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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64화 (46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64화

수석조교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하수인 대기실'이라는 방이었다.

조교가 손등으로 똑똑 노크하자, 저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꽤 큼직한 방 안에는 서른 명의 정복 차림 하수인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그럼! 방해꾼은 빠져줄 테니 좋은 시간 보내세요~"

데이트 코스를 마련해 준 주최자 같은 대사를 내뱉은 수석조교가 잽싸게 문을 닫고 나갔다.

"아, 언니!"

메이린이 다급히 그녀를 불렀지만 수석조교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가 어색한 공기 속에서 주뼛주뼛 서른 명의 하수인들과 마주 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때 한 여성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도 다른 하수인들과 같은 차림이었지만, 어깨에는 회색 견장을 끼고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에 허스키한 목소리,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척!

그녀가 시몬을 향해 칼 같은 경례 자세를 취했다. 시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경례를 받았다.

"저희들은 1년간 여러분을 도와드릴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입니다!"

군기가 제대로 들어간 듯한 그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잘 부탁드리지 말입니다!"

"아, 네. 저희도 잘 부탁드려요."

키젠의 '하수인'들.

키젠 본부나 교내 직원은 아니지만, 키젠에 직접적으로 고용된 사람들을 말한다.

귀족 출신이 대부분인 키젠 학생들은, 하수인을 청소를 비롯해 온갖 잡일이나 하는 하인처럼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조직에서 서열이 낮을 뿐이지 키젠에서 암살이나 첩보 등 수많은 활동을 수행하는 실력자들이다.

무엇보다, 키젠에서는 싸우지 못하는 사람을 뽑지는 않는다. 이들 모두 전쟁이 일어나면 키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병사로 돌변한다.

사실 로크섬 밖에서 대륙민들의 시선에, 하수인들은 성공한 엘리트이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하수인을 삼십 명이나!'

이래서 학생회 학생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하수인들과 친하게 지냈던 딕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자! 그럼 여러분!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바로 물건 좀 옮겨주실 일이 있는데요!"

"......."

하수인들을 여전히 앞만 본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딕이 뻘쭘한 표정을 짓는 사이, 앞에 있던 하수인의 입이 열렸다.

"저희는 오로지 학생회장님의 명령에만 복종하지 말입니다."

"......아. 아하하! 그, 그런 시스템이었구나!"

딕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민망한 웃음을 참지는 못했다.

"학생회장님이 없는 경우 그다음 명령권자인 부회장님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들었지?"

메이린이 콧대를 드높이며 팔짱을 꼈다. 딕이 '예이, 예이.'하고 시무룩하게 대꾸했다.

그때 시몬이 앞으로 나왔다.

"굳이 그렇게 딱딱하게 명령권자를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학생회 임원들의 부탁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다른 학생회 임원들은 제3 명령권자로 설정하겠습니다."

결국 또 명령권자 이야기인가. 시몬은 웃음으로 넘어가고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는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부회장인 메이린."

메이린이 '안녕하세요~'하고 발랄하게 인사했다.

"그 뒤에 총무 딕 헤이워드. 서기 카미바레즈 우르슬라예요."

두 사람이 각자 개성 있는 모습으로 인사했다.

"앞으로 같이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잘 부탁드립니다."

시몬이 손을 내밀자, 하수인은 그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허리를 굽혔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그렇게까지 예를 취할 필요는 없는데요. 아! 혹시 이름이 어떻게......."

"1번입니다."

"네?"

"번호로 불러주시지 말입니다. 저는 1번 하수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가슴에 번호가 붙어 있었다. 시몬은 고개를 저었다.

"급박한 임무 중일 때는 번호든 호출명이든 쓰겠지만, 굳이 처음부터 그러고 싶진 않아요."

의외라는 듯, 하수인이 고개를 들었다.

"......정 그러시다면."

이야기하는 내내 기계처럼 무표정했던 얼굴에서, 처음으로 쑥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모조라고 불러주시지 말입니다."

"네, 모조."

시몬이 상냥하게 웃었다.

"굳이 번호로 부르기에는 예쁜 이름이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시몬은 솔직한 생각을 말했을 뿐이지만, 뒤에 서 있던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는 역시야."

딕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다 같이 대강당으로 이동하죠."

* * *

시몬이 임원들과 직속 하수인들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내일 입학식이 열리는 대강당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하수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을 닦거나 의자를 옮기고 있었는데, 시몬이 데려온 하수인들을 보고는 '살았다'를 외치며 환하게 웃었다.

시몬도 하수인들을 보내 그들을 돕도록 지시했다.

"의자 이쪽으로 서른 개 더 보내주세요!"

부회장 메이린은 누구보다 바쁘게 돌아다니며 하수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대강당을 활보하다가 카리스마 있게 손가락을 척척 뻗었다.

"의자가 깨져 있는지 확인하고, 깨진 건 바로바로 뒤로 빼주세요!"

"예!"

작년에 의자가 낡거나 깨져서 앉지 못했다는 외부인들의 불만사항이 많았다. 하수인 두 명이 손상된 의자를 옮기자 메이린이 소리쳤다.

"야, 바보 평민! 깨진 의자 두 개 추가!"

"오케이 오케이."

딕은 물품 리스트를 든 채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총무님!"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이 의자를 들고 대강당으로 달려왔다.

"자재 창고에 남은 의자가 10개뿐이었습니다!"

"아, 망했네요."

딕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깃펜을 들었다.

"예산 빼서 새로 구매해야겠어요. 일단 탈라리아에 연락해서 내 이름 대고 이거랑 똑같은 의자 서른 개만 빼달라고 해요."

"야! 바보 평민!!"

메이린이 잘 걸렸다는 듯 후다닥 뛰어왔다.

참고로 '탈라리아'는 딕이 운영하는 배달 사업체였다.

"어딜 또 학교 돈으로 네 사업체 쓰려고! 비리 딱 대!"

"뭔 소리야."

딕이 미간을 좁혔다.

"외상으로 물건 빼뒀다가 원가만 지불할 거야. 물론 직접 구매업체에 낼 거고."

"응?"

메이린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면 탈라리아만 손해 아냐?"

"아! 내가 학생회니까 손해 좀 감수한다! 됐냐?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몬한테 엿 먹일 사람으로 보여?"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몬은 쓰게 웃었다.

그냥 싸우는 것 같지만, 딕은 총무 일을 제대로 하는 거였고, 메이린도 총무 검열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였다.

"아. 아."

그때 연단 위에 올라가 있던 카미바레즈가 확성 수정구를 들고 말하고 있었다.

"시몬! 잘 들리세요?"

"응, 잘 들려."

시몬은 이번엔 2층으로 올라갔다.

"시몬! 지금은요?"

"잘 들려! 카미."

이어서 3층까지 음향체크를 마치고 돌아왔다. 상자에 확성 수정구를 담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헤헤 웃으며 시몬을 반겨주었다.

"수고했어요!"

"응."

시몬도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수정구 담는 걸 도와주었다.

"시몬~"

"왜 그래?"

"너무 설레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그녀의 작은 날개가 파닥파닥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학교의 행사를 맡아서 주관하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응, 나도 그래."

"내일 사람들 많이 와주겠죠? 다들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연단으로 달려 나온 메이린이 조명 위치 틀렸다고 왁왁 화내는 모습이 보인다. 두 사람은 숨죽여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시몬의 말이 맞았어요."

카미바레즈의 두 뺨이 발그레해졌다.

"학생회 일, 하기 잘한 것 같아요."

"그렇지? 내가 말했잖아."

"네."

카미바레즈가 해맑게 웃었다.

"앞으로도 시몬 말 잘 들을 거예요!"

"!"

갑자기 목이 간질간질해진 시몬이 애써 웃음 지으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얘들아아아아!"

바로 그때.

대강당 입구에서 떠들썩한 외침이 들렸다. 같은 A반이었던 제이미, 신디, 클라우디아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 다들 와줘서 고마워!"

메이린이 후다닥 그녀들을 마중하러 뛰어나갔다. 제이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학식 준비 중인 대강당을 둘러보았다.

"어머, 웬일이니? 너희들 진짜 학생회 일 하는구나!"

메이린이 웃었다.

"그럼 가짠 줄 알았어?"

"다들 뭔가 멋있어! 안녕, 시몬! 카미이이 안녕~ 딕도 오랜만!"

호들갑을 떨며 인사하는 제이미의 옆으로 시크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신디 비바체가 메이린의 허벅지를 꾹 찌르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능력남 만나서 이런 일도 다 해보고, 부럽다 야."

"뭐, 뭐라는 거야!!"

얼굴이 시뻘게진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질렀다. 신디가 음흉하게 웃었고, 클라우디아는 아예 입을 틀어막으며 끅끅댔다.

"아, 암튼!"

메이린이 등을 홱 돌렸다.

"시몬! 카미! 연단 좀 써도 될까? 간단하게 리허설 좀 하려고!"

"알았어!"

제이미와 신디, 클라우디아도 1학년 후배들 앞에서 자신들이 학과를 소개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2학년 모두가 아직 선배가 됐다는 자각이 없는 상태였다. 하루빨리 귀여운 1학년 후배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아, 드디어 왔다 왔어!"

딕이 커다란 카트를 끌면서 손을 흔들었다. 고급 위스키병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다가왔다.

"이게 그거지? VIP들께 드릴 주류."

"정답!"

딕이 능숙하게 위스키 뚜껑을 따더니 유리잔 바닥이 살짝 덮일 만큼만 따른 다음 시몬에게 내밀었다.

"이건 샘플이야. 학생회장께서 맛 좀 보셔."

"......일하는 중에 술은 좀 그런데."

"엄살은! 이거 반의반 잔도 안 채웠어."

시몬이 마지못한 잔을 받아들더니 가볍게 시음해 보았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와, 이거."

"음흐흐! 좋지 좋지? 카미도 한잔할래?"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팔로 X자를 그렸다.

"전 술은 괜찮아요!"

"그거 뭐야?"

메이린과 전 A반 여학생 삼총사들도 호기심이 생기는지 다가왔다.

"VIP들 드릴 건데, 한번 맛이나 봐."

딕이 여학생들에게도 위스키를 조금만 따라주었다.

"와, 학생회에서 술을 준비한다고? 이래도 돼?"

클라우디아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잔을 받아들였다.

"드레스덴 왕국에선 꽤 오래된 격식이야. '올드체어'라는 건데, 이게 바로 고오급 접대스킬이지."

그녀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잔을 부딪치더니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우윽!"

"써!"

그러곤 하나같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혀를 내밀었다.

"야! 평민! 이렇게 쓴 걸 VIP분들께 먹인다고? 학교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냐!"

"독한 위스키니까 쓴 게 당연하지! 이 술알못들아."

딕이 한숨을 푹푹 쉬는 시늉을 했다.

"하여간 여자애들, 맨날 달짝지근한 와인만 먹어서 진정한 술맛을 모른다니까."

"시몬! 이거 진짜 괜찮아?"

메이린이 다급히 묻자,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이 드신 분들은 좋아할 것 같은데?"

"봐라! 봐!"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미 구매는 확정했다.

위스키는 바로 주류 창고에 넣어서 보관했다가, 내일 꺼내기로 했다.

대신, 만약에 VIP들 평가가 안 좋으면 딕은 다음 아이디어 회의 때 입 다물고 있는 걸로 메이린이 못 박았다.

그렇게 열심히 입학식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그때.

"제인 교수님!"

드디어 회의가 끝났는지, 제인이 대강당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굳은 얼굴로 시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학생회장."

"네, 교수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겠지만, 지금 바로 학생회장으로서 해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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