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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43화 (44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43화

화르르르르륵!

칠흑화염계의 검은 불꽃이 주위를 뒤덮었다. 말콤은 기둥 뒤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제기랄!'

스컬드론이 나온 뒤로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저 해골머리에서 쏟아지는 불꽃 한 방에 5~6기의 도플갱어들이 쓸려나갔고, 바닥에 붙은 화염에 조금이라도 닿기만 하면 분신이 해제되었다.

도플갱어의 가장 큰 약점인 범위공격.

시몬의 스컬드론들은 4층 곳곳을 검은 불꽃으로 불태우며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나가고 있었다.

"숨어도 소용없어 말콤."

시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콤은 기둥 뒤에서 이를 빠득빠득 갈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고는 네 개의 작은 포션병을 꺼내 바닥에 굴렸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척. 척.

바닥에서 도플갱어의 팔만 튀어나와 포션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몬이 볼 수 없는 시야의 사각. 검은 불길의 뒤편으로, 도플갱어의 팔들이 포션병들을 착착 전달했다.

'던져!'

이내 말콤의 신호에 맞춰, 도플갱어의 팔들이 동시에 포션병을 던졌다.

째앵!

쨍!

포션병이 깨지며 모든 스컬드론에 주홍색 액체가 달라붙었다. 스컬드론을 컨트롤 하던 시몬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어떠냐.'

말콤이 기둥 뒤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카바라 포션의 강화품이다! 움직임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컨트롤에 방해 정도는......!'

하지만 시몬은 태연하게 웃었다.

스르르―

스르르르르―

그는 미련 없이 클라우드를 거두어들였다. 뼈들은 바닥에 떨어졌고 스컬드론은 해제되었다.

'......무슨 속셈이지?'

"찾았어. 말콤."

말콤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시몬이 그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타악!

말콤이 급히 팔꿈치를 세워 시몬이 내지르는 오른손을 막아냈다.

그러나 마투가 아니었다. 시몬의 오른손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이 발동했다.

'저주인가!'

말콤이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무슨 저주에 당한 거지?'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말콤은 머릿속이 아득해지며 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난데없이 온갖 노곤함과 피곤함이 몰려왔다.

'슬립(Sleep)인가!'

말콤이 입매를 비틀었다.

"너 이 새끼......! 학생회장 됐다고 판타서스 흉내라도 내는...... 거냐!"

시몬은 그저 빙긋 웃었다.

"그보다 말콤, 난 네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뭐?"

말콤은 재빨리 등 뒤로 '캔슬레이션' 저주를 만들며 시몬의 말을 받았다.

시간을 끌어야 했다.

"내가...... X발, 동정하지 말라고 했지?"

"동정이 아니라니까. 너 어느 순간부터, 매번 가지고 다니던 봉에 의존하지 않고 네 힘만으로 도플갱어를 만들어내더라."

"......."

"거기에 아까 보여준 도플갱어 뭉치, 팔만 움직이는 도플갱어들, 그리고 맹독학의 고난도 배합 포션까지."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생각에, 넌 누구 못지않게 노력하고 있어."

말콤은 마른침을 삼켰다.

얼굴에 피가 쏠리며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만 시기의 문제야."

"......뭔 헛소리냐."

"머릿수를 늘리는 도플갱어는 학기 초에 막강하지만, 모두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 학기 말에 약해. 그건 네가 도플갱어를 주력으로 삼은 이상 어쩔 수 없는 문제지."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이대로 계속 약한 채로 있진 않을 거 아냐? 다른 애들이 네 파훼법을 알아낸 만큼, 너도 보완책을 강구하겠지. 키젠은 길어. 이제 1년 지났고 아직 우리에겐 2년이나 남았어. 버티고 버티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시 네가 올라갈 때가 올 거야."

말콤은 가슴속이 어딘가가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약한 게 아니라, 내가 재능 없는 게 아니라, 단순한 시기의 문제.

이런 바보 같은 접근은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부정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X발. 지랄한다 아주 지랄을 해. 네 지랄을 듣고 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입을 쭉 벌리며 등 뒤에 숨긴 마법진을 자신의 몸에 댔다.

"캔슬레이션을 완성하기 위해......!"

그러나.

"어?"

캔슬레이션의 효과가 분명히 들어갔음에도 저주는 풀리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말콤이 급히 고개를 들었다.

"네가 준비하던 캔슬레이션, 그냥 쓰도록 내버려 둔 거야."

어느새 시몬의 두 손에도 슬립 저주가 완성되어 있었다.

"내 슬립은 캔슬레이션으로 풀릴 리가 없거든."

"크윽!"

완전히 당했다.

이놈은 마치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있는 기분이었다.

몇 수 앞을 내다본다.

거기에 소환학도 그렇게 잘하면서, 캔슬레이션으로 풀리지 않은 상위 저주라니.

이놈은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는 걸까.

부웅!

칠흑이 소진된 말콤이 주먹을 내질렀다. 가뿐히 고개를 꺾어 피한 시몬이 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간 다음, 빙글 회전하며 오른손으로 등을 강타했다.

"컥!"

말콤이 휘청거리며 물러나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졸음이 중추신경계를 장악했는지 이제는 통증마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새 슬립 3스택.

"제기랄!"

말콤이 손을 모으고 도플갱어를 꺼냈다.

하지만 졸음 때문에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소환된 도플갱어는 고작 3기.

그것도 시몬의 마투에 간단히 터져나간다.

'제기랄! 제기랄!'

더럽게 강하다.

막 대단하고 화려한 기술을 쓰는 것도 아니다.

기초에 충실한 탄탄한 전투를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가 안 된다.

이게 바로 키젠 2학년 수석이자,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1학년 1학기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나도!'

말콤이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뇌의 명령과는 달리 극도로 이완된 근육은 제 몸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허우적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은 말콤의 팔을 시몬의 오른손이 때리고 지나갔다.

4스택.

"크으!"

벌써 눈꺼풀이 세 번은 감겼다.

'생각보다 잘 버티네.'

슬립 4스택을 맞고도, 말콤은 '적의'만으로 졸음을 참고 있었다. 시몬은 이제 마무리를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크하아압!"

말콤이 몸을 회전시키며 발차기를 날렸지만, 시몬은 그저 손등으로 툭 쳐내고는 파고들어 그의 얼굴에 손바닥을 올렸다.

"잠시 머리 좀 식혀."

슬립 5스택.

시몬의 그 한마디를 끝으로, 말콤은 정신을 잃었다.

* * *

-네 아버지는 마르겔 랜돌프. 조직을 이끄는 대단한 분이시란다.

말콤은 자신의 13세 생일에,

자신의 이름이 '말콤 브라운'이 아니라 '말콤 랜돌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죽었다는 아버지가 사실은 살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어서 와라, 아들아!

말콤은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정장을 차려입은 크고 험상궂은 어른들 사이에 군림한 중년 남자. 사춘기의 열등감만 가득한 시골 촌뜨기였던 말콤은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 있고, 심지어 조직의 보스라는 사실에 가슴이 들떴다.

무엇보다 아버지 마르겔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불러주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무슨 후계자?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반발하는 갱단원들도 있었지만, 마르겔은 말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내 후계자는 말콤뿐이다.

그러고는 눈을 빛내며 말콤과 눈을 마주했다. 그러곤 말콤에게만 들릴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다오. 아들아.

그렇게 열등감과 악바리로 가득했던 말콤은 조직 내에서 미친 듯이 노력했다. 아버지가 하라는 일은 뭐든 다했다.

불법 수술을 통해 코어를 개방했고, 네크로맨서가 되었으며, 랜돌프 가문의 고유 흑마법인 도플갱어를 익혔다.

-아버지! 보세요!

말콤이 처음으로 자신과 똑같은 꼬마 도플갱어를 한 명 완성했을 때, 그 위엄 넘치던 마르겔이 말콤을 훌쩍 안아 들며 웃었다.

-다들 보았느냐! 역시 내 아들이다!

말콤은 감격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아버지 마르겔은 그의 절대적인 우상이 되었다.

어머니와 시골에서 지내던 일상은 새까맣게 잊었다. 그저 조직에서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조직의 사람들은 난폭한 늑대들이었고, 그런 늑대들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도 늑대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잔인해져야 했다.

늑대들보다 더.

잔인한 짓을 할 때마다 갱단원들이 감복하며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말콤은 커다란 성취감을 느꼈다.

말콤의 명성은 점점 더 커졌다. 젊은 나이에 수준급으로 도플갱어를 사용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말콤, 키젠에 가거라.

-네? 그깟 학교에 가지 않아도 전 훌륭한 보스가 될 수 있어요!

-특례 입학생으로 가는 거다. 가치가 있어.

아버지 마르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직을 대표해서, 대륙의 잘난 귀족들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고 오거라.

말콤은 이번에도 마르겔의 명령에 따라 키젠에 입학했다.

하지만, 키젠에 들어가니 동갑내기 또래 귀족들이 '랜돌프'라는 성을 듣고 손가락질했다.

-더러운 범죄자!

나는 갱단을 대표해 들어온 존재다. 나를 욕하는 건 조직과 내 아버지를 욕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말콤은 키젠 내에서도 잔인한 짓을 일삼았고, 그에게 반항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2학년 선배들과 왕족들과도 연결됐다. 갱단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릴 생각에 말콤은 분투했다.

하지만.

-승자! A반의 시몬 폴렌티아!

자신이 쌓아왔던 악명과 카리스마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거기에 액체폭탄 사태까지.

1학기가 끝난 뒤, 말콤은 아버지 마르겔을 보기가 송구했기에 오랜만에 어머니가 있는 시골 고향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누구야. 당신!

어머니의 집에, 낯선 남자가 들어와 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냐고!

-당신이야말로 누구...... 허억!

말콤이 남자를 제압해 바닥에 쓰러트린 순간.

-그만하렴 말콤!

어머니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어머니는 이 남자와 재혼했다고 했다.

-어, 어째서요?

말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 저랑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는 깊게 한숨을 푹 쉬고는, 진실을 들려주었다.

-정말 미안하다 말콤.

말콤은 자신의 세계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목도했다.

-난 네 아버지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한 적이 없어.

이래저래 돌려 말하긴 했지만, 말콤은 조직의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모든 걸 이해했다.

아버지 마르겔은 젊은 시절 수많은 도시를 약탈했고, 도시의 죄 없는 여자들을 강제로 범했다.

어머니는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고, 말콤 자신은 마르겔이 뿌려놓은 수많은 씨앗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차마 배 아파서 낳은 아기를 버리지 못하고 키웠을 뿐이며, 차후 마르겔이 말콤을 요구해서 내어줬을 뿐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됐다.

이제야 말콤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동네 아이들과 싸우다가 애들을 때려눕힌 날, 어머니가 그렇게 자신을 낯선 눈으로 쳐다보았던 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았다.

-아버지!

말콤은 즉시 조직에 돌아가 마르겔의 멱살을 붙잡았다.

-저를 속이셨습니까! 제게 들려주셨던 어머니 이야기는 전부 거짓이었습니까! 저를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하셨으면서!

그때.

말콤은 비로소 가면 뒤의 마르겔의 표정을 보았다.

-네 어미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한마디에, 산불처럼 타오른 분노가 양동이의 물을 끼얹은 것처럼 식는 것을 느꼈다.

말콤은 키젠에 돌아왔다. 멘탈이 완전히 산산조각 난 채였기에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아버지는 자신을 이용했을 뿐이고.

어머니는 그저 마음에도 없는 자식을 마지못해 키웠을 뿐이다.

'난.'

말콤은 꿈속에서 계속 고뇌했다.

'난 대체 뭐지?'

그때 눈꺼풀이 열리고 비로소.

맑은 하늘이 보였다.

"으아앙! 허어어엉! 흐윽! 끅!"

익숙한 얼굴이다.

옛 고향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갑내기 꼬맹이가 마구 울고 있었다. 자신도 이 녀석처럼 작았다.

이건 과거의 일.

울고 있는 꼬맹이는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그 상처는 말콤 본인이 냈었다.

"말콤!"

말콤의 눈이 커졌다.

'어, 어머니?'

젊어진 어머니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어머니는 꼬맹이의 부모에게 굽신굽신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그렇게 꼬맹이와 그녀의 부모가 사라진 뒤.

어머니가, 이쪽을 본다.

'......큭.'

말콤은 차마 어머니의 눈을 볼 수 없었다.

원치 않게 키우고 있는 범죄자의 아들이 사람을 때렸다. 분명 끔찍한 괴물 보듯 하는 시선이리라. 속으로는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며 혐오하겠지.

"말콤. 엄마를 보렴."

"......."

말콤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아.'

그녀는 분명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는 친구를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렴."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이리 오렴. 말콤."

어머니가 말콤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마음이 극도로 편안해진다.

이건 틀림없이 과거의 기억.

이때의 기억을 다시 보니 확실히 알았다.

아버지는 나를 버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었다.

* * *

짝!

손뼉을 치는 소리에, 말콤은 깜짝 놀라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 보인 것은 시몬 폴렌티아.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무심한 얼굴로 두 손바닥을 맞부딪히고 있었다.

"이게 무슨! 큭!"

어느새 말콤은 기둥에 밧줄로 묶여 있었다. 밧줄의 중간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효과 때문에 칠흑이 나오질 않았다.

"행복한 꿈을 꾸는 것 같더라."

시몬의 말에 말콤에 움찔하며 얼굴을 붉혔다. 뒤늦게 그는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까지 깨달았다.

"이, 이 새끼!"

"그냥 자게 내버려 두고 싶었는데, 이쪽도 시간이 별로 없어서."

시몬이 손을 내리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말콤, 어떻게 하면 나가들을 막을 수 있는지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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