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68화
선착장에서는 한바탕 고성방가가 쏟아지고 있었다.
"본부에 연락해서 다시 확인해 봐! 고작 한 자리가 안 빌 리가 없잖아!"
"죄송하지만 이미 새벽에 확인했고, 입학생 자리를 포기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사이에 안 바뀌라는 법 있어? 본부에 연락해 보라니까!"
항의자는 키젠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소년.
그리고 신입생들의 입학증명서를 확인하는 하수인이 그를 막고 있었다.
무사히 통과한 신입생들은 갑자기 벌어진 이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연례행사래."
"후보 1번이면 1,001위란 거지? 좀 불쌍하긴 하네."
"그래도 뭐 어쩌겠어?"
킥킥킥!
그 웃음소리를 들은 후보생이 싸늘한 얼굴로 신입생들 쪽을 보았다.
금방이라도 사람 하나 찢어 죽일 듯한 광인의 눈.
신입생들의 웃음소리가 멎어 들었다.
"애초에 저런 X밥들은 합격시키고, 암페르지의 후계자인 나는 떨어뜨려? 그것도 1,001위로? 지금 사람 약 올리는 거지?"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물러나 주십시오."
"일개 평민 따위가 감히!"
그리고 1학년 특유의 가문 내세우기까지.
몇 년 동안 이 일을 해온 하수인은, 여기서 괜한 여지를 주면 상황이 더 꼬일 뿐이고 이 학생에게 헛된 희망만 품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대했다.
"다음 분."
하수인이 뒤쪽을 보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순간, 후보생의 눈깔이 확 뒤집혔다.
뻐억!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후보생이 하수인의 다리를 무지막지하게 걷어찼다.
차마 진짜로 폭력까지 쓸 줄은 몰랐던 하수인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키젠의 권위를 등에 업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후보생이 팔을 들어 올렸다.
"귀족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덥석!
"여기까지 해."
후보생의 손목이 강한 힘에 붙들렸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의 소년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넌 뭐야!"
"아서 블레만."
아서의 눈이 번뜩였다.
"용병왕이다."
꾸드드드득!
아서의 괴물 같은 악력이 후보생의 손목을 옥죄였다. 후보생이 '아아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비틀었다.
구경 나온 학생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웅성댔다.
"용병왕이라고?"
"진짜?"
"그런 거물이 왜 학교 같은 곳에 온대?"
아서가 엄숙하게 말했다.
"저분께 사과드려."
꾸드드득!
힘이 더 들어갔다. 후보생이 괴로운 소리를 냈다.
"이 새끼 무슨 힘이......!"
바닥에서 몸을 배배 꼬던 후보생의 눈이 갑자기 검게 물들었다.
[이럴 줄 알았냐?]
덥석!
손목을 붙잡힌 후보생이 역으로 아서의 손목을 붙잡고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서의 표정이 굳었다.
'윽, 무슨!'
체력과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던 아서가, 정면으로 힘에서 밀리고 있었다.
꾸드득! 꾸드드득!
아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렸다.
갑자기 검게 변한 후보생의 눈, 그리고 몸에서 불안정하게 흘러나오는 칠흑과 어마어마한 괴력.
'이 녀석! 상태가 정상이 아니야!'
빠아악!
후보생이 손목을 놓으며 아서를 걷어찼다. 간신히 팔꿈치로 막아냈지만, 아서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커헉!"
[너 진짜 용병왕 맞냐? 왜 이렇게 허약해?]
후보생이 히죽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하수인을 보았다.
[봤지? 다들 제대로 봤어? 이 정도의 힘을 가진 내가 1,001위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수인 두 명이 뛰어와 쓰러진 여자 하수인을 붙잡고 물러났다.
[자신 있는 새끼는 나오라고 해!]
그의 입이 괴물처럼 벌어졌다.
[나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하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이질적인 칠흑이 주위의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하수인들이 기겁하며 팔을 뻗었다.
"학생들 모두 배로 들어가세요!"
"물러나!"
학생들이 도망치고 하수인들은 싸울 채비를 했다.
후보생은 뿌득뿌득 어깨를 풀며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아직도 인정 못 하겠어?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내 힘을 증명할 때까지 한 명씩 한 명씩 손수 분질러 줄게. 그다음은 날 비웃었던 저 새끼들 차례야.]
배로 도망치려는 신입생들을 보며 그가 이죽거렸다.
[여기서 몇 명만 없애면, 후보생인 날 입학시킬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치?]
"너......!"
아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한번 해봐. 용병왕.]
아서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이 칠흑에 휩싸였고, 후보생은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듯 히죽거리며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다.
터어업!
그러나 아서의 주먹은 후보생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그만둬, 아서."
좌중을 내리누르는 듯한 위압감.
부르르르-
아서는 손목이 잡힌 채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오늘만 두 번이나 힘에서 밀렸다. 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푸른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시, 시몬 선배님!"
"학생회장님!!"
아서와 하수인의 외침을 들은 후보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야 나왔군!]
하수인들이 물러났고, 배에 들어가 있던 신입생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창밖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자, 잠깐만 비켜주세요!"
몰리 공주는 체면도 잊고 비좁은 틈을 비집고 나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시몬이 아서의 손목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서가 소리쳤다.
"이거 놔주세요 시몬 선배님! 저 자식은 진짜 나쁜......!"
"물러서, 아서."
시몬이 싸늘하게 뇌까리며 아서의 팔을 뿌리쳤다.
처음 보는 시몬의 냉랭한 태도에 아서는 주뼛주뼛 뒷걸음질 쳤다.
"넌 아직 정식 키젠 학생이 아냐. 귀족의 자제를 폭행했다간 입학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어."
하하하하하하하!
후보생이 큰 소리로 웃었다.
[아- 아- 역시 윗사람은 말이 좀 통하는데? 뭘 좀 아네!]
"그러니까."
쩌어어어어억!
모두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시몬의 주먹이 후보생의 안면에 무참히 꽂힌 것이다.
"이 뒤는 나한테 맡겨."
우당탕탕!
후보생이 코에서 피를 뿜으며 벌러덩 자빠져 바닥을 볼품없이 굴러다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격렬한 함성이 쏟아졌다. 저주를 준비하고 있던 키젠 직원도 슬그머니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내렸다.
시몬은 무표정한 얼굴로 후보생을 내려다보았다.
[이 새끼......!]
코가 부러지고 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입에서 이빨 몇 개가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키젠의 학생회장이야."
시몬이 냉랭하게 말했다.
"학교의 인명과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어. 그리고 넌 지금."
시몬의 시선이 손목을 붙들고 있는 아서와, 자리에 주저앉은 하수인에게로 향했다.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에 진한 분노가 실렸다.
"내가 합법적으로 두들겨 패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데."
[......끽해야 하급 귀족인 것 같은 놈이!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냐!]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말했을 텐데! 나는 이 자리의 누구보다 강하다고!]
화아아아아아아악!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칠흑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이 빠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몸 곳곳에 금 같은 자국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상하는 대신, 단시간 강력한 힘을 얻는 흑마법이지?"
시몬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 걸로 키젠에 입학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장담하는데 몇 달도 못 버텨. 키젠 생활은 3년이야."
[입 닥쳐어어어어어!]
그가 한쪽만 커진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꾸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팔에서 몬스터의 살점 같은 게 삐져나오고 있었다.
[학생회장을 박살 내고 내 힘을 증명하겠다! 죽음의 마녀가 날 입학시키지 않곤 못 배기게 만들겠어!]
터어어엉!
그가 바닥을 주저앉히며 돌진했다. 그러고는 칠흑이 휘감긴 기괴해진 오른팔을 힘껏 내질렀다.
시몬은 피하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한 손만 빼내더니 가뿐하게 앞으로 내질렀다.
<시몬 오리지널 - 촉파>
터어어어어어엉!
두 남자의 주먹이 중앙에서 격돌했다.
팔의 굵기와 파워는 누가 봐도 후보생의 압승. 지켜보는 모두가 시몬의 팔이 그대로 구부러질 거라 생각했지만.
뿌드드드득!
시몬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칠흑이 파장처럼 후보생의 오른팔로 뻗어 나갔다. 근육이 뒤틀리는 적나라한 소리와 함께 후보생이 끔찍한 소리를 내질렀다.
[끄으! 끄아아아악!]
그가 엉망이 된 본인의 팔을 붙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이런 망하알!!]
그의 오른팔이 축소되더니 이번에는 왼팔이 커졌다. 발톱이 번뜩이며 생겨나더니 그것으로 여전히 제자리에서 서 있는 시몬을 향해 휘둘렀다.
부아아아앙!
그러나 시몬에게 닿지도 않았다.
'어느 틈에!'
후보생의 오른 다리에 에메랄드빛 밧줄이 휘감겨 있었다. 시몬이 뒤로 빼둔 왼손을 잡아당기자 그가 바닥에 벌러덩 넘어졌다.
"경험이 부족해, 후보생. 싸움은 힘만으로 하는 게 아냐."
[크으으!]
졸지에 농락당한 후보생이 급히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눈앞에 시몬의 신발 밑창이 보였다.
뻐어억!
그의 고개가 젖혀졌다. 번개처럼 도착한 시몬의 주먹이 잔상을 그렸다.
우득!
퍽!
복부와 가슴에 들어가는 타격. 한 방 한 방이 척추를 타고 뇌를 뒤흔드는 듯한 타격이었다.
후보생이 팔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시몬이 다시 클라우드를 잡아당기자, 도르래의 원리로 바닥에 벌러덩 쓰러졌다.
'이 나를 가지고 놀다니!'
그가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시몬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어느새 하늘에 커다란 아공간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이글거리는 검은 화염구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쏴, 메이지들."
<다크 블레이즈>
퍼버버버버벙!
다리가 고정된 후보생이 검은 화염구에 연달아 얻어맞으며 폭발에 휩싸였다. 시몬은 유유히 클라우드를 풀고 자욱한 연기를 바라보았다.
화아아악!
풍압으로 연기를 날려 버린 후보생이 이를 악물고 칠흑을 뿜어냈다. 칠흑이 공중으로 치솟더니 화살의 형태로 변했다.
[내 차례다!]
수십 발의 칠흑화살이 쏟아졌다. 시몬은 이번에도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개문.'
촤르르르륵!
촤르르륵!
여섯 방향에서 튀어나온 뱀처럼 기다란 칼날들이 시몬의 몸을 꽃봉오리를 그리듯 빈틈없이 휘감으며 위로 올라갔다. 칠흑화살이 회전하는 칼날에 부딪혀 모조리 사라졌다.
"와......!"
"압도적이야! 상대가 금지된 흑마법을 써도 이기잖아!"
"힘내요 학생회장 선배님!!"
와아아아아-!
졸지에 시몬의 전투를 구경하게 된 신입생들은 하나같이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새끼!]
촤르르륵!
그리고 오버로드가 회수되는 순간, 그 안에 들어가 있던 시몬은 자리에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걸 깨닫기 무섭게, 시몬의 몸이 갑판 뒤의 바닥을 뚫고 후보생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슬립(Sleep)>
터업.
마법진이 그려진 시몬의 손바닥이 후보생의 몸을 짚으며 지나갔다. 후보생이 거칠게 팔을 휘둘러 시몬을 쫓아냈다.
"무슨...... 응?"
그렇게 후보생의 몸에서 날뛰던 살덩이가 힘이 죽 늘어지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도, 폭발적인 칠흑도 크게 줄어들었다.
"뭐, 뭘 한 거냐!"
"간단해."
시몬이 손바닥을 털었다.
"네 몸을 지배하고 있는 괴물을 재운 거야."
"그딴 게 가능할 리......!"
쩌어어어어억!
시몬의 주먹이 그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그가 쿨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빠아악!
뒤이은 발길질에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으적!
시몬이 그의 안면을 거칠게 짓밟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의 괴물도 응답하지 않았다.
가히 압도적.
이렇게 강한 네크로맨서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고작 1년 차이 아니었어?'
지독한 공포에 전신이 뇌의 통제를 벗어나 부르르 떨렸다.
후보생의 시선이 올라갔다.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푸른 머리의 악귀가 차갑게 뇌까렸다.
"눈깔아."
이 힘에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