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36화
오늘은 판타서스가 레스힐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이었다.
산등성이에 올라온 판타서스는 정좌 자세로 앉아 있었고, 그 뒤에 선 시몬이 긴장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얼마든지 오게나! 후임!"
판타서스 수업의 마지막 과제.
그에게 직접 슬립을 걸고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일주일간 배운 모든 것들을 쏟아부을 때다.
시몬은 5중첩의 슬립 마법진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판타서스의 등 뒤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5중첩의 슬립을 발동하는 순간.
"!"
판타서스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여, 여기는......?'
푸른 하늘, 내리쬐는 태양, 꽃잎이 사르르르 휘날리는 들판.
믿을 수 없었다.
판타서스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꿈에 그리던 한 여성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판타서스, 우리 잠꾸러기. 언제까지 잠만 잘 거니?"
그 옆의 남자가 말했다.
"하하하! 꿈을 꾸는 건 좋지. 큰 꿈만 꾸거라! 그래야 큰 사람이 되니까!"
판타서스의 눈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 뭐 해?"
작은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빨리 와! 오늘 낚시하기로 했잖아."
"메리다......!"
꼬마가 된 판타서스는 네 가족과 둘러앉아 그림 같은 호수에서 도시락을 먹고,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행복했다.
"이 호수에는 신기한 물고기들이 잡힌단다! 한번 해보겠니? 판타서스."
"네!"
꼬마로 돌아온 판타서스는 행동도 꼬마처럼 변했다. 활짝 웃으며 방방 뛰어다니다가 이내 아버지의 낚싯대를 붙잡았다.
"아버지!"
"음?"
"죄송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아버지가 무안한 듯 웃었다.
"하하! 갑자기 무슨 소리냐? 낯간지럽게."
"어, 오빠 바보! 낚싯대가 흔들려!"
판타서스는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팽팽해진 낚싯대를 힘껏 잡아당겼다.
쏴아아아아!
세찬 물살과 함께, 커다란 물고기가 튀어나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와아아! 오빠가 큰 거 잡았다!"
"아주 장하다! 우리 아들!"
"오늘 저녁은 물고기 수프네."
세 사람의 활짝 웃는 미소를 보며, 판타서스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리고.
"......."
판타서스가 눈을 번쩍 떴다.
울창한 나뭇잎들,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보인다.
팔을 들어보았다. 소년의 작은 손은 어디 가고, 곰 같은 두툼한 손바닥이 보인다. 털이 수북한 다리도 보인다.
얼굴을 만져보았다. 투박한 피부에 눈가 근처가 살짝 젖어 있었다.
"판타서스 회장님."
그리고 옆을 보자, 푸른 머리의 소년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어, 어땠나요?"
판타서스가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시몬을 응시했다.
부르르.
부르르르르르.
악몽이 아니었다.
부모가 살해당하던 그때의 그 꿈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의 꿈을 꾸던 게 얼마 만이던가.
판타서스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퍼펙트!!!"
푸드드드드드득!
나뭇잎들이 쏴아아 떨어지고 놀란 산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소 지었다.
"단잠이었어요?"
"그래! 단잠이었네!"
판타서스가 히죽 웃었다.
"이제 내가 더 가르칠 건 없다 후임! 하산이다!"
시몬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건 내가 할 소리!"
판타서스가 감격한 눈으로 시몬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내게 다시 한번 '그 꿈'을 꾸게 해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네!"
* * *
판타서스는 레스힐에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시몬의 가족들, 그리고 정들었던 레스힐의 주민들까지 모여 작별인사를 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짧았지만, 판타서스가 있던 레스힐은 떠들썩했다.
"밤에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했습니다! 하하하하!"
"잘 가게 판타서스!"
"모험이 지치면 또 놀러 와!"
손을 흔들며 멀어지던 판타서스가, 시몬을 보고 엄지를 척 세웠다.
"자네는 좋은 학생회장이 될 걸세! 후임!"
시몬이 미소 지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판타서스와 헤어지고, 몇 주가 흘렀다.
시몬은 판타서스가 가르쳐 준 슬립저주를 갈고닦았고, 리처드의 영주일을 거들면서 훈련을 거듭했다. 편지로는 딕, 메이린, 카미바레즈와 소통하며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키젠 2학년 개학이 4일 남은 시점에.
"다녀오겠습니다!"
시몬도 이제 레스힐을 떠나게 됐다. 정원에는 네프티스가 사람을 보내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해 주었다.
"다녀오거라 시몬!"
리처드가 흥분한 얼굴로 콧김을 뿜었다.
"언제나 학생회장이라는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도록 해라! 그 어떤 도발과 시련에도 결코 고개를 숙이지 마라!"
"네! 아버지."
안나가 시몬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부디 건강하게만 돌아오렴.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무리해서 공부하지 말고, 도시에서는 마차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편지하고."
"알겠어요 엄마!"
시몬은 텔레포트 마법진의 빛이 충만해지는 가운데 리처드와 안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시몬의 몸이 광채로 휩싸였다.
* * *
드레스덴 왕국의 수도이자, 로크섬과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 '랭거스틴'.
시몬이 레스힐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도착한 시작의 도시였다.
드높고 커다란 건물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했다.
"자, 그럼."
이 미로 같은 도시도 몇 번 들러보니 익숙해졌다. 시몬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랭거스틴은 중간 경유지에 불과하다. 입학식보다 4일 일찍 이곳에 도착한 이유는 하나.
로크 섬에 바로 들어가면 아쉬우니까, 7조 조원들과 만나 같이 놀 생각이었다.
'기대된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임무나 파견이 아니라, 또래 친구들끼리 이렇게 순수한 여행 목적으로 놀러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시몬에게는 놀러 가는 것 외에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슥.
시몬은 품에서 판타서스에게 물려받은 학생회장 배지를 꺼냈다.
그 목적은 바로.
'학생회 임원 권유!'
당연하지만 학생회는 학생회장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몬을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래, 학생회 임원은 누굴 뽑아야 하냐고?
판타서스가 레스힐에 있을 때, 시몬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을 구했다.
-네!
-그야 간단하지!
판타서스가 두 팔을 벌렸다.
-자네랑 가장 친한 친구들로 학생회를 짜면 된다네!
-네?
시몬의 입에서 다소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판타서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상한가?
-그...... 제 지인들로만 뽑으면 지적받지 않을까요? 막 부패한 관리들이 친한 사람들한테 공직을 주는 그런 느낌이.......
-하하하하하하!
그 말을 들은 판타서스가 요란하게 웃으며 테이블을 탕탕 쳤다.
-자네 보기보다 순진한 구석도 있구만!
-......그리 영광스러운 칭찬은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이건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 의석이나 파벌 간 균형을 논할 문제가 아닐세. 학교의 학생회지! 멤버도 많아야 다섯 명 정도고.
그가 팔짱을 꼈다.
-누가 뭐래도 학생회 임원들은 자네의 '최측근'일세! 교내 정책을 집행하고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내부에서부터 의견이 갈리고 싸우게 되면 아무것도 못 해! 그냥 혼자 하느니만도 못하네!
-아.......
-명심하게. 학생회 임원을 뽑는 건 엄연히 '학생회장의 권리'일세! 무조건 자네가 믿을 수 있고,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자네 편을 들어줄 사람을 뽑게!
믿을 수 있는 사람. 내 편을 들어줄 사람.
시몬은 그 말을 단단히 곱씹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2학년 400명들은 이미 대륙 최고의 인재들! 누구든 자리에 앉혀두면 다 제 몫은 하게 되어 있어!
-확실히 그러네요.
-역대 모든 학생회장들이 다 그렇게 했으니 그 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사실.......
판타서스가 회한에 잠긴 눈으로 하늘을 보았다.
-이 키젠에서, 믿을 수 있는 친구 4명을 만나는 게 가장 어렵지.
그렇게 회상을 끝낼 즈음에는, 어느새 약속장소에 다 도착해 있었다.
1학년 때 황천고래를 타고 가던 바닷가 쪽이라 길은 익숙했다. 해안가를 따라 쭉 걸으니 배들이 오가는 커다란 항구가 보였다.
그리고 항구 옆에 보이는 작은 공원. 이곳이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다.
'아!'
누군가 이미 와 있었다.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근처의 벽 뒤에 샥 숨었다.
'누구지?'
슬쩍 고개를 내밀어 먼저 도착한 사람을 확인했다.
백옥처럼 하얀 피부, 시냇물 같은 하늘색 머리카락. 파스텔 색감의 윗옷에 얇은 겉옷을 걸치고 스커트와 구두 차림. 팔에는 숄더백을 끼고 있었다.
소녀는 가만히 서서 하늘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흥- 흥- 간단하게 들리는 노랫소리마저도 감미로웠다.
'......윽, 갑자기 긴장감이.'
오랜만에 보는 메이린은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것 같았다.
시몬이 가슴을 붙잡았다.
'둘만 있을 때가 좋은 기회긴 한데, 어떻게 학생회 임원 이야기를 꺼내지?'
시몬이 고민에 빠져있는 그때, 흥얼거리는 노랫말이 멈췄다.
"못 본 사이 훔쳐보는 습관이라도 생겼니?"
시몬의 어깨가 움찔했다. 메이린의 푸른 눈동자가 이쪽으로 향해 있었다.
시몬이 무안한 웃음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오, 오랜만이야 메이린."
메이린도 생긋 미소를 지으며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내 시몬이 그녀의 옆에 섰다.
"......."
"......."
휘이이잉―
어색한 바람이 불었다.
1년 내내 그렇게 같이 붙어 다녔으면서,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색한 건지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지?
평소 메이린이랑 무슨 이야기를 했더라?
"......."
옆의 메이린도 주뼛주뼛 머리카락만 쓸어넘기고 있었다. 시몬은 남자로서 이럴 땐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학생회 이야기로 넘어간다면 베스트고.
"메이린."
"아, 응."
그녀가 반가움이 묻어나는 눈으로 시몬을 보았다. 그녀도 내심 이야기를 먼저 꺼내주길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날씨 이야기 같은 건 너무 뻔하니 시몬은 근처 사람들의 안부를 묻기로 했다.
"세......."
세르네는 잘 있지? 라고 물으려는 순간,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와, 나 그동안 학교생활이랑 멀어지긴 했구나.
진짜 감 다 떨어졌다.
"세 뭐?"
"아, 아니. 세...... 련된 차림이라고 생각해서. 오늘 예쁘게 입고 나왔네. 하하!"
옅은 홍조를 띤 메이린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고마워. 그러는 너는 입고 있는 그 흰 셔츠, 학교 교복이지?"
'윽.'
시몬이 얼굴을 붉혔다.
"어떻게 알았어?"
메이린이 피식 웃었다.
"맨날 주말에 로체스트에 놀러 갈 때도 흰 셔츠에 검은 바지잖아 멍충아! 제발 옷 좀 사 입어. 돈도 많으면서."
"다 언데드에 쓸 돈이라."
시몬의 농담에 메이린이 빵 터졌다.
"하여간! 넌 진짜아-"
다행히 분위기가 풀렸다.
시몬이 학생회 제안은커녕, 최악의 재회가 될 뻔한 상황을 넘겨 안도하는 사이, 메이린은 시몬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뭐.'
장난삼아 시몬의 패션을 디스하긴 했지만, 사실 이 인간은 그냥 셔츠 하나만 입어도 사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핏이 좋았다.
메이린이 오랜만에 간질간질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그때.
'지금이 기회다!'
시몬은 눈을 반짝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메이린! 네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으, 응?"
갑자기 시몬이 확 다가오자, 메이린이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음,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시몬이 이야기를 빙빙 돌리며 망설이고 있자, 메이린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녀도 머리카락을 베베 꼬며 딴청을 피우는 시늉을 했다.
"......천천히 말해도 돼."
"사실 나 이번에......!"
그때 근처에서 기척이 들렸다. 시몬과 메이린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스윽.
아까부터 벤치 뒤에 숨어 있던 딕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렸다.
그러다 이미 들켜 버린 걸 깨달았는지, 벤치 위로 손만 내밀어서 휙휙 흔들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계속해~ 역시 청춘이 좋다니까."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