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53화
"학과 선정이 끝난 학생은 바로 선배들이 있는 소환학과로 합류하시면 됩니다."
조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시몬은, 긴장한 얼굴로 넥타이를 고쳐맸다. 그리고 3학년들이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동기들인 2학년은 시몬의 소환학과 합류에 환호하고 박수를 쳐주었지만.
"......."
"......."
3학년들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얼음장처럼 냉랭한 얼굴들, 몇몇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학생회장 자리 때문이겠지.'
3학년들의 반발은 예상했다.
판타서스와 에이젤 간의 거래는 어디까지나 두 사람 간의 거래. 다른 3학년들은 배제된 채로 협의가 이루어졌다.
지금 이들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건 판타서스와 에이젤이라는 이름에 눌려 있기 때문이지, 결코 시몬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학생회장이란 자리에 심취해 있을 게 아니라, 현재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는 게 중요했다.
물론 이렇게 푸대접받을 것도 뻔히 예상했기에, 시몬은 당황하지 않고 표정을 관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저칠소 사혈맹투.
일곱 개의 테이블.
그중에서 시몬이 향한 곳은 왼쪽에서 세 번째 테이블이었다. 좀비 문양의 깃발이 테이블에 꽂혀 있어서 알기 쉬웠다.
"......."
시몬이 가까이 다가갔지만 소환학과의 3학년들도 반겨주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묵묵히 걸어온 시몬은, 가장 앞자리에 앉은 학생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지나갔다.
"잠깐만."
그때 그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후배가 학과에 들어왔는데, 인사는 해야지."
이마를 덮은 웨이브 진 머리, 날 선 눈매에 존재감이 분명한 콧날과 광대. 호감이 가는 미소와 목소리를 가진 그는 간단히 말해 전형적인 왕자님 상이었다.
"내 이름은 레오나드 페이론. 전체 석차 4위고, 소환학과 대표야."
그가 손을 내밀자, 시몬도 그 손을 공손하게 맞잡으며 말했다.
"시몬 폴렌티아. 2학년 수석이고 학생회장입니다."
바로 튀어나오는 학생회장이라는 소개에 레오나드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그런 흔적은 초 단위 만에 얼굴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고, 레오나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얘들아, 뭐 해? 나 무안하다."
그제야 소환학과 학생들이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고 환영해 주었다.
레오나드는 딱 봐도 인망이 두터워 보인다.
그리고.
'......이 사람도 무지막지하게 강해.'
시몬은 손을 맞잡고 있는 상대에 대해 경외감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 3학년은 격이 다르다.
이런 사람이 고작 4위라니. 2년 내내 1위 했다는 그 에이젤이란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뭔가 싶었다.
"감사합니다."
레오나드와 악수를 마친 시몬이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포마드 헤어스타일에 물고기 상의 남자가 손을 척 내밀었다.
"윌 더글러스다. 석차는 12위."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소환학과 쪽으로 걸어올 때 노골적으로 노려보던 그 사람.
시몬은 살짝 긴장하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런 불같은 타입이 앞으로 할 행동은 뻔했다.
'또 악수할 때 힘을 주겠...... 응?'
딱히 힘을 주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가볍게 손을 흔들어 악수한 시몬이 이제 손을 떨어뜨리려는데.
"아."
윌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있잖아, 세상의 모든 일에는 순서라는 게 있어."
대뜸 그렇게 말한 윌이 한 걸음 다가와 고개를 기울였다.
"생각해 봐. 아침 일찍 식당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막 엄청나게 세 보이는 남자가 와서 사람들을 밀치고 제일 앞자릴 차지하는 거야."
낮고 투박한 목소리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래, 그 정돈 이해할 수 있어. 보통 사람들은 그 '센 놈'을 적으로 만들 바에, 그냥 똥 밟았다 치고 참고 말거든. 근데 말야."
윌의 안면근육이 일그러졌다.
"그 센 사람이 자기랑 친하다면서 웬 X밥을 자기 뒷자리로 데려와."
"......."
"그리고 센 사람은 갑자기 일이 있다며 맨 앞자리에서 휙 떠나 버리지. 근데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그 X밥이 아직도 가장 앞에 서 있네? 그럼 여기서 하나 물어볼게."
그의 입이 벌어졌다.
"뒷자리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
"후배 붙잡고 뭐 하는 거니? 윌."
윌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크림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눈화장이 인상적인 소녀가 미간을 구기며 윌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몬이 열띤 얼굴로 말했다.
"벤야 선배님!"
벤야 바닐라.
세계정복이 목적이라는 다소 사차원적인 마인드의 3학년. 시몬과 같은 '돌연변이' 동아리의 회장이었고, 동시에 바닐라 가문의 후계자였다.
"안녕, 제군아!"
그녀가 눈을 찡긋하며 손을 흔들었다. 반면 윌은 인상을 험악하게 굳혔다.
"방해하지 마라. 벤야 바닐라."
"네 인사는 끝난 것 같은데."
벤야가 윌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젠 내가 동아리 후배한테 인사 좀 하면 안 될까?"
"어이."
윌이 시몬의 손을 거칠게 놓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후배 앞에서, 그리고 이렇게 보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방해를 하는 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만만하냐?"
"하아."
"바닐라를 뒷배에 뒀다고 지금......!"
"윌!"
그때 목소리를 높이며 두 사람을 제지한 건 의외로 레오나드였다.
"벤야는 석차 7위야. 아무리 후배가 반갑더라도 벤야가 먼저 악수한 뒤에 네가 악수해야지. 이번엔 네가 실수한 거야."
"레오나드......!"
"네가 말했던 것처럼, 순서는 지키자."
윌이 입매를 비틀더니, 등을 돌려 가버렸다. 시몬은 고개를 돌려 레오나드를 바라보았다.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이네.'
레오나드는 윌을 꾸짖었지만, 지금 행위는 엄연히 레오나드가 윌을 구해준 거였다. 나중에 윌이 찾아가서 조용히 고맙다고 하겠지.
"뭐 아무튼, 정말 환영해 제군아! 네가 소환학과를 정복하러 와줄 거라 믿고 있었어!"
벤야가 손을 내밀었다. 시몬도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나저나 학생회장이 됐다니 아쉽네~ 제군이한테 동아리 회장직 맡길 생각이었는데."
동아리 회장은 보통 2학년이 맡는 게 관례였다. 3학년들은 외부에 나갈 일이 많기도 하고, 다른 직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토토나 피츠제럴드도 잘할 거예요."
"응! 그렇겠지."
그래도 이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벤야는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온다며 밖으로 나갔고, 시몬은 3학년들을 지나 2학년들의 자리인 테이블 뒤쪽에 홀로 앉았다.
'휑하네.'
시몬이 다리를 쭉 펴고 등받이에 지친 몸을 기대는데, 연단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석차 2위의 샤텔 마에르는 칠흑역학과를 선택했다! 다들 박수!"
거인혼혈 샤텔 마에르가 걸어가 제인과 악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샤텔은 육체적인 능력도 대단했지만, 칠흑대지계에 특화된 네크로맨서였으니까.
그 뒤로는 홍펭이 연이어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거인의 축복받은 육체를 마투로 키워보고 싶었으리라.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샤텔이 학과를 선택하자, 시몬의 바로 옆 테이블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칠흑역학과의 테이블.
3학년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고, 테이블에 올라가 교복 재킷을 빙빙 흔들기도 했다.
"거인혼혈이 우리 과에!"
"잘 왔다! 샤텔!!"
시몬이 소환학과에 들어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
이내 샤텔이 연단에서 내려와 칠흑역과 테이블에 도착하자 선배들이 쾌활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퍼엉! 펑!
칠흑역학의 원소마법으로 만든 형형색색의 축하 폭죽이 터지며 현란한 자태를 뽐냈다.
원래 실내에서 흑마법을 쓰는 건 금지였지만, 교수들도 오늘만큼은 눈감아주는 모양이었다.
과묵한 샤텔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곧 선배들이 우르르 주위를 둘러싸 질문 공세를 쏟아내며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럼 다음은 석차 3위, 헥토르 무어! 앞으로!"
어느새 헥토르의 차례.
시몬도 상당히 관심이 갔기에, 고개를 쭉 세웠다. 이내 헥토르가 불의 제단 속에서 카드를 뽑아 드는 모습이 보였다.
"빠른 결정 시원하네! 헥토르 무어의 선택은 소환학과다!"
이야아아아아아아!
이번에는 다른 곳도 아닌, 시몬이 있는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어서 와라! 무어 가문!"
"소환학과에!"
아까 그렇게 공격적으로 굴던 윌은 물론, 학과대표인 레오나드도 손뼉을 치며 웃고 있었다.
소환학과 학생들은 스켈레톤에게 악기를 쥐여주고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소환학과로 오는구나.'
헥토르는 못 하는 과목이 없는 전천후 만능형이었지만, 무어 가문의 '드래곤 폼'을 더 강화하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시룡(屍龍)은 엄연히 소환학의 영역이었으니까.
이내 아론 교수와 악수한 헥토르가 소환학과 테이블에 도착하자 모두가 큰 소리로 웃으며 반겨주었다.
"소환학과에 온 걸 환영한다. 나는 소환학과 대표고, 전체 석차 4위의 레오나드야."
"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헥토르 무어입니다."
헥토르답게 윗사람들에게는 또 공손하게 구는 모습이다. 홀로 앉은 시몬은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헥토르가 선배들과 인사를 마치고, 시몬이 있는 아래쪽 테이블로 내려오려는 그때.
"이봐, 후배님!"
윌이 헥토르의 목에 팔을 두르며 살갑게 말했다.
"어디 가려고? 네 자리는 저쪽이야!"
헥토르가 고개를 돌리자 레오나드가 자신의 옆자리를 비운 채 웃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헥토르는 하는 수 없이 레오나드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레오나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두들겼다.
"무어 가문이 우리에게 와주다니, 정말 마음 든든해."
"예, 학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레오나드가 뭔가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헥토르 쪽으로 스윽 밀었다.
"......이건."
소환학과 문양이 새겨진 완장이었다. 레오나드가 미소 지었다.
"헥토르 무어. 네게 2학년 학과대표를 맡기고 싶은데."
"......."
어지간하면 자신의 윗사람에게 대들지 않는 헥토르였지만, 이번만큼은 차갑게 대꾸했다.
"이런 자리에는 관심 없습니다."
"너 말고는 없어서 그래."
레오나드가 설득을 시작했다.
"원래는 석차 1위인 시몬 폴렌티아에게 주려고 했지만, 학생회장이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 한마디에 시큰둥하던 헥토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금."
그의 목소리에 강한 불쾌감이 실렸다.
"내가 그놈 대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
헥토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지만, 레오나드는 낯빛 한번 바뀌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학과대표는 2학년 학과생 전체를 책임지는 직위지. 학과에 있을 때는 학생회장이고 뭐고 네가 최고야."
레오나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너 말고는 없다는 뜻이야. 시몬 폴렌티아와 동등하게 맞서고, 그를 통제할 인물은."
"......."
헥토르의 고민이 길어졌다.
그리고 고민 끝에
"받겠습니다."
그가 학과 완장을 손에 쥐었다.
* * *
"석차 4위, 메리다 휴 이켈은 저주학과로 간다! 박수!"
이번에는 가장 좌측, 저주학 테이블에 앉은 3학년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판타서스 회장의 여동생! 잘 부탁한다!"
"저주학과에 어서 와!"
"동생도 전설을 써 내려가야지!"
바힐이 이번 행사에 불참했기에, 수석조교 체헤클과 악수하고 내려온 메리다는 졸린 눈으로 저주학과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선배들과 인사하고 난 뒤, 바로 테이블에 엎드려 졸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메리다도 수면 저주 특화겠지.'
시몬은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판타서스가 직접 가르쳐 준 슬립 마법진이 빠르게 펼쳐졌다.
'궁금하네, 어느 쪽이 더 강할지.'
순식간에 곯아떨어지는 메리다를 보며 저주학과 3학년들은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깔깔 웃었다. 저쪽은 나름 군기를 잡기보다는, 학과대표가 풀어주는 스타일인 모양이다.
"다음은 석차 5위. 아세라즈 미켈! 오, 그래. 미리 나와 있는 거 센스 있네. 다음 6위 7위 8위도 미리 연단 밑에서 딱 대기해라!"
아세라즈가 방송 하수인으로부터 확성 수정구를 받아들자 별야가 물었다.
"야아, 특례도 아닌데 이번에 5위로 치고 올라왔더라? 필기시험도 전교 1등이고?"
"운이 좋았어요. 예습 복습 잘하고, 그저 교과서 위주로......."
아세라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오만상을 구긴 채 지켜보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지랄 똥 싸는 소리 하네.'
바로 연단 아래에서 대기하던 메이린이었다.
바로 저 녀석 때문에 필기시험 전체 1위를 놓쳤다. 그것도 두 번이나.
'으으으, 분해! 올해는 꼭......!'
"저 저기. 부회장."
누군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메이린이 뭔가 싶어서 보니, 양 갈래머리의 소녀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석차 7위, 유령선을 조종하는 엘리사 셀렌이었다.
"뭐."
썩 달갑지 않은 인물이었기에, 메이린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너 나랑 친해? 왜 갑자기 말 걸고 난리야?"
"......그으, 그."
엘리사는 어울리지 않고 입술을 살짝살짝 깨물며 제 발끝을 바라보았다.
"아, 뭐! 빨리 말 안 하면 나 간다?"
메이린의 짜증스러운 외침에, 엘리사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시, 시몬! 아니. 우리 학생회장님! 혹시 나한테 앙금 같은 거 좀 남아 있는 것 같...... 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