료부터 서둘러 줘."

반딧불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울타리 근처나 도시로 날아가 부상자들의 상처에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레테가 불어넣은 신성으로 빛을 일으키며 상처를 회복해 갔다.

'100마리를 동시에 치고, 이제는 100명을 동시에 회복하고 있어!'

시몬의 시선을 느낀 레테가 훗 하고 웃었다.

"이제 좀 알았슴까? 신수의 강력함은 네크로맨서의 언데드들과는 격이 다르단 걸!"

시몬이 쓰게 웃었다. 이걸 또 네크로맨서와 프리스트의 구도로 몰아가다니.

"여기서 리치를 보여주지 못해 아쉽네."

"그게 뭔데요?"

"있어. 네가 보면 까무러칠 만한 언데드가...... 아, 잠깐만!"

시몬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나무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자경단원이 보였다. 복부에 커다란 검상이 나 있었다.

"실례하겠슴다."

레테가 상처 부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레이트 힐>

화아아아아악!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신음하던 남자의 창백한 안색이 서서히 돌아왔다.

"정신이 드세요?"

"크으윽! 여, 영주! 영주님이......!"

"영주님이 어딨는지 아심까?"

레테가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고블린들을 이끄는 보스 몬스터급 개체를 보셨습니다. 병사들을 이끌고 싸우러......."

자경단원이 힘겹게 팔을 뻗어 위치를 알려주었다. 시몬이 외쳤다.

"아칼리온!"

두 사람은 바로 아칼리온을 타고 자경단원이 가르쳐 준 방향으로 달렸다.

"화이트 고블린만 쳐들어온 게 아닌 모양임다."

시몬의 허리를 붙잡은 레테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숲은 온통 죽은 몬스터 천지였다.

"아니, 이건 다른 때에 들어온 몬스터들이야."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시체의 상태를 보면 언제쯤, 어떻게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거든."

레테가 '역시 네크로맨서' 하고 투덜거렸다.

"아무튼 저 몬스터들의 시체를 보면, 이 도시는 거의 일주일 내내 공격에 시달린 것 같아. 오늘 전투는 다른 때보다 더 세게 붙은 것 같고."

"식량도 없는데 몬스터의 공격까지, 이 도시의 영주님은 고민이 많겠네요."

가면 갈수록 몬스터들의 시체는 점점 더 늘어났다. 특히 방금 막 죽은, 검에 베인 화이트 고블린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영주도 엄청나게 강한 모양이었다. 검격이 지나간 자리에 나무와 몬스터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전부 한 명에게 당한 상처다.

"찾았슴다!"

레테가 손끝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하얀 털로 뒤덮인 대형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콧수염의 남자가 보인다. 가슴에는 피가 철철 흐르는 꽤 큰 상처가 있었다.

-키키키키킥!

주위의 화이트 고블린들이 잽싸게 시몬 일행을 가로막았다. 아칼리온이 우렁차게 포효했지만, 몬스터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비켜!"

이에 시몬이 두 팔을 앞세우며 준비해 둔 백마법을 발동시켰다.

공중에 떠오른 신성창을 나풀거리며 날아온 신성의 띠가 휘감았고, 곧 드릴의 형상을 이루었다.

<레테 오리지널 - 라 에스크림>

포성과 함께 날아간 한 줄기의 섬광이 앞을 가로막은 몬스터들을 모조리 날려 버리며 뻗어 나갔다.

그러고는 중년 남자와 싸우고 있던 보스 몬스터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꽝!!

신성창은 보스 몬스터를 수십 미터 더 끌고 가 바위에 처박혔다. 바위가 쩌저적 갈라지고 몬스터가 피를 토했다.

"누, 누구......!"

가슴의 상처를 붙잡은 채 그렇게 말하던 남자가 더 견디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시몬이 아칼리온에서 내려와 대검을 휘둘러 고블린들을 쫓아냈다.

"레테! 치료를 부탁해."

그런데 레테는 다소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두 뺨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 어떻게......."

그녀의 손이 달달 떨렸다.

"니가 어떻게 그 기술을 쓰고 있는 거야아!!"

* * *

전투가 끝나고, 날이 밝았다.

두 사람은 비로소 영주성 접객실에 방문했다.

"라우스(Laus)! 두 분 사제님께 실례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상체에 커다란 붕대를 휘감은 영주가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도 예를 취하며 인사를 받았다.

"오늘 밤이 꼼짝없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제분 덕분에 사상자를 크게 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면 됐슴다."

레테가 다리를 꼬며 잘난 척했다.

"자비로운 여신의 은혜에 기도하도록 하세요."

"무, 물론입니다. 여신께서 아직 저희를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성연방 특유의 화제가 몇 마디 오간 뒤, 시몬은 슬쩍 본론을 꺼냈다.

"지금 영지 상태는 얼마나 안 좋죠?"

그 물음에 영주의 얼굴이 굳었다.

"사실, 내일이면 영지의 모든 식량이 바닥납니다."

"내일이요?"

"......예. 바다는 여전히 녹지 않고 있습니다. 혹한은 계속되고 있고, 영지민 전체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산맥을 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이게 전부, 그 빌어먹을 마을 때문입니다."

시몬이 급히 귀를 기울였다.

"마을이라 하심은......."

"북쪽 산맥에 에스카일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알다마다.

지금까지 계속 들어왔던 임무의 도착지이자, 곧 두 사람이 선생님으로 잠입하게 될 마을이다.

"에스카일에는 '설녀'를 움직이고, 눈과 얼음을 조종하는 마법사들이 있습니다."

"설녀......요?"

"전설 속의 존재입니다. 아니, 그런 이야기를 떠나서 이 모든 게 쿨라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한 에스카일 사람들의 흉계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혹한'이다.

기후가 바뀌면서 쿨라 도시는 휴양지로서도, 그리고 성수잎 재배지로서도 기능하지 못한다.

바다가 얼면서 유일한 물류 및 탈출루트가 막혔으며, 지독한 혹한에 쫓겨온 설산의 몬스터들은 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몬은 이 혹한이, 이스라필이 그렇게 말했던 북쪽에 느껴지는 '악'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악행은 결코 한둘이 아닙니다!"

영주는 막힌 둑 터지듯 에스카일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쿨라는 설산의 깨끗한 계곡물을 끌어와 성수잎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에스카일 사람들이 이 계곡물에 끔찍한 독을 흘려보내 성수잎 수백 톤이 한순간에 죽어버린 일도 있었다.

또한 산맥에는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모두 쿨라에 적대적이었고 끝없이 도시를 침공해 왔다.

심지어 쿨라에선 젊은이들의 실종 사건까지 빈번하게 일어났다.

목격자에 따르면 에스카일 전통의상인 흰 털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주변에 있었다고.

'뭐,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할 수 없지만.'

이렇게 들으니 정말 나쁜 사람들인 것 같긴 했다.

"우리도, 그냥 이렇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분노로 일렁이는 영주의 시선이, 눈 내리는 설산으로 향했다.

* * *

시몬과 레테는 영주성에서 빠져나와 걸었다.

"숙소에 가자마자 준비하죠."

레테가 불쑥 말했다.

"무슨 준비?"

"이스라필 님이 말씀하신 대로 3일 정도는 느긋하게 쉬면서 정보를 모을 생각이었지만, 이대론 안 되겠슴다. 상황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심각해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시몬을 똑바로 보았다.

"오늘, 아니. 지금 당장 에스카일에 갈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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