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56화
소환학과 기숙사의 구조는 상당히 특이했다.
'저게 지붕이 다 몇 개야?'
커다란 목조 건물이었는데 지붕이 산맥의 봉우리처럼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하나의 큰 건물에 여러 방을 이어서 덕지덕지 붙여놓은 느낌, 무너지지 않을까 살짝 걱정스러면서도 묘한 감성이 있다. 은퇴한 마녀가 심심풀이로 마법을 부려서 숲속에 지어놓은 동화 속의 은거지 같다.
소환학과 기숙사답게 뼈로 지어진 방도 있었고, 꿈틀꿈틀 움직이는 방도 있었다. 그리고 기숙사 건물의 지붕을 뚫고 나온 커다란 나무도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위에도 아담한 집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건 키가 3미터가 넘는 스켈레톤 두 기였다. 손에는 커다란 할버드가 들려 있었기에, 2학년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건 그냥 인테리어야."
레오나드의 말에, 학생들은 속으로 안도하며 지나갔다.
"휴우, 쫄았네."
"이것도 인테리어인가?"
한 학생이 석상을 발로 가볍게 건드렸다. 그러나 석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그 학생을 앞발로 후려쳤다.
"허억!"
"하하하하! 그건 진짜 가고일이야! 조심해."
스켈레톤과 가고일을 넘어 실내로 들어오니 온기와 함께 나무 수액 냄새가 물씬 풍겼다. 천장에 달린 오렌지빛 조명 덕분에 기숙사 내부는 극도로 포근한 분위기였다.
두 개의 난로에서는 은은한 온기가 퍼져나가고 있었고, 곳곳에 소환학과다운 언데드 장식물이 보였다. 천장에 삐걱거리며 매달려 있는 몬스터 뼈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었는데, 밤에 보면 꽤 무서울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는 벽면에 수족관도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물고기 떼가 뽀글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선배들의 손이 수족관 유리에 닿기라도 하면 새까맣게 몰려와 이빨을 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선배들은 이제 익숙한 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물고기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여기가 로비야."
레오나드가 설명했다.
"로비로 집합. 하는 방송이 들리면 이쪽으로 내려와서 모이면 돼. 그리고 이분은 기숙사 관리원님."
로비의 프런트에 앉아 있는 하수인이 일어나 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로비는 자유롭게 사용해도 되지만, 고성방가는 물론, 흡연, 음식물 취식은 당연히 금지야."
레오나드가 자연스럽게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은 바로 휴게실이야."
"와아!"
뒤이어서 휴게실, 빨래방, 공용부엌 등을 돌아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실 시몬은 크고 삐까번쩍한 다른 건물보다 이런 집처럼 포근한 환경이 더 취향이었다.
이제 레오나드는 학생들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여긴 작업장이야."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마도 이 숙소에서 가장 큰 시설이 아닐까.
돌연변이 동아리에 처음 왔을 때, 딱 그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선반에는 각종 언데드 재료들이 쫙 깔려 있었다.
"책상은 하나씩 배정해 줄 거야. 그리고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면 큰일 나니까 주의해. 소환학과는 재료 도둑질 같은 거에 꽤 민감하거든. 냉동고에 재료를 보관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름을 써서 붙일 것."
레오나드가 줄줄 설명을 늘어놓았다.
'점점 더 마음에 드는데.'
시몬은 이 기숙사와, 앞으로의 생활에 빠르게 매료되는 중이었다. 이 장소는 소환학도의 로망을 200%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으, 꿉꿉한 시체 냄새~"
세르네만 눈치 없이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3학년 여학생 한 명이 눈치를 주려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세르네라는 걸 깨닫고 얼른 다시 고개를 되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외에도 여러 작업실들이 있었다.
"이렇게 스위치를 올리면."
드드득!
옆 작업실에 들어온 레오나드가 레버를 당기자, 꽤 강한 소음과 함께 주위가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있었다. 마치 밀실에 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
학생들이 두리번거렸다. 이 방 전체가 충만한 마나로 뒤덮이고 있다.
"좋지? 여기서 마법진을 만들면 꽤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물론 마나를 켠 사람은 갈 때 반드시 끄고 나갈 것. 세세한 마나 장치 사용법은 작업하고 있는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줄 거야."
그 외에도 시몬과 학생들은 여러 시설을 돌아다녔다. 개인 창고나 냉각수 장치는 물론, 잡아 온 몬스터를 보관하는 장소까지 있었다.
레오나드가 학생들이 가장 기대하던 목욕탕에 가서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시몬의 머릿속은 앞선 작업장 생각들뿐이었다.
"자, 여기까지 돌아봤으면 됐고, 이제 방 배정을 할 건데."
드디어!
모든 2학년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방은 2인 1실이야. 그냥 친한 사람들끼리 알아서 정하게 두는 게 좋겠지?"
"네에!!"
"그래, 그래. 알겠어. 여기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사감 선생님이 오실 거야."
기숙사를 설명해 준 레오나드는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2학년들은 1층과 2층 방을 쓰고, 3학년들은 3층과 4층을 사용했다.
다른 3학년들도 모두 올라가고 있는데.
"모두 주목."
2학년 학과대표인 헥토르가 앞으로 나섰다.
3학년 윌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더니, 2학년들을 한번 살벌하게 훑은 후 레오나드를 따라 올라갔다.
"방 배정 전에, 우리가 지켜야 할 간단한 규칙을 설명하고 가겠다."
규칙이라길래 통근 시간이나 목욕탕 룰 같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다른 규칙이었다.
2학년은 기숙사 3층 이상으로 절대 올라가지 말 것.
선배를 만나면 허리까지 굽혀서 깍듯하게 인사할 것.
개인 창고에서 선배들이 있으면, 선배들이 나갈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선배들이 나갈 때 인사한 후 쓸 것.
냉각수는 2학년 당번이 채워 넣을 것.
선배들이 심부름을 시키면 군말 없이 따를 것.
등등.
납득이 되는 것에서부터,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내용까지. 흔히 말하는 선후배 간에 적용되는 그런 규칙이었다.
"시몬~ 시몬~"
세르네가 속삭이듯 말했다.
"어디서 꼰대 냄새나는 것 같지 않아요?"
몇몇 학생들이 숨죽인 웃음소리를 냈다. 시몬은 세르네에게 눈치를 주었고, 로레인은 그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물론, 이건 학교에서 지키라고 규정한 게 아닌 학생들 간의 룰이다."
헥토르가 말했다.
"강요하진 않겠다. 하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이런 게 학과생활이다. 남들 다 하는 걸, 다 했던 걸, 거부하는 게 사회 부적응자지. 뭐가 부적응자겠나."
주위가 한 차례 조용해졌다.
"저녁에 학과생 환영회가 있다."
헥토르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참여는 자유지만, 머리에 생각이 제대로 박혔다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참여하길 바란다. 선배들의 인맥은 학과생활은 물론 졸업 후에도 중요하다. 굳이 척을 질 필요가 없단 뜻이다."
그때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펑퍼짐한 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헥토르는 빠르게 물러나 자리로 돌아왔다.
"기숙사 사감, 마가렛이라고 합니다."
마가렛은 무척이나 엄격하고 깐깐해 보이는 성격이었다.
다른 하수인들과는 달리, 사감은 학생들을 통제하고 벌점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기숙사 생활에서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지금부터 주의사항을 설명하겠습니다."
인사는 한 줄, 바로 주의사항부터 줄줄 늘어놓는 그녀였다.
헥토르는 선후배 간의 규칙을 설명했지만, 사감 마가렛은 평범한 생활에 대한 정석적인 규칙을 이야기했다.
통금시간, 벌점규정, 빨래 에티켓.
그 외에도 쓰레기 구분해서 버리는 방법, 기숙사 내에서 음주 및 시가 등을 피우는 것도 금지였다. 특히 이성의 방에 몰래 들어가면 방주인과 당사자 모두 최고 벌점을 부여받았다.
"할 것만 하고 쉬면 사감도 여러분께 간섭하고 벌점을 드릴 이유는 없습니다."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부디 규칙을 잘 지켜서 생활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
"그럼 이제 방 배정을 시작하겠습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방 번호를 확인하고. 원하는 룸메이트와 함께 이 서류에 서명하면 되겠습니다. 남학생들은 오른쪽 계단, 여학생들은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시작하시죠."
파바밧!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칠흑을 밟고 날아올랐다.
좋은 방을 선점하기 위해 학생들이 계단을 향해 뛰어가는데, 사감의 입이 괴물처럼 우악스럽게 벌어졌다.
"실내에서 뛰면 벌점이라고 했을 텐데!!"
학생들이 일제히 찔끔하며 뜀박질에서 걸음으로 바뀌었다.
"특히 칠흑을 밟고 뛴 초록머리 남학생과 그 옆의 남학생, 이리로 오세요. 벌점입니다."
"네, 네? 벌써?"
"이리로 오세요."
두 학생이 낙오되어 사감에게 터덜터덜 걸어가는 사이,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 2층으로 향했다.
"에이, 뭐야."
"딱히 명당 같은 건 없나 본데?"
제일 먼저 올라간 학생들이 그렇게 말했다. 시몬도 확인해 봤지만 방의 크기나 안에 들어간 비품, 침대의 사이즈 등 대부분이 동일했다.
방이 다 거기서 거기라면, 다음으로 중요한 건 룸메이트였다.
"잠깐, 학생회장!!"
방을 구경하고 있던 시몬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웬 처음 보는 갈색머리 남학생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랑 잘래? 고고?"
모르는 사람이 대뜸 그렇게 말하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 뒤로 학생들이 몇 명 더 다가왔다.
"야! 시몬! 저 새끼 코 X나 고는 거 내가 봤다."
"넌 이 갈잖아 미친놈아!"
"시몬! 아니, 회장! 너 볼드윈 출신이라며? 나도 볼드윈이야!"
2학년 학과생활 첫날.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다른 학과로 갈가리 찢어졌고, 서로서로 처음 보는 입장이다.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다면, 유명인에게 들러붙어 인맥을 부풀리는 게 가장 안정적인 선택 중 하나다.
물론 당사자인 시몬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딕도 없으니, 사실 누구랑 방을 써도 크게 상관없긴 한데.'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몇 명은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조금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그냥 순수하게 친구 하자는 느낌이 아니라, 내 배경을 보고 뭔가를 뜯어내겠다는 욕망이 눈에 번들거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시몬은, 손을 내미는 학생들 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키가 작고 왜소한 그는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말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자기 스스로 체념하고는 등을 돌렸다.
"다들, 제안은 고맙지만 미안해."
시몬이 말했다.
"룸메이트 하기로 약속한 애가 있거든."
그 말에 돌아가고 있던 키 작은 소년이 걸음을 멈췄다. 시몬도 그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토토?"
"!"
토토가 등을 홱 돌려 시몬을 보았다. 주위의 학생들이 그게 진짜냐는 듯 지그시 토토를 노려보았다.
'쟨 뭐야?'
'학생회장이 저런 애랑?'
토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하지만 주위 학생들의 압박보다, 시몬이 나를 선택해 줬다는 감격이 더 컸다.
"맞아, 시몬! 방 어디로 할지 정했어?"
시몬이 슬쩍 웃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이 방 어때? 계단이랑 가깝고 좋아 보이는데."
"응, 좋아!"
주위의 학생들도 결국 미련을 접고 걸음을 옮겼다. 둘만 남게 되자, 토토가 감격한 눈으로 말했다.
"진짜로 나랑 같이 방 쓸 거야?"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너만 괜찮다면."
"정말 고마워, 시몬!"
"내가 더 고맙지."
두 사람은 계단을 내려가 방 하나에 서로의 이름을 쓰고 서명을 기입했다.
"참, 그러고 보니 피츠제럴드는?"
"아까 서명할 때 보니까 벌써 다른 애랑 방을 잡았더라."
"잘됐네. 우리도 일단 짐부터 풀자."
"응!"
* * *
기숙사 방은 작지만 아늑하고 좋았다. 특히 편안함이 1학년 때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물론 건물 자체는 1학년 기숙사가 더 좋았겠지만, 그때는 한 방을 세 명이서 썼었고 지금은 딱 두 명만 쓰게 됐으니 방도 상대적으로 크고 넓어 보였다.
"시몬! 그거 알아? 3학년들은 제일 크고 좋은 방 하나를 혼자서 쓴대!"
"그 방 쓰고 싶어서라도 진급해야겠는데."
"아하하!"
토토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친해진 뒤에는 말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타입이었다. 특히 소환학이라는 관심사가 겹치다 보니 말도 잘 통했다.
잡담을 하며 아공간에서 짐을 꺼내 정리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저녁이었다.
"웃차."
시몬은 푹신한 침대 위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할 게 많았다.
학과 환영회도 가야 하고, 바힐이 어떻게 된 건지도 알아봐야 하고, 피어의 유적에 가서 군단장으로서 보고도 들어야 했다.
학과 환영회는 적당히 어울렸다가 눈치 보고 빠져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날이 저무네. 떨린다."
창밖을 보던 토토가 이를 딱딱거렸다.
"왜 떨리는데?"
"환영회 말야! 선배들이 술 엄청 먹이고, 장기자랑도 시키고, 막 신고식 같은 것도 한다는데......."
"힘들 것 같으면 선배들한테 말하고 적당히 빠져나와."
"그, 그걸 어떻게 말해!"
그때 복도 쪽에서 방송음이 들렸다.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 지금 바로 로비로 내려와 주시길 바랍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무슨 일이지?"
"학생회 일 때문에 부르는 것 같은데."
"아, 그런가 보네."
시몬이 셔츠 위에 겉옷을 두르고 나설 채비를 하자 토토가 부러움을 삼키고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와."
"일 끝나면 늦게라도 환영회에 들를게."
"아, 아냐. 최대한 학생회에 오래 있어! 괜히 여기 와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알았지?"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학생. 지금 당장 로비로 내려와 주시길 바랍니다.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사감 선생님 성격 급하시네. 갔다 올게."
"응!"
시몬은 바로 방을 나서서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갔다.
사감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교내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바로 학생회관 건물로 가도록 하세요."
"무슨 일인가요?"
"학생회 소집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그쪽에서 확인하세요."
고개를 끄덕인 시몬은 바로 걸음을 옮겼다. 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데.
"시몬 폴렌티아."
팔짱을 낀 헥토르가 벽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었다. 시몬이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아, 헥토르. 오랜만이......."
"인사 같은 건 집어치우고."
헥토르가 등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벌써 선배들과 척질 생각이냐."
"......갑자기 무슨 소리야?"
"3학년 선배들은 2학년 학생회장을 달갑잖게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선배들이 주최한 환영회에, 학생회장 일을 명분으로 빠져나가는 거라면 더더욱 탐착지 않게 여기겠지."
"......."
헥토르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 자리도 몇 개월 하다가 에이젤 선배가 돌아오면 넘겨주는 걸로 알고 있다. 멀리 보고 생각한다면, 어느 쪽에 투자하는 게 현명할지 계산이 설 텐데."
시몬이 슬쩍 웃었다.
"몇 개월이든 몇 주든, 이건 내게 주어진 책무야. 못 들은 척할 순 없어."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몬은, 헥토르가 더 강압적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2학년 학과대표고, 모든 학생들이 환영회에 참석하게 만드는 게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음대로 해라."
헥토르는 쿨하게 등을 돌려 걸어갔다.
"대신 뒷감당은 네 몫이다."
달칵!
기숙사 문이 닫혔다. 시몬은 어두워지는 정원을 바라보며 옷깃을 여몄다.
'가볼까.'
* * *
2학년 캠퍼스는 어두워지는 와중에도 마나 조명을 단 가로등 덕분에 반짝반짝했다.
무사히 캠퍼스에 도착한 시몬은 중앙의 학생회관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생회장님."
입구에서 대기하던 하수인이 고개를 숙였다.
"우선 휴게실로 가시죠.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몬은 그를 따라 1층의 불 켜진 휴게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시몬! 왔어요?"
카미바레즈가 앙증맞은 날개를 퍼덕이며 시몬을 반겨주었다. 표정이 조금 굳어져 있던 메이린과 딕도 시몬을 보고는 한결 얼굴이 퍼졌다.
"왔어, 회장?"
"헤이! 마이 베프!"
딕이 주먹을 내밀자 시몬도 맞부딪혀 주었다.
"안녕."
"흐흐, 와. 진짜."
딕이 낄낄 웃었다.
"그 잠깐 몇 시간 얼굴 못 본 건데 다들 왜 이렇게 반갑냐."
"맞아요!"
카미바레즈가 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은 '웃차' 소리를 내며 적당히 소파에 걸터앉았다.
"오늘부터 바로 학생회 일 하나 보네."
"응 응. 지금 학생회실 치운다고 잠시 여기서 앉아 있으래."
메이린이 말했다. 시몬은 등을 펴고 친구들을 보았다.
"다들 학과 분위기 어때?"
시몬이 그 화제를 꺼내는 순간.
"엄청 엄청 낯설었어요!"
"무서워! 선배들 더럽게 무게 잡고 무섭게 군다니까!"
"에이, 칠흑역학과는 순한 맛이지. 맹독학과는 진짜 개또라이들밖에 없어!"
"우리 과대 선배는!"
"들어봐! 일단 내 말부터 들어봐!"
막힌 댐에 물 터져 나오듯 토크가 튀어나왔다.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한 명씩 이야기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