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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55화 (45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55화

"옆에 앉아도 돼?"

시몬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자리에 앉은 로레인은 눈을 차분하게 내리깐 채 넥타이를 바로 잡았다.

"뭘 또 주워 먹을 게 있어서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을까~"

맞은편의 세르네가 뚱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난 처음부터 소환학 지망이었어."

옷깃을 반듯하게 접은 그녀가 차분한 어조로 반박했다.

"주워 먹을 게 있어서 찾아온 너와는 달리."

"과연 그럴까요?"

서로를 노려보는 두 소녀의 눈에서 스파크가 마구 튀었다. 그 가운데에 낀 시몬만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미치겠네.'

시몬은 선배들도 있는데 사고가 터질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다른 테이블의 2학년 학생들은 부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젠 학생회장과, 네프티스의 딸, 그리고 상아탑 후계자의 조합.

가히 범접하기 어려운 구성이었다.

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암흑연합의 미래와 비전, 그리고 세력 구도를 양분하기 위한 치열한 암투가 오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사람 진짜 웃긴다니까요! 온갖 시크한 척 도도한 척 똥폼은 다 잡으면서, 속옷은 분명 귀여운 핑크색 토끼가 그려진 걸로 입고 왔겠죠?"

"그거 성희롱이야. 세르네 아인다르크."

"아뇨~ 나도 귀여운 거 좋아해서요. 그럼 시몬은 어떤 취향? 란제리? 아님 비치는 거?"

"......제발 부탁인데 날 이런 대화에 끼어 들이지 마."

사실은 그냥 쓸데없는 시시한 잡담이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압도적인 강자들이 소환학에 몰려서 그럴까, 원래 인기 없는 소환학과는 석차 382위의 토토가 합류하는 것으로 50명을 간신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391위 소엔 바루스. 맹독학과!"

"394위 그라스트 레인. 맹독학과!"

딕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죽어나고 있었다.

칠흑역학과와 저주학과는 벌써 정원이 꽉 찼고, 맹독학과의 자리는 60명 중에서 59명이 찼다. 앞선 다섯 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맹독학과를 고르면 끝장이었다.

"크으읍! 제에바아알!"

연단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딕이 호들갑을 떨며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올해는 공부할게요! 진짜 올해는 열심히 공부할 테니까 제발 한 자리마안!"

보다 못한 방송 하수인이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만, 다급한 딕의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397위, 리라리 안르. 혈류학과로."

"398위, 기욤 마리로스. 마투학과다."

딕이 연단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이 막 불꽃에서 카드를 뽑고 있었다.

"399위, 아볼라 로드필드. 사령학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오오오오오!"

갑작스러운 괴성과 함께 딕이 감격의 눈물을 뿌리며 달려왔다.

"별야 교수님!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으하하핫!"

그러곤 대뜸 사회를 보던 별야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얌마! 위험하게시리 뭔 짓이야?"

"허억!"

딕이 이마를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에 어느새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더워서 땀 났다고. 이것아."

별야는 땀이나 각종 체내 분비물에 독성분이 묻어나오는 체질이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비록 얼굴에 두드러기가 났지만, 딕은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그리며 벌떡 일어났다.

"저 석차 400위! 딕 헤이워드의 선택은 바로!"

그러곤 사회자인 별야가 말하기도 전에 달려가 맹독학과의 제단의 불길에 손을 올렸다.

불길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고, 딕이 그 안에서 카드를 뽑자마자 휙 꺼져 버렸다.

한 학과의 정원이 다 찼다는 의미였다.

"음흐흐!"

자신의 학생증을 뽑아 든 딕이 미소 지었다. 뒤편에는 맹독학과를 상징하는 깨진 포션병과 해골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 더 또라이 같은 새끼가 있을 줄은 몰랐네."

별야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석차 400위, 딕 헤이워드. 내 마지막 학생이다!"

"예에에에에에에쓰으으!"

얼굴에 두드러기 꽃이 핀 딕이 연단을 달려가더니 무릎 세레머니를 하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어이없는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쟤 뭐야?"

"누가 보면 시험 1위라도 찍은 줄."

그때 맹독학과 테이블의 가장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턱을 괴었다.

[뭐 하나.]

무려 3학년 전체 2위.

에이젤의 유일한 라이벌이라던 '발락'의 마스크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놈도 우리 가족이다.]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맹독학과 3학년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환영한다! 딕 뭐시기!"

"400등 막차러! 맹독학과에 어서 와!"

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을 들은 딕이 감격에 찬 눈으로 맹독학과 테이블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이 딕 헤이워드가 갑니다!"

호들갑을 떨며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칠흑역학과 테이블에 앉아 있던 메이린은 조용히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아우우우,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놈."

혈류학과 테이블의 카미바레즈도 선배들이 딕에 대해 묻자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성격은 참 밝고 좋아요!"

그리고 소환학과 테이블.

"당신 친구 아녜요?"

세르네의 물음에 시몬은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베프야."

* * *

그렇게 모든 학과 선정식이 끝났다.

저주학과 60명 / 바힐 교수

칠흑역학과 60명 / 제인 교수

소환학과 50명 / 아론 교수

사령학과 58명 / 스테이시 교수

혈류학과 55명 / 프레스턴 교수

맹독학과 60명 / 별야 교수

마투학과 57명 / 홍펭 교수

반전의 여지 없이, 저주학과와 칠흑역학과는 가장 빠르게 60명 정원을 다 채웠다.

소환학과는 50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인재풀은 그 어떤 학과보다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혈류학과는 최근 실라지 및 혈천교 사태로 인기가 떨어졌고, 별야가 이끄는 맹독학과가 반사이익을 챙기며 60명 정원을 기록했다.

"그럼, 기숙사로 출발하자!"

학과대표 레오나드를 필두로 3학년 선배들이 2학년들을 데리고 이동했다.

키젠 2학년부터는 학과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대체로 아래층은 2학년들이, 위층은 3학년들이 쓰고 있다.

"어, 저주학과 애들 저쪽으로 간다."

"저 큰 건물 쓰나 보네."

저주학과와 칠흑역학과 학생들은 거리상으로도 캠퍼스와 가깝고 큼직큼직한 신식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소환학과 기숙사는 캠퍼스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 같은 곳에 있었다.

2학년 학생들이 조그맣게 속닥댔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금지된 숲까지 들어가는 것 같은데."

"학과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게 맞는 말이......."

"어이, 거기."

군기반장인 윌이 눈을 부라렸다.

"불만 있냐."

세 사람의 입이 쑥 들어갔다. 이제 2학년들은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으왕! 벌레 무서워요, 시몬!"

물론 한 사람만 빼고.

세르네가 시몬의 옆에 찰싹 붙어서 세상 연약한 척을 하고 있었다. 주위의 분위기를 읽은 시몬이 그녀를 떨어뜨렸다.

"그럼 결계라도 펼치든가. 잘하잖아."

"펼쳤는데요?"

"응? 어디?"

시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세르네가 얍! 하고 시몬에게 철썩 들러붙었다.

"시몬의 품 안!"

시몬의 뺨이 어쩔 도리 없이 시뻘게졌고, 세르네는 그 반응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어댔다.

"그만해."

로레인이 말했다.

"시몬이 싫어하잖아."

"에이~ 말로만 그러지 진짜 싫을 리가요. 이런 호사가 싫으면 그게 고자지, 남잔가?"

그렇게 말한 세르네가 혀를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참 당신도 재미없네요~ 맨날 뭐만 하면 '하지 마!', '그만해!' 니가 선생님이세요 아님 우리 엄마세요?"

"너 자꾸 사람 신경 긁을래?"

두 사람이 대립하기 시작하자, 시몬이 한숨을 쉬며 중재했다.

선배들의 눈치를 보던 다른 2학년 학생들도 두 사람의 싸움을 보곤 웃음을 흘렸고 다소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그리고.

"......."

윌이 이를 빠득 갈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네프티스의 딸이 옆에 있어서 이걸 뭐라 할 수도 없고.

"윌, 괜한 짓 하지 마."

앞서 걸어가던 레오나드가 미리 충고했다. 윌이 깜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레오나드의 관심사는 뒤에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든든한 후배를 바라보았다.

"그 완장, 어울리네. 헥토르."

헥토르는 팔뚝에 2학년 소환학과 대표를 상징하는 완장을 찬 채로 걷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레오나드는 그렇게 묻고는 헥토르가 답하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규율이야."

"......."

"이번 우리 학과에는 2학년 학생회장도 있고, 이레귤러들도 있어. 통제가 조금 어렵게 됐지만, 적어도 학과 내에서는 학과대표인 네 명령이 최우선이지."

"예."

"네가 학과의 얼굴이야. 네 지시가 곧 내 지시이고, 학과의 뜻이기도 하지. 그 아이들도 결국 조직에 속한 이상 네 명령에 따라야만 해. 그래야 시스템이 돌아가거든."

"알겠습니다."

"우리 3학년이 적극적으로 밀어줄 테니까 제대로 한번 해봐. 애들을 빠르게 휘어잡는 게 중요하겠지?"

"예."

"그럼 학과대표로서, 2학년 학과대표에게 주는 첫 번째 미션이야."

레오나드가 헥토르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저녁에 학과 환영회가 열릴 거야. 참석은 자유라지만, 학과생활에 충실하고 싶다면 당연히 모여야겠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아봐."

키젠의 학과 환영회는 악명이 높았다.

특히 괴상한 신고식으로 유명한데, 저주학과에서는 후배들에게 동물이 되는 저주를 걸고 가지고 놀거나, 맹독학과는 독극물 그릇에 얼굴을 처박는 것으로 유명했다.

헥토르가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 * *

소환학과 기숙사에 도착했다.

금지된 숲과 등을 맞대고 있는, 캠퍼스에서 가장 구석에 있는 자리. 하지만 시몬은 이 위치가 꽤 만족스러웠다.

아득한 풀벌레 소리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약간 레스힐 느낌이 나면서도 피어를 조금 더 쉽게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멀지?"

학과대표 레오나드가 후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바보는 없으니 즉각 '아닙니다!'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일찍 일어나거나, 통학용 기승형 소환수를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툭.

"으아아!"

앞서 걸어가던 토토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뼈를 밟고 자리에 넘어졌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심해."

레오나드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정원은 언데드를 만들고 난 재료들이 굴러다녀서 좀 위험할 수도 있어. 아, 그러니까 좀 썼으면 치우라니까."

레오나드의 3학년 동기가 그 말을 받았다.

"파이어 골렘 만들다가 숲 홀라당 태워 버린 니가 할 말은 아닌 듯."

"하하하하!"

주위의 3학년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레오나드도 민망한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후배들 앞에서는 갈구는 거 참아달라니까."

"또 또 저 토라지는 표정 나온다."

"후배들아, 조심해라. 레오나드는 한번 삐치면 3주는 간다."

2학년들도 대놓고 웃지는 않았지만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시몬은 가만히 레오나드를 보았다.

리더로서는 전형적인 덕장 타입.

인망이 두텁고, 두루두루 모두와 친하고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전체 4위에 학과대표나 되는 사람인데, 친구들이 장난치고 때리고 말 거는 행동 등에 어색함이 없다.

게다가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급하며 살아남은 소환학과 학생들은 고작 스무 명.

가족처럼 아주 끈끈한 관계일 것이다. 외부에서 오는 그 어떤 종류의 도전이라도 저 스무 명이 똘똘 뭉쳐 대항하겠지.

"그럼, 들어가자!"

레오나드가 앞장섰다.

드디어 저 앞에 소환학과의 기숙사 건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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