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51화
"예비 학생회장 앞으로."
모든 2학년 학생들 몸을 돌려 3학년들 쪽을 보았다.
그러나.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린 건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응?"
"시몬이 왜 나가?"
2학년 학생들은 하나같이 당황하거나 놀란 반응이었지만, 뒤쪽 테이블에 자리잡은 3학년들은 조용히 불편한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서류를 훑어보던 별야가 고개를 들었다.
"참, 예비 부회장도 정했냐? 같이 올라와."
드륵.
기다렸다는 듯이 메이린이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일어났다. 뜨억 한 제이미와 클라우디아의 시선을 느끼며, 그녀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내내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기 앉은 순간부터 봐왔던 세르네의 자리.
'어때? 내가 키젠의 부회장이야! 시몬에게 선택받은 건 네가 아니라 나라고!'
방학 동안 상아탑에서 세르네가 얼마나 신경을 긁어댔던가.
메이린은 솟구치는 자존감을 만끽하며 세르네를 보았지만.
"......."
그녀는 고개를 기울인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메이린이 빠직한 표정을 지었다.
'아으! 저거 다 알고 있었네! 자는 척하긴!'
"메이린?"
시몬이 앞을 가리켰다.
"연단은 이쪽이야."
메이린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는 예쁜 미소를 꾸며냈다.
"아, 응."
이내 두 사람이 연단으로 올라왔다. 별야가 시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이야~ 우리 귀요미가 학생회장이야? 출세했네!"
"아닙니다."
시몬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반면 메이린은 너무 좋아서 입이 찢어질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지금 학교의 모든 여학생들을 대표해서 여기 서 있다.
내가 최고다!
"니들도 알겠지만, 정식 학생회장 임명식은 내일모레 개학식이야."
별야가 말했다.
지금은 2학년 개학식일 뿐이고, 학생회장 임명은 큰 행사인 입학식 때 진행된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그래도 뭐, 절차라니까 해야지."
학생대표들이 진행하는 간단한 식례가 있었다. 방송 하수인들이 선서 대본을 주면서 어떻게 식을 진행하는지 간단히 설명했다.
설명이 오가는 사이, 2학년들은 무척이나 시끄러운 상태가 되었다.
"시몬이 학생회장이라고? 2학년인데?"
"회장은 당연히 에이젤 선배가 할 줄 알았지."
"근데 뒤에 봐봐. 에이젤 선배가 없어."
"상황이 뭐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꾸우욱.
그리고 석차 3위, 헥토르는 굳은 얼굴로 의자 손잡이를 붙들었다.
'망할, 이젠 학생회장 자리까지 꿰차는 거냐......!'
석차 4위, 언제나 꾸벅꾸벅 졸고 있어야 할 메리다 휴 이켈이 눈을 날카롭게 뜨고 있었다.
'......나를 제치고 판타서스 오빠가 선택한 남자.'
석차 5위, 아세라즈 미켈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2학년이 학생회장. 그럼 나도 가능한 거 아냐?'
석차 7위, 유령선의 엘리사 셀린이 혼이 나간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고 있었다.
'으으으! 올해는 무조건 학생회장 눈에 들 생각이었는데! 그럼 내가 시몬 쟤한테 알랑방귀 뀌어야 하는 거야? 말도 안 돼!'
시몬의 학생회장 진출을 본 2학년들이 서로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는 가운데, 3학년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진짜 이렇게 내버려 둘 거냐? 레오나드."
3학년 테이블 쪽에서 한 남자가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전체 12위의 '윌 더글러스'였다.
"어쩔 수 없어."
그 앞자리에 앉은, 갈색이 살짝 감도는 흔한 금발 머리의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레오나드 페이론.
3학년 전체 4위의 남자였다.
"에이젤과 판타서스 선배 간의 약속이었어. 우리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야."
"아니 뭔."
윌이 인상을 팍 구겼다.
"에이젤은 돌아올 수 있을지 100% 장담도 못 하는 상황이고. 판타서스 선배는 우리 위에 있을 때나 공포의 대상이었지, 이제는 그냥 일반인이야! 뭘 두려워해? 지금 학교를 먹은 건 우리야!"
레오나드가 픽 웃었다.
"그래, 그 말도 맞아. 윌."
"그렇지?"
키젠 역사 330회를 통틀어서, 2학년이 학생회장이 된 역사는 손에 꼽는다.
그렇기에 윌을 비롯한 몇몇 3학년 학생들의 심사가 비틀려 있었다.
2학년이 학생회장이라니! 선배들이 우리 기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인재가 그렇게 없냐고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야 해, 레오나드. 우리 기수는 위아래로 샌드위치 신세야."
곰처럼 자세를 낮춘 윌이 설득조로 말했다.
"일단 우리 윗 기수를 봐. 역대급 학생회장이라는 판타서스와 그 패밀리들이 꽉 잡고 있었잖아. 그럼 아랫 기수는 어떤데? 내가 봤을 땐 더 심해! 네프티스 님의 딸과 상아탑 후계자가 동시 입학한 세대라고!"
"거기에."
레오나드가 말을 받았다.
"1학기 성녀 사태와 2학기 혈천교 사태를 겪고, BMAT로 매스컴 빵빵하게 탄 기수지."
"바로 그거야! 그럼 우리 기수가 외부에 어필할 만한 히트상품이 뭐가 있는데. X발, 에이젤 말고 더 있냐!"
윌이 열변을 토했다.
"그런 에이젤이 임무로 묶여 있어."
"......."
"그리고 학생회장은 2학년으로 넘어갔지. 로레인이나 세르네였음 이해는 해. 어른들이 정치적 이유로 관여한 것 같잖아. 근데 거인혼혈도 아니고 무어가문도 아니고, 갑툭튀한 시몬 어쩌고 하는 새끼가 회장이 된 거야! 사람들이 우리 기수를 어떻게 보겠어?"
레오나드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심정은 복잡한 듯 앞머리를 흩뜨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확성 수정구를 든 별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들 전원 기상! 뒤에 3학년들도 일어나라."
드드륵.
드륵.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단 위에 선 시몬과 메이린이 손바닥을 펼쳐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서."
"선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학생이 손을 세워 들며 '선서!'하고 복창했다.
"하나, 우리는-"
윌에게 있어서,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3학년들도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은 굴욕적이었다.
모두를 대표해서 선서하는 학생이 2학년이라니.
"레오나드."
윌이 손을 들어 올린 채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이게 무슨 꼴이냐고. 학생회장 자리를 빼앗아야 해."
"......."
"일단 빼앗고, 나중에 에이젤이 돌아오면 돌려주면 되잖아? 외부에 무기력한 이미지가 찍혀 버리기 전에......!"
"아직 그럴 때는 아냐."
고개를 저은 레오나드의 시선이 저 멀리 떨어진 맹독학과 테이블로 향했다.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린 남학생이 손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2위인 발락도 가만히 있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끙."
이내 시몬과 메이린이 손을 내리며 선서를 마쳤다. 마찬가지로 손을 내린 윌의 사나운 시선이 두 사람의 등에 꽂혀 있었다.
* * *
절차가 모두 끝나고, 시몬과 메이린은 자리로 돌아왔다.
"수고했어!"
"두 사람 다 멋있었어요!"
딕과 카미바레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사방에서 고개가 돌아갔다.
"시몬! 시몬! 시몬! 어떻게 된 거야? 진짜 학생회장이야?"
"에이젤 선배를 넘어서 그 자리를 꿰차다니! 대단해!"
"야, 메이린! 왜 말 안 했냐고!"
두 사람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별야가 '거기 시끄럽다!'하고 소리쳤다.
"확 씨, 후딱 마치고 퇴근 좀 하게 협조해라. 이것들아."
다시 주위가 조용해지자, 별야가 리스트를 보았다.
"좋아. 그럼 이제 2학년의 각 학과를 담당할 교수님들을 단상으로 모시겠다!"
드디어 핵심 이벤트가 왔다.
키젠은 기본적으로 1학년 때의 교수들이 상위 학년까지 따라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전문성을 가진 교수가 학생 개인 개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고도의 맞춤형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그러니 학과의 2학년 학생 전체를 책임지게 되는 '학과 담당교수'는 매우 중요했다. 1학년의 '반 담당교수'가 '학과 담당교수'로 바뀐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제일 처음은, 어디 보자."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소환학과부터!"
학생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특히 시몬은 긴장하다 못해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제발 제발 제발......!'
1,000명이나 되는 1학년은 앞반과 뒷반으로 교수가 나뉘는데, 둘 중 더 성적이 좋은 교수가 2학년까지 올라오는 게 일반적이다.
"네크로맨서의 근본이자 근원인 과목이지? 우리 소환학과를 담당할 교수님은-"
리스트를 바라본 별야가 씩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론 데이아 교수님이시다!"
와아아아아아아!
열렬한 환호성과 함께, 커튼 뒤에서 아론이 연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했다.
탄력 없는 부스스한 더벅머리에, 수염으로 까끌까끌한 턱. 격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도착한 아론은 무심하게 학생들 쪽으로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인 다음, 연단에 마련된 교수석에 앉았다.
"에헤이, 벌써 앉으면 쓰나! 한마디 하셔야지!"
별야가 하수인들에게 마구 손짓하자, 하수인들이 조금 당혹스러워하며 확성 수정구를 아론에게 가져다주었다.
아론이 피곤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런 건 절차에 없지 않았습니까."
"에이~ 재미없게. 사회자 짬 때려놓고 내 마음대로 하라며? 그냥 까라면 까십셔!"
사회자 자리를 맡겼더니, 별야는 제멋대로 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아론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확성 수정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숨죽인 채 아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 각오가 없으면 이 분야에 발도 들이지 마라."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이거 어디선가 많이 들은 말인데.
"너희도 이제 2학년이니 소환학과 힘들다는 건 다 알고 있을 거다. 질질 짜고, 불평하고, 자책하고, 그딴 꼴은 이제 눈 뜨고 못 보겠다. 나는 너희들의 보모가 아니다. 이상."
그 말을 끝으로, 아론이 확성 수정구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뒷반 학생들은 다소 당황한 듯 웅성거렸지만, 앞반 학생들은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하시네요, 아론 교수님!'
뒤이어 다른 학과의 담당교수도 차례차례 발표되었다.
사령학과 담당 교수는, 앞반의 '움브라'를 꺾고 뒷반을 가르치는 '스테이시 세잔'이라는 중년의 여교수가 선정됐다. 시몬의 입장에선 조금 아쉬웠다.
혈류학과의 결과는 당연했다. 저번 혈천교 사태로 발터 한. 즉, 실라지 비사바르가 죽었기에 뒷반 교수인 '프레스턴 패튼'이라는 교수가 2학년 담당으로 올라왔다. 훤칠한 키의 노년 남성이었다.
맹독학과 또한 이변은 없었다.
"하하하! 내가 담당교수다, 이것들아! 잘 부탁한다!!"
초원 출신으로 와서 보이콧 사태를 겪는 등 말이 많았지만, 결국 '칠흑맹독계'과 '면역계'라는 강력한 두 가지 무기를 들고 학생들의 인정을 받은 별야가 2학년 맹독학 담당교수로 올라오게 됐다.
시몬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클라우디아 멘지스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뼉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다음은 마투학!"
서류를 훑어본 별야가 히죽 웃었다.
"아, 이건 너무 결과가 당연한가?"
자연을 벗 삼은 100% 야외수업이 특징.
거의 매년 수업 만족도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수업은 고되지만 그만큼 보람차고 성과도 확실해 저주학의 바힐과 인기로 겨룰 수 있는 키젠의 스타교수.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가 연단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제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두 손을 흔들자 2학년과 3학년 모두가 크게 환호했다.
"올해도 여러분과 함께 운동할 주 있게 되어 정말 좋아요!"
그녀가 소리를 높였다.
"네크로맨저는 정진과 육체의 균형이 중요해요. 어느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나머지 한쪽도 무너지고 말아요. 우리 마투 전공자들 외에도, 비전공자도 들을 주 있는 2학년 중급 마투 주업을 개절했어요!"
그녀가 두 손을 모으며 살갑게 웃었다.
"꼭 들으러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그녀의 시선은, 자리에 앉은 시몬 쪽으로 향해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 가장 큰 함성과 박수 세례를 들으며, 홍펭이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싸가지 없는 내 동생 수고했고."
별야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다음은 저주학인데...... 으음."
서류를 본 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러곤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주학과에는 공지사항이 하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