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22화
에스카일 마을 생활 4일 차.
에스카일에서도 나름 주말의 개념은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선생님 역할에서 벗어나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물론, 시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웃차차!"
우지끈!
소매를 잔뜩 걷어붙인 시몬이 기합을 내지르자, 바닥에 깊게 박혀 있던 썩은 나무뿌리가 지반에서 뽑혀 나왔다.
지켜보던 어른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숀 선생님 힘이 엄청나구만!"
"역시 프리스트는 달라!"
시몬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뽑은 바위나 썩은 나무들이 주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주, 죽겠다.'
팔뚝이 비명을 지르고 허리가 지끈거렸다.
수건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고 있는데, 그동안 친해졌던 농부 아저씨가 찬물이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마셔 마셔."
"감사합니다!"
"자네 정말 대단해! 보름은 걸릴 일을 하루 만에, 그것도 혼자 싹 해치우다니!"
"고향에서도 많이 해봤거든요."
시몬은 그릇을 붙잡자마자 입으로 직행했다.
벌컥벌컥 목울대가 움직였다. 턱밑으로 물이 줄줄 샜지만 지금 사소한 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요즘 보기 드문 건실한 청년이야."
"뒤처리는 우리에게 맡기게!"
다른 어른들은 잔해를 치우러 이동했다.
"정말로 고마우이."
농부가 그루터기에 대충 걸터앉으며 말했다.
"애들 선생 노릇으로도 힘들 텐데, 굳이 이런 궂은일까지 도와주겠다고 나서줘서."
"저도 당분간은 마을의 일원이니까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허허! 자네 어른들한테 예쁨받는 법을 아는구만?"
물론 굳이 힘든 일을 하러 온 이유는 있었다. 바로 '정보수집'이다.
시몬은 찬물을 마시면서 질문을 던질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보다, 참 적응이 안 되네.'
땀이 뻘뻘 나는 이곳과는 달리, 투명한 결계 너머로는 여전히 눈보라가 펑펑 쏟아지고 있다.
상당히 잘 만든 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음?"
"마을에서 지내다 보니까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는데요."
"오! 그래, 뭔가? 내 뭐든 설명해 주겠네!"
바로 이런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나흘 동안 생고생을 한 거였다.
시몬은 팔을 들어 결계 밖을 가리켰다.
"결계 밖의 저 혹한이요."
"음!"
"점점 거세져서 이제는 아랫마을인 '쿨라'까지 뒤덮었던데, 혹시 왜 이렇게 된 건지 아시나요?"
"......."
만연한 미소를 짓고 있던 농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자네가 그건 왜 궁금한가?"
아차.
아직 완전한 신뢰를 쌓지 못했는데 너무 민감한 질문이었나? 뒤통수가 식은땀으로 흥건해졌지만 재빨리 둘러댔다.
"다, 다른 게 아니라! 혹한이 그치면 이렇게 결계의 범위를 찔끔찔끔 넓혀서 굳은 땅을 개간할 필요가 없잖아요. 왜 이렇게 추위가 오래가나 싶어서요."
"......."
농부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설녀님이 노하셨기 때문이지."
또 나왔다.
그, '설녀'라는 존재.
"그 설녀...... 님이라는 게 정말로 있나요? 괜한 질문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아, 이해해. 외부인은 믿기 힘든 이야기겠지. 나도 실은 외부인 출신이었어."
그는 청년 시절, 도시에 들렀던 미제나시 여자에게 홀딱 반해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말했다.
"그때 우리 집사람이 글쎄......!"
왜 듣는지 모를 타인의 가정사였지만, 시몬은 휙휙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그렇게 된 걸세! 아무튼 자네 물음에 답을 해주자면, 그래. 설녀님은 확실히 존재해! 이 마을에서 지내다 보면 안 믿을 수가 없게 되더라고."
"무슨......."
농부의 말에 따르면, 마을에서는 1년에 한 번 설녀를 섬기는 커다란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그때 마을회관에 잔칫상을 마련해 놓고, 모든 문을 닫은 채 뒷문만 열어놓고 기다리면.
"잠시 후! 문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으적으적 음식을 먹어치우는 소리가 들리는 게야!"
실감 나는 농부의 경험담에 시몬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음식을 다 먹어치웠는지 발소리가 멀어지더라고! 나는 도저히 믿기 힘들어서 몰래 슬쩍 창문을 열어봤는데 글쎄!"
농부가 음산한 미소를 흘리며 손가락을 흐느적거렸다.
"흰 소복, 산발인 회색 머리에, 눈과 입술이 피처럼 시뻘건 여자가 맨발로 달려 나가고 있었지! 그러다 정확히 내 쪽을 한번 딱 돌아보는데! 온몸에 소름이 쫘아악 끼치면서......! 그래. 그건 절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어!"
시몬이 봤던 그 정체불명의 여자와 인상착의가 정확히 일치했다.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흐흐! 무서우면 여기까지 할까?"
"아, 아닙니다!"
명색이 직업이 네크로맨서인데 귀신 이야기를 무서워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이 한둘이 아니야! 어떨 때는 말이야. 혹한이 몇 달간 심하게 몰아칠 때가 있었는데, 미제나시에서 설녀님께 제물을 바치는 날에만 딱 하늘이 맑게 개는 게야! 신기하지 않나?"
시몬이 고개를 쭉 뺐다.
"그 설녀님께 바치는 '제물'이 뭔가요?"
그 물음에 농부가 화들짝 놀라더니 기겁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휘휘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 하하! 내가 방금 제물이라고 했나?"
"네. 정확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말이 헛나왔나 보네! 하하! 자. 다시 이, 일할까? 웃차차!"
덜덜 떨면서 주위를 미친 듯이 두리번거리는 남자의 등을, 시몬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 *
"레아 선생님! 선생님!"
"빨리요!"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황금 같은 주말이건만, 아이들은 오늘도 레테의 집에 놀러 왔다.
'좀 쉬나 했다니 휴일에도 오냐.'
레테는 속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세 명의 아이들은 침대에서 레테를 둘러싸고 동화책을 읽어달라며 조르고 있었다.
'애들아! 선생님도 사람이야!'
라고 마구마구 외치고 싶었지만, 레테는 프로다운 마음가짐으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동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네에~"
"신난다!"
레테가 손때 묻은 동화책을 펼쳤다. 얼마나 보고 또 본 건지, 동화책은 잔뜩 해져 있었고, 위태로운 책장은 뜯어지기 직전이었다.
아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책인 것 같으니, 레테는 신중하게 책장을 넘겼다.
"옛날 옛적에, 아름다운 소녀가 살았습니다."
그녀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더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표정으로 누워서 이야기에 집중했다.
"소녀는 눈 덮인 산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산은 너무 추워서,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따뜻한 남쪽 땅으로 내려왔답니다. 그곳에서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어요."
레테가 1/3쯤 뜯겨 나가 있는 페이지를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는 난파당한 배의 선원들이 해변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소녀는 선원들을 마을로 데려와 정성껏 치료했습니다."
"아! 다행히 그들이 깨어났습니다. 그들은 모험가였습니다! 건장하고 솜씨 좋은 모험가들은 소녀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잘 짓는 법, 불을 쉽게 피우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모험가들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지냈답니다."
레테는 페이지를 넘기며 미소 지었다.
평범한 스토리지만 훈훈한 재미가 있었다. 아이들도 즐거운 듯 이불 안에서 꼬불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이별이 찾아왔습니다. 모험가들은 배를 다 고쳐서 이제 왕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모험가들은 우는 소녀를 달래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맹세했습니다. 언젠가 꼭 이곳에 돌아오겠다고."
훌쩍!
스읍!
곳곳에서 아이들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동심이 좋구나 생각하며 레테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모험가들이 떠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소녀는 오늘도 해변에 앉아서 모험가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정말로 모험가들이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넓은 바다가 온통 사람들의 배로 가득했습니다!"
"모험가들은 소녀와 마을 사람들에게 간청했습니다. 저희 왕국은 도적 떼에 유린당하고 있어요. 부디 여기서 살게 해주세요. 마을 사람들은 흔쾌히 왕국 사람들을 받아들였답니다."
사락.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레테는 조금 당황했다.
동화책의 그림이,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무섭게 변해 있었다. 밑에 보이는 글씨도 힘이 바짝 들어간 듯한 필체로 바뀌어 있었다.
"모험가와 왕국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저번에 집을 지어줬던 것처럼 이번에는 더 큰 도시를 지어줄게요."
"그들은 동물 친구들이 사는 숲을 불태우고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반짝이던 모래사장을 엎어서 항구를 만들었고, 마을 사람들이 아끼던 수호신 고목을 잘라서 가구로 만들었습니다."
"안 돼!"
"그만둬!"
아이들의 항의가 들려왔다.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만해 달라고 했지만, 모험가와 왕국 사람들은 우리를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믿고 기다리면 더 좋은 마을이 만들어질 거라고만 말했습니다."
"바다에서는 계속 왕국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자, 왕국 사람들은 이제 땅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내 땅, 저기는 네 땅.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당황해서 말했습니다. 자연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험가와 왕국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팔락.
레테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소녀와 마을 사람들이 지낼 땅은 아무 곳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분한 듯 작은 주먹으로 침대를 콩콩 치는 아이도 있었다.
"마을에서 쫓겨난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다시 추운 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모두가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모험가와 왕국 사람들을 쫓아내고, 다시 그 따뜻한 땅으로 내려가겠다고."
"하지만 모험가와 왕국 사람들의 배신으로, 소녀는 충격을 받아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소녀는 산을 다 오르지 못하고 그만 얼어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와 복수를 다짐하며 눈에 소녀를 묻어주었습니다."
레테의 덜덜 떨리는 손이 마침내 마지막 장을 넘겼다.
'!'
그리고 마지막의 그림을 보는 순간,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빛바랜 회색 머리카락, 피와 같은 눈동자, 그리고 증오와 분노 어린 표정.
정말로 이게 그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리얼했다.
이 그림 아래, 마지막 장의 이야기는 단 한 줄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 * *
저녁이 되고, 시몬과 레테는 숙소에서 재회했다.
아이들은 모두 부모들이 불러 돌아간 뒤였다.
"뭐 좀 알아냈슴까?"
레테가 손가락을 튕겨 방음 마법진을 활성화시키며 물었다.
"응. 많은 걸 알아냈어."
"이쪽도 마찬가짐다. 일단 정보 공유부터 하죠."
시몬은 농부의 설녀 이야기와 제물 이야기. 그 외에도 중간중간 알아낸 정보들을 이야기했다.
레테도 아이들과 같이 읽은 동화의 내용, 그리고 페트리아와 수다를 떨다가 그녀를 떠서 알아낸 이야기들을 알려주었다.
"뭐어, 대충 정리가 되네요."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레테가 말했다.
"감을 잡은 거야?"
"네."
레테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이 흉악한 마을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