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57화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은 매점에서 사 온 과자 봉투를 펼쳐놓고, 흥분에 찬 만담을 시작했다.
시몬은 온화한 성격의 레오나드가 학과대표여서 그런지, 학과생활의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세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보다 한 살 많은 거 맞아? 진짜 완전 꼰대들이야!"
메이린이 열을 올렸다.
"무조건 이렇게 해! 저렇게 해! 밥 먹다가도 선배들 오면 죄다 일어나서 고개 숙여야 하고, 샤워실에 선배들 있으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오매불망 기다려야 되고, 그냥 다 같이 쓰면 어디가 덧나나? 실력주의 키젠에서 이게 다 무슨 짓인데?"
"아마 며칠간은 군기 빡세게 잡을 거야."
딕이 피곤한 목소리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올해 3학년들이 좀 자격지심 같은 게 있어. 우리 2학년들이 워낙 역대급 기수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기를 꺾어놓으려 할 거야."
"맞아! 그리고 괴롭히는 이유도 진짜 어이없어!"
분노를 쏟아내는 메이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선후배 간의 지켜야 할 예의? 지들은 우리한테 무슨 예의를 지키는데? 툭 까놓고 말해 우리도 위에서 당했으니까 니들도 겪어봐라. 이런 마인드인 게 빤히 보이잖아!"
"그, 그래도."
카미바레즈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좋은 선배님들도 계셨어요."
"아, 응응. 물론 그렇지!"
메이린도 본인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았다.
"3학년 선배들과 무조건 척질 수는 없어."
시몬이 과열된 분위기를 중재했다.
"딕의 말대로 처음 몇 주 정도는 우리가 더 신경을 쓰자.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으면 우리 학생회가 중재하는 방향으로 가야겠지."
"흐흐! 시몬 넌 좀 있으면 그런 말도 안 나올걸."
딕이 음침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시몬의 어깨를 툭 쳤다.
"소환학과 신고식이 그렇게 빡세기로 유명하다던데."
"그래?"
"소환학과랑 맹독학과가 투톱이랜다."
딕이 혀를 빼 밀고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죽을 정도로 괴롭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하아, 그래도 우린 학생회라서 그나마 다행이야!"
메이린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늦게 끝나면 신고식 안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카미바레즈도 옅게 웃음을 지었다.
"저도 학생회 일로 나간다니까 주위에서 부러워했어요. 다들 신고식 걱정으로 표정이 안 좋았어요."
"야, 야, 시몬! 우리 여기서 오래 있다 갈 거지? 최대한 늦게 가자! 최대한!"
"하하, 그건 너희들 알아서 해."
시몬은 홀로 학과에 남은 토토가 마음에 걸렸기에, 늦게나마 학과 환영회에 참석해 볼 생각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들어오라고 말하자, 아까 시몬을 안내해 주었던 그 하수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학생회실로 모시겠습니다."
메이린이 기쁨이 비명을 질러댔다.
"드디어 간다!"
* * *
캠퍼스 2층 학생회관 건물의 꼭대기 층.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은 통유리로 된 복도를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예쁘다."
가로등이 켜진 2학년 캠퍼스를 보며 메이린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학생회관 건물은 캠퍼스 중앙에 위치에 있었는데, 덕분에 어디를 둘러봐도 야경이 예뻤다. 낮에는 학생들이 뭘 하고 있는지 관찰하기도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이 길을 매번 지나겠네요! 너무 좋아요!"
카미바레즈가 설렘 가득한 얼굴로 총총 뛰었다.
"이쪽입니다."
하수인이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네 사람을 안내했다.
두 개의 문고리를 좌우로 잡아당겨 여는 다소 요란한 형태의 문이었는데, 중앙에는 '학생회실'이라는 명패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시몬은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옷깃을 펴고 넥타이를 고쳐 맨 다음, 학생회실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와아아!"
뒤따르는 멤버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안으로 들어오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달빛이 처연하게 내리쬐는 커다란 유리창이었다. 전방의 벽 한쪽이 모두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그 유리창을 등지고, 옆으로 쭉 뻗은 크고 화려한 원목 테이블이 보인다. 그 중앙에는 등받이가 높은 사치스러운 의자가 놓여 있다.
시몬은 그 테이블이 자신의 자리라는 걸 깨달았다.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그도 그럴 게 자신의 이름이 박힌 명패가 올려져 있었으니까. 그 옆으로는 마나 스탠드와 화분이 놓여 있다.
"이야, 간지나는데 시몬! 딱 회장님 자리잖아!"
딕이 껄껄 웃으며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저런 자리에서 의자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누가 오면 뒤돌고 썩소 날리면서 '왔나?' 하는 게 정석이지!"
"헛소리 좀 그만해, 평민. 그보다 우리 자린 어디야?"
"저긴가 봐요!"
학생회장 석에 설치된 두 개의 긴 테이블. 여기가 다른 임원들의 자리였다.
두 테이블이 붙어 있어서 우측에 두 명, 좌측에 두 명 앉을 수 있다. 학생회장을 중심으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학생회실 중앙에는 편하게 쉴 수 있는 푹신한 소파도 있었다.
딕은 일단 소파에 앉아서 안락한 쿠션감을 만끽했다.
"애들아! 이거 다 진짜 진짜 비싼 거야!"
메이린은 선반을 열고 과자와 홍차를 꺼내 보였다. 주전자와 찻잔마저 극도로 사치스러웠다.
"누가 메이린 아니랄까 봐 먹을 것부터...... 억!"
소파 쿠션을 딕에게 집어던진 메이린이 하수인 쪽을 보았다.
"이거 우리가 다 먹어도 돼요?"
"물론이죠. 원래는 손님 접대용이지만, 비면 저희가 채워 드린답니다."
주전자를 놓으면 물을 끓일 수 있는 마법진도 세팅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원하는 책을 찾아주는 마법진도 있었다.
앞으로 여기가 우리들의 아지트라니, 꿈만 같았다.
촤르르르!
카미바레즈는 뒤편의 커튼을 걷어보고 있었다. 커튼이 벌어지며 시몬의 학생회장석 뒤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창문이 온전히 드러났고, 그 너머로는 캠퍼스 야경이 보인다.
"정말 예뻐요!"
시몬도 잠시 키젠 캠퍼스의 경관을 구경하다가 말했다.
"학생회장 자리에 한번 앉아볼래? 카미."
"네?"
그녀가 놀란 듯 눈동자를 굴렸다.
"제가 앉아도 될까요?"
"뭐 어때."
시몬의 권유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학생회장석에 앉아보았다. 그런데 의자가 그녀의 몸집에 비하면 너무 크긴 했다.
그녀가 쑥스러운 듯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어때요?"
시몬이 대답하기도 전에 뒤에서 메이린의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아! 너무 귀여워 카미!"
딕이 킥킥거렸다.
"뭐지 이거? 엄마가 아기들 앉혀놓는 그 의자 느낌?"
"노, 놀리지 말아 주세요!"
얼굴이 붉어진 카미바레즈가 빼앵 소리 질렀고, 세 사람이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시몬이 앉아봐. 네 자리잖아."
"알았어."
카미바레즈가 물러나고 시몬이 학생회장석에 앉아보았다.
"헤이, 포즈도 딱 취해봐!"
의자가 워낙 커서 시몬에게도 큰 편이었지만, 등받이에 등을 쭉 기대고 다리를 꼰 다음, 팔걸이에 팔꿈치를 댄 채로 턱을 괴어보았다.
"이런 느낌?"
"......."
잠시 정적이 일었다. 딕이 허허 헛웃음을 흘렸다.
"포즈가 쫌 오글거리기는 한데 솔직히 잘 어울리긴 해. 안 그래?"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대답이 없었다.
일단 달빛의 각도가 너무 적절했다.
내리쬐는 처연한 은색의 달빛이 시몬의 푸른 머리카락과 만나 신비로운 광택을 일으켰고, 검은 키젠 교복을 입은 채 커다란 자리에 앉아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시몬의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흠흠."
뒤늦은 민망함이 몰려온 시몬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로나 반도에서 데이모스 위에 올라탄 사진이 기사에 올라간 뒤로, 이런 잘난 포즈를 경계하게 됐다.
'애들 귀엽네.'
고작 학생회장실 하나로 온갖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을 흡족하게 지켜보던 하수인은 발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 여러분, 학생회 담당 교수님이 오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들은 네 사람이 바짝 긴장하며 차려자세로 섰다. 하수인은 자세를 돌려 두 손을 배꼽에 얹고 허리를 꺾었다.
'학생회의 담당 교수님?'
'누구시지?'
모두가 긴장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바닥을 울리는 가벼운 구둣발 소리와 함께, 학생회 문을 사이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긴장했던 네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한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제인 교수님!"
제인이 허리를 숙인 하수인에게 손짓을 하고는, 차분한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또 보게 되네요. 제가 키젠의 학생회 담당 교수입니다."
제인은 알아채기도 힘든 옅은 미소를 그리며 네 학생들을 보았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A반의 악동들."
"교수니이임!"
메이린이 기쁨의 돌고래 소리를 냈고, 딕은 으하하 웃으며 시몬에게 귓속말을 냈다.
"이야! 학생회 파워가 센 게 부총장 제인 교수님이 뒤에 있었으니 당연했네!"
일단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제인이 상석에 앉고 남은 학생회 멤버들이 차례대로 앉았다.
"이야기는 전달받았습니다."
제인이 가방에서 서류들을 꺼내며 말했다.
"판타서스와 에이젤의 거래 내용까지."
시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거 교수들이 알아도 되나?
"학생회는 학생을 대표하는 자치조직이고, 교수들은 최대한 간섭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전대 학생회장이 그렇게 정했다면 나도 불만은 없습니다."
마치 시몬의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술술 말하는 제인이었다.
이어서 그녀는 멤버들의 구성을 보고 있었다.
"시몬이 회장이고 메이린이 부회장. 나쁘지 않은 조합이네요. 그리고 서기는 꼼꼼한 카미바레즈. 다들 A반에서의 활약을 알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놓입니다. 다만."
자신의 차례가 된 딕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너는 좀 걱정입니다. 딕 헤이워드."
"아니, 왜 또 저만!"
하하하하!
모두가 신랄한 웃음을 터뜨렸다. 제인이 서류를 넘겼다.
"물론 딕 헤이워드의 능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래도 명색이 학생회 멤버가 2학년 도중에 퇴학당하면, 그것만큼 학생회 전체에 먹칠하는 것도 없죠. 올해는 수업을 충실히 따라가도록 하세요."
딕의 입가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론입죠! 교수님!"
드르르륵.
그때 마침 하수인들이 카트를 밀고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제인과 네 사람 밑으로 홍차를 내려놓았다. 중앙에는 간단한 과자들이 놓였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시몬은 감탄했다.
'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맛있어!'
메이린이 말한 '고급'이란 게 이런 의미였다. 이런 차가 학생회실 선반에 잔뜩 꽂혀 있으니, 여기 오면 신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인도 차를 한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학생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나요?"
시몬이 차분하게 손을 들었다.
"학생들을 대표하고, 학생들의 안건과 요구를 학교에 건의합니다."
"맞습니다."
뒤이어 메이린이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었다.
"교내 각종 행사들을 계획하고 전담해요!"
"맞아요."
카미바레즈가 우물쭈물 손을 들었다.
"외, 외부 행사에 참가해서 학교의 명예를 위해 힘써요."
"그렇죠."
딕이 손을 들었다.
"총장님의 허락하에, 교내 예산의 조정 및 증강에 관여합니다!"
"네."
제인이 눈을 감았다.
"여러분의 말이 모두 맞습니다. 학생회는 학생들을 대표하는 조직입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죠. 다만, 조금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달칵.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학생회의 가장 큰 미덕은 '대화'와 '조율'입니다."
대화와 조율.
시몬이 눈을 빛냈다.
"이미 교내에는 여러분 학생회 외에도 무수한 조직들이 양립하고 있습니다. 일곱 개의 학과들, 동아리, 학생연합, 자치회, 교사진, 조교진, 하수인 연맹, 각종 협력업체들과 로체스트 상인회까지. 이들 대부분 자기 조직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녀가 손바닥을 펼쳤다.
"하지만 학생회만큼은 중립이어야 하죠. 학교를 위해 이들과 협상하고, 대화의 테이블로 끌고 와 합의점을 끌어내야 합니다."
모두가 잔뜩 집중한 채 제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학생회라고 교내에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인이 이야기를 하며 과자를 집으려 손을 뻗었다. 그런데 마침 먹으려던 그 과자 두 개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살짝 미심쩍은 눈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앞서 말한 조직들이 교내의 구석구석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그들의 영역에서 여러분은 그들을 인정하고 따라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학년 수업에서 여러분은 한 명의 학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두와 똑같이 시험 치고, 벌을 받고, 동등하게 평가받죠. 학과생활이나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냠냠-
과자 먹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바구니의 과자도 절반 넘게 사라져 있었다. 제인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나오세요."
그러고는 테이블 밑으로 팔을 쑥 넣었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깜짝 놀란 소리를 내며 물러섰다.
테이블 아래에 착 붙어 있던 은발 머리의 작은 소녀가 입에 잔뜩 부스러기를 묻힌 채 과자를 먹고 있었다.
제인의 손에 뒷덜미를 붙들려 대롱대롱 흔들렸다.
"네프티스 님!"
시몬이 소리쳤다. 네프티스가 손을 척 들었다.
"다들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