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28화
용과 군단장, 그리고 성녀의 전투가 시작됐다.
시몬이 미라를 소환하자 카리사 또한 자신의 군세를 꺼냈다. 냉기 브레스로 사막 한 지점을 얼음으로 뒤덮더니, 그곳에서 얼음 몬스터를 일으킨 것이다.
이내 지상에서는 미라와 얼음 몬스터의 백병전. 하늘에서는 빙룡 카리사와 백룡 란이 브레스를 주고받았다.
청색과 백색의 브레스가 공중에서 몇 번이고 격돌했다. 그 잔해가 후두둑 떨어지며 아래에서 싸우고 있는 군세의 전세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끈질겨!"
란 위에 타고 있던 레테의 동공에서 별 모양이 두드러졌다.
그녀가 검지와 중지를 붙인 채 손바닥을 내리자, 하늘에서 연달아 유성우가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사막 곳곳에 무수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진다. 가공할 만한 위력에 지축마저 뒤흔들린다.
카리사는 미꾸라지처럼 몸을 베베 꼬며 공중에서의 유성 공세를 피해내고 있었다.
[야! 꼬마야아아!]
하늘에서 헤르세바가 비명을 질러댔다.
[미친! 쟤 좀 말려봐! 던전이 남아나질 않겠어!]
사념이 아니라 목소리로 직접 말했기에, 레테는 바로 알아듣고 폭격을 잠시 거두었다.
던전에 들어와서도 이 정도의 위력.
시몬이 '모래의 세계'를 쓴 의도는 카리사의 도주를 막고 레테의 자유로운 권능 구사를 위해서였으나, 레테의 화력은 던전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위력을 통제하지도 못하는 힘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비웃음을 흘린 카리사의 입에서 다시 한번 냉기 브레스가 쏟아진다.
란 또한 신성 브레스를 발사해 막아내고 있었지만, 슬슬 힘에 부치는 게 보였다. 란도 아직 성체가 아니라 성장기 신수였다.
"내 손에 걸리면 한 방에 뒈지는 새끼가."
레테가 팔을 들어 올렸다.
"땍땍대 봐야 같잖을 뿐이거든!"
화아아아아악!
쏜살같이 내려온 유성 하나가 밤하늘을 반으로 찢으며 쇄도했다. 카리사는 가뿐히 고개를 틀어 피했다.
"소용없......!"
<라 코르드(La Corde)>
그때 카리사의 몸이 추락하는 유성 쪽으로 끌어당겨졌다.
레테가 유성의 신성으로 중력계 백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무슨!!]
콰콰콰콰콰콰!
혜성이 바닥에 떨어져 커다란 크레이터를 남겼다.
끌려 들어간 카리사는 가까스로 바닥에 추락하는 건 면했으나.
촤르르륵!
촤르르르륵!
기다렸다는 듯이 사막의 바닥에서 수백의 붕대들이 솟구쳐 카리사의 몸을 휘감았다.
"나이스! 레테!"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들고 달려왔다. 공중의 전투는 참전하기 어렵지만 지상은 이쪽의 영역이었다.
시몬은 훌쩍 뛰어올라 몸부림치는 카리사의 꼬리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대검을 카리사의 비늘 틈에 박았다.
이대로.
"전진!"
시몬이 회복 불가능한 파멸의 대검을 카리사의 몸에 박은 채로 내달렸다. 카리사가 미친 듯이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콰콰콰콰콰콰!
카리사가 보낸 얼음 송곳들이 쏟아진다. 시몬은 대검을 박은 채 달리고 있고, 피할 공간도 부족하다.
"부탁해요 피어!"
[크흐흐! 간다 소년!]
시몬의 오른팔과 어깨 갑옷만 남기고, 그 외에 모든 뼈가 시몬에게서 벗어나 피어의 몸으로 변했다.
"받아요!"
피어는 왼팔만 남아 있는 상태로, 시몬이 아공간에서 던져준 장검을 받았다.
[이거 옛날 생각나는군!]
그러고는 시몬과 똑같은 걸음으로 달리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왼손으로 든 검으로 시몬에게 날아오는 얼음을 모조리 베어내고.
"흐아아아아아!"
오른손으로 파멸의 대검을 붙잡고 달린다.
똑같은 걸음, 똑같은 속도로.
가히 완벽에 가까운 호흡이었다.
[어째서!]
고통에 부르짖는 와중에 카리사가 피어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 여자'도 그렇고! 네놈까지! 너희 불멸자들이 대체 왜 하찮은 필멸자 따윌 돕는 것이냐!]
[크하하하하! 어리석은 용이여!]
피어가 쩌렁쩌렁한 외침을 쏟아내며 카리사의 얼음을 모조리 분쇄했다.
[필멸이기에 그들의 생은 숭고하며, 치열하다!]
피어가 다시 본 아머로 분해되어 시몬의 몸에 장착되었다.
이제 시몬이 양손으로 파멸의 대검을 붙잡았다.
[영겁을 사는 네놈은 단 한 순간이라도-]
시몬이 걸음을 멈추며 대검을 앞으로 이끌었다.
[치열했던 적이 있느냐!]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새하얀 참격이 몸통의 중간부터 날아가 카리사의 안면에 부딪혔다. 빙룡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헤르세바! 가둬 버려!"
시몬의 외침에 곳곳에서 길쭉한 황금 건축물이 올라와 쓰러진 카리사를 고정하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튀어나온 미라들도 그의 몸에 붕대를 휘감았다.
"드디어 잡았네요."
레테가 미소를 지으며 란을 타고 다가왔다.
[흐. 하하하하......!]
점점 황금 건축물들이 몸을 옥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리사는 웃고 있었다.
[어리석기는! 하늘을 봐라!]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시몬과 레테의 고개가 올라갔다.
던전 밖의 설산에서처럼, 혹한이 몰아치고 있었다.
'헤르세바의 던전에서 왜 혹한이...... 응?'
쩌적!
쩍!
공간이 갈라지고 있었다. 시몬이 다급히 소리쳤다.
'헤르세바! 괜찮아?'
[까윽! 저 용 자식......!]
사념으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나랑 같은......!!]
그녀의 말은 여기서 끊기고 말았다.
와장창창!
이내 모래의 세계가 완전히 박살 나며 모든 황금도시와 미라부대들이 사라졌다. 시몬과 레테도 급류에 휩쓸리듯 모래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빙글빙글 어지럽던 주위 환경이 완전히 뒤바뀌었고.
정신을 차리니 밖. 에스카일 마을이었다.
"숀 선생님!"
"서, 성녀님도 다시 돌아오셨다!"
사람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 카리사가 헤르세바의 던전에 끌려가면서 혹한이 그치자 밖으로 나와본 것이다.
레테가 소리쳤다.
"뭐 해요! 다들 다시 안으로 들어가요!"
콰아아아아아!
자유의 몸이 된 카리사가 공중으로 치솟으며 포효했다. 평화롭던 맑은 하늘이 순식간에 혹한과 눈보라로 뒤덮였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냉기 브레스가 일렁이더니 마을 사람들 쪽으로 쏟아졌다.
"아오! 씨!"
레테가 바닥을 박차고 다시 한번 디바인 배리어로 막아냈다.
[인정하마! 필멸자들이여! 너희들은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존재!]
그사이 카리사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
[예상치 못한 전개지만 계획을 앞당기겠다! 지금 당장, 이 세계를 나의 힘으로 뒤덮을 것이다!]
카리사가 혹한을 뚫고 도주하기 시작했고, 배리어를 거둬들인 레테가 란 위에 올라탔다.
"시...... 아니, 숀! 당신은 여기서 사람들을 지키십쇼! 내가 뒤쫓을 테니까!"
그 말만 남기고 레테는 쌩! 하고 카리사를 뒤쫓았다. 시몬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두 용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레테가 권능을 사용하는지, 빛이 일렁이고 지반이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일단 헤르세바를 깨웠다.
'헤르세바! 괜찮아? 정신 차려봐!'
[으윽! 머리! 두통! 쓰읍!]
지팡이 상태로 돌아온 헤르세바가 눈을 떴다.
'왜 갑자기 던전을 해제한 거야?'
[저 자식. 나랑 같은 던전주 타입이야!]
헤르세바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던전을 만들어 상대를 부르는 권능이잖아? 놈은 그냥 남의 세계를 자신의 던전으로 만드는 권능이라고!]
'그럼 던전이 깨진 이유도.......'
[그래. 내 던전에 자기 던전을 덧입혀서 부순 거야. 나랑은 상극이지. 으으!]
'수고했어 헤르세바. 이 뒤는 내게 맡겨.'
시몬을 헤르세바를 쉬게 할 겸 아공간을 열었다.
[명심해 꼬마야.]
헤르세바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놈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 이 세계 전체가 혹한에 휩싸일지도 몰라. 놈이 어딘가로 숨기 전에 지금 잡아야 해!]
'......명심할게.'
헤르세바를 아공간에 넣은 시몬은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 * *
로카 지방.
"누, 눈이다!"
"갑자기?"
벨레스고 지방.
"눈이 와요! 아빠!"
"벨레스고에 눈? 드디어 세상이 미쳐 버렸군."
갈리 지방.
"이게 다 뭐여?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데?"
벌써 빙룡 카리사의 권능이 대륙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아직은 초창기지만 얼마나 저 힘이 뻗어 나갈지는 미지수였다.
탓!
시몬은 아칼리온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
유성우가 떨어지고 대지가 뒤흔들린다. 공중에서 두 마리의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 레테!'
레테가 생각보다 카리사를 잘 잡아두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신성도 무한은 아니었다. 게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유성을 피하는 카리사의 움직임을 보니, 쉽게 맞아주진 않을 것 같았다.
'나도 빨리 합류하고 싶은데!'
지금처럼 비행능력이 절실한 순간이 없었다. 그나마 에이션트 언데드인 '아케뮤스'는 날개가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는 상황.
-우엉!
"왜 그래? 아칼리온."
시몬이 정면을 보았다. 정면에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보였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길이 나 있었다.
여길 빙 둘러 가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아칼리온! 날 수 있지?"
시몬이 레테가 그려준 등 뒤의 신성 마법진을 켜며 말했다. 아칼리온의 네 다리에도 마법진이 켜졌다.
-우엉......!
아칼리온은 다소 자신 없다는 반응이었다. 시몬이 머리를 슥슥 쓸어주었다.
"저번에도 날았잖아! 할 수 있어!"
-우어엉.
"아냐, 할 수 있다니까! 네 힘을 믿어!"
시몬이 아공간을 뒤적거리다가 과일 하나를 꺼냈다.
"이거 기억나지?"
-우엉!
아칼리온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 감각을 되살리는 거야!"
시몬이 힘껏 낭떠러지의 위로 과일을 던졌다.
"떨어져도 내가 커버할게! 가자!"
-우어어어엉!
투다다다다다!
아칼리온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렸다.
터어엉!
그리고 바닥을 박차며 도약했다.
육중한 몸이 공중에 치솟았고, 네 다리에 파직파직 거리며 신성 스파크도 튀었다.
"됐어!"
시몬이 환호했다.
"이대로 다리를 움직여서 허공을 딛......!"
덥석!
그런데 아칼리온이 날아가던 사과를 너무 빨리 입에 물었다. 목표를 잃은 아칼리온의 네 발이 위태롭게 허우적댔다.
-우어엉!
결국 아칼리온이 낭떠러지를 다 건너지 못하고 추락했다.
-우엉! 우어엉!
덩치와는 달리 겁이 엄청 많았다.
시몬은 아칼리온의 신성을 회수해 작게 만들어 품에 안은 다음, 오른팔을 뻗었다.
<클라우드>
에메랄드 빛깔의 밧줄을 날려 보내 절벽 끝에 고정했다.
그런데.
-야오옹!
-냐앙!
아칼리온이 줄어들자 하양이와 까망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으악! 너희들 언제 밖에 나와 있던 거야?"
안 불렀는데 나오면 혼나니까 아칼리온의 털 속에 몰래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시몬이 기겁하며 클라우드를 해제했다. 그러곤 몸을 던져 아칼리온을 허리에 낀 채 떨어졌다.
'클라우드!'
시몬의 팔에서 다시 한번 에메랄드빛 섬광이 쏘아져 나가 두 새끼 고양이를 낚아챘다. 시몬이 두 다리를 절벽에 대고 칠흑을 일으켰다.
촤아아아아아악!
가파른 절벽에 발을 대고 마찰을 일으키며 브레이크를 밟던 시몬이 이번엔 아공간을 열었다.
'개문!'
오버로드의 촉수칼날이 튀어나와 날카롭지 않은 방향으로 시몬의 몸을 안전하게 휘감았다.
간신히 몸이 멈춰 섰다.
"휴우우."
이내 오버로드의 도움으로 신수들을 데리고 절벽을 올라왔다.
-야오옹!
-냥! 냥!
작은 모습으로 돌아온 아칼리온은 다소 풀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두 새끼 고양이들은 뭐가 잘못한 건지도 모르는지 폴짝폴짝 뛰며 신성을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너희들 진짜......!"
시몬이 고양이들을 혼내려던 그때였다.
"......."
-냐옹!
-냥! 냥!
새끼 고양이들은 신성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마치 시몬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듯, 손짓, 발짓으로 마구 설명하고 있었다.
"......."
시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마침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어차피 레테, 카리사와도 멀어졌고, 여기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따라잡을 가능성은 0이다.
"해보자, 사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