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21화
레테의 신수학 수업은 가히 신세계였다.
물론 키젠의 신성 방어학 교수, '파라한'의 수업도 훌륭했지만 전공이 신성역학인 만큼 신수학은 딱 교과서적인 수업 정도만 가능했다.
레테의 말에 따르면 신수학은 완전히 전문화된 영역이기에, 아무리 대단한 프리스트라도 신수학은 기본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알고 있었슴까?"
레테가 아칼리온의 몸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 신수.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거."
"뭐어어?!"
시몬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재빨리 아칼리온을 바라보았다.
"진짜야? 왜 나랑 있을 땐 한 번도 날지 않은 거야?"
-우엉.......
"애한테 너무 그러지 마세요. 본인도 방법을 몰랐을 뿐임다."
레테가 쓱쓱 아칼리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지 '우어엉' 하는 소리를 냈다.
"거기에, 하늘을 날기 위해선 신수마법의 도움이 필요함다."
"신수마법! 신수에 마법진을 그리는 그거 말하는 거지?"
"네. 신성과 마법진의 힘으로 신수의 능력을 200% 끌어올린다. 대충 그 정도로 정의해 두죠."
레테는 즉석으로 아칼리온의 네 다리 모두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고는 아칼리온의 등 위에 더 큰 마법진을 그리고, 다리의 마법진들을 연결했다.
작업을 마무리한 그녀가 시몬을 보며 말했다.
"벗어요."
시몬이 움찔하자, 레테가 설명하기도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확 찌푸렸다.
"니 몸에도 마법진을 처그려야 하니까 뒤돌아 앉아서 상의 탈의하라고 인마!"
"......아, 알았어."
시몬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웃통을 벗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흠-'하고 다가오더니 손바닥으로 시몬의 등을 찰싹 때렸다.
시몬이 깜짝 놀라서 파르르 떨었다.
"자, 잠깐! 원래 신수 마법진 그리기에 이런 과정이 있는 거야?"
"아뇨. 그냥 몸 좋아서 한번 때려보고 싶어졌슴다."
'......뭘 그렇게 당당히 말해!'
이내 레테는 시몬의 등 뒤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을 대고 쓱쓱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윽.'
얼굴이 붉어진 시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간지러웠다.
레테의 얇고 하얀 손가락이 살살 춤을 추며 시몬의 등 구석구석을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온몸의 솜털이 바짝바짝 곤두서는 기분.
괜히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며 코가 시큰해졌다.
"아, 가만있어요!"
찰싹!
레테가 다시 시몬의 등을 때렸다. 시몬이 분하다는 듯 입을 다물고 등을 똑바로 펴자 레테의 입가에 피식피식 미소가 걸렸다.
"......너 일부러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말 시키지 마십쇼. 집중해야 함다."
그렇게 20분 뒤, 시몬의 등짝에 신성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이건 그냥 테스트용. 영구히 남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계속 유지하고 싶으면 당신이 보수하거나 해야 할 검다."
레테가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꼈다.
"그럼 이제 신성을 불어넣어 마법진을 작동시키십쇼. 당신과 아칼리온 둘 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등 뒤의 마법진과 아칼리온의 마법진의 전원을 동시에 켰다.
"!"
그러자 전신의 감각이 찌릿찌릿하며 확장되었다.
온전하게 아칼리온과 연결된 느낌.
마치 사념에 접속해 언데드와 연결하는 것과 비슷했는데, 신수학은 조금 더 직관적으로 연결된 느낌이었다.
"30분."
레테가 시간을 체크했다.
"아칼리온이랑 가볍게 뛰어놀고 와요."
"뛰어놀라고?"
"네. 감응도를 높이기 위한 준비운동 같은 검다."
시몬은 시키는 대로 아칼리온과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오랜만에 산책이라 그런지 아칼리온의 즐거워하는 감정이 시몬에게도 전해져 왔다.
그렇게 주위를 산책하고 돌아오니 레테는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혹시 아칼리온이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거 있슴까?"
"평소엔 내 신성을 주로 먹고, 그 외엔 그냥 나무열매나 과일, 버섯, 옥수수 같은 거?"
레테는 당도 높은 과일을 꺼내 시몬에게 신성을 입히게 한 다음 아칼리온의 눈앞에 흔들었다. 달콤한 과일향에 아칼리온의 눈에 식탐이 깃들며 입가에 침을 줄줄 흘렸다.
"웃차."
레테가 백마법으로 과일을 공중에 띄웠다.
"아칼리온! 먹어봐!"
그러고는 과일을 던졌다. 아칼리온이 '우어엉!' 소리를 내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더, 더 빨리!"
레테의 교련기술은 대단했다. 잡힐 듯 말 듯 교묘하게 과일을 컨트롤하며 입에 붙였다 말았다 약 올리듯 가지고 놀았다.
입가에 몇 번 닿으며 맛을 보자, 아칼리온은 더더욱 흥분하며 달려들었다.
"더. 빨리 달려! 더! 더! 더! 더!"
그리고.
이다음에 벌어진 놀라운 광경에 시몬은 입을 딱 벌렸다.
'말도 안 돼!'
과일이 점점 하늘로 날아올랐고, 오로지 과일만 보고 내달리던 아칼리온도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저 무겁고 육중한 몸으로, 허공을 딛고 달리고 있다.
네 발의 마법진은 아칼리온의 달릴 때마다 하얀 스파크 같은 것을 일으켰다.
'대단해!'
시몬이 상기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내 아칼리온이 과일을 덥석! 낚아채고는 맛있게 먹었다. 레테가 두 팔을 펼치며 말했다.
"잘했어 아칼리온! 네가 뭘 했는지 봐봐~"
-우엉?
아칼리온이 고개를 내려 아래를 보았다.
그리고.
공중에 십수 미터 넘게 떠 있는 본인의 모습을 자각했다.
-우어어엉!
깜짝 놀란 아칼리온이 공중에서 마구 허우적거리다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이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해제!'
연동된 신성 마법진을 해제시키고, 아칼리온의 몸에 깃든 신성도 날려 버렸다. 다시 작은 곰돌이 인형처럼 돌아온 아칼리온이 떨어졌고, 시몬이 슬라이딩하듯 풀밭을 미끄러지며 사뿐히 받아냈다.
"휴우."
시몬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 지었다.
"괜찮아?"
-우어엉!
많이 놀랐는지 아칼리온이 시몬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시몬도 아칼리온을 안아 들고 가볍게 손바닥으로 털을 쓸어주었다.
"나도 첫 시도 만에 성공할 줄은 몰랐슴다."
레테가 머리카락을 쓸며 다가왔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요."
반짝 반짝 반짝!
레테를 보는 시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레테가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데 날 그런 눈으로 봐요?"
"진짜 진짜 고마워! 그리고 다시 봤어. 역시 에프넬 선발 1번은 다르구나!"
그녀가 몸을 홱 돌렸다.
"키젠의 네크로맨서에게 그런 말을 들어봐야 기분 좋진 않슴다."
"하하하!"
"뭐, 뭐가 웃겨요!"
그러면서 입꼬리는 왜 올라가 있을까.
아무튼 아칼리온 훈련은 여기서 종료, 아칼리온을 신성 아공간에 집어넣은 시몬은 인상을 찡그리며 이마를 짚었다.
'살짝 현기증이 도네.'
신성은 정신력을 크게 소모한다. 잠깐 날았을 뿐인데 생각보다 신성 소모가 컸던 모양이다.
레테도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아칼리온을 당장 비행수단 사용하는 건 힘들검다. 전투에서 응용하는 방식으로 써야겠죠."
"훈련으로 효율이 좋아지면 자유자재로 날 수 있을까?"
"글쎄요. 그런 것보다는 아칼리온의 비행을 보조해 줄 신수 전용 아티팩트가 필요할 검다."
다음은 새끼 고양이 신수들인 하양이와 까망이를 꺼냈다. 나오자마자 야옹! 야옹! 정신없이 울어대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음음."
천하의 레테도 새끼 고양이의 애교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흔들며 관심을 유도했다. 길고 희고 움직이는 게 보이자, 즉각 까망이가 달려와 별로 아프지도 않은 이빨로 냠냠 물어뜯었다.
"이 아이들도 신수로 각성하면, 아마 미미처럼 사물화 신수가 될 가능성이 높슴다."
"미미라면, 그 거북이 신수지?"
"네. 당신이나 나나 복이 터진 거죠. 사물화 신수는 진짜 귀하니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수 각성을 위해 아이들한테 뭘 해주고 있슴까?"
"......딱히 없긴 해. 저번처럼 신성을 먹여서 변신시키고 딱 그 정도? 조금 더 성장을 기다리는 중이야."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새끼 고양이들이 야옹야옹 울면서 워낙 신성을 달라고 보채자, 하는 수 없이 두 고양이들에게 신성을 하나씩 먹여 주었다.
두 고양이의 몸이 두둥실 떠올라 빛무리와 함께 바뀌는 듯하더니,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떨어졌다.
"이상하네요."
"뭐가?"
"당신은 꽤 잘하고 있는 것 같슴다. 고양이들의 발육과 건강상태도 나쁘지 않고, 변신할 때의 모습을 보면 이상적이에요. 대체 왜 변신이 안 되는지 이상할 지경이네요."
레테도 고양이들의 훈련법을 교정해주고, 먹이 등의 변화를 줘보라고 조언했지만 신수 각성에 뚜렷한 원인을 알아내진 못했다.
물론 시몬은 이 정도면 상당히 만족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죠."
레테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곧 아이들이 올 검다. 오늘 수업 준비도 해놔야죠."
"응. 가자."
* * *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른 아침에는 레테와의 신수 훈련, 그 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 아이들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그나마 밥 먹고 쉬다가, 모두가 잠든 새벽에는 결계 밖으로 넘어가 설산 수색을 개시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혹한은 계속되었기에, 설산에서 계속 길을 잃고 헤맸지만 시몬과 레테는 조금씩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아이들과도 점점 친해졌다.
"숀 선생님! 숀 선생님!"
시몬이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는데,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시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돌아보았다.
"네, 뭘 도와줄까요?"
한 아이가 때 묻지 않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저! 숀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푸훕! 콜록! 콜록!
저 멀리 주방에서 간식거리를 만들던 레테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우리 마을에서 계속 같이 살면 안 돼요?"
"결혼은 안다랑 해도, 저는 숀 선생님의 아기가 갖고 싶어요!"
시몬은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었다. 시몬이 세 여자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웃었다.
"너무 이른 이야기인 것 같네요. 여러분의 마음이 15년 뒤에도 변함없다면, 그때 다시 말해줄래요?"
"너무 멀어요!"
"안다는 이제 다섯 살인데!"
"15년은 몇 밤 자야 해요?"
시몬이 아이들을 대충 설득해서 장난감을 정리하게 시켰다.
시몬이 그림책을 가지러 걸어가고 있는데, 간식거리를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던 레테가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흘리는 게 보였다.
"이야아. 15년의 약혼 축하드림다~ 숀 선생님."
"......놀리지 마."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쿨라.
"......영주님! 식량이 더 이상은!"
"방한용품도 바닥났습니다!"
"몬스터들이 도시 외곽을 점령했습니다! 주거지를 잃은 주민들이 영주님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상자들을 치료할 약품도 부족합니다!"
혹한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와 함께 도시의 상황은 최악이 되었다. 쿨라의 영주는 짙은 시름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삶아 먹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오래 버텨야 이틀입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영주님! 이대로 앉아서 다 죽을 수는 없습니다."
"......."
며칠 사이 극도의 스트레스와 굶주림으로 야위어진 영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창문 너머의 설산으로 향해 있었다.
"그래."
척.
그가 벽에 기대어진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이대로 앉아서 다 죽을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