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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25화 (42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25화

던전주의 방 내부를 들여다본 시몬과 레테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뭐야 이게?"

던전주의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휑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시몬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방심하지 마십쇼. 숨어 있을지도 모름다."

레테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러나 시몬의 칠흑계 탐지, 레테의 신성계 탐지를 다 돌려봐도 던전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던전주의 방에서 나와 주위를 조사해 보았지만 마찬가지.

던전에, 던전주가 없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음, 이러면 큰일 난 거 아닌가?"

시몬이 굳은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던전주를 파괴해야 던전이 사라지잖아."

"나도 듣도 보도 못한 사태라 뇌가 정지했슴다. 잠깐 생각 좀."

던전주는 던전에 머무른다.

그것이 기본 개념.

던전주가 던전의 몬스터들을 밖으로 보내는 일은 있지만, 던전주 본인이 던전을 비우는 경우는 없었다.

애초에 던전주가 던전 밖으로 나갔는데, 던전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했다.

"부탁해, 얘들아."

레테가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시몬은 아공간에서 송장거미들을 꺼냈다.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가져와 줘."

-키릭!

송장거미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뼈무덤 안으로 파고들거나, 천장이나 벽면 등을 훑어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고 정찰 명령을 내린 지 1분 만에 송장거미 한 마리가 시몬에게 다가왔다.

"뭔가 찾았어?"

화색이 된 시몬이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거미 앞다리에 벌레가 붙어 있었다.

-키릭! 키릭!

송장거미는 본인이 대단한 물건을 찾았다고 생각한 듯 폴짝폴짝 뛰었다.

시몬은 그저 고개를 내저었다.

-키리.......

시무룩하게 몸을 낮추던 송장거미가 덥석 벌레를 입에 넣고는 등을 돌렸다.

뒤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테가 말했다.

"뭠까? 저 거미 귀엽네."

"저래 보여도 언데드야."

"사악한 새끼들."

"......?"

잠시 후, 또 다른 송장거미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여자의 머리카락. 그리고 오래된 의복.

시몬은 그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저기요."

던전주의 방을 한 번 더 뒤지고 돌아온 레테가 시몬을 불렀다.

"여기 있어봐야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던전 밖으로 나가보죠.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름다."

"그러자. 아까 우리가 잡은 그 몬스터가 던전주일 수도 있으니까."

두 사람은 아까 왔던 던전 게이트를 타고, 다시 던전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했지만, 아까 그 동굴 그대로의 모습일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쿠웅―!

그런데 던전 밖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렸다. 시몬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밖에 누군가 있어!"

"가보죠!"

두 사람은 빠르게 달려서 동굴을 빠져나왔다.

휘이이이이잉!

그리고 동굴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회색 머리카락의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미제나시!'

에스카일 마을의 지배층인 미제나시 사람들이었다. 그 중간에는 마을의 촌장격인 '네니아 미제나시'도 있었다.

"기어이 이곳을 찾아낸 겁니까."

네니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못 본 척 설산을 내려갔다면 목숨을 건사할 수 있었을 터."

다른 미제나시 사람들도 한마디씩 했다.

"감히 성역에 발을 들이다니!"

"이제는 살아서 돌아가진 못할 거요!"

처억!

척!

그들이 손바닥을 펼쳐 시몬과 레테를 조준했다. 그들의 손바닥에 일렁이고 있는 건, 순수 원소계의 빙결 마법이었다.

'방심 못 하겠는데.'

이 마법사들은 평생을 빙결 마법만 갈고닦은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메이린의 칠흑 빙결계가 떠오를 정도였다.

"성-역 같은 소리 하네."

레테가 신성을 일으키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눈부신 백색 섬광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던전주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좋은 말로 할 때 부십쇼."

네니아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레테가 생긋 웃었다.

"에이, 그럼 어쩔 수 없죠. 줘패서 불게 해야......."

꽈아아앙―!

다시 이어지는 폭음.

시몬의 눈이 폭음이 들린 곳으로 향했다. 폭발은 미제나시 사람들이 일으킨 게 아니었다.

'저 방향은.......'

에스카일 마을.

마을이 공격받고 있다.

폭약 같은 것을 쓴 걸 보니 몬스터는 아니다. 공격자를 같은 '인간'으로 한정하는 순간, 시몬의 뇌리에 뭔가가 스쳤다.

-우리도, 그냥 이렇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겁니다.

증오 어린 눈으로 설산의 미제나시 마을을 바라보던, 쿨라 영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래 도시의 쿨라 사람들!'

* * *

와아아아아!

"마을을 불태워라! 마법사들을 붙잡아라!"

"혹한의 원인이 눈앞에 있다!"

거센 혹한과 극도의 식량난, 그리고 몬스터의 공격까지.

완전히 궁지에 몰린 쿨라의 선택은 하나였다.

쿨라의 자경대와 마을 남자들이 가파른 산언덕을 올라 에스카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스륵! 슥!

방책 뒤에 숨은 에스카일 사람들이 활을 꺼내 들었다.

"더러운 쿨라 놈들이 야욕을 드러냈다!"

"따뜻한 땅을 우리에게서 빼앗더니, 이제는 이 마을까지!"

"목숨을 걸고 에스카일을 지켜라!"

화살이 연달아 날아갔다. 쿨라 사람들이 픽픽 맞아 눈밭에 쓰러지고 나뒹군다.

하지만 머릿수는 쿨라 쪽이 훨씬 많았다.

"돌격!"

쿨라의 영주가 검으로 화살들을 쳐내며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이 지긋지긋한 혹한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

* * *

시몬은 마을 쪽을 보고 있었다. 혹한의 기세가 떨어지며 이제는 에스카일 마을이 잘 보였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울타리가 불타고 폭음이 연달아 들린다.

시몬은 자신의 예상이 확실하다고 느꼈다. 혹한으로 한계에 봉착한 쿨라 사람들이 에스카일 마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 안 가봐도 되겠슴까."

레테가 미제나시 사람들을 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마을의 가장 큰 전력일 텐데."

본인의 마을이 공격당하고 있었지만, 미제나시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네니아 미제나시는 그저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내리쳤다.

커다란 빙결 마법진이 펼쳐지고 있다.

"목격자인 그대들을 지금 여기서 없애는 게 더 중요하지요. 그것이 미제나시의 사명."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레테, 네가 마을로 가서 전쟁을 멈춰줘."

"......그럼 당신은요?"

"이번에야말로 나 혼자 상대할게. 충분해."

레테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시몬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꾹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슴다."

"응."

탓!

레테가 설산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네니아 미제나시가 괴성을 내질렀다.

"저 계집을 잡아!!"

미제나시 마법사들이 일제히 빙결 마법을 발사한 순간.

촤아아아아아아아!

보랏빛 번개가 레테의 사방에서 내리치며 빙결 마법들을 흔적도 없이 없애 버렸다.

"......!!"

"뭐야 방금!"

정신없이 허공을 자색으로 물들이던 번개들이, 하늘로 날아오른 시몬의 손안에 착착 들어왔다.

<시몬 오리지널 - 카오스 스피어(Chaos Spear)>

시몬이 재차 혼돈의 창을 던져 레테를 뒤쫓던 미제나시 사람들의 발 앞에 박아넣었다. 그들이 기겁하며 걸음을 멈췄다.

'저 자식!'

슬쩍 뒤돌아본 레테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도 저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어?'

"골렘을 꺼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네니아의 지시에, 한 마법사가 바닥에서 아이스 골렘을 일으켰다.

"여긴 못 지나......!"

쩌엉!

쩡!

그와 동시에 쏜살같이 날아온 자색의 창 두 개가 골렘의 몸통에 박히더니 폭발했다.

"못 지나가요."

척.

바닥에 꽂힌 혼돈의 창대 위에, 시몬이 두 발바닥을 붙인 채 내려왔다.

그사이 레테는 폭발을 넘어 헐레벌떡 마을로 내려갔다.

"던전주와의 전투를 대비해 준비했는데, 당신들한테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시몬의 손이 허리의 마법진으로 향했다.

마치 검을 뽑는 기사처럼, 자색의 파직거리는 창대 세 자루가 시몬의 손가락 사이에 꽂힌 채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숀 선생!!"

네니아 미제나시가 발악하듯 외쳤다.

"누가 당신을 보냈지!"

"그 질문엔 대답하기 어렵겠네요."

시몬이 세 개의 창대를 공중으로 휙 던졌다. 하늘에서 예측 불가능한 궤도로 자색의 번개가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하지만 당신들이 떳떳하다면, 누가 날 보냈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파공음과 함께, 혼돈의 섬광이 미제나시의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 * *

"쏴! 계속 쏴라!"

"들어가!"

전장은 과열되었다.

에스카일이나 쿨라나, 오랫동안 서로를 향해 축적된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남은 건 증오뿐이었다. 그 누구도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양상은 난전.

전세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었다.

머릿수나 훈련 강도 쪽은 쿨라 쪽이 절대적으로 우위였지만, 이들도 굶주린 배로 혹한을 뚫고 설산을 올라온 상태여서 체력과 컨디션이 극도로 떨어져 있었다.

에스카일 쪽 또한 머릿속에 압도적인 열세고, 주력인 미제나시가 모두 떠나 있었기에 우위라고 볼 수 없었다.

화살이 날아가고 검과 검이 부딪히는 금속음이 울려 퍼진다. 쿨라 사람들은 럼주병에 불을 붙여 울타리에 불을 질렀고, 결계를 찢었다.

결계가 찢어지자 냉기와 눈보라가 마을에도 들어오고 있었다.

참극.

이대로는 어느 쪽이 승리하든 모두가 혹한에 얼어 죽어 전멸이겠지만, 그 누구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전부 그만!!"

멈추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피 튀기는 전장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걷고 있는 하얀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레, 레아 선생!"

"영주님! 저기 영지를 구해준 그 프리스트님입니다!"

레테는 전장 한복판을 태연하게 걸어 다녔다. 눈먼 화살이 가끔 그녀의 주위를 지나갔지만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

"프리스트님!"

쿨라의 영주가 기겁하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물러나십시오! 위험합니다! 여기는 우리가......!"

덥석!

레테가 난데없이 영주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러곤.

짜아아악!

힘껏 싸대기를 날렸다. 뺨이 시뻘게진 영주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여, 영주님!"

기겁한 자경단원들이 레테 쪽으로 검을 겨누었다.

레테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하던 자경단원들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아, 진짜!"

그녀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영주에게 팔을 휘둘렀다.

차악!

그런데 공격이 아니었다. 쓰러져 있는 영주를 노리던 화살을 무려 맨손으로 붙잡은 거였다.

으직!

손에 힘을 주자 화살이 반 조각났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새끼들아!!"

그러곤 목에 차고 있던, 성녀의 힘을 봉인하는 초크를 붙잡아 박살 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자 순간 혹한의 기세가 약해지고 밤하늘이 환하게 변하며 먹구름이 걷히고 광명이 레테에게 내려왔다.

[내 이름은 레테 샤르데나!]

그녀의 두 눈동자에 확연한 별모양 이미지가 떠올랐다.

[별의 성녀다.]

우우우우우웅!

그녀가 팔을 들어 올리자, 밤하늘의 별들이 일렁이며 반응했다. 공중에 고정된 무수한 백색 유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서, 성녀?"

"레아 선생이 성녀라고?"

양측 진영 모두 한바탕 난리가 난리 났다.

[선택해.]

그녀가 핏발선 눈동자로 소리쳤다.

[싸움을 멈출지, 아니면 그냥 내 손에 두 쪽 다 뒈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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