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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465화 (46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65화

커다란 벽돌 건물과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이 고불고불 광장을 휘감고 있는 대도시.

드레스덴 왕국의 수도 랭거스틴.

입학식 준비를 하던 시몬은 난데없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여길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네."

일의 경과는 대강당으로 들어온 제인의 지시로부터 시작됐다.

-최근, 여러 문제로 학교에 교수 인력이 부족해졌습니다. 그러니 학생회장이 직접 랭거스틴으로 가서 신입생들을 로크섬으로 인솔해 줬으면 합니다.

시몬은 깜짝 놀랐지만, 제인은 무척 태연한 어조였다.

-원래 신입생 인솔은 교수가 직접 가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학생회장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2학년이니 황천고래를 타본 경험도 몇 번은 있겠죠? 자세한 사항은 현장에서 설명해 줄 겁니다.

로크섬에 들어오는 방법은 황천고래 외에도 네 가지가 더 있는데, 커다란 괴물 매를 타고 오는 쪽의 인솔은 딕이 가기로 했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학교에 남아 입학식 준비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몬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랭거스틴으로 넘어왔다.

'기분이 묘하네.'

레스힐에서 입학 통지서를 받고, 잔뜩 긴장한 채로 배에 올라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내가 신입생들을 데려가는 입장이라니.

조금 신기한 느낌이었다.

'좋아, 힘내자!'

시몬은 열의를 불태우며 걸음을 옮겼다.

철썩철썩 드넓은 바다를 보며 걷고 있으려니 저 멀리 익숙한 선착장이 보였다. 커다란 배가 선착장에서 준비 중이었고,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배를 보수하거나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

"그 상자는 이쪽으로!"

"병 안 깨지게 조심해!"

시끌시끌 북적북적 일하는 사람들 사이로, 시몬이 걸어갔다.

자리에 앉아 시가를 피우며 농땡이를 피우던 하수인들은 시몬의 팔에 매어 있는 학생회 완장을 보고는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억.

척.

그러곤 허리 굽혀 인사를 보냈다. 시몬도 정중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시몬이 지나가자 하수인들이 숨죽인 목소리로 숙덕거렸다.

"저 친구지? 올해 새로운 학생회장."

"맞아. 애가 싹싹하고 예의 바르네."

"첫날이니 좀 달라 보이고 싶겠지. 길어도 일주일일걸."

조용히 잡담을 주고받은 하수인들이 다시 몸을 돌려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배에서 제복 차림의 남자가 뛰어나왔다.

"아, 오셨습니까 학생회장님!"

제복의 가슴에 키젠 마크가 보인다. 키젠 본부의 직원.

두 사람은 서로 악수하며 미소 지었다.

"학교측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일 같이 잘해보죠."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뭘 도와드리면 되나요?"

시몬이 열의를 보이며 소매를 걷어붙였지만,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배 보수는 기술자들 일이고, 청소나 잡일도 다 끝나갑니다. 학생 인솔을 맡으셨으니, 학생회장님은 내일 새벽 5시까지 이곳으로 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엄청 바쁠 줄 알았는데 벌써 다 끝났다고?

"그 전까지는 자유시간입니다."

직원이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정면에는 키젠의 표식이 그려져 있었고, 뒤에는 글을 쓸 수 있는 칸이 있었다.

"숙박과 식사는 저희가 제공하겠습니다. 랭거스틴의 어디든 가셔서 이 카드를 보여주면, 뒷면에 알아서 비용을 적어줄 겁니다. 그걸 내일 제게 주시면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시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 근데 진짜 이걸로 끝인가요?"

"네! 끝입니다. 푸욱 쉬시고 자유시간을 만끽하시죠."

본부 직원이 미소 지었다.

"내일부터는 어마어마하게 바빠질 테니까요."

* * *

그렇게 시몬은 뜬금없이 자유시간을 누리게 되었다.

"읏차차."

시몬은 기지개를 쭉 켜며 길거리를 걸었다.

'오늘 저녁에 네프티스 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상황이 틀어졌네.'

그래도 부총장인 제인의 지시였으니, 네프티스 쪽도 상황이 바뀐 걸 알고 있으리라. 지금은 학생회장 신분이니 네프티스는 나중이라도 만날 수 있다.

그보다 시몬은 본격적인 학기 시작 전에 랭거스틴으로 온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소환학 준비물이랑 교재까지 싹 사 가자!'

로크섬 내에 위치한 학생도시 '로체스트'는 물가가 비싼 편이다. 따라서 내륙인 랭거스틴에서 재료들을 구매하면 훨씬 돈을 아낄 수 있었다.

토토와 연락이 된다면 토토 것까지 사주고 싶었지만, 지금쯤 개인적으로 구매하러 나갔을 것 같다.

시몬은 미련을 접고 눈에 익은 골목길로 들어갔다.

'이제 캠밸로드까지 가는 건 쉽지.'

골목 곳곳에 나와 있는 표지판과 건물 주소만 잘 봐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그렇게 느긋하게 구불구불한 길을 가다 보니 꽤 익숙한 곳이 나타났다.

레스힐에서 벗어나 대도시에 처음 왔던 그 날. 가이드라고 자신을 속인 이상한 갱단원을 따라가서 싸웠고 그때 로레인의 도움을 받았었다.

'옛날 생각나네.'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때 가이드라고 날 속이려 했던 사람은 분명.......'

"걱정 많이 했습니다, 고객님! 랭거스틴에서 외부인이 가이드 없이 홀로 돌아다니는 건 정말로 위험하거든요."

시몬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지금 뭐라고?

"순진한 여행객들을 벗겨 먹으려는 나쁜 사람들이 쥐처럼 도시에 득실대고 있습니다! 오로지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하하, 물론이죠! 가이드님만 믿겠습니다!"

저 대사, 엄청나게 익숙한 레퍼토리다.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그늘에 숨은 채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쭉 내밀었다.

자신을 가이드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쉴 새 없이 떠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는 헤헤 웃고 있는 순박한 인상의 빨간 머리 소년이 있었다.

'잠깐! 쟤가 왜 여깄어?'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파로나 반도에서 만났던 그 용병왕, '아서'였다.

"하하하하!"

활짝 웃으며 가이드와 이야기하는 아서는 아무런 의심도 없어 보였다.

'딱 봐도 속고 있는 것 같은데.'

시몬이 언제 나설지 고민하는 그때.

척.

가이드가 싸늘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아서도 뒤따라 걸음을 멈췄다.

"어, 다 온 건가요? 제 동료들은......."

"당신의 동료들은 잘 모르겠지만."

딱!

가이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골목 곳곳에서 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제 동료들은 여기에 있습니다."

'역시나.'

지켜보던 시몬이 한숨을 쉬었다.

"어이, 신호야. 안 나가?"

시몬이 있는 골목에도 갱단원 한 명이 숨어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로브를 걸치고 있었더니 자기 쪽 동료인 줄 착각한 모양이었다.

"나가야지."

시몬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며 걸어갔다.

뿌드득!

갱단원은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고 입에 거품을 물고 바닥에 쓰러졌다.

가뿐히 손을 털어낸 시몬이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갔다.

가이드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며 득의양양하게 말하고 있었다.

"자, 상황파악은 대충 끝났을 테고. 순순히 우리를 따라오면 다치진 않을 거야."

"네!"

아서가 휙휙 고개를 끄덕였다.

'음?'

예상치 못한 반응에 가이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잘못 알아들은 건가? 그가 다시 한번 말했다.

"크흠! 순순히 따라오면 다치진 않......."

"하하! 그럼요. 다치면 안 되니까 가이드님을 따라온 거잖아요? 어서 가시죠! 아! 안녕하세요 가이드님의 동료 여러분! 저는 아서라고 합니다!"

모두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뀌는구나.'

시몬은 쓴웃음을 지으며 건물 벽에 등을 기댔다.

"뭐, 흠! 따라온다고 하니까. 그래, 따라오면 피 볼 필요도 없고 좋지."

저쪽도 그냥 맞춰주기로 한 것 같았다.

"일단 너 등에 찬 그거 검이지? 그거 내려놔."

"네?"

아서가 순수한 눈망울을 깜빡였다.

"왜요?"

"이 미친 새끼가 지금 사람 갖고 노나! 잡혀가는 새끼가 무기 내려놓는 게 당연하지. 뭐가 왜요야!"

아서의 시선이 돌아갔다.

무기를 들고 주위를 포위한 가이드의 동료들.

갑자기 태도가 변한 가이드.

그리고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요구.

"설마."

아서가 입을 벌렸다.

"무기를 내려놓으면 제게 나쁜 짓을 하시려고...... 당신들! 사실 나쁜 사람들이었군요!"

"미친 X발! 그걸 이제 알았냐!"

가이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됐어! 그냥 쳐!"

남자들이 무기를 앞세우며 들이닥쳤다. 아서는 잔뜩 굳은 얼굴로 등 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펄럭!

검을 감싸고 있던 붉은 보자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드레스덴 왕국에서 만난 첫 친구. 정말 소중하게 대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뭐라 지껄이는 거냐! 이 미친 새―"

쩌어어어어어억!

빛이 번쩍하는 듯싶더니 선두 남자의 얼굴이 깡통처럼 일그러지며 날아가 뒤쪽의 건물 돌담에 부딪혔다.

와르르르르!

돌담이 무너져 내리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뭐여?"

남자들의 눈이 튀어나오듯 커졌다.

어깨를 부르르 떨며 고개를 든 아서의 눈빛에 커다란 분노가 일렁였다.

"당신들은 내 마음을 짓밟았어!"

쩌렁쩌렁!

소년의 박력에 갱단원들이 움찔했다. 그중 대장격인 남자가 소리쳤다.

"쫄지 마! 한꺼번에 들어가!"

사방에서 온갖 무기가 휘둘러진다. 아서는 경쾌한 발놀림으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앞에 온 갱단원의 뒤통수를 검 손잡이로 내리찍었다.

퍼걱!

갱단원의 머리가 바닥타일을 부수며 처박혔다.

쩍!

이어지는 발차기에 또 한 명의 몸이 꺾이고.

으적!

검집이 뒤에서 창을 내지르던 남자의 콧대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절대 용서 못 해!"

"이, 이 꼬마 뭐야?!"

퍽!

뿌드득!

빠직!

우득!

격분한 아서가 지나가는 길마다 갱단원들이 피를 뿌리고 관절이 기이하게 꺾인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포위해! 포위해서 싸워!"

보스격인 갱단원이 소리쳤다.

"공간을 주지 말...... 허업!"

그는 말을 채 잊지 못하고 뭔가에 부딪혔다.

쾅!

"크윽!"

난데없이 시커먼 뼈들이 그의 몸을 구속해 벽에 처박은 것이다.

"이, 이게 뭐야?"

쾅!

쾅!

쾅!

뒤이어 그의 옆으로 세 명의 갱단원이 나란히 똑같은 포즈로 두 팔과 다리가 뼈로 고정되었다.

"커헉!"

"이것 좀 풀어봐! 움직일 수 없어!"

정신없이 싸우는 아서의 옆으로, 검은 로브를 두른 소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휘릭 휘릭 리듬감 있게 휘둘러졌다.

철컥!

철커덩!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사방으로 뼈가 날아다니며 남자들을 구속해 벽에 붙였다. 아서도 뒤늦게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누구......."

빠악!

아서의 뒤를 노리려던 남자가 뼈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다. 아서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고, 소년이 빙긋 웃었다.

"조심해~ 아서."

익숙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물어볼 틈도 없이 아서는 다시 검을 휘둘러야 했다.

"저 자식! 네크로맨서다!"

한 갱단원이 검을 꼬나쥐고 로브를 입은 소년에게 달려들었다.

"바보는 냅두고 이놈부터 쳐!"

소년이 씩 웃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스르르르―

갱단원들을 묶은 뼈에서 조각들이 몇 개 더 떨어지더니 소년의 앞에 쏜살같이 도착했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몸통과 팔다리, 얼굴이 차차착 맞춰지며 스켈레톤의 모습으로 변했다.

"어, 언데드?!"

순식간에 조립이 완료된 스켈레톤이 내려와 검을 휘둘렀다.

까아앙!

스켈레톤과 갱단원이 검을 맞대며 힘겨루기를 했다. 아서의 눈이 커졌다.

'대단해! 내가 본 것 중에 최고로 정교한 스켈레톤 컨트롤이야!'

"크아압!"

갱단원이 스켈레톤의 검을 쳐내고 횡으로 휘둘렀다. 스켈레톤의 몸이 상 하체가 분리되었다.

"헹!"

갱단원이 비웃음을 흘렸지만, 반으로 갈라진 줄 알았던 스켈레톤의 뼛조각이 그대로 날라와 갱단원의 몸에 착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본 아머>

순식간에 온몸이 뼈로 뒤덮인 그가 '으아악!' 비명을 질러댔다.

몸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검을 내려놓고 근처에 떨어진 망치를 쥐었다.

"그, 그마아아안!"

쩍!

그가 제 얼굴을 망치로 내리치고는 픽 쓰러졌다.

"네크로맨서부터 포위해!"

우르르!

갱단원들이 로브를 입은 소년을 포위했다.

"그거 알아?"

소년의 손가락이 춤을 추자, 골목 곳곳에 널려 있던 쓰레기 더미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버려진 포장지나 봉투의 겉을 찢고 나오며 더 많은 뼛조각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내 뼛조각들이 서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규격과 종류의 뼈들이 삐걱거리며 스켈레톤의 형상을 만들어 나갔다.

"이 앞 건물이 해골 매장이라는 거."

처억!

척!

스켈레톤들은 완성되자마자 바닥의 병기를 주워서 갱단원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와.'

아서는 검을 휘두르는 것도 잊고 저 정체불명인 소년의 스켈레톤 컨트롤을 지켜보았다.

아름다웠다.

소환학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인 스켈레톤일 뿐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솜씨가 예술의 경지에 가까웠다.

세밀한 컨트롤은 물론, 교차운용이 극의에 달한 모습.

털썩.

쿵!

갱단원들이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딱 두 명 남았네."

그가 제일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말했다.

그들이 움찔하더니 등을 돌려 도망쳤다. 언데드를 부리던 소년은 바닥을 걷어차 직접 돌진했다.

팟.

순식간에 소년은 그들을 지나쳤고, 두 손은 교차한 자세였다.

풀썩! 풀썩!

그들의 몸이 실 끊어지는 인형처럼 쓰러졌다. 아서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주, 죽인 건가요?"

"아니."

소년이 아서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냥 재웠어."

정말이었다. 전투 중에 난데없이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소년은 떨어진 뼛조각을 이용해 그들을 벽에 고정했다.

이제 아서를 습격한 자들 전원, 바닥에 누워 있거나 뼈에 고정되어 악을 지르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서가 고개를 숙였다.

"누, 누구신지 여쭤봐도......."

소년이 후드의 끝을 붙잡아 머리 뒤로 넘겼다.

푸른 머리카락이 드러나며 마침내 시몬이 얼굴을 드러냈다.

"잘 지냈어?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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