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46화
촤아아아아!
바다의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며, 시몬은 언데드 데이모스에 올라탄 채 나아가고 있었다.
두 발은 데이모스의 몸에 고정해 놓고, 손으로는 딕이 가져온 해도를 훑어보고 있었다.
'정리하자.'
시몬은 오늘 데이모스 박물관에서, 가이드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데이모스의 현재 위치를 표시해둔 거랍니다. 파로나에서는 행사 한 달 전부터 데이모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죠! 이 속도를 계산해 본다면, 내일 오후에는 데이모스가 권속들을 데리고 지나가겠네요.
데이모스는 일정한 속도와 루트로 대륙 전역의 바다를 돌고 있다. 그리고 바로 내일, 파로나 반도와 섬 사이의 좁은 바다를 지날 예정이다.
예상 도착 시간은 내일 오후.
그들이 조금 더 빠르게 파로나에 도착한다면 나가들을 일거에 소탕할 수 있겠으나, 데이모스의 속도는 언제나 일정하다. 랜돌프 갱단 측도 그런 계산이 있었으니 일을 벌였을 테고.
"결국 이 방법뿐이네."
고개를 내리니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언데드 데이모스가 보인다. 하얀 뼈마디 곳곳에 칠흑이 일렁이고 있다.
"할 수 있겠어? 데이모스."
긴장한 듯 다소 불안정한 데이모스의 사념이 느껴진다. 시몬은 소환수를 잘 다독이며 해도를 다시 확인했다.
"슬슬 보여야 하는...... 아!"
말하기 무섭게 딱 나타났다.
저 멀리 바다 한복판이 시꺼멨다. 그것은 정지해 있지 않고 꿈틀댔으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하나의 생명체가 아니다. 수천수만의 생명체가 모여 수면 아래에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저게 다 해양생물이라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조금은 얼이 빠졌다. 데이모스 또한 연결된 사념을 통해 미친 듯이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걱정 마. 널 저것과 싸우게 하진 않을게."
잠시 후, 데이모스 군단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시몬은 메이린이 개발한 산소통 마법진을 발동하고는 불안에 떠는 데이모스를 아공간에 돌려보냈다.
첨벙!
그러곤 바다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감각에 전신이 떨린다. 태고의 세계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바다 내부의 모습이 펼쳐진다.
하지만 감상에 빠질 시간도 없이, 최고속도로 검은 무리를 향해 나아갔다.
'......와.'
셀 수도 없는 새까맣고 꿀렁이는 무언가가 바다를 뒤덮으며 다가온다. 이 해안에서 살던 해양 몬스터들도 저 무리에 동조하며 자석처럼 빨려든다.
점점 더 덩치를 부풀리는 모습.
그리고 이 무리에 선두에 있는 것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거대한 괴물 고래.
바다의 지배자라는 이명을 가진 진짜 성체의 '데이모스'였다.
"......."
나는 진짜 미친 걸까?
지금 무슨 짓을 하러 온 거지?
데이모스와 눈을 마주하는 순간, 멘탈에 급격히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세포가 빨간불을 켜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단 1%의 확률이라도 일이 엄청나게 잘 풀리면 성체 데이모스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아주 조금은 했었다.
하지만 현장에 와보니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은 구분해야 했다. 시몬은 그쪽 생각은 깨끗하게 머릿속에서 지웠다.
'정신 차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해!'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고통 때문에 정신이 돌아온다. 필사적으로 공포를 내리누른 다음, 당당하게 데이모스와 대면했다.
이제 저쪽에서도 시몬을 보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는 눈치였다. 데이모스의 몸집에 비하면 시몬은 하나의 점과도 같은 미천한 생명체에 불과했다.
'미친 짓이지만.'
시몬이 입매를 시원스럽게 비틀며 두 팔을 펼쳤다.
'해내는 수밖에 없어!'
우우우웅!
우우웅!
그의 두 손에 펼쳐진 건 판타서스 오리지널의 슬립(Sleep).
계획은 간단했다.
데이모스를 재워 버리고, 그사이 지휘력이 떨어진 해양생물들을 이쪽의 언데드 데이모스로 데려가 파로나에 복귀하는 것.
그리고 그 병력으로 나가 떼를 부수고 파로나를 구한다.
'미안하지만 네 군대를 빌리겠어!'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주위는 점점 고요해지고, 심장은 느리게 뛴다.
'더. 더.'
소리가 사라지고.
이제는 시간마저 서서히 느려진다.
정신이 고양되는 것을 느끼며 시몬은 두 팔의 마법진의 작업에 집중했다.
상대는 성체 데이모스와 그의 군단.
그에 비해 이쪽이 가진 건, 두 손에 그려지고 있는 보잘것없는 작은 마법진뿐.
하지만 당당히 맞선다.
'인간을 재우는 슬립으로는 모자라!'
시몬이 눈을 부릅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어서, 화력의 스펙트럼 자체를 높여야 해!'
콸콸콸콸!
시몬은 한계용량을 넘은 대량의 칠흑을 한 번에 마법진에 공급했다.
내부의 밸런스가 망가지고 회로와 수식들이 파손되지만 멈추지 않았다. 회로가 끊어지면 다시 잇고, 수식이 파손되면 새롭게 그린다. 파괴되지 않는 선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흑마법은 흉터가 가득한 전사의 몸이라고 생각하게! 끊임없이 상황과 조건에 맞춰서 변화하고 진화하지!
마법진이 견딜 수 있는 사양을 훌쩍 뛰어넘는 대확장.
생태계가 몇 번이고 망가지고 찢어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모든 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이어붙인다.
'실패도, 상처도 하나의 과정!'
시몬의 머리에 스파크가 치밀었다.
'모든 것을 진화의 진통으로 받아들여!'
마법진이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며 기이하게 비틀린다. 더 이상 마법진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모습.
시몬은 고통 속에 비명을 내지르는 악귀를 두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할 수 있어!'
칠흑역류 때문에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두 눈은 충혈됐지만.
시몬은 거대한 상승감을 느끼고 있었다.
눈동자는 만물을 담는다.
두 손에는 만물을 움켜쥔다.
한계를 정하지 않고, 선을 긋지도 않고, 실패는 과정으로 삼아 너덜너덜하게 이어붙여 나간다.
그러자.
'!'
퍽. 하고.
시몬은 뭔가가 부서지며 태양빛이 들어오는 감각을 느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평면인 2차원의 마법진에서 3차원의 줄기들이 튀어나왔다.
끝없는 시몬의 진화 요구와, 한계에 다다른 마법진의 밸런스 유지가 팽팽하기 줄다리기 되던 결과.
마법진은 폭발하는 게 아닌,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확장하는 것을 선택했다.
'아!'
마법진에서 뻗어 나간 3차원의 줄기들은, 마법진이라는 꽃을 피웠다.
하나의 마법진에 여러 마법진들이 연결되며 중앙 마법진의 과부화된 일을 분배받아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판타서스 회장님이 말한 그 경지!'
시몬이 입꼬리를 올리며 다가오는 데이모스를 보았다.
콰아아아아!
데이모스도 미천한 점이 수상쩍은 짓을 한다는 걸 안 걸까.
커다란 입을 벌렸다.
주위의 바닷물이 진공처럼 빨려들며 시몬의 몸도 거칠게 데이모스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크윽!'
시몬은 집중력을 유지한 채 오른손의 마법진을 매듭지어 완성했다. 그러고는 데이모스를 향해 사출형식으로 발사를 준비했다.
'맞아라!'
원작자인 판타서스의 것과는 다른.
나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진정한 오리지널.
<시몬 오리지널 - 슬리핑 데이모스(Sleeping Deimos)>
암청색의 섬광이 뻗어 나가 고래의 입천장에 적중했다. 저주는 제대로 적용되었다.
'한 발로는 모자라!'
바로 왼손의 마법진도 완성해서 두 발째 날렸다.
이번에는 목구멍에 저주가 부딪히며 2스택.
하지만.
콰콰콰콰콰콰콰콰!
데이모스는 피곤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도 역부족인 거야?'
절망감이 아른거린다. 시몬의 몸이 데이모스의 동굴 같은 입안으로 빨려들려는 그 순간.
투웅.
데이모스가 입을 다물었다. 사납게 빨려 들어가던 바닷물이 멈추며 흰 방울이 보글보글 피어올랐다.
고오오오오오오―
심해의 정적 속에서 데이모스의 커다란 눈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시몬의 슬립에 잠들지는 않았지만, 데이모스는 분명 자신의 의지로 공격을 멈췄다.
-케에에엑!
-카라락!
뒤에서 시몬을 발견한 해양 몬스터들이 이빨을 번뜩이며 촉수를 흔들었다. 그러나 데이모스는 자신의 파장으로 시몬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뭐지?'
시몬은 놀란 눈으로 데이모스를 보았다.
저주를 썼고, 재우지 못했다.
그런데 데이모스에게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편안해...... 하고 있는 건가?'
데이모스는 그 커다란 머리로, 이 작은 육지 미물의 몸을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렸다.
시몬은 물길에 밀려나면서도 두 손을 다시 펼쳤다.
'뭐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판타서스에게 배운 슬립은 다른 저주들과는 달리, 상대를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든다.
데이모스는 시몬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편안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5스택까지!'
시몬은 아까와 똑같은 저주를 만들었다. 집중력이 극도로 올라간 콤펠로 상태인 지금, 칠흑의 기억하려는 성질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게 마지막이야!'
5스택의 슬립.
6스택부터는 슬립 간의 불균형이 일어나 효력이 오히려 떨어진다. 즉 5스택이 마지막이다.
시몬은 모든 슬립을 다 사용한 뒤, 나머지는 운명에 맡겼다.
[.......]
당연하지만, 데이모스는 저주의 효력으로 자지 않았다.
저렇게 커다란 생명체를 급조한 저주로 재우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데이모스는 기분 좋은 노곤함을 느끼고 있다.
스르르―
그렇게 고래는 자신의 의지로 잘 준비를 한다.
고래의 잠은 특별한 건 없었다. 몸을 수직으로 세우고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이것이 고래의 잠이었다.
-카라라라락!
-끼리릭!
고래가 스스로 잠이 들자, 주위로 발산하던 파장의 효력이 절반으로 떨어진다. 파장에 지배를 받고 있던 절반의 해양 몬스터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풀려났고, 그중 몇몇은 시몬에게 달려든다.
꼬르르륵!
"큽!"
산소통 마법진의 산소가 다했다.
시몬은 숨을 참으며 헤엄쳤다. 새까만 몬스터 떼들이 시몬을 포위하며 달려온다.
하지만 바다 안에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문어 몬스터들의 촉수가 시몬의 몸을 휘감았고, 그 뒤로 상어 같은 몬스터들이 이빨을 번뜩인다.
'지금이야!'
촉수에 붙잡힌 시몬이 끌려 내려가면서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우우우우우우우우!
새로운 '바다의 지배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막아! 막아!"
한편, 파로나 반도에서의 전투는 꼬박 새벽을 넘어가고 있었다.
파로나의 네크로맨서들과 키젠 학생들, 그리고 용병들이 해안가에서 어떻게든 나가들을 틀어막고 있었으나, 이제는 피로감이 커지며 패색이 짙어졌다.
거기에 늦은 밤이라는 시간대, 파로나 반도의 폐쇄적인 위치, 무엇보다 해안에 바글거리는 나가 때문에 외부에서의 빠른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지원을! 영주성이 지금 결계가 깨져서 위험하다고 합니다!"
보고를 하러 온 전령이 소리쳤다. 해안에서 싸우던 네크로맨서들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지원은 무슨! 이쪽도 절망적이야!"
"차라리 우리끼리라도 도망치자! 네크로맨서들만 모여서 요새를 만들면 며칠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
패색이 짙어지자 그런 이야기까지 오갔다.
"지금 말 다 했어요?"
격분한 메이린이 다가가자 몇몇 네크로맨서들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지금 물러나면 영주성의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몰살당해요! 알잖아요?"
중년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흠흠. 아직 학생분이라서 현장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런 경우는 그냥 답이 없어요."
"난 자식도 있소. 이딴 외지에서 개죽음당할 수는 없소!"
"당신들 정말......!"
"메이린! 참아요!"
카미바레즈가 메이린을 뜯어말렸다.
"우리끼리 싸울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좀 돕지?"
딕이 포션병을 던지며 소리쳤다.
바닥에 끈적이는 액체가 넓게 퍼져 나갔고, 그 위를 나가들이 지나가려다가 끈적이에 붙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착!
딕이 라이터에 불을 켠 채 머리 뒤로 던졌다. 끈적이는 액체에 불이 붙으며 활활 타올랐고 나가들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쏟아졌다.
"시몬은?"
딕의 물음에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왔어요."
"아! 슬슬 걱정되는데. 그 바보가 진짜로 데이모스에게 덤빈 건 아니겠지?"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어."
촤아아아아악!
그나마 패색이 짙어지는 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건 용병왕 아서뿐이었다.
"하하하하!"
네크로맨서 이전에 검사라서 그런지, 칠흑의 소모를 최대한 줄이고 검으로만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다.
물론 이 경우에는 칠흑이 아니라 체력이 다하겠지만, 아서의 체력은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수준이었다.
"바보라서 그런지 잘 싸우네."
메이린의 평가였다.
찰칵! 찰칵!
그리고 열심히 싸우는 아서의 뒷모습을, 열심히 마력촬영기로 찍고 있는 기자가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 등을 돌린 동료들! 그런데도 끝까지 싸우는 용병들의 왕! 아아!"
마력촬영기를 든 그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사로 모자람이 없어!"
"이봐요, 아저씨. 여기 오시면 곤란해요."
딕이 퉁명스럽게 말하며 다가왔다.
"가까이 오지 마시오!"
기자가 마력촬영기를 딕 쪽으로 돌리자, 키젠 학생인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어차피 이 섬에서 다 죽을 걸 알고 있소!"
기자가 결연하게 말했다.
"비록 내 몸은 몬스터에 잡아먹혀도, 이 마력촬영기와 기사를 써둔 메모는 남겠지! 나는 일생을 바쳐 영웅들의 활약을 기사로 남길 거요!"
"뭐래는 거야."
"직업적 사명인가 보지. 그냥 냅둬,"
메이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나가들이 해안가를 뒤덮으며 상륙했고, 도주를 계획하던 네크로맨서들은 어느새 도망친 뒤였다.
카미바레즈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용병왕 한 분으로는 벅차요! 우리 다 같이 싸워요!"
"맞아."
검을 바닥에 꽂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던 아서의 옆으로, 메이린과 카미바레즈. 딕이 나란히 섰다.
"여, 여러분!"
아서가 감격으로 그렁그렁한 표정을 지었다.
"저와 함께 명예로운 죽음을 맞으시려고......!"
"죽긴 누가 죽어!"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질렀다. 카미바레즈도 두 손에 칠흑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긴 일러요. 조금만 더 버티면 시몬이 돌아와 줄 거예요! 시몬이라면 분명 해결책을......!"
바로 그 순간.
-우우우우우우우우!
어둠을 밝히며 밀려오는 여명과 함께,
뱃고동 같은 울음소리가 파로나 반도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