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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41화 (44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41화

"......."

말콤과 빨간머리 소년이 대치했다. 말콤은 놀란 표정을 거두어들이고는 삐딱한 웃음을 흘렸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이지?"

"모를 줄 알았습니까."

빨간머리 소년도 물러서지 않고 답했다.

"랜돌프 갱단이 파로나 반도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는 이미 들어와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목적은 십중팔구 박물관에 보관된 '데이모스의 머리뼈'. 그리고 마침."

소년이 들어 올린 검이 태양광에 반사되어 예기를 번뜩였다.

"랜돌프 갱단 보스의 아들이 직접 현장에 와 있네요.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한가요?"

"......어이가 없네."

말콤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이건 알아? 나는 랜돌프 갱단 소속이기 전에, 키......."

-끝이다. 로크섬에는 돌아가지 말 거라.

그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평소라면 당당히 내뱉었을 '키젠'이란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빌어먹을.'

이제 자신은 키젠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갱단 소속의 싸구려 범죄자.

그 사실이 사무치게 몸에 와닿았다.

"그래, X발.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츠스스스스스―

말콤의 몸에 잔상이 생기더니, 그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 다섯 갈래로 흩어져 지면을 디뎠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었다. 생김새나 옷차림은 물론, 걸음, 포즈, 숨을 쉴 때 흉부의 움직임까지 동일했다.

빨간머리의 소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정중앙에 있는 말콤을 향해 검격을 날려 보냈다.

퍽!

검격에 베인 정중앙의 말콤이 석탄가루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남은 네 명의 말콤들이 히죽 웃었다.

"시전과 동시에 본체의 위치를 옮기는 건 기본이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츠스스스스스―

스스스―

네 명의 말콤이 다시 한번 갈라지며 여덟 명의 말콤이 되었다. 여덟 명의 말콤이 또 갈라져 열여섯 명의 말콤이 되었다.

"이런!"

사방이 포위된 소년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열여섯 명의 말콤이 동시에 말했다.

"검을 쓰는 걸 보니 파로나 영주에게 고용된 용병 나부랭이겠지? 하지만."

타다다다닷!

이내 모든 도플갱어들이 일제히 빨간머리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이번만큼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처억!

"저는 나부랭이가 아닙니다!"

소년이 검을 앞세우며 맞서 달려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분신 두 기를 베어낸 다음, 몸을 낮춰서 후방에서의 공격을 회피. 뒷발을 주축으로 몸을 강하게 회전시켰다.

"내 이름은 아서 블레만!"

검격이 초승달처럼 번쩍이더니 동시에 여섯의 도플갱어들이 석탄가루처럼 흩어지고.

타앗!

강선으로 쇄도한 그의 몸이 크게 검을 휘두른 자세로 멈추자, 후방에 남겨진 남은 도플갱어들의 몸에 일제히 무수한 검상이 그어졌다.

척!

그가 검을 살며시 내리고는 검집을 세웠다.

"과분하게도, 용병왕의 칭호를 계승 받았습니다!"

찰칵!

검이 납도되는 순간, 검상이 폭발하듯 번쩍였다. 모든 도플갱어들이 먼지가 되어 덧없이 흩어졌다.

'......이 새끼.'

말콤이 인상을 찡그렸다.

방금 저건 틀림없이 칠흑이었다.

'네크로맨서였나.'

게다가 이렇게 어린 놈이 용병왕이라니.

소문은 들어본 적 있다. 하지만 그 용병왕이라는 작자의 이름이 '아서'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단념하십시오!"

아서가 검격을 날렸고, 고민 중이던 말콤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서가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자,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말콤이 또 열 명이나 있었다.

'진짜 용병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서라는 놈은 생각보다 강해. 단기간에 제압하는 건 힘들다.'

고민을 거듭하는 말콤의 시선이 슬쩍 박물관 쪽으로 향했다.

'특히 소란을 듣고 시몬 폴렌티아라도 내려오는 날엔 끝장이야. 여기서는 물러나자.'

"계속 같은 방법에 당하진 않겠습니다!"

아서가 호기롭게 외치며 왼팔을 뻗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먹물 같은 칠흑이 허공에 흩뿌려지더니, 이내 하나의 마법진으로 자리 잡았다.

<문 헤드(Moon Head)>

아서가 두 손으로 검을 쥐고, 그 마법진을 베었다.

그러자 은빛 광택의 바람이 넓은 범위로 뻗어 나갔다.

촤악!

촤아아악!

범위에 들어온 모든 도플갱어들이 타격을 받고 사라졌다.

"크윽!"

그리고 이 도플갱어 사이에는 말콤의 본체도 있었다. 퓻! 퓻! 소리가 나면서 팔이나 다리 곳곳에 긁힌 듯한 상처가 생기고 핏물이 튀었다.

'이 자식! 범위기까지!'

"찾았습니다!"

아서가 즉각 지면을 내려 앉히며 말콤에게 돌진했다.

아직 칼날바람의 영향권 안에 있기에 도플갱어를 써봐야 타격을 받아 사라질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말콤은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병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랜돌프 갱단을 샅샅이 조사한 모양인데, 그럼 이게 뭔지도 알겠지?"

돌진하던 아서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액체폭탄!'

칠흑에 반응에 터지는 랜돌프 갱단의 특제 폭발물이었다. 말콤은 망설임 없이 액체폭탄에 칠흑을 흘려 넣었다.

키이이이이잉!

액체폭탄에서 눈부신 섬광이 맹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아서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자, 잠깐만요! 그런 짓을 하면 당신도......!"

말콤의 모습은 뿜어져 나오는 섬광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스로 보이는 그의 얼굴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됐어. 이딴 삶은 이제 지긋지긋해."

"아, 안 돼!!"

꽈아아아아아앙!

결국 액체폭탄이 폭발했다.

아서의 몸이 후폭풍으로 벌러덩 넘어갔다. 뒤늦게 다리에 힘을 주고 바닥에 검을 박은 다음,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말콤 랜돌프!!"

폭발의 현장에는 시커먼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있었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아서가 털썩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런 멍청한!"

그가 주먹으로 강하게 바닥을 내리쳤다.

"그냥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면 되잖아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어디 있습니까! 당신의 목숨은 그렇게 쉽게 포기할 만큼 무가치한 거였습니까!"

아서가 바락바락 소리 질렀지만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제압만 할 생각이었는데! 머리를 날리겠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는데! 왜!!"

아서는 자책하듯 여러 번 바닥을 내리쳤다.

한동안 그렇게 자책하던 그는 퀭한 표정으로 팔에 찬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우웅!

수정구에 흐릿한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헤이, 용병왕! 보고 기다리고 있었어. 말콤은 잡았지?

"죄, 죄송해요."

아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정구를 들어 폭발의 현장을 보였다.

"말콤 랜돌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제가 막을 수 있었는데! 막을 수 있었는데!!"

-.......

특별히 개조된 아티팩트인지, 여자 쪽에서도 아서 쪽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수정구의 여자는 폭발을 보며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야 이 병신아.

"네?"

-저거 그냥 연막탄이잖아!!

아서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 진짜요?"

-그래! 저렇게 아무것도 없이 연기만 풀풀 날리는 폭탄이 세상에 어딨냐!

아서가 검을 휘둘러 폭발연기를 갈라보자, 말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폭탄치고는 주위의 피해도 경미했다.

"어,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아서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럴 리가 없어!

"분명 프로필에는 흉악한 액체폭탄을 가지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연막탄 이야기는 없었어요! 진짜예요!"

-으아아악! 이 답답아!

"연막탄도 주의하란 소리가 있었으면 속지 않았을 거예요!"

-너 사실 용병왕이 아니라 바보왕이지!

아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여자가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못살아! 말콤이 무슨 일을 벌이기 전에 어떻게든 찾아내! 빨리!

"네, 네엡!"

* * *

한편 시몬 일행은 박물관에서 빠져나와 시장 거리를 걷고 있었다.

"으읏! 재밌었다!"

앞장서서 걷던 메이린이 쭉 기지개를 켰다. 시몬은 딕을 보며 물었다.

"딕, 다음은 어디로 가?"

"미리 '고래의 언덕'에 가보려고."

그 말을 들은 카미바레즈가 눈을 깜빡였다.

"거긴 내일 데이모스가 바다를 지날 때 가는 곳 아녜요?"

"그렇긴 한데. 데이모스가 없어도 경치가 또 쥑이거든. 산책이나 할 겸 갔다 오려고."

"에이! 어차피 내일 갈 곳이면 그냥 숙소로 돌아가자!"

메이린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실 박물관 설명 듣는 내내 학생회 아이디어가 뿜뿜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숙소에서 회의나 좀 해!"

"......아직 학생회 활동 시작도 안 했는데,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메이린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 330기 학생회는 내가 캐리하겠어! 차후에도 회자되는 역대급 학생회로 만들 거야!"

"벌써 피곤해지려 하네. 시몬, 3학년에도 학생회장 되면 부회장은 좀 얌전한 애로 앉혀놓자. 로레인이라든가."

"니가 3학년까지 키젠에 남아 있을 순 있고? 이 400등 평민아!"

"두 사람 또 싸우지 마세요!"

언제나 같은 광경을 보며 시몬은 웃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 있습니다~"

그때 마침 아이스크림 통을 짊어진 채 걸어가는 상인이 보였다. 메이린이 반색했다.

"슬슬 단 거 당기지 않아?"

"좋네, 사 먹자."

"아저씨!"

메이린이 달려갔다. 상인도 그녀를 발견하고 말했다.

"어서 옵쇼! 예쁜 학생."

"아이스크림 네 개 주세......."

퍽!

상인의 몸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그녀의 얼굴에 뜨거운 피가 튀었고, 뒤따라 걸어오던 딕과 카미바레즈의 표정도 바짝 굳었다.

-캬캭.

녹색의 뭔가가 뒤에서 날카로운 손톱을 늘인 채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상인이 쓰러지고, 그것이 메이린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피를 뒤집어쓴 그녀는 석상처럼 굳어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터엉!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역시 시몬이었다. 그의 발차기가 괴물의 팔을 쳐올렸다.

이어서 정신을 차린 딕이 벨트에서 단검을 꺼내 던졌다. 몬스터의 몸에 연달아 인챈트 된 단검이 박히고, 카미바레즈가 보랏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뛰어들었다.

<블러드 스트라이크>

꽈앙!

마법진이 그려진 그녀의 손에 복부를 강타당한 몬스터가 날아가 건물 벽에 부딪혔고, 메이린이 사납게 눈을 번뜩이며 팔을 휘둘렀다.

<아이스 볼트>

꽈드드드드득!

마지막으로 메이린의 얼음 조각에 꽂힌 몬스터는 그대로 절명. 반사적으로 마법을 시전한 메이린이 휘청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메, 메이린!"

시몬이 놀라서 다가왔다. 그녀는 손바닥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미안. 그냥 놀랐을 뿐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허공에 마법진이 연달아 완성되더니 공중으로 얼음들을 날려 보냈다.

퍼억! 퍽! 퍽!

하늘에서 피가 후두둑 떨어지자 시몬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다른 녹색의 몬스터들이 얼음 송곳에 꿰뚫려 있었다.

"허어억!"

"꺄아아아아악!"

몬스터의 시체를 본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하아, 깜놀했네."

메이린이 투덜거리며 다가가 쓰러진 몬스터를 살폈다.

"나가(Naga)야. 바다에 살지만 육지에서도 걸을 수 있어. 약한 개체는 위험도 2급이고, 센 놈은 3급까지. 근데 얘들이 왜 도시에 있지?"

카미바레즈가 눈을 감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시몬! 곳곳에서 똑같은 피 냄새가 나요. 나가들이 파로나 반도 전체를 급습하고 있어요!"

잠시 고민하던 시몬이 딕을 보았다.

"딕. 뭔가 짐작 가는 거 없어?"

"글쎄다."

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본적으로 나가들은 5급 위험도, '나가여왕'이라는 개체의 명령에 절대복종해. '알파'라고 해야 하나? 나가들은 오로지 나가여왕의 파장에만 복종하니까 바다의 지배자라는 데이모스의 파장에도 자유롭지."

메이린이 말을 받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파로나 반도에 나가여왕들이 왔단 거네? 여왕들끼리 연합했을 수도 있고."

"좋아."

시몬이 말했다.

"다들 키젠교복으로 갈아입고, 셋으로 갈라져서 사람들을 보호해 줘."

"시몬 넌?"

"나는 조금 더 넓게 돌아다니면서 여왕을 찾아내 잡아야겠어. 그리고."

시몬의 머릿속은, 데이모스 박물관에 보였던 한 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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